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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1화 (211/250)
  • 제211화

    제211편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 리는 한세희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그녀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아아,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장우택이 눈치를 보며 장 리의 안색을 살핀다.

    장 리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앞만 보고 있을 뿐. 솔직히 말해서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관계인지 묻고 싶다.

    장우택은 지금까지 한세희와 친하다는 식으로 말했고, 그들의 관계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누나인 장 리와 한세희는 살의를 가지고 심지어 행동에 옮겼던 사이였으니.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장우택은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슬슬 한세희 길드장이랑 화해를 하는 것도…….”

    “화해?”

    장 리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이게 지금 화해 같은 걸 해서 될 일이야?”

    “그렇지만……. 모든 연인이 헤어진 애인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잖아.”

    응?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연인? 헤어져?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야. 녀석은 나를 통해서 화룽에 관한 정보들을 빼내 갔다고. 그 바람에 화룽 소유여야 했던 A급 던전을 두 개나 가져갔고.”

    “그건……. 아쉽기는 하지만 방심한 우리 잘못도 있지. 특히나 그건 누나가…….”

    “유즈어!”

    카랑카랑한 장 리의 목소리가 길드 복도를 울렸다.

    장우택은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보다 그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해도 괜찮은 건가.’

    나와 마찬가지로 결이도 눈만 굴리며 뻘쭘하게 서 있다.

    “하아, 새 친구들 앞에서 경솔하게 굴어 버렸네. 미안해.”

    장 리가 고개를 들며 시선을 맞췄다.

    어느새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이 내밀어져 있다.

    “뭘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은하준 씨는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야. 한세희보다야 누군들 나쁠 수 없겠지만.”

    장 리는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남자와 거래하다가는 끝이 좋지 않을 거야. 내가 이미 겪어 본 사람으로서 조언하는 거야.”

    “그런가요.”

    “언제든지 남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게 바로 한세희라는 남자야. 조심하는 게 좋아.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그 안은 뭐가 들었는지 모를 만큼 시커먼 남자니까.”

    “그런 남자와 잘도 사귀었잖아. 심지어 누나 쪽이 졸졸 쫓아다녀서…….”

    “유즈어.”

    “흠흠.”

    장 리는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더니 표정을 바꾸기 위해 애썼다. 그러고는 심호흡하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은하준 씨는 내가 지켜 주지.”

    “네?”

    “한세희로부터 말이야.”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장 리의 말을 막아선 건 결이었다.

    “내가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시죠.”

    “아, 신선의 S급 친구……. 그래, 당신은 강하니까. 하지만 아직 한세희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걸. 그 남자, 소름이 끼치도록 강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야.”

    장 리는 분하다는 듯 고개를 떨었다. 한세희와 비교당한 결이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잘생긴 미간이 잔뜩 패 있다.

    저러다가 주름 생길라.

    “우리가 힘을 합쳐 은하준 씨를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게다가 나는 유경험자잖아?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고.”

    “그래, 맞아. 우리 다 함께 은하준 씨를 지키자.”

    장우택이 즐거운 듯한 얼굴로 말을 보탠다.

    “무슨 한세희 씨가 무시무시한 악당처럼 들리네요.”

    “맞아!”

    “그건 아니지만…….”

    장씨 남매가 동시에 외치고는 서로를 바라본다.

    “됐어요. 한세희 씨와의 관계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아이참, 내 말을 들으라니까.”

    장 리는 투덜거렸지만, 이제 더는 한세희 이야기로 진을 빼고 싶지 않은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조금 걸어서 펫 훈련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훈련 때 사용한 물건들과 장난감이 흩어져 약간 어수선한 공간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윙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 마리가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장 리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내부를 둘러본다.

    “윙키?”

    “샤샤샤…….”

    내 부름에 구석에서 하얀 뱀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고 얇은 흰 뱀은 마치 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반짝거렸다.

    “어머!”

    장 리가 소리를 쳤다.

    “쉿. 윙키는 아직 사람을 무서워해요.”

    “아아, 이게 그 펌블에서 잡아 왔다던 그 아이구나?”

    “잘 알고 계시네요.”

    “샤샤샤……. 스스…….”

    윙키는 저 멀리에서 다가오려다가 말고 이쪽을 유심히 관찰한다.

    “어머, 어머. 그런데 정말 너무 예쁘다.”

    “정말. 이렇게 작은 윙스네이크는 처음 보는 것 같군요.”

    장우택 역시 감탄하며 윙키를 보았다.

    “새끼 몬스터를 던전에서 포획해 오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펌블의 길드장도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렇더라고요. 경솔한 행동이기는 했지만요.”

    “어차피 데려오지 않았다면 죽였을 것 아닙니까. 차라리 이게 낫죠.”

    장우택이 담담하게 말한다.

    하기야 그 말이 틀리진 않다. 우리는 던전 안의 몬스터를 죄다 죽이니까.

    “이리 온~”

    “쉬이이잇, 쉿…….”

    장 리는 쪼그리고 앉아 윙키에게 손짓했다.

    내 예상대로 윙키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쉬잇, 쉬이이잇…….”

    윙키는 지금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다.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온몸의 비늘이 바짝 서 있다. 평소에는 귀엽게 다물려 있던 입도 이를 드러내고 쩌억 벌린 상태다.

    게다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김재민에게 잡혀 왔을 때의 트라우마가 다시 솟아오른 것일까. 신선에 데려온 후로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겁에 질린 그 모습이 애처롭다.

    스스스. 나는 스킬을 사용했다. 영혼 전이. 낯선 이들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은 윙키를 위해서다.

    “착하지, 윙키. 괜찮아. 이 사람들은 널 해치지 않아.”

    “쉬이이잇…….”

    “괜찮아. 내 손님들이야. 미안해, 널 보고 싶다기에. 아직 넌 준비가 안 됐는데.”

    “쉿, 쉿쉬이이…….”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윙키.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있던 딱딱한 자세가 천천히 부드럽게 풀어진다. 그러고는 경계를 푼 채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겁이 조금 나는 걸까.

    “어머.”

    장 리는 내가 스킬을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몬스터를 조종하는 스킬인가?”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감정을 전이시켜 안정 상태로 만든 겁니다.”

    “호오……. 그것참, 대단한 스킬이네. 마치 몬스터와 대화를 나눈 것 같잖아.”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화룽의 브리더에게도 비슷한 스킬이 있을 텐데요.”

    “흠, 우리 브리더는 야수 조종 스킬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아무래도 조종이다 보니 몬스터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잘 통하지 않아.”

    우리 신선의 안영지도 가지고 있는 스킬이다. 확실히 영혼 전이가 대화라고 한다면 야수 조종은 명령과 복종이다. 그 차이를 단박에 이해하다니, 장 리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정말 대단하네, 은하준 씨.”

    그녀는 살짝살짝 움직이는 윙키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제가 좀 대단하기는 하죠.”

    스스슷. 윙키가 천천히 다가온다. 나와 장 리를 번갈아 보는 게, 마치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거지? 라고 묻는 것처럼 보인다.

    윙키는 결국 장 리의 손이 있는 곳까지 다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냄새를 킁킁댔다.

    “응. 듣던 대로야. 아니,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

    “고맙네요.”

    “그런 은하준 씨에게 우리 화룽은 빚이 있지.”

    “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자, 장우택이 민망한 얼굴로 웃는다.

    “아아…….”

    호텔 테러 사건의 정황을 장 리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선물을 좀 준비했지.”

    “정말로 특별한 선물이 우리 누나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물론 나를 만나는 일은 상당히 대단한 선물이기는 해. 그렇지? 은하준 씨.”

    장 리는 빙긋 웃으며 인벤토리를 열더니 아이템을 소환해냈다.

    “화룽에서 개발한 펫을 위한 영약이야.”

    “영약? 그런 게 있어요?”

    “펫의 레벨링을 도와주는 물건이야. 이걸 먹고 던전을 돌면 한 번에 레벨이 10씩도 올라가지. 단기간에 펫을 육성시키려면 이만한 게 없어.”

    회귀를 한 나이지만, 화룽의 펫 전용 영약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일급 비밀이지. 아무에게도 개방하지 않은 비밀이야. 당연히 이걸 만드는 방법도 완전히 비밀이야. 그건 은하준 씨에게라도 알려 줄 수 없지.”

    “그러니까 우리 화룽은 새로운 몬스터 브리더가 나타나더라도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굳이 라이벌을 죽이거나 하는 더러운 수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장우택이 말을 거든다. 호텔 테러 사건이 벌어진 그때를 떠올리는 것인지 그의 표정이 심각하다.

    “바보 같은 놈들.”

    “뭐, 그들 입장에서는 우택이 너를 없애고도 싶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바보 같다는 거야. 내가 그런 일로 죽겠어?”

    장 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자. 어쨌거나 미안한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야.”

    그녀가 건네는 작은 상자에는 동그랗게 빚어진 경단들이 들어가 있었다.

    “아홉 개나…….”

    “약소한 선물이지. 한 마리에게 여러 개 먹여도 괜찮은 거니까, 게다가 확실한 물건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킁킁, 킁. 아부아바바바!!”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흑단이가 바짓단을 마구 잡아당긴다.

    “응? 흑단아?”

    “게다가 이렇게 몬스터들이 좋아할 맛과 향을 입힌 덕에 먹이기도 편하지. 어때? 우리 화룽의 기술이.”

    “이야 대단한데요.”

    “꾸와앙. 삐이!”

    “쉬이잇? 쉬이이…….”

    흑단이가 관심을 가지니 윙키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한번 먹여 보는 게 어때?”

    “던전에 갔을 때만 먹이는 게 아닌가요?”

    “물론 던전에 가면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 하지만 그냥 일상 생활에서 먹여도 레벨이 단번에 5는 올라가거든. 그래, 좋아. 일단 선물로 준 건 아껴서 사용하도록 해. 내가 가진 영약을 이 녀석들에게 하나씩 먹여 주도록 하지.”

    “엇……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지. 이 영약의 주인이 바로 나니까.”

    츠츠츳.

    장 리가 아이템을 추가로 소환해냈다. 동그란 영약 두 개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생겨났다.

    “자아, 하나는 우리 은하준 씨가 흑단이에게 먹이도록 하고. 이 예쁜 윙스네이크에게는 내가 먹여 봐도 될까? 이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들거든.”

    장 리가 윙키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몸을 숙여 윙키를 본다.

    “안녕 예쁜아?”

    “쉬잇, 쉬이이…….”

    윙키는 장 리의 손에 들린 영약이 먹고 싶은 눈치였지만, 아직 조금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까만 눈의 시선이 나와 장 리의 영약 사이로 왔다 갔다 한다.

    “먹어도 돼.”

    “쉿, 쉬이이잇…….”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장 리에게서 영약을 받아 한 입에 꿀떡 삼키는 윙키.

    그 모습을 보고 흑단이 녀석도 발을 동동 구른다.

    “자, 흑단이 너도 먹어 보자.”

    “아부아바바! 쿠와앙!”

    덥석.

    흑단이는 내 손까지 먹어 버릴 기세로 영약을 입에 넣는다. 그러고는 씹지도 않고 단숨에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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