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제203편
“좋아요.”
부스스스, 푸스스스…….
다시 머미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흡.”
안영지는 일어나 떨어트렸던 검을 쥔다.
“하앗……. 흐아아앗. ……후우. 후욱. 후.”
거친 숨이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눈을 꼭 감았다가 뜬 그녀는 결심한 듯 모래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흥분해서는…….”
“흐아아앗!!”
촤아악!
크게 검을 휘두르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머미가 찢겨 나간다.
“크어어어…….”
머미가 쓰러지고 안영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해, 해냈다.”
“잘했어요! 앗, 하지만 뒤를……!”
“그어어어……!!”
“억압의 손길!”
촤르르륵!
사슬이 머미를 붙잡았다.
안영지는 그만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헉, 고, 고맙습니다. 허억…….”
“흑단아!”
“삐우우! 파아아앙!”
퍼어엉!
사슬로 붙잡은 머미를 흑단이가 불태운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안영지는 미소를 짓고 있다.
“해냈어…….”
* * *
“그어어어…….”
“흐아아앗!!”
휘이익!
머미를 향해 안영지의 검이 쇄도한다.
퍼거억!!
엄청난 소리와 함께 머미가 반으로 갈라진다.
“대단해!”
“하앗……. 하앗!”
내 외침에 뒤를 돌아보며 안영지가 씩 웃는다.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집중해요!”
“네엣!”
촤르르륵!!
억압의 손길이 안영지에게 달려드는 머미의 움직임을 막는다.
“불길한 예감!”
디버프를 걸어 머미들의 속도도 늦춘다.
“고맙습니다!”
휘이익! 안영지가 높이 뛰어올라 단번에 머미 세 놈을 베어 버린다.
“역시 S급이야.”
“엄청 강하잖아.”
“스텟만 보면 결이 네가 각성했을 때보다 힘 스텟이 높더라고.”
“민첩은 내가 훨씬 높았거든.”
“그건 그렇지. 뭐, 이젠 넌 그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잖냐.”
“흠흠, 그건 그렇지만.”
결이가 안영지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핀다.
“아까에 비해서 움직임이 훨씬 좋아졌어.”
“초 단위로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야.”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한 것이, 안영지는 각성한 지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그리고 이미 레벨을 올려 스킬까지 얻은 참이다. 그러니 각성 후유증도 많이 사그라들었을 테고 본인의 트라우마만 이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준비가 끝났을 터.
“흐아악!!”
아직 기합 소리는 조금 이상하지만 말이다.
“후우, 후우.”
“삐약! 삐약삐!”
그 모습을 보고 썬더도 신이 나는지 작은 날개와 발을 파닥댄다.
“부아바!”
대신 할 일이 줄어든 흑단이는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어차피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거대화 스킬을 사용해야 할 테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말라고.”
“삐우우, 부부부…….”
“그나저나 이렇게 빨리 트라우마를 이기고 성장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대단해.”
퍼억! 퍼걱!
안영지의 검에 쓰러지는 머미들을 보면서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제 슬슬 사원으로 가죠.”
“……네, 넷!”
안영지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이미 주변으로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머미의 잔해가 가득하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준 님.”
“에이. 뭘 또 저한테 고맙대요.”
“제가 오늘 이만큼이라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모두 하준 님 덕분이에요.”
“아녜요. 영지 씨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길 만큼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전 그냥 옆에서 기다리기만 한걸요.”
안영지의 얼굴이 붉다.
“기다려 주신 것만 해도요.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인데요.”
“후훗.”
얼마간 걷자 모래사막 사이에서 커다란 돌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사막 중앙에 덩그러니.”
“여길 찾아내다니, 대단해요!”
원래라면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더라도 사흘은 꼬박 헤매야 찾을 수 있는 사원이다. 하지만 내겐 망량이가 있으니까.
“엣헴.”
망량이가 뽐을 낸다.
“자, 들어가 보자고.”
“삐우, 삐우우바바!”
이번에도 기세 좋게 흑단이가 앞장선다.
그그그그…….
우리가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원의 문이 열린다.
“오, 이 안은 시원해요.”
“조심해요. 이 안에서도 보스 몬스터에게 갈 때까지 여러 몬스터들이 나올 테니까요.”
“으윽. 네.”
안영지가 긴장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선다.
사원 안은 창문이 하나도 없고 상당히 어두웠다.
“망량아.”
“화르륵!”
망량이가 몸을 부풀려 주위를 밝혀 준다.
거대한 벽이 하나로 쭉 뻗은 복도의 양옆을 가득 메우고 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그림과 기호가 그려져 있는데 마치 이집트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벽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집트와는 다른 양식으로 쓰여 있다는 거다.
좀 더 기괴하고 음습한 느낌이 들었다.
삐걱……. 후두둑.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가 이따금씩 복도를 울린다.
“흐앗!”
“조심.”
후욱. 후욱. 어느 순간부터 복도에 설치된 횃불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주위가 밝아진다.
‘역시 하급 던전은 이런 점이 친절해서 좋단 말이야.’
그리고 복도의 끝에 갈림길과 함께 검은 고양이상이 서 있다.
“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죠?”
“여길 잘 봐요.”
고양이상 앞에는 글이 적힌 석판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죽음을 원하는 자는 오른쪽 길로, 차가운 삶을 원하는 자는 왼쪽 길로.”
“수수께끼인가요?”
“정식 수수께끼는 아니에요.”
“정식 수수께끼?”
던전 내부에 있어 업적을 얻을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이 던전은 원래부터 퍼즐을 풀어야만 보스 룸에 접근할 수 있다.
그것까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 거죠?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중에 따뜻한 것이 긍정적인 이미지지만, 그 뒤에는 죽음이 따라와요. ‘차가운’의 뒤에는 삶이라는 긍정적인 뜻이 따라오고요.”
“그래서 영지 씨는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데요?”
“엑? 그냥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도 되는 건가요?”
“물론 아니죠.”
“에이, 뭐예요. 놀랐잖아요.”
안영지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냥 뜻만 묻는 거라면……. 차가워도 삶 쪽이 낫지 않을까요?”
“후후후. 좋아요. 잘 선택했어요. 우린 죽음 쪽으로 갈 겁니다.”
“응?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건가요?”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회귀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이 장소에는 여러 가지 힌트가 있다.
“고양이상을 봐요.”
“으응?”
“수수께끼를 풀 땐 주위를 잘 살펴봐야 해요. 고양이상의 눈이 죽음을 향해 있죠?”
“어라? 그렇네요?”
“그런데 꼬리는 삶 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고양이 꼬리에 관해서 아나요? 고양이 꼬리가 향하는 방향이 원래 고양이가 원하는 것이 있는 방향이라고들 해요.”
“정말요?! 몰랐어요.”
“이 고양이상은 죽음 쪽을 경계하느라 바라보고 있는 거고 꼬리는 삶을 바라기에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죠.”
“우와!”
“고양이상의 눈만 보고 죽음 쪽을 택한 쪽은…….”
“아니, 잠깐. 우리 죽음 쪽을 향해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맞아요.”
내 말에 안영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주, 죽음 쪽을 피해 가라고 고양이상이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맞죠.”
“그, 그런데요?”
“에이. 이 정도 난이도의 던전에서 우리가 죽는 게 쉽겠어요?”
“아니! 무슨 말이세요!?”
“하하하. 걱정하지 말아요. 죽음 쪽으로 가면 몬스터가 나오는 것뿐이니까요.”
“에엥?”
안영지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앞으로 여러 가지 갈림길이 나올 거고, 거기서 쉬운 쪽을 선택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어려운 길로 갈 거다, 이 말이죠?”
“맞아요. 우린 레벨을 올리러 왔으니까요.”
“아아…….”
그제야 납득이 된다는 얼굴이다.
“놀랐잖아요.”
“설마 죽고 싶어서 여기 왔겠어요?”
“그건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하준 님이 아닌 줄 알았어요. 몬스터와 뒤바뀌어 버렸다든가…….”
“상상력이 되게 좋으시네요. 영지 씨.”
“후우. 어쨌든……. 알겠으니까 이제 앞으로 가죠?”
“좋아요.”
터벅. 터벅.
죽음 쪽으로 걷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되었을까.
스슷. 스스스슷. 샤샤샤샷.
절지동물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읏. 무, 무서워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 브리핑에서 말했다시피 데드바디 스파이더가 나올 겁니다.”
“그러니까 더 무섭다는 거예욧!!”
안영지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파스스슷!! 하는 소리가 나더니 우리 앞에 무엇인가가 떨어진다.
“꺄악!”
안영지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른다. 그리고 그 앞에는 그녀가 놀랄 수밖에 없는 형상을 한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데드바디 스파이더.
시체를 뒤집어쓴 형태의 거미다. 마치 거북이처럼 등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바로 시체의 형상이다.
모습도 끔찍하지만,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독하다.
“우윽.”
“겁내지 말아요.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그렇게 강한 몬스터는 아니니까.”
“하지만 너무 역겹게 생겼어요.”
거미가 짊어지고 있는 시체의 형상은 미라와 비슷하다. 다만 붕대로 둘둘 감겨 있는 미라 쪽이 훨씬 보기에 편할 만큼 적나라한 시신의 모습을 둘러쓰고 있다.
다각, 다각다각.
거미가 움직일 때마다 둘러업은 시체에서 눈알이 빠져 흔들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 알람이 울린다.
[상태 이상: 공포]
[모든 소울계 상태 이상 면역으로 상쇄됩니다.]
[상태 이상: 공포]
[모든 소울계 상태 이상 면역으로 상쇄됩니다.]
데드바디 스파이더는 그 끔찍한 형상 때문에 상태 이상 특성이 뜨기에 낮은 랭크의 던전이라도 조금 귀찮은 몬스터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이쪽을 찾아온 거고.
아마 안영지가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했으면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을 테지만.
“흐아아악!!”
예상한 것처럼 S급이긴 하지만 레벨이 낮은 안영지만이 상태 이상에 걸려든 것 같았다. 그러자 결이가 나선다.
“하준아,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
“아니, 잠시만 기다려.”
나는 일단 억압의 손길과 불길한 예감을 사용해 데드바디 스파이더가 잠깐 동안은 우리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영지 씨!”
“흐, 흐아악!”
“영지 씨는 지금 완전히 이성을 잃었어. 공포 상태 이상에 걸린 거야.”
“알아.”
“안다고? 대체?”
츠츠츳.
나는 안영지를 향해 영혼 전이를 시도했다.
“헉, 허억?!”
안영지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어, 어떻게……. 하, 하준 님!!”
“상태 이상이 풀렸다?”
결이가 놀란 듯한 눈으로 대답을 재촉한다.
“예상대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