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제201편
“그동안 내가 무례하게 굴었다면 사과할게.”
손예원이 사과를 다 하다니.
놀랍다.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굴었다면?”
“굴어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이만하면 좋은 구경이긴 하다.
“그 사과 받아들이도록 하죠.”
“정말?!”
“그렇다고 뭐 펫을 바로 대령하겠다느니 그런 건 아녜요. 그냥 사과를 받아 준다고 했을 뿐입니다.”
“무, 물론이지. 물론이지. 당장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니깐? 아하하.”
“알겠으니까. 이제 더는 소란을 피우지 말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흐음, 흠. 소란은 무슨.”
손예원이 멋쩍은 듯한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한다.
“어쨌거나, 이거. 파리에서 공수해 온 장인의 과자니까 말이야.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오호.”
과연 포장부터 그럴싸하게 부티가 흐른다.
달콤한 향기도 계속해서 코를 자극하고 있고.
“잘 먹을게요.”
“혼자서 아껴 먹어. 아니, 아껴 먹지 마. 내가 또 선물해 줄 테니까 말이야.”
“뭐가 들은 줄 알고.”
결이가 투덜댔다.
하지만 손예원은 미간을 찌푸릴 뿐, 뭐라고 덧붙이지는 않는다.
저 여자가 정말 많이 참고 있구나.
과자를 먹지 않았는데도 입안이 꽤 달콤한 기분이다.
“그러게.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나누어 먹어야겠군.”
“윽……. 날 그렇게밖에 안 보는 거야? 독살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아.”
“요즘 주위에 하도 생각지 못한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길래요.”
“흐응.”
“어쨌든 과자는 맛있게 먹을게요.”
“흠흠. 그래.”
“더 용건이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펌블 길드장을 좀 만나고 돌아갈 생각이야.”
“그럼 전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안에서 귀여운 녀석이 기다리거든요.”
“그래. 수고하라고.”
손예원이 순순히 물러선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결이가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나 콧대가 높더니.”
“그러게. 적이 많이 생기는 것만큼 내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거지.”
“어쨌든 저 여자가 저러는 꼴을 보니까 속이 시원하기는 하다.”
“너도?”
결이와 마주 보며 키득거린다.
“윙스네이크는 어때?”
“응. 좋아. 이대로라면 금방 데려갈 수 있을 거야. 물론 케이지에 넣긴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너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경계하고 겁을 내니까.”
“응.”
“그래도 하준이 네 덕분에 살 수 있었던 아이야. 잊지 마.”
결이에게 씩 웃어 준 다음 다시 윙스네이크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샤아아! 쉬이이잇!”
오독, 오도독.
버터 향이 가득 풍기는 과자를 베어 물며 주위를 둘러본다. 윙스네이크가 날갯짓하며 방 안을 날아다니고 있다.
녀석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
조금 전에도 포션에 경단을 이겨 먹였다. 어느새 포동포동한 느낌마저 든달까?
“이제 나를 겁내지도 않네.”
와삭.
내 곁에 앉은 결이가 초코칩 쿠키를 입에 던져 넣고는 손을 탈탈 털었다.
결이 말대로 내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굴던 윙스네이크가 그저 결이가 하는 행동을 힐긋 바라보기만 할 뿐, 여유롭게 방 안을 유영한다.
“영혼 전이를 쓴 덕분이긴 하지만, 이제 정말로 일반 케이지에 넣어서 신선 길드까지 이동시켜도 되겠어.”
“그래.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네.”
“응. 꼬박 일주일 정도 걸렸지.”
아마 내게 스킬이 없었다면 훨씬 오래 걸렸을 터다.
“스스스……. 샤아아.”
어느새 내 곁에 바싹 붙은 윙스네이크.
과자에 관심이 있는지 귀여운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킁킁.”
“몬스터가 먹어도 되려나?”
“먹으면 안 되는 거면 안 먹지 않을까?”
슬쩍 과자를 내밀었더니 빨간 혀가 날름거린다.
덥석.
“우왓.”
윙스네이크는 내가 놀라는 것도 무시하곤 과자를 덥석 집어삼켰다. 녀석의 매끈한 흰 몸이 과자의 모양대로 볼록해져 내려간다.
“이렇게 삼켜서야 맛을 느끼지도 못하는 거 아닌가?”
“샤아아.”
하지만 왠지 윙스네이크는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다.
“버터 향을 좋아하는 건가?”
“특이한 녀석이네. 몬스터가 인간 음식을 좋아하다니.”
“우리집 애들도 뭔가 하나씩 좋아하는 게 있을 수도 있어.”
“흑단이는 사람 음식 탐내지 않던데.”
우리가 키득거리는 사이에 윙스네이크는 아예 과자 통에 들어갈 기세로 주위를 킁킁거렸다.
“안 돼. 과자 너무 많이 먹으면.”
이미 거의 빈 상자가 되긴 했지만, 내가 과자 상자를 집어 들어 옮기자 윙스네이크의 표정이 약간 구겨지는 것 같다. 뱀이라 표정이랄 게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귀여워…….’
쿠키 박스를 내려놓고 윙스네이크를 꽉 끌어안았다. 녀석은 싫다는 듯 꼬리를 튕겼지만, 이내 얌전하게 내게 안겼다.
차가운 비늘이 뺨을 스친다.
“집에 가자.”
* * *
“돌아온 걸 축하드려요!”
윙스네이크를 넣은 케이지를 들고 신선 길드 건물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건 안영지였다.
“격한 환영 감사해요. 그래 봐야 일주일밖에 자리를 안 비웠는데.”
“그래 봐야 일주일이라니요!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저랑 우리 애들이랑요.”
“그르릉, 그르릉.”
“삐약!”
안영지의 발 주위에서 흑단이와 썬더가 그르렁댄다. 용암 독충은 신이 나는지 주위를 붕붕 날아다닌다.
“새 친구를 데려왔는데, 다들 잘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네.”
“우리 애들은 착해서 분명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안영지와 아이들을 데리고 곧장 훈련실로 향했다.
“쉬이잇……. 쉬잇…….”
훈련실 바닥에 내려놓은 케이지 안에서 윙스네이크의 긴장된 숨소리가 들린다. 이미 다른 몬스터들의 냄새를 맡은 까닭이겠지.
게다가 계속 지내던 곳을 벗어나 이동하는 동안에도 낯선 냄새를 많이 맡았을 거다.
좁은 케이지 안에 있어야 했던 것도 스트레스였을 테고.
스스슷.
나는 영혼 전이를 이용해 녀석을 안정시킨다.
“삐약.”
“꺄우웅?”
호기심이 많은 흑단이와 썬더가 케이지 근처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쉿, 조용. 천천히……. 우리 윙키한테 시간을 주자.”
“윙키?”
결이가 언제 그런 이름을 지었냐는 듯 되묻는다.
“귀엽지 않아? 윙키.”
“음……. 귀엽긴 한데. 윙스네이크는 나중에 기차만큼 커지지 않나?”
“아, 그러네. 생각해 보니 그럼 윙키가 지낼 사육장을 만들 때 부지가 아주 많이 필요하겠네.”
“……응.”
“자아, 윙키. 우리 친구들 냄새를 맡아 보자.”
“쉬이이익.”
내가 손짓하자 썬더와 흑단이가 케이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용암 독충도 슬쩍 날아와 뒤에 섰다.
“쉬이이……. 쉬익…….”
츠츠츳.
소울메이트와 영혼 전이를 함께 사용하며 녀석들을 하나로 묶었다.
“쉬이이이…….”
썬더가 기다리지 못하고 움찔거리자 흑단이가 앞발로 썬더의 꼬리를 꽉 눌렀다.
“삐, 삐약!”
“삐이이!”
썬더가 들썩이던 엉덩이를 다시 바닥에 붙이고 한참 기다리자 케이지에서 날름거리는 새빨간 혀끝이 보인다.
윙스네이크가 천천히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킁킁.”
“킁킁!”
흑단이와 썬더도 윙스네이크의 냄새를 맡기에 바쁘다.
스르르륵.
윙스네이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케이지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쉬이익.”
그러고는 몸을 들어 주변을 조심스레 살핀다.
썬더의 엉덩이가 이번에도 들썩거리지만, 여전히 꾹 누르고 있는 흑단이의 발 덕분에 튀어 나가지 않고 움찔거리기만 한다.
부웅, 붕.
그때 용암 독충이 천천히 날아올랐다. 녀석도 새로운 몬스터의 등장에 상당히 흥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 온 독충의 성격은 온화하고 친밀감이 높아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독충이 천천히 날아오르는 걸 본 윙스네이크가 검은 눈을 반짝이더니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러고는 곧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캬웅?!”
“삐우!”
썬더와 흑단이가 놀라는 사이에 날아오른 두 마리의 몬스터가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와.”
“춤추는 것 같아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몬스터가 종이 다른 몬스터와 교감하는 장면은 회귀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안영지의 말대로 정말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
“쉬이잇. 쉬익.”
“뀨잇, 뀨웃.”
윙스네이크와 용암 독충은 마치 서로 키득대는 것처럼 울며 공중을 한참이나 함께 날았다. 그러다가 용암 독충이 먼저 아래로 착지했고 윙스네이크가 따라 내려왔다.
그런 후 흑단이와 썬더에게 인사하듯 다가갔다.
용암 독충이 윙스네이크를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우리 독충이.’
그때,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띠링.
[‘용암 독충’의 두 번째 각성을 축하합니다.]
‘어라.’
독충이 넥스트 레벨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도 경험치가 오르는 거구나.’
감격스러움이 두 배가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곧 씁쓸함도 느껴졌다. 독충까지 넥스트 레벨로 각성했다면, 이제는 용암 독충까지도 한세희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준 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한껏 기쁜 얼굴로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던 안영지가 놀라 내게 물었다.
“방금 용암 독충이 넥스트 레벨로 진화했어요.”
“우와! 정말 잘됐잖아요?!”
“그럼 이제 정말로 작별할 때니까…….”
“아아, 그건 그렇군요.”
안영지 역시 금방 풀이 죽은 얼굴이 됐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별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너무 슬퍼하진 말고 보내 줘야겠죠. 영원히 못 보게 될 것도 아니고요.”
“하준 님은 어른스러우시네요.”
“뭐, 영지 씨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죠. 하하하.”
“그게 아니라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응?”
옆을 돌아보니, 안영지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하준 님은 감성도 예민하셔서 공감도 잘해 주시고 남을 챙기거나 걱정하시는 것도 잘하시면서 또 담담해야 할 때는 어른스럽게 딱딱 정리를 잘하시잖아요.”
“내가 그런가. 하하.”
“그래요!”
“한세희 길드장님은 내가 너무 무르다고 하던걸요.”
안영지는 고개를 젓는다.
“저도 언제까지고 어린애처럼 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으응?”
“저도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하준 님이 도와주신다면……. 가능할 것 같고요.”
“뭘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는데요?”
“저를 던전으로 데려가 주세요.”
“던전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