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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05화 (205/250)
  • 제205화

    제205편

    “케에엑.”

    키메라가 물러서자 안영지가 냉큼 자세를 다잡았다.

    “흐앗!”

    그녀의 검이 키메라를 벤다.

    하지만 그 한 방으로 키메라가 쓰러지지는 않는다. 몸을 약간 비틀어 두꺼운 비늘이 있는 뱀의 하반신 부분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과연 보스 몬스터다운 기량.

    “야수 조종을 써 봐요!”

    “넷!”

    안영지는 검을 똑바로 치켜든 상태로 키메라를 노려보았다.

    “물러나.”

    “키, 키에엑. 키에에……!!”

    주춤, 주춤.

    키메라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엄청난 마력이에요. 아까보다 훨씬 더!”

    “망량이 네게는 보이는 거지?”

    “네. 안영지의 마력이 키메라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확실히 안영지의 스킬이 먹혀들고 있는 거죠.”

    “좋아.”

    내가 영혼 전이를 통해 공포를 심어 놓은 덕에 안영지의 스킬이 더 잘 먹혀들어 가고 있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영혼 전이를 단련시켜 놓으면 버프와 디버프 효과를 동시에 내는 아주 좋은 스킬이 되겠어.’

    처음에는 영혼 전이 스킬을 어디다 쓸까 고민이 많았지만, 직접 현장에서 사용해 보니 그 능력이 탁월하다.

    “케에엑!”

    잠시 물러났던 키메라는 완전히 달아나지는 않는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안영지를 향해 돌진한다.

    나 역시 영혼 전이 스킬을 거둬들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싣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을 전이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나가 소모되었고 집중하고 있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아앗!”

    카아앙!

    안영지의 검과 키메라의 창이 다시금 부딪힌다.

    그녀의 검은 아까보다 훨씬 자신만만해져 있었다. 아마도 야수 조종 스킬이 먹혀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겠지.

    “자, 흑단이 너도 거들자.”

    “캬우웅! 구와앙!”

    흑단이가 파닥거리며 날아올라 전장으로 뛰어든다.

    “키잇?!”

    “파아앙!!”

    안영지의 한층 매서워진 공격에 흑단이의 불꽃 공격까지 합세하니 키메라 녀석도 꽤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대로 멈춰! 쓰읍! 몸을 낮춰!”

    안영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야수 조종 스킬을 사용했다.

    야수 조종 스킬은 일정 확률로 먹혀들거나 먹혀들지 않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전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대단해. 거의 혼자서 이만큼까지 버텨냈다는 건……!”

    결이가 감탄하며 나를 돌아본다.

    “네 설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거야.”

    “이 정도로 무슨 설계라고 그래.”

    “아냐. 안영지 혼자서라면 트라우마가 없더라도 3레벨에 이 정도 전투를 할 수 있었겠어?”

    “흠흠, 그건 어떨지 알 수 없지.”

    “하준이 너 정말 대단해.”

    열렬한 칭찬이 기분 나쁘지 않다.

    “허억, 허억.”

    안영지는 기량 차이에도 키메라와 안정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녀의 안색이 점점 파리해진다.

    다른 부분도 키메라가 강세였으나 체력적으로 키메라가 그녀보다 훨씬 강했다.

    “키에에엑…….”

    “허억, 헉……. 후우.”

    하지만 기세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역시 S급.”

    “이제 슬슬 우리가 정리해야겠어.”

    “좋아.”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챈 안영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우, 정말로 나이스 타이밍이네요. 마력도 바닥났고 온몸의 힘이 쪽 빠졌어요.”

    “이제 우리한테 맡겨 둬요.”

    “네!”

    “그르릉! 갸우앙!!”

    흑단이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음?”

    “그와아앙!!”

    스스슷.

    거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좋아, 흑단아. 그래. 네가 해보겠다, 이 말이지?”

    “바아부부부!!”

    “케에에엑?”

    점점 불어나는 흑단이의 덩치를 보며 키메라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대화가 끝난 흑단이의 커다란 발이 키메라를 향해 휘둘러졌다.

    퍼어억!!

    “키에에엑!!”

    날카로운 흑단이의 발톱이 키메라의 두꺼운 살가죽을 뜯어냈다.

    촤아악.

    붉은 피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갸르릉!”

    흑단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키메라를 물어뜯었다. 키메라와 흑단이의 싸움은 과연 짐승과 짐승의 싸움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승기를 잡은 건 흑단이었다.

    “흑단이 정말 강해졌구나!”

    “쿠아아앙!”

    바닥에 쓰러진 키메라를 뒤로하고 흑단이가 기쁨의 포효를 내지른다.

    “크르르릉!”

    “옳지, 우리 흑단이.”

    다가가서 코를 쓰다듬어 주자 천천히 기대 오며 거대화를 푼다. 다시 작은 모습으로 돌아온 흑단이는 영락없이 귀여운 새끼 드래곤이다.

    “이렇게나 작은데, 넥스트 레벨 스킬로 그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다니.”

    “갸우웅! 갸우웅!!”

    흑단이가 더 쓰다듬어 달라며 고개를 들이민다.

    그런 흑단이를 꼭 안아 주는 사이에 스스슷. 던전을 클리어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포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레벨이 올랐어요.”

    “우와, 정말요?”

    신선 길드로 돌아온 안영지가 들뜬 얼굴로 고백했다.

    “사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을 때 올랐는데, 이것저것 살펴보느라 넋이 나가서…….”

    “그럴 수 있죠. 그럼 이제 레벨 4네요.”

    “굉장히 빠른 속도야.”

    결이가 거들었다.

    확실히 결이나 대호 형이 레벨을 올리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그건 우리가 함께 한계치를 뛰어넘는 상대를 사냥했기 때문도 있다.

    “스킬도 생겼고요.”

    “오, 어떤 스킬인가요?”

    “야수 감지 스킬이랑 야수에게서 숨기 스킬이요.”

    “오오. 스킬이 두 개나 생겼네요. 게다가 확실히 브리딩과 전투 모두에서 사용하기 좋은 스킬이고요.”

    “마땅히 좋은 공격 스킬은 나오지 않아서 아쉽지만요.”

    “공격 스킬이 없어도 괜찮아요. 다 응용하기 나름이니까.”

    내 말에 안영지는 힘을 얻은 듯 씩씩한 얼굴을 한다.

    “하긴, 하준 님도 공격 스킬 없이 엄청나게 강하시니까요.”

    “물론 영지 씨는 S급이니까 나보다도 훨씬 강할 겁니다.”

    “에이…….”

    “정말이에요.”

    “어딜 다녀왔길래 이렇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노?”

    길드 휴게실에 들어서려는 걸 멈춰 세운 건 은봉 할머니다.

    “할머니!”

    “그래, 그래. 느그끼리 특별 훈련이라도 했는 갑제?”

    “아하하,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하준 님 특별 훈련은 정말 짱이에요, 할머니! 저도 곧 헌터 자격증을 따러 센터에 등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와이구야, 잘됐네~! 우리 영지. 안 그래도 마, 맨날 고거 땀시 고민이 많았다 아니가.”

    “그러니까요!”

    은봉 할머니가 다가와 안영지의 두 손을 꼭 잡아 준다.

    “잘됐다, 잘됐다.”

    “에헤헤, 이게 다 하준 님 덕분이에요.”

    “하모, 맞데이. 우리 모두 하준이 덕을 봤다 아이가. 잘했다, 하준아. 니는 우째 맨날맨날 이렇게 이쁜 짓만 골라서 하노.”

    은봉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 엉덩이를 토닥토닥해 주신다.

    “아이참,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두 분 다.”

    “부끄럽기는 무슨!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칭찬받아야 마땅한 기라. 칭찬도 타이밍을 놓치면 다 쓸모가 없데이.”

    할머니는 빙긋이 웃더니 손뼉을 탁 친다.

    “그래. 안 그래도 내 느그들한테 줄 선물이 있다.”

    “네?”

    “느그들 셋이 내 따라오그레이.”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자아.”

    할머니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은봉 할머니의 연구실.

    어느새 할머니가 만든 뜨개 용품이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요즘 할머니의 새로운 취미 활동이었다.

    “와아, 스웨터 떠 준다고 하시더니 그거예요?”

    벌써 소파에는 스웨터며 목도리며 장갑까지 모두 떠져 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은. 내 정말 주고 싶은 거는 따로 있데이.”

    할머니는 싱글벙글한 미소로 제일 커다란 작업대로 이동했다.

    “자.”

    다르르륵.

    은봉 할머니가 서랍에서 꺼낸 것은 에테르석이었다.

    “어라, 이거. 최상급이잖아요?”

    “그래. 이제 이 할매가 최상급 에테르석을 가공할 수 있게 됐다 아이가.”

    “헉. 정말이요?!”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따져 보면 은봉 할머니가 각성한 지가 아직 1년이 안 됐다. 한데 최상급 에테르석이라니. 엄청난 발전을 한 게 아닌가.

    “아직 두 개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말이다.”

    “두 개밖에라뇨. 원래 할머니는…….”

    너무 놀라서 원래라고 말이 튀어나와 버렸지만, 지금 내 말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반짝거리는 최상급 에테르석을 보며 시선을 빼앗긴 채였다.

    ‘원래 최상급을 만들어내는 건 5년 정도 걸리는 일이었는데.’

    회귀 전의 기억으로 대충 그 정도 걸렸다고 알고 있었다. 절대로 1년 만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기야 달라진 일이 너무 많기는 하지.’

    반짝거리는 에테르석을 보니 저절로 손이 갔다.

    “이걸로 아이템 강화를 하면 최상급으로 업그레이드될 거예요.”

    최상급 에테르석만 있다면 최상급으로 몇 번이든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걸 주시겠단 말씀이세요?”

    “하모.”

    은봉 할머니가 맑게 미소 짓는다.

    “할머니. 신선 길드에서 할머니가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하고는 있지만 최상급 에테르석은 할머니 마음대로 처분이 가능하세요.”

    은봉 할머니는 신선 길드와 계약한 신선 길드 소속의 헌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은봉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모든 제작 물품이 길드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공된 에테르석과 강화시키거나 직접 제작한 아이템의 몇 퍼센트를 길드에 제공하고 이외에는 신선 길드에 우선적으로 거래할 기회를 주는 식이었다.

    특히나 이런 최상급의 물건은 우선 거래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마음대로 처분하는 긴데?”

    “할머니……!”

    놀라운 마음에 자꾸만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하지만…….”

    “하지만은 머선 하지만이고. 내가 느그들한테 준다면 주는 기라.”

    “너무 과분한 선물이에요.”

    “과분? 머선 소리를 하는 기고, 하준아.”

    은봉 할머니는 최상급 에테르석을 내 손에 쥐여 준다.

    “니가 아니었다면은 내는 이 나이에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 못 했을 끼라. 아주 외롭고 쓸쓸했을 끼라. 그래서 내는 니한테 이런 거를 해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기라.”

    “할머니…….”

    “노친네들이 늙어서 가장 슬플 때가 언제인 줄 아나. 내가 아무것도 못 한다는 느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없고 짐이 된다는 느낌. 이제는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라.”

    에테르석을 쥐여 주는 은봉 할머니의 손이 따뜻하다.

    “그런 느낌을, 하준이 니 덕분에 잊을 수 있었데이. 니는 내 손자나 다름없다 안 카나. 할매가 손자한테 아끼는 물건 몇 개쯤은 줄 수 있는 거 아니가.”

    “그래도 이렇게 만드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손에 들린 에테르석을 내려다보았다.

    할머니는 이 에테르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5년의 세월을 1년으로 줄여 버렸을 만큼 애썼을 것이다.

    무엇이 할머니의 원동력이 되었을까. 나는 할머니가 말하는 만큼 해 드린 기억이 없다.

    “앞으로 고생은 더 할 끼다. 내는 준비되어 있데이. 그리고 앞으로는 니 말처럼 비싼 값에 팔아 줄 테니깐 걱정하지 말레이.”

    “할머니도 참…….”

    “자, 그리고 끝난 게 아니데이. 그걸로 이제 강화를 해야제.”

    은봉 할머니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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