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제193편
띠링.
[‘만티코어’의 두 번째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헉, 대박.”
“왜요? 왜요?”
“내가 몬스터의 두 번째 각성에 관해서 말해 줬었잖아요.”
“네, 넥스트 레벨이라고 했던가요? 사람한테도 적용된다면서요.”
“만티가 방금 넥스트 레벨을 달성했어요.”
“우와!”
안영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쌌다.
“정말 대단해요!”
“넥스트 레벨이 되면 일반 레벨에서는 얻지 못하는 스킬도 얻을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럼 우리 만티는 다른 만티코어들과는 완전히 다르네요. 특별한 만티코어가 된 거네요!”
“바로 맞췄어요.”
그래서 넥스트 레벨이 더 중요한 거겠지.
내 손을 거친 펫들은 새로운 인트루더들을 상대하는 데에도 탁월할 테니까.
“그럼 넥스트 레벨에 관한 걸 한세희에게도 말해야 할 때가 왔네.”
“괜찮을까요?”
“만티코어를 데려가면 어차피 알 수 있을 거예요. 화룽 소속의 만티코어가 하나 있는데 녀석과 사용하는 스킬이 다를 테니까.”
“화룽 쪽에서 눈치채게 되면 속이 타겠네요. 앞으로는 하준 님 앞으로 펫을 구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될 거고요.”
“예상하고 있는 일이기는 해요.”
“정말 대단하세요, 하준 님!”
“에이……. 그래도 영지 씨가 없으면 레벨을 올리는 게 의미가 없죠.”
내 말에 안영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 물론…….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제가 없었어도 사실 어린 개체의 몬스터를 직접 공수해 올 수도 있고……. 또 화룽에서 부화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준 님은 대체 불가능이잖아요.”
“나도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긴 한데…….”
“꺄아웅! 브아브브!!”
흑단이가 그만하라는 듯이 나와 안영지 사이를 헤집어 놓는다.
“아이고, 흑단이 왜? 지루해요? 어른들도 친목 도모 좀 합시다.”
“꺄우웅! 그르르르…….”
“캬옹! 캬옹!”
이제는 만티코어까지 달려든다.
“그래, 우리 만티. 넥스트 레벨이 됐으니 새로운 스킬이 생겼을 텐데. 아니면 좀 더 있어야 하나?”
내 위에 올라타 턱을 핥던 만티코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솔직히 넥스트 레벨이고 뭐고. 인류 멸망만 아니면 그냥 딱 지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 보송보송하고 따끈한 것들이랑 뒹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인류의 종말을 위한 퀘스트가 다가오고 있겠지.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어쩐지 불길했던 시스템 알람을 떠올리다가 머리를 휘휘 저었다.
‘우울한 생각은 하지 말자, 시곗바늘이 움직이든 말든 내가 훨씬 더 강해지면 된다.’
게다가 회귀 전과 비교하면 이미 훨씬 강해지지 않았는가.
‘넥스트 레벨…….’
우리 편의 넥스트 레벨을 많이 만들어 둬야 해. 인화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자, 훈련하자! 훈련!”
“캬우웅!”
“꾸르르……. 삐이잇!”
“이번에는 우리 썬더도 공격 훈련을 해 볼까? 독충이도!”
“치치칫!”
“삐약! 뺙!”
* * *
“……많이 컸군요.”
“그렇죠?”
한세희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만티코어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만티코어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한세희를 힐끔거리다가 이내 내 쪽으로 몸을 더 밀착시킨다.
‘이전의 일을 기억하는 게 틀림없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지만 녀석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만티코어에게도 한세희가 기세를 내뿜었던 때의 살벌함은 기억에 남을 만큼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끄으응…….”
“그래서 이제 실전 훈련을 할 거라고요?”
“네, 맞아요. 그러려면 한세희 길드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더 자주 찾아오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직도 만티가 길드장님을 겁내 하니까요.”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시간을 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도 무척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물론이죠. 길드장이시니까요.”
한세희는 영혼 전이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신선 길드를 찾아오고 있었다.
여러 번 영혼 전이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충격 때문인지 만티코어는 한세희를 많이 겁냈다. 그에 비하면 욕암 독충은 한세희의 근처에서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붕붕 날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하준 씨에게 맡긴 펫 중 저와 상성이 맞는 아이들은 없어서요.”
“그렇죠.”
“몬스터 알이나 유체를 더 맡아 줄 여유가 됩니까?”
“아, 지금은 좀 무리일 것 같고. 만티와 독충이를 서광 길드 소속으로 완전히 보낸 뒤에나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요.”
“흐음, 알겠습니다.”
한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만티코어는 움찔거리며 내 옆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얼마나 더 영혼 전이를 해야 만티코어가 한세희에게 적응할까.’
사실 약간은 보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고 귀여운 것을 저렇게 차가운 사람에게 보내다니.
“…….”
한세희가 독충에게 시선을 준다.
붕붕.
독충이 한세희를 바라보며 작고 보송한 더듬이를 까딱거린다. 녀석은 내가 맡은 녀석 중에서도 유난히 성격이 좋다.
“……이리 온.”
한세희가 손을 내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붕붕거리며 손바닥 위로 착지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독충이 한세희의 손에 들리니, 한세희가 마치 커다란 퍼 재질 가방이나 공을 손에 쥔 것 같다.
“잘 가르쳤네요.”
“그러게요. 그때 한세희 길드장님이 겁을 주지만 않았어도 만티코어도 옛 저녁에 그렇게 따랐을 텐데.”
“……이참에 한 번 더 사용하면 말을 잘 듣지 않을까.”
“절대로 안 돼요.”
“캬옹……. 캬우웅…….”
만티코어의 엉덩이가 슬금슬금 더 뒤로 빠진다.
“지금 완전히 미움받고 있다고요.”
“그런 일에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한세희가 담담하게 대답한다. 아니, 당신이 괜찮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여하튼 맡긴 펫의 부화와 양육을 제대로 해내 주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계약대로 에테르석과 자금이 충분히 잘 조달되도록 더 신경 쓰도록 하죠.”
“아, 그나저나 신금천화교에 관한 소식은 없나요?”
“……수소문하고 있지만, 일당들이 이전의 수사에서 이미 종적을 감췄습니다. 찾아내는 건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봤자 이 한반도 내에 있을 텐데 이 손바닥만 한 나라에서 얼마나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괜찮은 단서가 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곧 녀석들의 본진이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알아내면 어떻게 되는 거죠?”
“물론 곧장 무장 제압할 겁니다. 그들이 테러에 개입했다는 서류는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각성자 관련 테러 사건을 상대로는 압수 수색 영장이 없어도 조사가 가능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때가 되면 제게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괜찮겠어요?”
“네?”
한세희의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 비친다.
“은하준 씨는 많은 사람에게 노려지고 있습니다. 행동을 조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손 놓고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화룽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의외였다.
장우택이 아주 비밀리에 일을 진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세희에게는 털어놓았다는 거지? 화룽, 심지어 자신에게 약점이 될 만한 일인데도 말이다.
생각보다 한세희와의 관계가 더욱 깊은 것 같다.
“화룽에서의 일도, 제 손으로 해결한 건 아무것도 없죠. 그래서 불안하고요.”
“유즈어가 일 처리는 제대로 했을 겁니다. 아니라면 본인의 자리도 위태로워질 테니까요. 생각보다 훨씬 큰 세력이었다고 해요.”
“그렇군요. 어쨌든 이번에는 저도 확실히 하고 싶어요. 뒤탈이 없도록 완전히 처리되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요.”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한세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네. 영혼 전이도 이 정도면 오늘 꽤 됐고요. 다음 주에도 들르실 건가요?”
“그렇게 약속은 잡아 놓겠습니다. 시간이 난다면 이번 주에 한 번 더 찾아오도록 하죠.”
“그렇게 하세요. 하루 전에 미리 연락만 주시면 됩니다. 저도 이제 던전에 드나드니까 못 볼 수도 있어서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
“치치칫, 치칫~!”
용암 독충은 아쉬운 듯 내게로 돌아와 무릎에 앉았다.
“캬오옹. 캬옹…….”
나는 한세희가 방을 완전히 빠져나간 후에야 몸을 편하게 두는 만티코어가 안쓰러워 동그란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괜찮아, 만티야. 겁내지 않아도 돼.”
“갸르릉……. 캬옹…….”
“한세희 씨는 좀 서툰 것뿐일지도 몰라.”
“캬오옹.”
하지만 만티는 내 말이 틀리기라도 했다는 듯 내 손을 잘근잘근 씹어 댄다.
“아야야, 너 그래도 얼른 적응해야지. 안타깝지만, 넌 한세희 씨한테로 가야 하는 운명이란 말이야.”
“캬우웅.”
부르르르.
휴대폰이 울려 보니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형, 잘 지내고 계시죠?]
“누구…….”
[헉, 제 번호 저장 안 되어 있어요?]
휴대폰 너머의 앳된 목소리는 약간 낯이 익으면서도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다.
[아, 이거 섭섭하네. 저 펌블의 재민이잖아요.]
펌블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런데 그가 왜 내게 연락을?
“아, 김재민 길드장님.”
[에이. 그냥 재민이라고 불러요.]
갑자기 이런 반응이라니 당황스럽다.
“어떻게 그렇게 불러요.”
[우리 사이에 그렇게 부를 수도 있죠.]
“우리 사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린다.
[아이참, 정말 섭섭하게 구시네. 전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이 인간이 왜 이러나. 분명 그냥 이런 통화를 걸었을 리가 없다.
“뭐 그건 상관없는데요. 용건이…….”
[용건은요. 그냥 형한테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 그렇죠. 저 형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할 말이 없다.
갑자기 이렇게 일방적으로 들이대다니. 물론 워낙에 그런 인물이긴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일까.
“요즘은 좀 바쁜데요.”
[아……. 왜요? 펫들 훈련시키느라 그러신가?]
“뭐 그렇죠.”
[아, 그러면 형이 진짜 저 한번 만나 주시면 좋겠는데.]
김재민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긴장이 느껴진다.
[제가 진짜 재밌는 거 하나 발견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