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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76화 (176/250)
  • 제176화

    제176편

    “그게 사실은…….”

    안영원은 입안에 가시라도 삼킨 것처럼 힘겹게 머뭇거리다가 결국 토해내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대로 못 들었거든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이번에는 제대로 기억해서…….”

    “응? 못 들었다고요?”

    “그러니까 정확한 걸 잘 못 들어서, 듣긴 들었는데……. 아뇨. 사실은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제가 이명 증상이 가끔 있어서요.”

    “아아…….”

    안영원의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맥이 탁 풀렸다.

    뭐야. 다행이다.

    횡설수설하며 늘어놓는 말을 들어보니 당시의 상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되게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 같았는데 말이죠. 사실 그때 던전이 무너지는 바람에 경황이 없어서…….”

    “아니, 됐어요. 못 들었다면 다행이에요.”

    “다행이요?”

    “응. 다행.”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엄청 궁금한데.”

    “하하하.”

    “그렇게 계속 웃어넘기실 거죠?”

    “그냥 잊어버려요.”

    안영원의 표정이 절박해졌지만, 나는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방긋 웃어 줄 뿐이다.

    “그리고 이명이 심하면 병원을 가 보는 게 어때요?”

    “그게, 각성 이후에 생긴 이명이라서요.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저런…….”

    “어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뭔가 포털의 힘에 약한 체질을 타고난 걸지도요.”

    던전 포털이 열리고 시스템의 능력으로 강한 힘을 얻은 각성자들도 있었지만, 안영원의 말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질환들도 생겨났다.

    그런 종류의 질환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힐러 계열의 각성자도 고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런 증상을 두고 ‘신이증’이라고 통틀어 불렀다.

    “다행히 영지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요. 천만다행이죠.”

    안영원이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려다 말고 입술을 달싹인다.

    그가 무너진 던전에서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걸 기뻐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를 구해 주신 게 더욱 감사해요. 저흰 이제 정말 둘밖에 없거든요.”

    둘밖에 없거든요.

    안영원의 말이 메아리처럼 내 몸속에 울린다.

    의지할 사람이 세상에 한 명뿐이라는 건 나도 잘 아는 감각이다.

    “난 정말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렇죠. 하지만 그냥……. 다 감사해요. 은하준 님이 은하준 님으로 있어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하달까. 하하하. 좀 부끄럽네요.”

    안영원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러더니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안 피워도 될 것 같아요.”

    “정말요?”

    “그런 기분이네요.”

    “부부부, 삐우!”

    등 뒤에서 흑단이가 꼼지락거린다.

    “아기 몬스터한테도 안 좋을지도 모르겠고. 한결 님이랑 영지 두 사람이 어색한 공기에 질식해서 죽을까 봐 걱정되네요.”

    “좋아요, 그럼 슬슬 올라가죠.”

    안영원과 계단을 올라가는데 뭔가 집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둘이 싸우나?”

    “에이, 설마…….”

    안영원이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농담처럼 툭 내뱉은 한마디처럼 결이와 안영지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선명한 포털의 빛이 안영지의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아!”

    “하준아! 가까이 오지 마!”

    “그게 무슨…….”

    다급한 결이의 목소리와 안영지의 묘한 표정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일단 진정하라고.”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식탁도 반으로 갈라져 있다.

    “오빠아!”

    “영지야!”

    안영지의 부름에 안영원이 결이의 말을 무시하고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고 달려갔다. 하지만 고목에 매달린 매미 같은 꼴이 되었을 뿐, 결이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너도 저리 비켜! 다친다고.”

    “한결 님!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줘야죠!”

    “우리 오빠를 놔줘!”

    안영지는 화가 난 듯 몸을 들썩였다. 물론 결이를 붙들고 있는 쪽은 안영원이었지만, 어쨌든 그러자 마룻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쩌적.

    “이게 무슨?”

    안영원과 나는 동시에 놀랐다. 그 순간 안영지가 결이의 팔을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으으! 정말! 싫어!”

    “억.”

    그 탓에 결이의 팔에 들러붙어 있던 안영원이 옆으로 밀쳐졌다. 문제는…….

    퍼어억!!

    안영원이 밀쳐지면서 싱크대로 튕겨 나갔고 그대로 싱크대가 무너져 내린 거다.

    “헉.”

    “오빠!”

    “안 돼!”

    안영지가 안영원 쪽으로 몸을 틀자, 결이가 급하게 그녀를 가로막는다.

    “대체 왜요!”

    “너는 방금 각성했잖아!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일이 벌어진다고.”

    각성?

    힘을 제어하지 못해?

    확실히 누가 봐도 안영지는 지금 각성 후 폭주 상태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여, 영지가 각성했다고?”

    무너진 싱크대 사이로 몸을 일으키면서 안영원이 얼떨떨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그것도 S급이지.”

    “뭐어?!”

    “말도 안 돼!”

    이번에 소리친 건 안영지였다.

    “나, 어, 어떡해? 오빠아!”

    “잠깐, 잠깐! 다들 진정! 영지 씨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하아, 하아, 하아. 후우. 지, 진정 못 하겠어요.”

    그래도 안영지는 내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길드 사람들을 호출할게요.”

    “으으으…….”

    “그리고 내가 스킬을 쓸 텐데 절대로 위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에요. 알겠죠? 지금 영지 씨가 진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거예요.”

    “으으…….”

    안영지는 혼란스럽다는 듯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차르르륵.

    되도록 얇고 부드러운 사슬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안영지를 붙잡는다.

    “으아아!!”

    “영지 씨, 진정! 결아!”

    내 부름에 결이가 안영지가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하아, 허억…….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아아.”

    결국 안영지를 사슬로 휘감아 의자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 불길한 예감과 말뚝박기를 사용해 안영지에게 디버프를 몇 가지 더 걸었다.

    둘 다 육체적으로 손상을 끼치는 디버프는 아니어서 그녀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무기력해졌을까.

    내동댕이쳐졌던 안영원도 의자를 가져와 약간 떨어진 곳에 앉히고 포션을 마시게 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거실에 정적이 찾아오자 나는 결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보다시피야. 우린 그냥 대화 중이었어. 그런데 안영지가 갑자기 각성했고, 폭주 상태야.”

    “S급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스텟 수치를 알려 줬어요…….”

    안영지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각성한 직후엔 괜찮았는데, 결이 님한테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동안……. 뭔가 불안해져서…….”

    “무슨 설명을 어떻게 했길래?”

    “S급은 통제하기 어렵고 힘을 성장시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부터 강력한 힘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

    안영지의 말을 듣고 결이 쪽을 힐끔 돌아보자, 결이는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일단 안정부터 시켰어야지.”

    “안영지가 말했다시피 처음에는 괜찮았어.”

    “각성 후엔 누구나 한동안은 혼란스러우니까. 자극이 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너도 알면서.”

    “…….”

    나는 안영지에게 다가갔다.

    “영지 씨, 지금 기분이 어때요? 괜찮아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뭔가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짜증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대호 형 때처럼 심각한 폭주 상황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일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S급으로 각성했다니 정말 축하할 일이에요, 그렇죠?”

    “……맞아요.”

    “영지 씨가 괜찮다면 우리가, 그러니까 신선 길드가 최대한 모든 방법을 이용해서 영지 씨를 도울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안영지의 눈동자에서 포털의 빛이 반짝거린다.

    이런 사태를 벌어지게 했음에도, 포털의 빛은 아름답다.

    “절대로 혼란스럽게 혼자 두지 않을게요. 영지 씨가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도록 돕겠어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영지 씨 스스로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막 각성한 탓에 정신이 없는 것뿐이에요. 그렇죠?”

    “그럴까요? 전…… 저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안영지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사실 거실은 이미 엉망진창이다. 싱크대는 박살 났고 바닥은 깨져 있다. 그녀가 울상을 짓는다.

    “여러분들이 신경 써서 마련한 집인데…….”

    “걱정하지 말아요. 원래 각성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래도 주변에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결이는…… 영지 씨를 불안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녜요. 단지 경각심을 심어 주고 싶었을 거예요. 알겠죠?”

    “네…….”

    안영지는 완전히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스스슷.

    그녀의 눈동자에 감돌았던 포털의 빛이 흐려지더니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막 각성한 각성자는 그럴 수 있어요. 건물의 파손 건도……. 음, 대호 형이 알아서 해 줄 거예요. 그 형도 이제 많이 벌었으니까.”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어서 민망해졌다.

    “꺄아우우! 우우우!”

    흑단이만 알아들은 것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어쩐지 진정되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하준 님. 오빠…… 오빠는 괜찮아?”

    “S급이라고 해도 막 각성한 각성자는 레벨이 오른 S급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영원 씨가 C급이니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으응……. 맞아요. 사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기는 했는데.”

    “뭐어?!”

    안영지가 다시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 아냐. 아냐. 농담이야.”

    “그런 농담은 자제해 주세요. 안 그래도 지금 영지 씨는 불안정한 상태니까요.”

    “으윽,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 여동생이 각성했다는 게 전혀 안 믿겨서…….”

    “나도 마찬가지라고! 흥!”

    누군들 믿어지겠는가.

    갑자기 여기서 S급 각성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안영지라는 S급 각성자는 없었는데…….’

    A급이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S급 중에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죽을 위기를 넘긴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각성자로 각성하다니. 내 운명이 너무 기구해요…….”

    안영지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반짝한다.

    ‘회귀 전에는 안영지가 죽을 위기를 넘기지 못했던 거야.’

    애초에 살고 있었던 곳도 급성 포털의 생성으로 무너져 내렸고 안영원이 신선 길드에서 일하기 위해 새로 이사 온 곳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안영원이 들어갔던 던전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와 오빠를 기다렸고.

    안영지는 원래라면 죽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회귀 전과는 다른 전철을 밟게 된 거다.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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