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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91화 (191/250)
  • 제191화

    제191편

    “끼아아웅!!”

    울부짖는 흑단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헉, 미친…….”

    거기에는 거대한 흑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형 버스 크기인 일반 비기거보다 조금 더 큰 흑단이 말이다.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었다.

    검고 윤이 나는 비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뿔. 굵고 튼튼한 네 개의 다리. 그 끝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 거기다 매서운 붉은 눈까지.

    “으, 으아!”

    “으어?”

    “드, 드래곤?”

    “뭐야! 갑자기 어디서 등장한 거야?!”

    팀원들은 흑단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순간 놀라 멈칫거린다.

    “모두 진정해요! 저건 흑단이니까!”

    “흑단이?!”

    “저, 저렇게 커다란 드래곤이 흑단이라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외침에도 팀원들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흑단이와는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희뿌연 반투명의 끈이 나와 거대한 흑룡에게 이어져 있다.

    ‘넥스트 레벨 스킬인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하자면 그것밖에 없었다. 넥스트 레벨.

    몬스터들에게도 스킬이 있고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걸 바로 사용하다니. 우리 흑단이 정말 대단한걸.’

    뿌듯한 마음으로 흑단이를 보는 것도 잠시, 흑단이가 비기거들을 상대로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크으와우우웅!!”

    한층 더 우렁차진 포효 소리에 비기거들이 움츠러들었다.

    “흑단아! 힘내!”

    “크아우웅!”

    흑단이가 거대한 몸을 날려 비기거들에게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굵은 앞발과 꼬리를 이용해 달려드는 비기거들을 무참히 패대기쳤다.

    “캬아앙!”

    “캬오옹!!”

    비기거들이 가을 낙엽처럼 흩날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수많은 비기거가 흑단이가 앞으로 나설 때마다 우수수 밀려나 흩어졌다. 어떻게 보나 일반 비기거들보다 흑단이의 전투력이 높은 상황이었다.

    쿠웅.

    쿵.

    그때 나서기 시작한 것이 기가비기거.

    녀석은 흐트러진 비기거들의 전열을 다시 잡으려는 듯 크고 길게 울부짖었다.

    “그르르르!! 크어어캬아앙!!”

    “크와아아앙!!”

    하지만 흑단이는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의 비늘을 곧추세우며 날카롭게 기가비기거를 향해 경계 태세를 갖췄다.

    “정말 대단하다.”

    “엄청나. 야수끼리의 전투…….”

    이 굉장한 광경에 팀원들 모두 넋이 나간 채로 감탄했다.

    “다들 넋 놓지 말고! 흑단이를 도와!”

    “앗, 네네!!”

    “아차차!”

    대호 형의 말에 번득 정신을 차린 팀원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밀려난 비기거들을 향해 전투를 재개했다.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휘이익.

    몸을 날려 흑단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흑단아, 할 수 있겠어?”

    “끼아우웅!”

    내가 다가가니 아까보다 훨씬 귀여운 감이 있는 울음소리를 낸다. 역시 우리 흑단이. 거대해져도 귀엽구나.

    “하지만 흑단이 너 혼자 상대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크다.”

    “크아아앙!!”

    “힘을 합치자고.”

    “물론.”

    머리 위로 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흑단이는 오늘 첫 전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라.”

    “크르르, 크와앙!”

    결이의 말에 흑단이가 익살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맞장구를 치는 것인지 신경을 쓰지 말라고 버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흑단이는 곧장 기가비기거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대박.”

    벌어진 흑단이의 입 속에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보인다. 물어뜯기면 그 어떤 존재라도 너덜너덜하게 다져질 것 같은 살벌한 이빨이다.

    검은 비늘로 가득 찬 흑단이의 가슴팍이 삼키고 있던 뜨거운 불길을 약간 내비치더니, 무시무시한 이빨 그 너머의 깊은 목구멍에서 붉은 불꽃이 차오른다.

    “크르으과아푸우우우!!”

    흑단이가 뿜어낸 불덩어리는 이제 야구공만 하지 않았다. 지름이 2m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불덩이가 기가비기거의 몸에 내리꽂힌다.

    “캬아앙!”

    “크아아아!”

    기가비기거가 뜨거운 고통에 앞발을 들어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흑단이가 틈으로 뛰어든다.

    터업!

    “캬아아아앙!!”

    기가비기거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안쪽으로 파고든 흑단이가 비기거의 약점인 겨드랑이를 꽉 깨문 것이다.

    “크아앙! 캬앙!”

    기가비기거가 흑단이를 떼어 놓기 위해서 몸을 마구 흔들었지만, 흑단이는 비기거의 겨드랑이를 꽉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크으응!!”

    기가비기거의 날카로운 발톱이 겨드랑이에 붙어 있는 흑단이를 향해 쇄도한다.

    차르르르륵!

    채앵!!

    이번에 기가비기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나의 사슬이었다.

    “우리 흑단이를 상처입히도록 놔둘 수 없지. 얼마나 아름다운 비늘인데.”

    기기긱. 기긱…….

    “캬아아앙!!”

    기가비기거 녀석이 분함과 고통에 몸부림친다.

    투둑, 투두둑!

    거친 몸부림에 결국 끊어지고 마는 억압의 손길.

    “크아앙!”

    날카로운 기가비기거의 발톱이 결국 흑단이를 덮쳤다.

    강력한 펀치에 맞고 뒤로 나뒹구는 흑단이를 향해 나는 억압의 손길을 사용한다.

    차르륵!

    사슬을 그물망처럼 엮어 바닥을 구르는 흑단이를 부드럽게 받아낸다.

    “흑단아! 괜찮아?!”

    “그르응……. 삐이!”

    흑단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가비기거에게 당한 상처를 내보인다. 비늘이 뜯겨 피가 흐르고 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감히……!”

    “폭풍의 춤!”

    우르르릉!!

    하늘이 울리더니 벼락을 품은 거대한 돌풍이 인다.

    “결이다.”

    “꺄우웅…….”

    번쩍! 빛이 튀기 무섭게 꽈르르릉! 폭풍이 기가비기거를 덮친다.

    “캬아아앙!”

    기가비기거가 폭풍에 휩쓸리며 허우적거리는 동안, 비기거들을 상대하던 팀원들의 공격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으어어어!!”

    거대한 산 같던 기가비기거가 이내 힘을 잃고 쓰러진다.

    쿠우웅!

    놈이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땅이 크게 울리며 갈라진다.

    “무찔렀다.”

    “비기거들이 도망간다!”

    “알파가 쓰러졌으니 꼬리가 빠지게 도망치는군.”

    “휴우.”

    “흑단이랑 한결 씨 덕분에 빠르게 공략한 것 같은데요.”

    기가비기거를 완전히 쓰러트리고 나자 안심한 듯 팀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스스슷.

    그 와중에 흑단이의 거대화가 풀리고 있었다.

    거대했던 몸체와 거친 비늘의 크기가 줄어들더니 곧 작고 귀여운 솜털이 보송한 흑단이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단하다, 흑단아. 멋졌어.”

    “꺄우웅.”

    “아직 상처가 남아 있네. 포션 먹고 힐 스킬 받자.”

    “그우우웅!”

    상처를 입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흑단이가 발을 마구 흔들어댄다. 좀 전까지 용맹하고 우람했던 모습이 살짝 보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쀼욱? 끼우웅?”

    흑단이는 그게 비웃는 것으로 보였는지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거린다.

    “얼른 치료해야지. 덧날라.”

    어느새 다가온 결이가 내 품에서 흑단이를 쑥 뽑아 올렸다.

    “꺄우우웅!”

    “잘했어, 흑단. 네가 거의 다 잡았다. 정말 강하던걸.”

    “캬웅! 꾸르르르…….”

    결이의 칭찬에 흑단이는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결이와 나는 곧장 팀의 힐러에게 흑단이를 데려갔다.

    “아까 그 드래곤이 흑단이가 맞는 거죠?”

    “네, 거대화 스킬이 생긴 모양이에요.”

    “정말 대단하다.”

    팀 힐러가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전 드래곤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앗, 정말요?”

    “네! 정말 멋졌어요. 아직 이렇게 어린데, 그렇게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다니.”

    흑단이가 칭찬을 받으니 내가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려는 찰나, 팀 힐러는 말을 덧붙인다.

    “이게 다 하준 님이 흑단이를 잘 길러서 이렇게 된 거겠죠. 정말 대단하세요.”

    “아, 아니. 뭐…….”

    “항상 애지중지 데리고 다니시잖아요.”

    “흑단이가 잘 자라 줬죠, 뭐.”

    이런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흑단이를 벌써 다 키운 것 같고 그렇다.

    “꺄아우웅! 쿠르르릉!”

    “아, 치료가 끝났습니다.”

    “고마워요.”

    “뭘요. 드래곤을 치료하는 경험을 해 보다니. 제 쪽이 영광인걸요. 이걸로 친구들이랑 술자리에서 자랑할 거리도 생겼고요.”

    팀 힐러가 와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긁는다.

    “하준 님은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아, 저는 괜찮아요.”

    “역시 하준 님.”

    “아하하. 뭘요.”

    “덕분에 이번 던전 공략이 수월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힐과 함께 도움을 받은 건 우리 쪽인데 팀 힐러는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는 또 다른 쪽을 치료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엄청 예의가 바른 사람이네.”

    “꺄우우웅.”

    “그래. 그래. 흑단이 너도 그렇게 생각해? 아휴, 흉터가 안 남아야 할 텐데.”

    나는 상처가 났던 부분의 털을 헤집어 보며 확인했다. 당연히 힐러에게 치료받았으니 처음부터 상처는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다.

    “그나저나 진짜 대단했어, 흑단아.”

    “꺄우웅!”

    “그런 스킬은 언제 생긴 거야?! 역시 넥스트 레벨 스킬인가?”

    “그르릉, 푸르릉!”

    이걸로 몬스터도 넥스트 레벨을 가지고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흑단이는 조금 특이 케이스이기 때문에 다른 몬스터들 하나 정도는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정도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 * *

    잘 정돈된 깔끔하고 넓은 사무실.

    그 중앙에는 돌과 상아, 금으로 조각된 커다란 벚나무 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흐트러진 것이 하나도 없이 보여 어떻게 보면 차가운 이미지가 흐르는 이 공간에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성 둘이 서 있었다.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태블릿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다.

    “은하준이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남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지파장님. 왜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안시아 님께서 더는 그와 엮이지 말라고…….”

    “베헴, 너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느냐?”

    “네?”

    연상인 남자가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우리 경전에 이르기를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이기는 자’가 나타나지 않느냐?”

    “그렇지요.”

    “한데 이기려면 싸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아무것도 없으면 이길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그가 ‘싸움을 일으킬 자’라는 말씀입니까?”

    “역시 척하면 척이구나, 베헴.”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역사가 일어나려면 그 무대가 완성되어야 할 것 아니냐. 그리고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이 모여야 할 테지. 그러니 나는 싸움이 일어날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니.”

    남자의 말에 베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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