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92화 (192/250)
  • 제192화

    제192편

    [우리 화룽으로 인하여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 관해서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착잡한 장우택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어쨌거나 나를 해치려고 했던 화룽 소속의 인원들은 모두 처리가 됐다, 이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러니 더는 은하준 씨께서 신경 쓰실 일은 없습니다.]

    “전 이 사건의 피해자예요.”

    “맞아. 화룽 내에서만 해결이 됐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어떤 식으로 해결을 봤든 우리가 갚아 줄 게 있다고.”

    통화 음량이 컸기에 옆에서 듣고 있던 결이가 화를 냈다. 그 소리가 아마 장우택에게도 다 들렸을 거다.

    [그 점에 관해서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은하준 씨에게도 빚을 갚을 기회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우리 식’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말입니다. 빚을 갚을 사람이 남지 않았으니, 거기에 관해서는 화룽이 대신 빚을 갚아야 할 것 같군요.]

    “그거 굉장히 살벌하게 느껴지는데, 맞나요?”

    [……화룽의 법은 때론 가혹하니까요.]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결국 장우택의 반대 세력이기도 했으니까, 이참에 완전히 쓱싹해 버린 건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화룽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은하준 님을 위해 할 준비가 됐습니다.]

    “빚에 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본 뒤에 말해드리죠.”

    [은하준 님이 편하신 대로 하시길.]

    “어쨌거나 그럼 테러 사건에 관한 배후는 모두 처리된 게 맞는 거죠?”

    [물론입니다.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우택은 자신감 있게 말한다. 그래, 일단 적어도 화룽에서만큼은 당장 나를 제거하려는 세력이 사라졌다.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군.

    [조만간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그때 다시 한번 뵙고 제대로 사과와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시죠.]

    “뭐 그럴 것까지야……. 이번 일도 혼자서 다 처리하셨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화룽은 뭐든 확실히 하는 것을 좋아하죠. 빚도 갚아야 하고요.]

    “편한 대로 하세요.”

    통화가 끊어지고 옆에서 기다리던 결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완전 제멋대로잖아.”

    “어쨌든 일이 잘 해결됐다니까 다행이야. 이제 한시름 놓겠다.”

    “한시름 놓기는 뭘 놓아. 나는 장우택이 제대로 일 처리를 했는지도 믿을 수 없어. 게다가 네 목숨……을 노리는 녀석들이 그곳에만 있다는 법도 없고. 이야기했었잖아. 널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결이 말이 맞다.

    확실히 내 손으로 처리한 게 아니니 장우택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손을 더럽히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한 기분이랄까.

    좀 복잡한 기분이다.

    게다가 장우택과 소울메이트를 해 봤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업적의 능력으로 시험을 해 보기도 했고.

    “일단은 장우택을 믿는 수밖에 없지.”

    “…….”

    결이는 분하다는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뭐, 우리가 중국까지 가서 뭘 어쩌긴 힘들잖아?”

    “그래도.”

    “그래도?”

    “네가 그러라고 했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야.”

    “에이, 너무 심각해지지 마.”

    물론 심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한데.

    나는 결이를 다독거렸다.

    “어쨌든 결이 네 말이 맞았네.”

    “음?”

    “가장 먼저 화룽을 의심했던 게 바로 너잖아.”

    “……그렇지.”

    “역시 결이라니까. 너 없었으면 지금 여기까지도 못 왔을 거야.”

    “…….”

    잔뜩 구겨졌던 결이의 표정이 한결 풀린다.

    “고맙다, 결아.”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이미 한 번 증명했잖아? 물론 넌 기억하지 못하지만.”

    “흠흠.”

    “이걸로 내가 이기긴 했다. 그렇지?”

    “뭘 또 이기고 지는 걸로 가냐.”

    “그래야 네가 순순히 나를 형님으로 모시지.”

    “그놈의 형. 따지고 보면 내가 형이라니까?”

    “쩨쩨하게 몇 달 가지고 그러네. 그래 봤자 몇 달 차이도 안 나면서.”

    “대한민국은 유교 국가야.”

    “얼씨구.”

    어느새 결이 표정은 완전히 풀어져 있다.

    그래, 이거면 됐다.

    * * *

    “자, 공격!”

    “캬오옹!!”

    내 외침에 만티코어가 앞발을 휘두른다.

    솜방망이에 맞은 허수아비가 파삭! 하고 반으로 부러진다.

    “캬아! 캬아앙!”

    “그래, 잘했어! 역시 우리 만티다.”

    “캬옹! 캬오오!”

    만티코어가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내밀어 보인다. 아주 늠름하다. 그래 봤자 아직 다 큰 웰시코기 정도의 크기라 귀여워 죽겠는데 말이다.

    “만티는 이제 지시 사항을 정말 잘 지키네요. 확실히 훈련한 보람이 있어요.”

    안영지가 만티코어를 향해 손뼉을 쳤다. 그 모습을 보고 만티코어는 좀 더 뿌듯해하는 듯하다. 전갈의 것을 닮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동안 매일 조금씩 영혼 전이를 사용한 덕분에 만티코어는 이제 나와 다름없이 안영지를 잘 따랐다.

    오히려 내가 없는 사이에 안영지와 더 친밀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영혼 전이를 이용해 처음 장벽을 어느 정도 허문 다음에는 주인과 단둘이 있으면서 친화도를 올릴 수 있다는 것.

    이로써 펫에게 주인을 인지시키는 방법은 해결된 것이다.

    “제가 없는 사이에도 영지 씨가 만티 훈련을 잘 시켜서 이 정도죠. 곧 하급 던전에서 실전 투입을 시도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벌써요?”

    내 말에 안영지는 아쉬운 눈빛을 한다.

    실전에 투입된다는 건, 곧 만티코어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요.”

    “하지만 정이 많이 들었어요.”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슬픈 감정으로만 남길 거예요?”

    우리 둘의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자 중간에 있던 만티코어가 위를 올려다보며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이젠 인간과의 공감 능력도 상당히 높은 상태.

    “……아뇨. 그래선 안 되겠죠.”

    안영지가 만티코어를 안아 든다.

    “이제 꽤 묵직해요.”

    “성장했다는 증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만티코어의 부드러운 이마에 입술을 댔다.

    “갸르릉, 갸르르릉.”

    만티코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만티처럼 저도 성장해야죠. 몬스터 브리더로서.”

    “그래야죠. 걱정 마요. 혼자가 아니잖아요.”

    “하준 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 혼자였다면 이렇게 잘해 내지 못했을 거예요.”

    “별말씀을.”

    “아녜요. 정말이에요. 게다가 저 대신 위험한 일들을 겪고 계시고.”

    “으응? 그건……. 영지 씨 때문이 아니라.”

    “저도 다 알아요. 오빠가 말해 줬거든요. 몬스터 브리더는 꼭 필요한 존재지만, 그렇기 때문에 적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요. 하준 님께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전부 그 때문이고…….”

    “영원 씨가 쓸데없는 짓을 했네요.”

    “저는 이렇게 길드 안에서 안락하게 지내는데 하준 님은 그러지 못해서 어떡해요.”

    안영지의 표정이 걱정으로 얼룩진다.

    “영지 씨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렇지만…….”

    “영지 씨를 보호하는 것이 내 일이에요. 내 책임이고요.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선택을 한 것도 전부 나고요.”

    “그렇……지만.”

    “그렇지만이 아녜요. 그러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씩 웃어 보이자, 안영지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이지, 하준 님 같은 분을 만나게 되다니. 제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S급 각성자께서 무슨 그런 말씀을.”

    “정말요. S급으로 각성한 것보다 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칭찬만 해 주니까 민망해지는데요?”

    “앗, 죄, 죄송해요!”

    “죄송할 일은 아니고. 훈련을 계속해 보죠.”

    “네넷!”

    안영지가 만티코어를 내려놓자 녀석이 펄쩍 뛰어 자세를 잡고 선다. 이제 말을 안 해도 척하면 척이다.

    “가자, 만티!”

    “캬르릉!”

    퍼억! 퍽!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를 물어뜯고 발톱으로 할퀸다. 날쌔고 강력한 모습.

    정말로 다음번 훈련은 던전 안이어도 될 것 같다.

    “그럼 이제 흑단이와 대결을 시켜 볼까.”

    “꺄웅!”

    조금 떨어져 만티코어의 훈련을 구경하던 흑단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캬아오!”

    만티코어 녀석도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흑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감을 잡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흑단이를 보면서 눈을 빛낸다.

    “흑단아, 여기서는 거대화를 사용하면 안 돼. 알겠지?”

    “끄르으으으……. 가부부!”

    흑단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요즘 들어 흑단이랑 의사소통이 훨씬 잘 되는 느낌인데 기분 탓은 아니겠지.

    “캬르르릉…….”

    “구르르르, 바부아.”

    두 마리의 새끼 몬스터가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몸을 낮추고 상대를 경계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파후우우우!”

    흑단이의 입에서 불꽃이 인다.

    “저런, 불꽃 공격도 사용하지 말…….”

    “파후아!”

    이미 쏘아진 공격.

    “캬앙!”

    만티코어가 깜짝 놀라며 불꽃을 피해낸다.

    “……! 잘했어, 만티!”

    “캬우아앙!!”

    만티코어 녀석은 오히려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불덩어리를 피해내고는 팔짝팔짝 뛰면서 흑단이를 자극한다.

    “어쭈.”

    “귀여워라!”

    “캬아옹!”

    “그르르릉!”

    두 마리의 울음소리가 좀 더 진지해지고 안영지와 나 역시 숨을 죽이고 둘의 싸움에 집중했다.

    “캬옹!”

    이번에는 만티코어의 선제공격이다.

    녀석이 몸을 낮춰 빠르게 흑단이의 밑을 파고든다.

    “삐이!”

    “컁!”

    흑단이가 만티코어를 피하려고 하지만, 만티코어 녀석이 조금 더 빨랐다. 재빨리 도움닫기를 해, 피하려는 흑단이의 목을 콱 하고 물었다.

    그와 동시에 두 마리가 바닥을 구른다.

    “됐어! 그만!”

    “크으으응!!”

    만티코어가 흑단이를 문 채 나를 노려본다. 지금은 전투로 인해 잔뜩 흥분한 상태. 게다가 새끼라고는 해도 몬스터다.

    순간적으로 본능이 위협을 감지해낸다. 하지만 이내 만티코어의 눈빛이 풀어지며 슬며시 흑단이를 문 입을 벌렸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나는 경단을 내밀면서 만티코어를 쓰다듬어 주었다.

    “갸르릉, 갸르릉.”

    만티코어는 기분이 좋다는 듯이 온몸에 힘을 실어 내게 비비적거리고는 경단을 냉큼 받아먹는다.

    “꾸우, 꾸, 꾸르륵…….”

    대신 흑단이는 완전히 열이 받은 것 같았다.

    만티코어의 침이 가득 묻어 축축해진 목덜미 털을 신경질적으로 핥아 댄다.

    “흑단이도 잘했어.”

    “꾸르릉!! 삐이!”

    뭔가 하소연하듯이 삑삑거리는 흑단이가 귀여워 죽겠다.

    아마 거대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거나 불꽃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으면 이겼을 거라거나 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어휴, 귀여워. 내 새끼들.”

    흑단이와 만티코어를 꽉 끌어안는 순간에 귓가에 익숙하고 반가운 소리가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