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제209편
“도와주세요! 차 문이……!!”
여성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는 곳은 버려진 차들 사이에 낀 승용차 안이었다. 도망치는 인파와 자동차가 뒤섞인 도로에서 접촉 사고로 인해 찌그러진 차 문 때문에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갑니다!”
안영지가 차가 있는 쪽으로 뛰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
안영지를 따라가던 나는 중간에서 멈춰 굴러오는 거대한 원형 몬스터의 앞에 선다.
구구구구구. 콰작, 콰자자작.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 내며 굴러오는 몬스터.
볼링 공 앞에 선 볼링 핀의 심정이 이럴까. 위압감에 짓눌리지 않게 심호흡을 한 뒤 침착하게 스킬을 사용한다.
‘불안한 예감!’
디버프 스킬을 먼저 꽂아 준 뒤, 억압의 손길을 양옆 빌딩에서부터 끌어온다.
차르르륵.
차륵. 차르르륵!!
순식간에 만들어낸 사슬을 거미줄처럼 엮는다.
“네가 공이라면 골대를 만들어 주지!”
콰가가가가.
빠른 속도로 굴러오는 몬스터가 억압의 손길에 걸려 가로막혔다.
“크으윽!!”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마력을 퍼붓는다.
드드드득. 드드득.
콰가가가가.
키륵, 키륵.
사슬에 막힌 몬스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회전하는 것이 보인다.
“읏, 발목이 완전히…….”
“괜찮아요. 제가 옮겨 드릴게요.”
뒤를 돌아보니 안영지가 차 문을 완전히 뜯어내 버리고 갇힌 여성을 구조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성을 안아 들고 내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앗!”
높이 도약한 안영지가 자리를 벗어나고 나 역시 위치를 이동한다.
괴물이 닿지 못할 높은 곳까지.
키르르르륵…….
그때, 계속해서 공회전하던 몬스터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키긱, 키기기긱…….
회전이 점점 멈추더니 곧 완전히 정지했다.
“뭐냐…….”
“대단해요!”
내가 도착하기 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모였던 헌터 몇 명이 내 근처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B급 헌터인 우리도 아무런 타격조차 줄 수 없었는데…….”
그들을 뒤따르던 헌터 하나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은하준 씨 맞죠? 정말 강하시네요.”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희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상기된 목소리로 헌터들이 말을 쏟아냈다.
“아직 녀석을 쓰러트리지 못한걸요.”
“그건 그렇지만…….”
“저 녀석 대체 뭘까요? 너무 강해요.”
“요즘 이상해요. 벌써 몇 번째나 몬스터 도감 리스트에 없는 녀석들이 던전 브레이크로 이쪽에 출몰해서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오늘 이 녀석도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예요.”
“이런 놈들, 어지간한 헌터들은 상대도 안 된다고 하던데요. 저번에도 S급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겨우 쓰러트리지 않았나. 이게 무슨 일인지.”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봐요.”
“어휴, 무서워라.”
“엇. 다들 잠깐만요!”
그그그그…….
움직임이 멈췄던 둥근 몬스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놈이 다시 움직여요!”
헌터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놈을 완전히 쓰러트렸다면 이미 시스템 알람과 함께 보상을 받았을 테지.
“S급들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봅시다. 조금이라도 놈을 여기에 붙들어 놔야 해요.”
“네, 알겠어요.”
“하준 님만 믿어요!”
“그래, 하준 님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내가 시킬 게 뭐가 있나. 다들 걸출한 헌터들 같은데. 약간 민망해졌지만, 곧 진동하는 몬스터에게 집중했다.
그그그……. 그그드드드…….
촤라라락!!
진동하던 몬스터는 마치 쥐며느리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것처럼 화악 몸을 폈다. 수백 개의 다리가 둥그런 몸통 주위로 마구 움직인다.
“윽! 징그러!”
“껍질이 무진장 단단해 보이는데.”
헌터들이 역겹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이 몸을 펼치는 순간부터 참기 힘든 악취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앗!! 팟!
저 멀리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던 결이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은…… 한결.”
“S급이다!”
“어쩐지 하준 씨 옆에 한결 씨가 없을 리가 있나.”
헌터들이 속닥대는 걸 무시하고 결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결아!”
“응! 이 근방에는 이제 더 대피할 사람은 없어!”
“좋아, 잘했어.”
“네가 억압의 손길로 몬스터를 막아 준 덕분이지.”
“봤냐?”
“그럼.”
“이제 네가 나설 때야.”
결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조목 손잡이를 검집에서 뽑아낸다.
츠츠츠츳, 파츠츠츳.
번개처럼 번쩍이는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헌터들은 부럽다는 듯 넋을 놓고 구경한다.
“우중격침.”
촤촤촤촷!!
하늘 위로 거대한 검의 형상이 네 개 만들어진다.
파지치칫. 파칫.
검들 사이로 강렬한 스파크가 튀고 곧이어 괴물을 향해 떨어진다.
콰과과광! 쿠과과광!!
“키에에엑!!”
괴물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대단해! 역시 S급!”
“역시 한결……. 듣던 대로 엄청나게 강하잖아.”
“우리 공격에는 대미지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저 번개 검 진짜 멋지다.”
“무기도 S급인가?”
헌터들의 감탄에도 결이는 멈추지 않는다.
우중격침에 당해 허우적거리는 괴물 녀석을 향해 바짝 다가가 베어낸다.
스걱! 카아앙!!
괴물의 껍데기에 결이의 검이 닿을 때마다 엄청난 파열음이 들렸다.
“키에에엑!!”
“하아앗!”
나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지.
츠츠츳. 소울메이트를 연결해 결이에게 버프를 걸고 억압의 손길로 징그럽게 많은 괴물 녀석의 다리를 잡아 본다.
카아앙! 카앙!
결이의 검이 괴물 다리를 가격해 몇 개가 떨어져 나가지만, 녀석은 큰 타격이 없어 보인다.
으직, 으지직. 심지어 잘라낸 다리가 다시 재생되는 게 아닌가.
“결이 혼자만으로는 안 돼.”
“우리가 힘을 보태겠어요!”
헌터들의 공격이 괴물을 향해 쏟아지지만 결이 하나만큼의 대미지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준 님!”
“영지 씨!”
“야수 조종 스킬을 사용해 볼까요? 약간의 디버프 효과는 낼 수 있을 텐데.”
“일단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죠.”
나는 일단 긍정적으로 대답했지만, 아마 제대로 먹혀들어 가지는 않을 터였다.
안영지는 아직 넥스트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휘이이익!!
“음?”
그 움직임을 따라잡기도 전에 괴물 쪽에서 퍼어어억!! 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중국어.
알아들을 수 없지만 신경질적인 여성의 목소리라는 건 알 수 있다.
거대한 곤봉을 든 여성이 괴물의 등에서부터 공중으로 다시 뛰어오른다.
“누구야?!”
“저것 봐. 괴물 녀석의 껍데기가……!”
“금이 갔다!”
“대, 대단한데?! S급?!”
헌터들이 놀라는 사이,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은하준 씨, 안녕.”
“장우택 씨.”
빙긋 웃고 있는 장우택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괴물에게 달려든 여성에게 꽂혀 있다.
“인사했어요? 우리 누나랑.”
“누나?”
나도 시선을 돌려 괴물에게 타격을 가한 여성을 본다.
장 리. 그래, 바로 그 여자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괴물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누나가 괴물 잡는 데 좀 집착하는 편이라.”
“타이밍 좋게 잘 와 줬어요.”
안 그래도 헌터의 손이 더 필요하던 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장우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정말요. 아니, 그렇다고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고요.”
“그래도 기뻐요. 하준 씨가 날 반겨 준 적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기왕에 왔으니까 놈을 잡는 데 힘 좀 보태죠?”
“좋죠.”
장우택이 곧장 튀어 나가 괴물의 다리가 있는 쪽으로 접근하고 그의 주위로 녹색 연기가 치솟았다.
아마 곧장 독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닌가 싶었다.
“S급이 넷. 물론 넥스트 레벨로 각성한 건 결이뿐이고 안영지는 레벨이 한참 낮지만…….”
싸움의 정황을 살펴본다.
이 정도 인원으로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대미지가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봐 왔던 녀석 중에서 그렇게 강한 놈은 아냐.’
괴물을 향해 도트딜을 넣고 있던 B급 헌터가 급하게 내 곁으로 와 묻는다.
“저거 장 리 맞죠? 중국의 S급…….”
“맞아요.”
“세상에, 장 리가 우리를 돕다니.”
장 리의 곤봉술은 화려하고 날렵하기 짝이 없었다. 저의 몸체만 한 곤봉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능수능란하게 괴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저 기술로 서해에서는 내가 죽을 뻔했었지. 정확하게는 한세희가 노려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번쩍이는 빛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쇄도하는 곤봉이 날카로운 타격을 가한다.
괴물 녀석은 결이를 상대하면서 장 리까지 상대하기는 버거운 모양인지 그녀의 공격에 속절없이 몸을 내어주고 있었다.
주위를 날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흑단이가 내게로 날아와 발을 동동 굴렀다. 저도 전투에 참여하고 싶다는 거다.
“브부부부! 후아아!”
“그래, 흑단아. 거대화 사용해도 돼.”
“뿌우부!”
흑단이 역시 넥스트 레벨로 재각성했으니 괴물 녀석에게 유의미한 공격을 가할 수 있을 터.
드드드드.
구구구구구!
“크아아아!!”
흑단이가 거대화를 하며 괴물에게 달려든다.
“케에에엑! 키엑! 취췻! 취이잇!”
괴물 녀석은 달려드는 흑단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몸을 둥그렇게 말려고 했지만, 내가 사용한 억압의 손길에 의해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흑단이가 녀석의 배 안쪽을 물어뜯는다.
“케에엥! 췻, 취잇!”
흑단이까지 합세하자 괴물 녀석이 급하게 지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여기서 넥스트 레벨인 내가 좀 더 유의미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면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영혼 삼키기.
바로 그 스킬을 사용하는 거다.
‘과연 이 녀석의 영혼을 제대로 삼킬 수 있을까.’
그간 낮은 랭크의 던전을 돌면서 이리저리 사용해 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 때문에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영원히 영혼 삼키기라는 스킬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어떻게든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라고 준 스킬일 테니까. 그리고 내가 가진 스킬 중에서 가장 공격 타입의 스킬이다.’
그런 스킬을 썩힐 수는 없었다.
게다가…….
파앗!!
괴물 녀석의 공격이 이어지고 흑단이가 목덜미를 물렸다.
“키에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흑단이의 비명이 들린다.
궁지에 몰린 괴물 녀석은 흑단이를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결이나 장 리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키이, 키에엑!”
“취잇, 췻!”
이대로 가다가는 흑단이가 큰 상처를 입을 게 틀림없다.
‘하아아앗!!’
나는 괴물 녀석을 향해 영혼 삼키기 스킬을 시전했다.
츠츠츠츳!!
추와아아악!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내게만 보이는 희뿌연 연기가 괴물에게서부터 뽑혀 나온다.
“흐으읍!”
그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격통이 온몸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