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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02화 (202/250)
  • 제202화

    제202편

    “저를 던전으로 데려가 주세요.”

    “던전으로요?”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영지는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S급으로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은커녕 헌터 자격증도 따지 못한 채였다.

    “하지만…….”

    “알고 있어요. 제가 가진 트라우마 때문에 걱정하시는 거죠.”

    “맞아요.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안영지는 신선 길드에서 새끼 몬스터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 그걸로도 느리지만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물론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강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긴 했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그녀에게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마음만 먹는다고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건 나나 안영지나 안영지의 존재를 아는 다른 길드원들도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하준 님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하준 님이 낮은 랭크로 각성했으면서도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영지 씨.”

    “그러니까, 저를 던전에 데려가 주세요! 저 때문에 하준 님이 계속 위험해지시는 걸 두고 보기도 어렵고요. 강해지게 해 주세요!”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헌터 등록증이 있어야 해요.”

    “아…….”

    안영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다. 헌터 등록증을 얻으려면 한 달이 넘는 수료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건 딱히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영지 혼자 직접 센터에 가서 수료 과정을 들어야 했다.

    물론 그 수료 과정 자체가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안영지가 혼자서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인 거다.

    “가, 각오는 되어 있어요.”

    안영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거,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요. 차암……. 저 바보 같죠? 아하하. 하하. 하…….”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이미 내뱉어 놓긴 했지만, 자신이 없는 얼굴.

    이런 상태의 안영지가 그냥 센터를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방향으로밖에 상상이 안 돼.’

    S급이니 당연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텐데, 그것이 오히려 안영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게 될 것 같았다.

    ‘어쩐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안영지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기껏 용기를 냈는데 이번 일로 다시 풀이 죽어 버린다면 그녀의 트라우마 개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터였다.

    “사실 방법이 있기는 한데요.”

    “네, 네엣?”

    내 말에 안영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딴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센터에 가게 되면 벌어질 일을 상상하고 있었던 거겠지.

    “불법이긴 한데요.”

    “네?!”

    그녀의 표정이 사색이 된다.

    * * *

    “일단 장비는 그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네, 넵.”

    아주 이른 새벽, 나와 안영지는 길드 건물을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결이 너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마.”

    “응, 알겠어.”

    안전을 위한 거라며 기어코 따라 나온 결이는 뒷좌석에서 새끼 몬스터들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관령으로 향했다.

    안영지는 굉장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불법이긴 하지만, 너무 그렇게 떨 것 없어요. 아직 그 근처에 던전이 생겼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모르니까.”

    “그, 그렇지만…….”

    “게다가 헌터 등록증 없이 던전에 출입하려면 그 수밖엔 없으니까요.”

    “으응. 맞아요. 사실 그게 걱정된다기보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거예요.”

    아직 다른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한 던전.

    회귀한 나만이 아는 던전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하준 님은. 어떻게 거기에 포털이 생겼다는 걸 아셨어요?”

    “아……. 대관령에 친척이 살아서요. 하하하.”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부모님을 잃은 뒤 천애고아가 된 내게 친척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있었다면 아마 내 미래는 바뀌었었겠지.

    어쩌면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짐 같은 건 지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그랬다면 결이를,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모두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오늘은 모두 분발해야 한다?”

    내 말에 몬스터 새끼들이 눈을 빛낸다.

    흑단이와 썬더다.

    윙스네이크는 아직 전투에 돌입할 만큼 안정되진 않았기에 길드에 두었다. 용암 독충의 친화력이 윙스네이크가 신선 길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둘이 함께 두고 왔다.

    “썬더는 오늘 넥스트 레벨로 각성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고!”

    “삐약!”

    썬더가 조그만 날개를 파닥거린다.

    ‘사실 썬더는 그냥 마실 간다는 개념으로 가는 거지만.’

    썬더의 작은 부리를 손가락으로 콕 하고 건드려 준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삐약거리고 있다.

    “영지 씨도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오늘 던전은 상당히 낮은 레벨의 던전이니까요.”

    “앗, 네네!”

    “그렇다곤 해도 첫 던전이니 떨리는 게 정상이겠지만.”

    “네……. 일단은 하준 님께서 브리핑해 주신 내용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좋아요, 그럼 출발해 볼까요.”

    “넵!”

    츠츠츳.

    던전으로 가기 위한 포털을 통과한다.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우왓.”

    “어때요. 포털을 넘어 본 감상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네요. 이거.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운 기분이 들죠?”

    “어라, 어떻게…….”

    “나야 자주 드나들었으니까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그게 딱 맞는 것 같아요. 시골집에 온 것 같은 울렁거림이랄까.”

    안영지가 던전 내부를 신기한 듯 훑는다.

    “방금까진 깊은 산속이었는데, 여긴…….”

    사막이다.

    포털 너머의 추위와는 다르게 찌는 듯한 더위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와, 너무 신기해요.”

    “일반인이라면 급격한 온도 차에 실신했을 거예요.”

    “아아, 그렇구나.”

    “삐이! 부르구르르!”

    흑단이는 이제 저를 내려놓으라고 난리다.

    녀석을 안고 있던 결이가 바닥에 내려 주자 신이 나서 킁킁대며 앞으로 나선다.

    “흑단아, 너무 개인 행동 하면 안 된다.”

    “삐우, 바아바!”

    “삐약, 삐약!”

    안영지의 품에 있던 썬더도 내려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썬더는 그럴 수 없다.

    “썬더, 너는 안 돼. 아직 너무 약하잖아.”

    “삐약…….”

    안 된다는 시늉에 금세 풀이 죽어 버린다. 보송보송한 머리가 추욱 처지는 것을 보니 웃음이 터진다.

    “흑단이 형아만큼 강해지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게 해 줄게, 알겠지? 썬더야.”

    “삐약, 삐…….”

    “자, 가자고.”

    결이가 안영지에게서 썬더를 넘겨받았다.

    “주인님, 마력을 가진 존재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망량이가 불꽃을 일렁이며 속삭인다.

    “곧 머미들이 나올 겁니다.”

    “네, 넷!!”

    “머미는 야수형 몬스터가 아니라서 길들이기나 야수 조종을 사용하지는 못할 거예요.”

    “네, 그럼 일단 기본 공격으로 상대할게요.”

    “좋아요.”

    부스스스.

    푸스스스스…….

    저 멀리 모래 언덕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붉은 모래가 흩날리고 있다.

    나부끼는 붉은 모래들 때문에 마치 모래 언덕은 바다의 파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래들이 넘실거리는 것은 바람 탓만은 아니었다.

    부스스스.

    “그어어어…….”

    “느어어.”

    우리가 기다리던 머미가 등장한 거다.

    머미란 말 그대로 미라 형태의 몬스터였다. 구울이나 좀비 몬스터와 같은 모습으로, 특징이라면 붕대를 둘둘 감고 있고 바짝 말라 있다는 것 정도다.

    “그아아아……!”

    “머미들은 행동이 느리기 때문에 지금 영지 씨가 상대하기 딱 좋을 거예요.”

    하지만 앞에 선 안영지는 몸이 완전히 굳은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아아……. 으으으…….”

    “흠, 이런.”

    “그아아아~!”

    촤르르륵!!

    억압의 손길이 안영지 곁으로 다가온 머미들을 끄집어 당겨 넘어트린다.

    “갸아아악.”

    “으…… 으.”

    “영지 씨! 정신 차려요!”

    “흐윽!”

    덜덜 떨던 안영지가 급기야는 들고 있던 검을 놓쳐 버렸다.

    풀썩.

    모래 위로 떨어지는 건 검뿐이 아니었다. 후둑, 후두둑.

    그녀의 땀과 눈물이 사막의 건조한 모래를 적시고 있었다.

    “결아.”

    “응.”

    “크와앙!”

    결이를 부르는 소리에 흑단이가 먼저 나선다.

    “파아아앙!”

    휘우욱!

    화르륵! 뿜어낸 불꽃 때문에 묶어 두었던 머미가 불타오른다. 건조한 기후여서 그런지 순식간에 바싹 태워졌다.

    “파아아앙!!”

    흑단이가 신이 나서 불꽃을 마구 쏘아 댔다.

    처음 등장한 머미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기에 흑단이 혼자서도 충분히 모든 머미를 태워 버릴 수 있었다.

    “아, 우우…….”

    “영지 씨. 괜찮아요?”

    안영지의 팔을 감싸 쥐니, 내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이 정도로 두려워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돌아가죠.”

    “아, 아녜요!!”

    그녀는 내가 붙잡은 팔을 거칠게 떼어 놓더니 심호흡을 했다.

    “이, 이런 모습을 보여서 죄송해요.”

    “하나도 죄송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절 도와주시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 주셨는데…….”

    “그러니까요. 전 단지 영지 씨를 돕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러니까 저나 결이한테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요. 돕고 싶으니까요.”

    “으윽…….”

    다리에서 힘이 풀렸는지 안영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아요?”

    “네에. 괜찮아요.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편하게 말해요. 정말 괜찮으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이겨내고 싶어요. 저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고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영지 씨.”

    안영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축축하다.

    그래 봤자 이제 막 성인이 됐을 뿐인 어린애다. 그런데도 자기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영지 씨.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도 당신을 비난할 수 없다고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고마워요.”

    “진심이니까요. 던전을 돌지 못한다고 해서 영지 씨가 무가치해지는 게 아니에요. 이미 다른 방식으로 레벨 업도 하고 있고, 능력을 쓰고 있잖아요.”

    “저는……. 그러니까 더욱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네?”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말고. 영지 씨를 위해서 해요.”

    “아…….”

    “그래야만 그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을 위해서 해요.”

    내 말에 안영지의 표정이 씩씩해진다.

    “맞아요. 나를 위해서…….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기 위해서요.”

    “영지 씨는 할 수 있어요.”

    “그래요. 난 할 수 있어요.”

    안영지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을 꽉 잡아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다시 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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