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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04화 (204/250)
  • 제204화

    제204편

    “예상대로야.”

    “뭐?”

    지금까지 몬스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영혼 전이를 사용해 왔다. 영혼 전이는 내 감정과 의지를 전이시켜 상대의 상태를 바꾸는 스킬.

    몬스터를 상대로 했을 때 그 효과는 확실했다. 몬스터가 된다면 인간에게도 사용될 터였다. 스킬 설명에는 시전자에 관한 이야기만 있을 뿐, 대상이 몬스터에 특정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영혼 전이가 처음에는 몬스터한테 먹힐까 걱정이었는데, 이번에는 사람한테 통하기를 바랐지.”

    “영혼 전이를 사용해서 상태 이상을 푼 건가?”

    결이가 놀란 표정으로 미소 짓는다.

    “정말 대단하네요. 하준 님! 상태 이상은 고랭크 힐러만이 풀 수 있다고 들었어요. 여간해서는 풀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안영지 역시 감격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먹혀들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상태 이상에 빠지는 경우는 걱정 없겠네요.”

    그녀는 무척이나 안심한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안 그래도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는 힘겨운 과정에 상태 이상까지 신경 쓰는 건 너무 고된 일이다.

    “그럼 혹시 아까도…….”

    “응?”

    “처음부터 영혼 전이를 사용하셨던 걸까요?”

    그녀는 약간 민망한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아까까지는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어요.”

    “아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지 씨의 힘으로 전투를 해 오고 있었다고요.”

    “그, 그런가요.”

    “물론이죠! 전 단지 상태 이상이라는 추가적인 상황만 해결했을 뿐이에요. 영지 씨의 트라우마는 영지 씨 스스로 이겨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요.”

    “하준 님은 제 생각을 환히 다 알고 계시네요. 하하하.”

    안영지가 멋쩍게 머리를 긁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요.”

    “아?”

    “쉬시시싯! 취시시싯!!”

    잘그락!!

    사슬에 걸려 있는 데드바디 스파이더가 요동쳤다.

    “케에에엑!!”

    “아앗! 이 녀석들……! 감히 나를 겁먹게 했겠다!”

    안영지가 검을 바로 든다. 츠츠츳.

    검 주위로 푸른 마나가 어리기 시작한다.

    “하아앗!”

    스각, 서걱.

    “키에에엑!!”

    안영지의 검이 사슬째 데드바디 스파이더를 베어 버렸다. 뒤에서 몰려드는 나머지 스파이더들까지 해치우는 움직임이 깔끔하다.

    검에 자신감이 붙어 있다.

    “후우, 후욱.”

    “잘했어요. 영지 씨!”

    “감사합니다, 전부 하준 님 덕분이에요.”

    “계속 앞으로 나가보죠.”

    “네!”

    다음 갈림길이 나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할 만하죠?”

    “네, 아무래도 낮은 랭크니까요.”

    땀범벅이 된 것치고 안영지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씩씩하게 보여도 자신 안에 있는 공포와 계속 싸우고 있는 거다.

    “두 번째 갈림길은……. 개의 상이네요.”

    “이번에도 아까와 같겠지?”

    “응. 우린 어느 쪽으로 가든 크게 상관이 없어. 영지 씨, 좀 쉬다 갈래요?”

    “아뇨! 괜찮아요!”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늘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언제든지 연습해 볼 수 있으니까.”

    “저, 정말요?”

    “물론이죠.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는 습관이 들면 곤란해요.”

    “하준 님은 정말…….”

    “응?”

    “정말 하준 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다.

    나를 만나지 못했으면 아마 안영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정말 정말 운이 좋다면 그저 각성하지 못한 채로 살아갔겠지.

    “기왕에 이렇게 좋은 인연이 됐으니까. 앞으로도 잘 지내 봐요.”

    “네! 좋아요, 하준 님. 절대로 평생 사이좋게 지내요!”

    “절대로 평생? 말이 뭐가 그래요.”

    피식 웃으니 안영지 역시 활짝 웃는다.

    “그럼 이번에는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길로 가죠.”

    “알겠어요. 그럼 여기로. 끝없는 추락 방향으로 갑시다.”

    “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갈림길을 몇 번이고 지났다.

    안영지의 페이스에 맞추면서 쉬어 가며 몬스터를 상대했다.

    “후우, 하루가 꼬박 지났네요.”

    “이 던전은 그리 길지 않은 던전이니 슬슬 보스 몬스터가 나올 겁니다.”

    “보, 보스 몬스터……!”

    안영지가 짐짓 긴장한 내색을 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보스 몬스터라고는 해도 고랭크의 던전도 아닌 데다가 한결이랑 제가 보조할 테니까. 영지 씨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에요.”

    “응……! 알겠어요.”

    “주인님께 특훈을 받다니, 정말 운이 좋은 줄 아세요~!”

    망량이가 뽐내듯이 말했지만, 안영지는 망량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확실히 안영지는 트라우마가 걸림돌이 되어 초반 성장이 늦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와 함께 특훈을 한다면 금세 강해질 수 있다.

    ‘확실히 운이 좋긴 하지.’

    거기다가 운이 좋은 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운이 주변으로도 번져 가는 느낌이다.

    “심상치 않은 문이 있어.”

    앞선 결이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거대한 돌문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본 것처럼 하나의 석상이 아니라 문 양옆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동물상이 보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이 동물상의 모습을 비추고 안영지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뒤덮인다.

    “양? 염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키메라예요.”

    “네?”

    “이건 일반 동물상이 아니라 몬스터의 상이에요.”

    “그렇군요! 어쩐지 위쪽엔 새의 날개가 달리고 하반신은 물고기 모양이었어요.”

    “이 안에서는 키메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죠.”

    “우웃…….”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돌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그그…….

    그리고 문 너머에 넓은 공동이 펼쳐졌다. 내부는 아직 어두웠으나 거대한 무엇인가가 중앙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배, 뱀?!”

    “자세히 봐요.”

    스스슷.

    보스 몬스터가 서서히 몸을 추켜세운다.

    상반신이 사람의 것이다. 물론 일반 사람의 몸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근육질이 돋보인다. 게다가 팔이 네 개다. 그리고 그 우람한 상반신 위에 있는 건 독수리의 머리다.

    녀석은 마치 사람처럼 반짝이는 금속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신의 형상 같다.

    “히이익. 강해 보여요.”

    “강해요.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네? 하지만…….”

    “게다가 이 녀석은 야수 타입의 몬스터거든요.”

    “아!”

    우리가 공동 안으로 몸을 들이밀자,

    스스스…….

    키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놈이 가진 두 쌍의 손에는 거대한 창이 들려 있다.

    “키에에에엑!!”

    “삐이이!”

    키메라가 울부짖는 소리에 흑단이가 길게 울어 보지만, 그 소리는 금방 묻혀 버린다. 키메라는 그 정도로 끔찍하고도 강렬한 울음소리를 냈다.

    흑단이의 꼬리가 말린다. 기 싸움에서 이미 밀린 거다.

    ‘이 보스 몬스터 키메라는 같은 야수 타입 몬스터들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아마 흑단이한테는 상태 이상 공포나 지배당함이 떴을 거다.’

    츠츠츳.

    영혼 전이를 사용해 용기를 불어넣어 주니 흑단이가 낑낑거리면서 내 다리를 붙잡는다.

    “자, 시작은 영지 씨 혼자서.”

    “우윽.”

    보스 몬스터의 거대한 덩치에 안영지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야수 조종 스킬을 활용해 봐요.”

    “……알겠어요!”

    안영지가 앞으로 튀어 나가자 보스 몬스터 키메라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츠츠츳.

    “멈춰!”

    안영지가 야수 조종 스킬을 시전한다.

    “키에에엑!”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지 키메라가 창을 크게 휘두른다.

    “크읏!”

    안영지는 가까스로 키메라의 창을 피해냈다. 그걸 피해내느라 거의 땅바닥에 구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안…… 통해요!”

    “하지만 지금이 스킬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타이밍이에요.”

    “흡! 알겠어요.”

    안영지는 키메라를 피해 달아나며 계속해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흐읏!”

    카아앙!!

    안영지의 검과 키메라의 창끝이 서로 부딪힌다. 키메라의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그녀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쌩으로는 아직 너무 강한가. 하긴, 그래 봤자 영지 씨 레벨이 3이니까.”

    “레벨 3치고는 잘 싸우는 편이기도 해.”

    “선천적으로 싸우는 센스가 있어. 운동선수를 했어도 잘했을걸. 자아, 우리 소중한 S급을 다치게 할 수 없으니 디버프를 좀 걸어 볼까.”

    “…….”

    결이가 뭐라고 하려는 차에 나는 스킬을 시전했다.

    츠츠츳!

    “불길한 예감!”

    스킬이 적중하는 예감이 들 때, 잠깐 놀란 키메라가 나를 돌아본다.

    “하아앗! 무시하지 말라고!”

    쉬이이익. 안영지의 검이 키메라를 향해 그어진다.

    파아앗! 방심한 키메라의 가슴에 죽 하고 붉은 검의 길이 펼쳐졌다.

    “케에엑!!”

    흰머리 독수리의 형상인 키메라의 머리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허억, 헉.”

    안영지가 기쁨의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키메라의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휙, 휘익. 카아앙!! 채앵!!

    두 쌍의 팔이 내지르는 창의 공격이 거의 비가 쏟아지듯 쇄도했다.

    “어허억!”

    푸욱!

    놈의 두 번째 창이 안영지의 재킷을 꿰뚫는다.

    “흐어억!”

    안영지는 사색이 되어 그 자리를 벗어나지만, 두 개의 창은 지치지도 않는 듯이 그녀를 꿰뚫기 위해 쫓아 들었다.

    “음, 역시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렵네. 아슬아슬하다. 심지어 1페이즈라 키메라는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 거야.”

    “슬슬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

    “잠깐, 나도 써 보고 싶은 게 있거든.”

    “응?”

    츠츠츳.

    내 안의 마력을 끌어낸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낮은 랭크의 던전에서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기세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D급이라는 낮은 등급으로 제대로 된 기세를 써 본 적도 없는 나이지만, 그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 전이를.

    츠츠츠츳!!

    나는 영혼 전이의 힘을 키메라에게 사용했다. 마력이 키메라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키엑?!”

    엄청난 기세로 안영지를 향해 공격을 퍼붓던 키메라가 움찔한다.

    나는 놈에게 ‘공포’를 주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영혼 전이를 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 감정에 몰입해 있어야 했다. 공포를 끄집어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공포를.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죽었을 때, 회귀하기 직전의 고통을 떠올린다.

    “키이이익……. 키에에엑?!”

    키메라의 움직임이 굳어진다.

    “어?”

    키메라에게 몰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안영지가 놀란 얼굴로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아도, 키메라 녀석은 내 쪽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버렸다.

    “키에에엑!!”

    노란 키메라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두근, 두근.

    고동치는 심장이 내 것인지 키메라의 것인지. 감정에 휩쓸려 분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안정감을 전이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르르. 몸이 떨려 오고 땀이 흐른다.

    “키, 케이에엑…….”

    결국 나를 마주 보던 키메라가 일순간 뒤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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