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208화 (208/250)

제208화

제208편

[은하준 씨, 어디예요?]

전화를 받자마자 장우택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무슨 일인데요?”

[아이참, 나 한국에 들어왔어요.]

“벌써요?”

[와, 은하준 씨. 실망이에요. 재회를 고대하고 있었던 건 나뿐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가 전화기 너머로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다는 걸까?

“무슨 용건인데요. 설마 진짜 이게 용건의 끝입니까?”

[에이, 아녜요.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러면 은하준 씨한테 미움받을 텐데.]

“뭘 또 미움받기까지 해요. 전 장우택 씨에 관해서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차라리 미워해 줘요. 그게 더 낫겠네.]

“네네, 그럼 미워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장우택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그는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튼 지금 만나야겠어요. 신선 길드에 있나요?]

“아뇨. 지금 밖이에요.”

[그럼 길드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흐음, 알겠어요. 시시한 일이기만 해 봐요.”

[절대로 시시하지 않을 겁니다.]

삑.

통화가 끊어지자 옆에 선 한결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뭐야. 장우택이 왜 연락해 온 건데?”

“뭔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는 것 같은데. 뭔지는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

“좋은 소식? 참 나, 그 남자가 가져와서 좋을 소식 같은 건 없는데 말이야.”

결이의 목소리에 찬바람이 쌩쌩 분다.

“앗, 그럼 전 어떡하면 좋죠?”

“아…….”

아직 장우택은 안영지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마주치게 되면 그의 능력으로 단번에 안영지가 S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만약 뒤를 파게 된다면 헌터 자격증이 없는 S급의 존재에 이상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 일단 영지 씨는 우리 집에 가 있을래요? 하케임을 보내 놓으면 안심일 테죠. 오빠한테는 미리 말해 놓고요.”

“저야 어떻게 하든 괜찮아요.”

“그럼 일단 집으로 가죠. 우리가 집에 먼저 들렀다가 오는지는 장우택도 모를 테니까.”

“번거롭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얼른 강해져서 헌터 자격증도 딸 수 있도록 할게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이미 안영지 씨는 강하니까. 그리고 헌터 자격증 발급을 위해 센터에 등록할 때 스킬이나 능력을 곧이곧대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까. 슬슬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안영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중요한 건 영지 씨 마음이고요.”

“네, 네……!”

“그럼 돌아가 보도록 할까.”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한다.

이미 하늘은 어둑해진 지 오래다.

‘서울에 도착하면 이미 늦은 밤이겠는데. 그냥 내일 보자고 연락해 둘까.’

길드 건물이야 24시간 돌아가고 있지만, 야심한 시각에 굳이 장우택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게다가 결이도 쉬게 해 주고 싶고. 장우택을 만난다면 또 한껏 예민해질 텐데…….

도도독.

장우택에게 기왕이면 내일 만나자는 문자를 넣어 놓고 조수석에서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 * *

파아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긴…….”

보라색 꽃이 잔뜩 피어 있는 꽃밭이다. 게다가 희끄무레한 사람들의 영혼들이 떠 있다.

“꿈을 꾸고 있나 보군.”

결이가 한창 운전 중일 텐데,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이 꿈은 왜 자꾸 꾸는 걸까.”

중요한 꿈인 것 같은데 이 꿈을 꾸면서 알아낼 수 있는 게 더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엄청난 자각몽이네. 뭔가 할 수 있으려나?”

“주인님!”

“어라, 망량이?”

“응! 나예요.”

어느덧 눈앞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 꿈이 꿈 같지 않은 느낌일까? 아무리 자각몽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 기분이라니. 기묘하다.

“이거 꿈 맞지?”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꿈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편하면 그리하세요.”

어쩐지 망량이의 말투가 냉랭하게 느껴진다.

“너 묘하게 차갑게 군다?”

“어차피 꿈인걸요.”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이런 대화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뭐?”

“여기서 주인님이 찾아야 하는 게 있거든요. 잊은 건 아니겠죠?”

“내가 찾아야 하는 것?”

여기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 그건…… 그건 안사홍의 여동생에 관한 정보일까?

생각만 했을 뿐인데 눈앞에 있던 망량이가 불꽃을 휘휘 흔든다. 아니라고 고갯짓을 하는 것처럼.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하지만 안사홍 씨에게 여동생 찾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는걸.”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더 중요한 일이라고? 그렇담……. 인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비수라도 여기 숨겨져 있다는 거야?”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망량이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그런 일 같은 건 모른다.

“망량…….”

푸른 망량이의 불꽃 너머로 영혼 구슬이 보인다.

익숙한 얼굴이 담겨 있다.

“저건 안사홍의…….”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타앗, 타아앗.

꽃이 발에 채는 바람에 꽃잎이 여기저기 날린다.

“안사홍의 여동생이다.”

안사홍의 것을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금방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사홍의 영혼 구슬과는 담긴 내용이 달랐다. 그리고 여동생의 얼굴도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더 성숙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문제는 영혼 구슬을 찾아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확실히 알아낼 수가 없다는 거다.

“망량아! 이리 와 봐!”

“…….”

어느새 한참 떨어진 망량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이것만 보고는 알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너라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아?”

“저도 할 수 있는 게 딱히…….”

망량이의 불꽃이 일렁인다.

“저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응?”

“제 힘이 모두 깨어나지 않았어요.”

“네 힘…….”

그러고 보니 망량이 역시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불꽃의 크기도 강력해졌었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더 늘어났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펫에게 소울메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망량이에게도 지속적으로 스킬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껏 망량이는 넥스트 레벨로 진화하지 않았다.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망량이의 불꽃이 끄덕거린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망량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안사홍의 여동생의 영혼 구슬을 본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고, 주위에는 온통 꽃이 가득하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혼 구슬에 비치는 영상은 모두 흑백으로 보이기에 무슨 꽃인지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벚꽃……?”

그와 동시에 발밑이 쑥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잠에서 깨어났다.

* * *

“음…….”

“많이 피곤했나 보다. 하준아.”

“아, 미안해. 너 운전하는데.”

“걱정하지 마. 나는 졸리지도 않잖아.”

결이가 팔에 들린 팔찌를 흔들어 보인다.

결이는 금룡의 힘줄의 능력으로 수면하지 않아도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뒷좌석에 있던 안영지와 흑단이 역시 잠든 지 한참 된 것처럼 보였다.

“이제 서울에 진입해.”

“아, 한참이나 잤네? 미안하다. 심심했을 텐데.”

“괜찮아. 좀 더 자 두는 건 어때? 네가 그렇게 곯아떨어질 정도면…….”

“아냐.”

피곤한 게 아니었다. 그 꿈 때문이었다.

그 꿈을 꾸기 위해 강제로 잠이 든 것 같은 느낌이다.

“망량아.”

“네? 주인님!”

어깨 너머로 망량이가 피어오른다.

“……꿈에서 내게 했던 말 기억해?”

“엥? 꿈이요? 무슨 꿈이요?”

“내 꿈에 나왔었잖아.”

“무슨 개꿈을 꾸신 거예요? 평소에 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시네…….”

망량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럼 그건 그냥 꿈이란 말인가? 하지만…….’

망량이는 꿈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안사홍의 여동생을 보았던 것도 그저 내가 개꿈을 꾼 것인가?

‘진짜로 개꿈이라고?’

하지만 그 꿈은 너무나 사실감이 있었다. 발에 채는 꽃의 감각, 속삭이는 망량이의 불꽃의 일렁임. 불어오던 따뜻한 바람과 흩날리던 꽃의 향기까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어라?”

당황스러운 결이의 목소리와 어쩐지 밝아진 하늘 때문에 고개를 들어보니 서울 북쪽의 하늘이 붉다.

부우우웅.

휴대폰이 울리고 재난 문자가 도착한다.

“던전 브레이크다.”

“칫.”

결이가 급하게 차를 댄다.

“영지 씨, 일어나요.”

“어? 우으……. 우음. 도착했나요?”

“아직요. 집까지는 도착 못 했는데…….”

“어, 어어?! 하늘이…….”

피어오르는 불꽃과 연기를 발견한 안영지의 얼굴이 굳어진다.

“저도 돕겠어요.”

“피치 못할 경우를 빼고는 헌터 자격증이 없는 각성자가 현장에 투입되는 건 불법이에요.”

“지금이 피치 못할 사정 아닌가요? 게다가 저 혼자 떨어져 있으면 하준 님이 더 불안하실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만.”

“일단 근처까지만이라도 동행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상황 보고 하준이 네가 영지랑 같이 뒤쪽으로 빠져 있어도 될 것 같고.”

“몬스터와 맞서 싸우기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구할 수는 있어요!”

안영지의 눈이 이글거린다.

하기야 자신도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받았으니까. 트라우마를 이겨내기에 오히려 좋은 상황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 같이 움직이죠.”

파아앗, 타아앗!!

우리는 정체되는 차들 사이를 거침없이 달려 현장으로 향했다.

각성자의 신체 능력으로 건물을 뛰어넘어 달리니 곧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구구구구…….

거대하고 둥근 원형의 몬스터가 위압적인 소리를 내며 대로를 굴러가고 있다. 놈을 막으려는 몇몇 헌터들의 스킬이 쏟아지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부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이건…….”

놈을 보는 순간 소름이 쭉 끼쳐 온다.

검은 기운을 풍기는 몬스터.

1차 각성으로는 쓰러트리기 힘든 그놈들이었다.

“어쩐지 작살이 나 있더라니.”

“크아아아!!”

“살려 주세요!”

녀석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도로의 차들과 구조물들이 죄다 박살 나고 있다.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영지 씨, 할 수 있겠어요?”

“네.”

결의로 가득 찬 안영지의 시선이 괴물을 향해 꽂혀 있다.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주었더니 파드득 놀라 나를 본다.

“조급해하지 않기예요.”

“네……. 저, 절대로요.”

“사람들을 구하는 것만 생각해요.”

안영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대피하는 사람들을 향해 훌쩍 뛰어내렸다.

나는 곧장 그녀를 따라 인명 구조 작전에 뛰어들었다.

“꺄아아아악!!”

몬스터가 굴러오는 도로 한복판에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차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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