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제198편
푸스으으으…….
타닥, 타닥. 폭발과 함께 타오르는 불꽃이 꽃잎처럼 먼지와 함께 흩날린다.
“인간이냐.”
귓가에 허탈한 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궁금하기는 하네.”
맞은편에 보이는 괴한의 모습.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폭발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았다.
이번 공격으로 그도 타격을 입었는지 온몸이 지글거리며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버젓이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대체…….”
“으아아아!!”
괴한이 고함을 치며 우리 쪽으로 도약한다.
“하앗.”
슷!
괴한을 피해 양옆으로 갈라진 결이와 나.
쿠웅!!
괴한이 다시 땅을 밟으며 착지하면서 도로에 크레이터를 만들어낸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휘이익!
차르르륵!
억압의 손길을 이용해 괴한의 움직임을 최대한 지체시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 자식들 대체 이런 일을 일으키면서까지 하려는 게 뭘까.
아까 뭐라고 했더라.
대적자? 나를 강하게 해?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대적자를 강하게 만든다고? 그럼 이렇게 습격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렇게 한다고 내가 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에 사이비들이 하는 말이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거 아니냐고!
차르르륵!!
사슬이 괴한의 몸을 낚아챈다.
“헉, 허억.”
결이의 공격에 호되게 당한 모양인지 괴한의 속도가 한층 떨어진 덕분이다.
“바른대로 말해.”
“나는 어머니의 말을 전하러 왔을 뿐.”
“말 한마디 전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인다고?”
“그만큼 어머니의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글거리며 타오른 괴한의 몸체. 옷과 복면이 녹아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방금 결이의 공격으로 상당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척 보기에도 괴한은 고통스러움에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그래, 그렇게 중요한 어머니의 말씀이 대체 뭔데. 그게 끝이야? 내가 대적자니 뭐니.”
“……어머니께서는 네 심장을 원한다.”
“뭐?”
단번에 미간이 구겨진다.
내 심장?
“강하게 하니 뭐니 그런 말을 해 놓고, 결국엔 나를 죽이러 왔다는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 녀석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그런데도 이렇게 말을 거는 건 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다.
놈은 약해지고 있고 시간을 끌면 다른 각성자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출동할 테니까.
문제를 일으키는 거라면 몬스터든 뭐든 각성자들은 힘을 보탤 의무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강해져라.”
“그러니까…….”
“하지만 그 전에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젠장. 미친놈.”
우득, 우드드득.
괴한이 다시 사슬을 끊어낸다.
“어림없지.”
파츠츳!
꽈과과광!!
스파크가 튀고 결이의 전격이 내리꽂힌다.
이번에도 괴한은 결이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저번보다 아슬아슬했다.
‘확실히 약해졌어. 어쩌면 다른 각성자들이 오기 전에 해치울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놈을 사로잡을 수는 없어진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놈이라도 붙잡는다면 신금천화교에 관해서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을 텐데.’
물론 이 녀석도 전과 같이 자폭해 버린다면 그 꿈은 멀리 날아가겠지만.
‘불길한 예감!’
아슬아슬하게 결이의 공격을 피해내는 괴한을 향해 디버프 스킬을 건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디버프 스킬이 걸렸다.
괴한의 움직임이 좀 더 느려진다. 이제는 확연하게 움직임을 쫓을 수 있을 정도다.
“감히, 대적자들 따위가…….”
“강해지라니 뭐라니 했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꽤 강하거든?”
“크읏.”
괴한이 비틀거린다.
“폭풍의 춤.”
결이의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 바람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생성된다. 번쩍, 번쩍. 스파크가 튀는 바람 기둥이다.
콰과과과!!
바람 기둥이 괴한을 향해 쇄도하고 이번에는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역시, 우리 결이!”
드드드득.
콰드드득.
바람 기둥에 괴한이 버티며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억압의 손길!”
촤르르륵.
나는 괴한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사슬을 이용해 더욱 단단하게 붙잡았다.
“크아아악!!”
그리고 저 멀리 각성자 헌터들이 도착하는 게 보인다.
“됐다.”
이미 난장판이 되어 버린 현장.
“무슨 일입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도착한 헌터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시위 테러 때의 용의자 집단인 신금천화교 소속 각성자예요. 여길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죠.”
“그런…….”
폭풍의 춤이 잦아들고 다시 괴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크으윽…….”
괴한은 모여들기 시작한 헌터들을 보더니 입술을 짓씹었다.
“자, 이제 네놈이 벗어날 방법은 없어. 이제 진짜 목적을 말하는 게 어때?”
“흥. 이미 난 목적을 이루었다.”
“뭐?”
“너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것이 내 목적.”
“그런…… 정말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다고?”
“후후후, 한낱 대적자인 네가 알 턱이 있나. 깊은 어머니의 뜻을.”
“뭐라는 거야.”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이 녀석.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헌터들이 그를 둘러싸고 사로잡으려는 순간, 부우우욱.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저건……!”
“폭발한다!”
그때와 같다.
“피해요!”
또다시 막을 수 없는 힘으로 자폭을…….
투콰악!
뭔가 꿰뚫리는 소리가 나더니, 부풀어 오르던 괴한의 몸이 덜렁 흔들린다.
“뭣…….”
괴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 뒤에 백발의 남성이 서 있다.
그리고 그의 손이 괴한의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까드드득. 드드득. 후드득.
관통한 남성의 주먹에는 얼어붙은 피가 엉겨 있다가 떨어진다.
“한세희…….”
푸화악!
괴한의 몸을 꿰뚫었던 한세희의 주먹이 다시 그 몸을 통과해 빠져나가자, 괴한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는다.
“이게 무슨…….”
한세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주먹을 펼친다.
그 안에는 얼어 버린 피와 함께 무엇인가가 놓여 있다.
“씨앗입니다.”
“네?”
한세희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신금천화교에 관해서 계속 조사하고 있었죠. 그들이 임무를 수행한 후 폭발하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들이 씨앗이라고 부르는 이것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겉보기에는 복숭아씨나 호두처럼 생겼으나 훨씬 작아 손톱만 한 씨앗이다.
한세희의 손에서 얼음 결정과 함께 데굴 구르고 있다.
“이 사람은 이제 힘이 없을 겁니다. 체포하세요.”
한세희의 말에 헌터들이 나서서 괴한을 둘러싼다. 힐러가 붙어 피를 쏟아내는 괴한을 부축했다.
“크윽, 젠……장. 젠장.”
괴한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로 이제 더는 저항할 힘이 없는지 순순히 붙들려 가고 있다.
“수고했습니다, 은하준 씨.”
“아, 한세희 길드장님.”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시간을 끌어 주었지 않았습니까.”
“무사히 도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하마터면 더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날 뻔했어요.”
그대로 폭발이 일어났다면 여기에 모인 헌터들 중 상당수가 해를 입었을 거다.
게다가 괴한을 사로잡지도 못했을 것이고.
한세희는 정말 멋진 타이밍에 등장해 주었다.
“씨앗이라는 게 뭐죠? 이제 폭발은 일어나지 않나요?”
내 물음에 한세희는 손에 쥐고 있던 씨앗을 내게 보였다.
그의 손에서는 한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한세희가 가진 냉기의 능력으로 씨앗이 달아올라 폭발하는 것을 막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가진 힘입니다. 이 씨앗을 삼키면 랭크에 상관없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되죠. 낮은 랭크의 각성자도 높은 랭크의 각성자가 될 만큼 강해집니다.”
한세희가 끌려가는 괴한 쪽을 쓱 본다.
“상대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저쪽도 본체는 C급 정도일 겁니다. 게다가 은하준 씨도 본 것처럼 이 씨앗이 자폭의 근원이 되죠. 신금천화교의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그런……. 그런 이상한 힘을 가진 씨앗이라니. 들어본 적이 없어요.”
회귀하기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회귀하기 전에는 이 신금천화교라는 단체에 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지만.
“많은 걸 알아내셨네요. 대단해요.”
“제 일인데요. 하지만 아직 그들의 근거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길드장님의 수사 실력을 보니, 조만간일 것 같네요.”
“얼른 알아내야죠.”
한세희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하다.
“저 괴한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 서광 길드로 호송될 겁니다. 그리고 괴물 특수부대와 함께 심문을 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에 관한 내용을 공유받고 싶으신 거죠?”
“네.”
한세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한번 자리를 만들도록 하죠.”
“……!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가요? 감사합니다.”
“괴물 특수부대의 협조를 바라야 하겠지만요.”
그의 시선이 내가 메고 있는 포대기에 와 닿는다.
“오늘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좀 더 빨리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아녜요. 오늘 이렇게 와 주신 것만으로 충분히 고맙습니다.”
“하기야, 하준 씨는 혼자서도 잘 해내니까요.”
“흐음.”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결이가 헛기침했다.
“그럼 이만.”
한세희는 살짝 고개를 까딱이더니 헌터들이 괴한을 옮기는 쪽으로 갔다.
“우리가 다 잡았는데 마지막에 와서 뺏겨 버렸네.”
“어차피 조사 담당이 그들이기는 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다 잡았는걸.”
“맞아. 결아, 수고했어.”
“아까 씨앗이 어쩌고저쩌고 하던 이야기는 뭐야?”
한세희에게 들었던 말을 결이에게 전해 주자,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씨앗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랭크를 뛰어넘어 강해진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 엄청난 능력을 사이비 단체를 만드는 데 사용하다니.”
“그러게.”
그 힘이 있다면. 회귀 전에도 그 힘을 올바른 곳에 썼다면 내가 죽거나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퀘스트 필수 사항이 넥스트 레벨이었지만…….
이런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넥스트 레벨에 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귀한 힘을 이런 곳에밖에 쓰지 못하다니.
“그나저나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결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난 괜찮아.”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결이는 무척이나 지쳐 보인다.
C급인 괴한을 상대로 S급인 결이가 이 정도로 당하다니. 오늘 이 자리에 좀 더 강한 녀석이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