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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75화 (175/250)
  • 제175화

    제175편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어…….”

    태성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만 그 이상한 종교의 이름이 신금천화교라는 것만…….”

    “신금천화교요.”

    결이와 시선을 주고받는다. 역시 우리가 알아낸 이름이 맞았다.

    “그리고…….”

    여성은 작은 서랍장을 뒤적거린다.

    “이거, 이게 태성이가 그 교회에 다니면서 공부인가 뭔가 하던 공책인데…….”

    그녀는 자주 사용하고 여러 번 복습한 것처럼 닳은 얇은 공책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공책을 받아 들고 안의 내용을 살폈지만, 이해가 가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열매라든가, 가지라든가, 땅이 어쩌고저쩌고.

    어디에서 이런 구절을 인용했으며 어떤 구절이 이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지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분명, 이 공책의 내용 바탕이 되는 어떤 전문 도서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보통 교회에서 이런 걸 가르치나?”

    “글쎄. 잘 모르겠네.”

    “보통 교회가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했어. 자기가 각성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여성은 입 안에 맴도는 말을 고르듯이 한참을 망설였다.

    “어머니 덕분이라고……. 그 어머니가 나를 뜻하지 않는다는 건 듣자마자 알 수 있었지. 분명 미친 여자 하나가 우리 착한 아들을 꼬여냈을 거야.”

    “각성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요?”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이었는데 어머니 덕분에 모든 게 변했다고 했어.”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들 수 있다고?

    시스템이 아닌 이상에야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득 김태성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인간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이 괴단체를 이끄는 건 인간이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사이비에서 교주를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어떤 신적 존재로 추앙하는 일이야 비일비재한 일.

    ‘그렇다고는 해도 또 지금의 지구는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 정말로 뭔가 이상한 존재가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니까.’

    여성은 황망한 얼굴로 그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일단 이 공책을 저희가 가져가도 될까요? 태성이를 찾아보는 데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우리 태성이를 계속 찾아주는 거야?”

    “……물론이죠. 저희도 태성이를 보고 싶고요.”

    “아유, 고마워라. 고마워라. 경찰도 성인 실종자는 수색이 어렵다고만 이야기하고……. 단순 가출 성인이라나 뭐라나. 하아. 정말이지 이대로 태성이를 못 보게 되는 줄만 알고…….”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 고마워.”

    * * *

    김태성의 집 밖으로 나온 결이와 나는 한동안 그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

    “뭔가 마음이 안 좋네.”

    “그러게.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

    “맞아.”

    김태성의 어머니를 만나 들은 그의 모습은 다분히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신금천화교 같은 곳에 빠져들게 됐을까.

    가난한 삶이, 고된 삶이 그를 이끌었을까.

    어떤 달콤한 유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맹목적인 믿음을 만들어낸 것일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곳을 찾아내서 정말로 무너뜨리는 수밖에 없어.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하더라도 녀석들의 실체를 알려야지. 그래야 김태성 같은, 또 그 테러범들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 거야.”

    “네 말이 맞아, 하준아. 사람들을 죽게 만들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그 녀석들.”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다진다.

    일단은 이제 그들의 정확한 이름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반드시 찾아내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 * *

    “정말 감사해요.”

    안영지가 꾸벅 인사를 한다.

    “뭘, 이 정도 가지고요.”

    “이 정도라뇨. 목숨을 구해 주셨어요. 게다가 이렇게 새로운 집도 구해 주시고.”

    “집이 좁아서 한꺼번에 모시진 못해서 죄송해요.”

    이번에는 안영원이 멋쩍어하며 뒷머리를 긁는다.

    “한창 정신없고 바쁠 텐데 집들이까지 열고 초대해 줘서 우리야 고맙죠. 좀 괜찮아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영원이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린다.

    “많이 괜찮아졌죠. 후……. 사실 붕괴된 그 집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집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어요. 계약이라든지……. 그런데 길드장님께서 전부 해결해 주셨어요.”

    안영원의 눈이 그렁그렁해진다.

    “진짜 저는 신선 길드에 들어온 게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우리 오빠 꿈은 서광 길드에 들어가는 거였거든요. 이때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한 기간이 엄청 길었어서……. 서광이 복지가 그렇게 좋다고들 하잖아요. 일단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가 있기도 하고.”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는 바로 은하준 님이시라고.”

    “그건 좀……. 그렇게까지 비행기를 안 태워 줘도 돼요. 저도 한세희 길드장님을 존경하는데요.”

    자신만만하던 안영원의 안색이 새하얘진다.

    “아, 아니……. 으음, 그러니까……. 그래도 제 안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는 하준 님이십니다.”

    “밖에서는 말하고 다니지 말고요.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세요. 알겠죠?”

    피식 웃었더니 그나마 표정이 풀어지는 안영원이다.

    “하여튼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전에 살던 집도 저번 던전 브레이크에 완전히 박살 났다는 거 아녜요! 죽을 위기를 두 번이나 넘기고 살아남았다는 거 아니에요…….”

    안영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진저리를 친다.

    하기야 그 정도라면 정말 간담이 서늘하기는 했을 거다. 내가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오빠가 들어갔던 던전이 잘못됐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밤에 마중 나갔을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긴 하네요.”

    “이게 다 하준 님 덕분입니다. 신선 길드 덕분입니다.”

    두 남매는 공손히 다리를 모으고 엎드려 절까지 했다.

    “이럴 필요까진 없다니까요. 다 돕고 사는 거죠.”

    “하지만 이런 평생의 은인께 절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녜요?!”

    두 사람을 일으키는데 안영원과 안영지가 손사래를 치며 야단법석을 떤다.

    “게다가 이 집, 이 집도 정말 얼마나 좋은 곳으로 골라 주셨는데요! 전에 살던 집에서는 각자 따로 방을 쓰지도 못했어요.”

    “으응? 그래도 일단 가족이라고는 해도 둘 다 성인이고……. 아이참, 그러니까 뭐 대단하게 구해 준 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안영원 씨가 길드에서 일해 주면서 다 갚을 거니까.”

    “아, 물론이죠! 절 믿고 맡겨만 주세요.”

    “우리 오빠는 진짜 이제 신선 길드의 노예예요. 제가 허락했으니까 그래도 돼요.”

    “뭐? 노, 노예?”

    “왜, 못 해?”

    “아니, 할 수 있지. 할 수 있긴 한데……. 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만…….”

    “내가 각성자야? 내가 신선 길드에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러니 오빠라도 나서야지. 하준 님 발닦개라도 되란 말이야!”

    안영지의 말에 안영원이 다시 자세를 고쳐 꾸벅 인사한다.

    “발닦개가 되겠습니다.”

    그러고는 내 발에 손을 뻗는데 결이가 그 손을 탁! 하고 내친다.

    “입으로 떠는 아부는 그 정도로 하고.”

    “네, 넵. 결이 님.”

    안영원은 결이를 흘겨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는 입을 쭉 내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행동으로.”

    “부, 분부만 하십시오. 결이 님.”

    “흥.”

    안씨 남매가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사실 남매가 초대한 건 나 혼자였다. 하지만 이래저래 요즘은 혼자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결이와 함께 온 것이다. 사실 방이 두 개라고는 해도 남매의 집이 넓은 건 아니라 둘 이상이 놀러 오기도 애매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대호 형이 신경 써서 준비해 준 덕분인지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의 깔끔한 신축 투룸이었다.

    “집이 참 좋네.”

    “그렇다니까요. 길드장님 만만세!”

    굳이 초대에 응한 건 안영원에게 따로 할 말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집들이 자체가 복작복작해져서 영 타이밍이 안 생긴다.

    ‘그때 던전에서 했던 이야기……. 아무래도 정리를 해야 할 테니까.’

    사실 그 뒤로 혼잣말로 실험해 봤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경고 창 같은 건 뜨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그때 사용한 단어를 언급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대충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면 좋을지 슬슬 감이 잡혔다.

    이제 이야기할 타이밍만 오면 된다.

    나는 계속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담배 좀 피우고 오겠습니다.”

    “앗, 그럼 편의점 가는 김에 같이 나가죠.”

    결이에게 눈짓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안영원과 이야기할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미리 언질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앗, 나도 그럼 같이…….”

    안영원과 내 뒤를 따라나서려는 안영지를 결이가 막았다.

    “네?”

    “넌 나랑 할 이야기가 있어.”

    “저, 저랑요……?”

    영지가 불안한 얼굴로 자기 오빠를 바라본다.

    결아, 확실히 그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좀 이상하잖니. 하지만 긴급 상황이니 결이가 어떻게든 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안영원과 문을 나섰다.

    1층까지 내려가서 안영원이 담배를 꺼내 물다 말고 아차 싶은 얼굴로 나를 본다.

    “편의점 같이 갈까요?”

    사실 편의점에 갈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편의점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하는데 너무 멀어지면 결이가 싫어할 것 같기도 하고.

    “편의점에 왜 가려고 했는지 까먹었네요. 뭣보다……. 그, 할 말이 있는데.”

    “할 말이요?”

    안영원은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뭐든 말씀만 해 주세요. 전 정말 하준 님을 이제 형님으로 모시고 싶으니까요!!”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완전히 잊어버리고는 내게 다시 꾸벅 인사를 한다.

    “아니, 뭐 형님까지야…….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그때 왜, 던전 안에서 내가 했던 이야기 말이에요.”

    “아, 맞다. 그때…….”

    “어, 그러니까 그때 했던 이야기 기억나요?”

    사실 그냥 안영원이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완전히 잊어버렸으면 싶었다. 하지만 내 속 편하도록 그렇게 일이 굴러갈 턱이 없지.

    “똑똑히 기억나죠.”

    “그래서 말인데, 그 이야기. 남들한테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서요.”

    “응? 그, 그때 이야기요?”

    “응.”

    내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안영원은 뭔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사실…….”

    “사실?”

    이미 다른 곳에 말했다는 걸까?

    심장이 철렁한다. 아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 지구가 이렇게 성한 모습일 리 없다. 그 던전의 세계처럼 무너져 내렸어야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안영원과 안영지의 사이를 생각하면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전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젠장, 나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안영원 입단속부터 했어야 했는데. 신금천화교 때문에……!’

    심각해진 내 표정을 살피며 안영원이 침을 꿀꺽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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