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87화 (187/250)
  • 제187화

    제187편

    짧다면 짧았던 잠깐의 전투였지만, 사상자가 꽤 나왔다.

    호텔은 삽시간에 통제됐고 사람들은 대피했다. 추가적인 테러 행위나 붕괴 위험 때문이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도착한 괴물 특수부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와 장우택은 괴물 특수부대의 힐러에게 치료받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의 소행 같습니까?”

    “짚이는 거라곤 신금천화교밖에 없……지는 않죠. 내 목숨을 노릴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그랬잖아요. 장우택 씨도.”

    “그랬죠.”

    장우택은 씁쓸한 얼굴로 입에 포션을 털어 넣는다.

    “신금천화교 같지는 않았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방식과는 다르죠.”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

    입맛이 쓰다.

    멀리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던 결이가 돌아온다.

    “사망자 중 용의자 몇 명의 신원 파악이 됐어.”

    “벌써?”

    “응, 국제 용병단 크래프트 소속이라는 거 같아.”

    “크래프트?”

    그 이름이라면 회귀 전부터 들어봐서 안다.

    돈을 받으면 어떤 임무라도 맡는다는 각성자들과 일반인이 모인 집단이다.

    “거긴 돈이라면 살인도 대신 저질러 주는 곳 아닙니까?”

    장우택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의 말대로다. 그래서 국제 각성자 용병단 크래프트는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돈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듯 각국의 더러운 일도 기꺼이 처리해 주는 집단이다. 세계의 거물들이 그 뒤를 봐준다는 거다. 그렇기에 간혹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집단이 와해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소속 인물 상당수가 국제법 위반으로 현상금이 붙어 있지 않던가.”

    “그런 곳에 누군가가 나를 죽이라고 의뢰했단 말이군요.”

    “나는 짚이는 곳이 있는데.”

    결이가 싸늘한 표정으로 장우택을 바라본다.

    “화룽.”

    “뭐라고요. 우리 화룽은 그런 더러운 수법은 쓰지 않습니다.”

    장우택이 발끈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를 일이지. 그 대단한 화룽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는 몬스터 브리더를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잠깐, 진정해, 결아. 장우택 씨도 나와 함께 공격받았어.”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결이를 말려 보려고 하지만, 반응이 날카롭다.

    “내가 따라오지 않았으면 넌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 어쩌면…….”

    잘생긴 미간이 왈칵 찡그러진다.

    죽었을 수도 있어. 그 말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삼킨다.

    지금 결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하다.

    “그래, 그래. 결국 네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잖아. 난 괜찮아, 결아. 게다가 내가 덜 다친 부분에 있어서는 장우택 씨가 큰 도움을 주셨고.”

    습격이 시작되던 때를 기억한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다면 알리바이고 뭐고 나를 감쌌을 리가 없다. 첫 번째 폭발이 나를 죽이기에 가장 확률이 높은 공격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화룽이 가장 의심스럽긴 하다. 그러니 결이의 날카로운 반응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날 죽이려던 게 아니면 이 사건을 계기로 화룽과 장우택에게 의지하게 만들려는 수작일까?

    장우택의 행동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쪽의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일을 위해 꾸몄다기엔 너무 무모해. 이건 일이 어떻게 되든 확실히 나를 죽이려고 의도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이 큰 피해를 보라. 많은 인명 피해까지 났는데 그게 고작 내 마음을 조금 움직이기 위해서라니, 아무리 장우택과 화룽이 내게 간절하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황천에서 돌아온 업적을 사용하면 얼마나 캐낼 수 있을까.’

    ‘죽음’을 키워드로 말할 때 상대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업적. 류창희 때를 보면 S급에게도 거뜬하게 먹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살짝 떠본다면 장우택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

    장우택은 씁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이렇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내게 휘말리는 바람에.”

    “은하준 씨, 이건 은하준 씨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여기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죽을 필요가 없었겠죠. 다칠 필요도 없었을 거고요.”

    “그렇게 따지면 내 잘못이 크군요. 이곳으로 당신을 불렀잖습니까.”

    장우택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건 나를 속이기 위함은 아닌 듯하다.

    “장우택 씨를 탓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인트루더도 아니고 같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해를 입는 건 버티기가 힘드네요. 돈…… 때문이라는 거죠.”

    “……압니다. 다만 저도 책임감을 느끼는 바예요.”

    그의 표정이 비통하다.

    “해외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집단이라 추적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을 당했으니 이대로 그냥 두진 못하겠군요.”

    “화룽에서 조사에 힘을 보태 줄 건가 보죠?”

    “보태는 게 아니죠. 내가 당한 일이니까. 당연히 화룽이 나서야 할 일입니다.”

    그가 보여 주는 것이 연기였다면 업적의 힘으로 인해 조금의 흐트러짐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다. 한세희의 마음을 흔들 정도의 힘을 가진 능력이니까. 하지만 장우택에게서는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결 씨의 말처럼 우리 화룽이 가장 의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 않습니까.”

    “의혹을 직접 물리치겠다?”

    “화룽은 워낙 큰 길드죠. 그만큼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무리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화룽 내부의 일이니,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요. 내게 반발하는 무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팔자 좋은 화룽의 이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장우택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일이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결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어떻게 나 때문만이겠습니까. 어찌 되었건 한결 씨가 말한 것처럼 은하준 씨가 화룽이 견제해야 할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진 건 맞으니까요.”

    거의 으르렁거리다시피 하는 결이를 살짝 밀어 뒤로 보내고 장우택을 마주 본다.

    그의 표정은 복잡하다.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한 침통한 표정이다.

    “조사 내용을 제게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화룽 내부의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요. 은하준 씨 역시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장우택이 고개를 끄덕인다.

    * * *

    졸졸졸.

    졸졸졸졸.

    타악. 닫으려던 문이 커다란 손에 의해 멈춘다.

    “결아. 걱정되는 마음은 알겠는데. 화장실 칸까지 쫓아오는 건 좀…….”

    “…….”

    결이가 마지못해 손을 놓아준다.

    호텔 테러 사건 이후로 결이의 걱정이 너무 늘었다.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려고 하고 한시도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벌써 일주일째인데 불안해하는 게 눈에 보여서 오히려 내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확실히 나에게도 트라우마가 될 만큼의 사건이기는 했지.’

    서울 한복판에서 벌건 대낮에, 일상 속에서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것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며칠간 과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긴 했다.

    ‘그래도 그 후로는 이상한 일이 없었고.’

    애써 마음을 다독여 본다. 사건이 있고 난 이후 거의 길드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길드 건물은 오가는 사람과 물건이 확실히 통제되고 있으니까.

    사건 이후로 한세희가 한 차례 방문했다. 만티코어와 독충의 안전을 확인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길드의 보안을 위해 A급 헌터를 다섯이나 더 배치해 주었다.

    좀 과한 것 아닌가 싶지만, 펫의 안전은 중요하니까.

    “길드 내부 화장실까지 테러범이 쫓아오겠어?”

    “그건 모르는 일이지.”

    길드 복도로 나가니 결이가 바로 따라붙는다.

    “나도 무서워서 길드 건물 내부에만 붙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걱정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둘 다 이런 상태니 함께 있어도 분위기가 침울해지기만 한다.

    “우리 돈 벌어야 해. 한결아.”

    “윽…….”

    “벌써 일주일째 던전 공략에 불참하고 있잖아. 슬슬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일주일밖에 안 됐는걸.”

    “테러범 녀석들의 방식이 엄청나게 무모하긴 했지만, 이미 한 번 실패했으니 쉽게 덤비지 못할 거야. 약속할게. 혼자서는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응…….”

    “그러니까 오늘 공략에는 참석하도록 해. A급 중에서도 상급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이미 나 대신 하케임이 참여하기로 했어.”

    일주일째, 이런 식으로 결이가 내는 펑크를 하케임이 메꾸고 있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다들 결이도 쉬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으니까.

    문제는 내 뒤를 쫓아다니느라 결이가 전혀 쉬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또 업적의 힘을 써야 할까.’

    나는 가만히 멈춰 서서 결이를 바라보았다.

    사건이 있은 뒤로 항상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다.

    “결아, 난 안 죽는다.”

    “응?”

    뜬금없는 내 말에 결이의 표정이 약간 풀어진다. 얼빠진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난 네 생각만큼 약하지 않아.”

    “아니, 난 네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글쎄. 그렇다면 이제 슬슬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강한 것과 별개로 누군가가 네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알아. 그리고 이겨낼 수 있어. 장우택이 제대로 조사 중이기도 하고. 진전이 있다고 연락해 왔잖아. 물론 넌 장우택을 믿지 못하긴 하지만 말이야.”

    결이의 표정이 약간 울적해진다.

    “어쨌거나, 난 안 죽어. 못 죽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 게다가 이번에는 너보다 절대로 먼저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난 그 약속 지킬 생각이야. 나 믿지?”

    “으응…….”

    “빚도 갚아야 하고.”

    내 말에 드디어 결이가 살짝 웃는다.

    “그놈의 빚.”

    “난 좋아. 목표 의식도 생기고. 우리가 노력하면 더 빨리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알겠어. 내일부턴 정말 다시 던전 공략에 투입될게.”

    “흠, 그래. 그러면 나도 같이 가는 게 좋겠다.”

    “뭐?”

    “네가 불안해하니까, 이 몸이 나서야겠어.”

    “하지만 상급 A 랭크 던전은 위험해.”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니까?”

    “하지만…….”

    “그래, 애초에 이 방법을 썼으면 됐는데.”

    손뼉을 탁, 치자 결이의 표정이 한층 더 불안하다는 듯 굳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