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제174편
손바닥 위에서 금빛을 발하는 귀걸이를 바라본다.
이게 과연 단서가 될 수 있을까.
“이걸 환희한테 맡길 생각이야.”
“류환희한테?”
“응. 뭔가 새로운 걸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곧장 결이와 함께 환희의 연구 센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빠들!”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환희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쩐지 살이 더 빠진 것 같은데. 핼쑥해 보인다.
“건강은 괜찮지? 원래 하얀 애가 더 하얘진 것 같네.”
“신무기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말이지.”
“이제 슬슬 네가 신경 안 써도 되지 않아? 어차피 대량 생산하기 위한 단계니까.”
“무슨 소릴! 난 내 연구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한참 뒤에 서 있던 하진욱 헌터가 피식 웃는다.
“어어~? 하진욱 씨. 지금 절 비웃은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류환희 양.”
“차암나~ 아무리 신세를 졌다곤 해도 조심해 달라고요? 어린애 취급은 사양이니까.”
뭐야, 이 분위기.
은근히 따뜻한 미소와 장난기가 어린 이 분위기!
“뭐야? 둘이?”
“응? 뭐긴 뭐야. 얼마 전에 너무 과로해서 쓰러졌었거든.”
“뭐?!”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환희에 반해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환희는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니까, 과로로 쓰러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냥 하진욱 씨가 좀 도와준 것뿐이야.”
환희가 입술을 쭉 내밀며 살짝 하진욱 쪽을 흘겨본다.
“그런데 그 뒤로 자꾸만 애 취급을 하잖아.”
“아닙니다. 귀한 인력이신 환희 씨를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진욱 헌터가 원래 저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던 사람인가?
괜히 흘겨보게 된다.
물론 하진욱 헌터가 외모가 빠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평균으로 따지자면 말끔하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큼 곱상한…… 약간 아이돌 같은 얼굴이랄까.
키도 훤칠하고 A급이면 강한 데다가 서광이라는 대단한 길드 소속이고 한세희가 믿고 직접 임무를 맡길 만한 사람이니까. 실력도 괜찮은 사람일 거다. 하지만…… 아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흠흠.
‘환희가 내 동생인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뭔가 책임감이 느껴진단 말이야.’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환희는 신무기 대량 생산 과정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내가 들어도 확실하게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에테르석에서 나오는 마나를 분자와 입자로 어쩌고 저쩌고.
‘진짜 둘이 뭔가 있나.’
아무래도 청춘 남녀를 매일 붙여 놓으니까 이 사달이 나는구나. 류창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류창희에게는 왈가닥처럼 구는 환희가 어떻게 하진욱과 이러쿵저러…….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야?”
“아. 맞다.”
“내 말 듣고 있었던 것 맞지? 오늘 좀 멍해 보이는 걸.”
“어제 급성 포털 사태 때문에 그래.”
“아! 그래. 하진욱 씨가 짧게 설명해 주기는 했어. 우리 길드원들은 모두 무사하다고 들었는데.”
“그래. 그런데 말이지. 포털 사태 때문에 온 건 아냐. 그때 습격을 받았어.”
환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습격?”
“응. 일전에 광화문에서 테러를 일으켰던 그 괴단체 말이야.”
“하지만 걔네는 무슨 이상한 사이비 단체였다며? 그래서…….”
“그래.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지. 정부와 서광에 의해 완전히 괴멸됐다고.”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환희는 물론이고 하진욱마저 충격을 받아 미간을 확 찌푸렸다.
“서광 길드장님도 알고 계신 내용이니까 다급하게 굴 필요 없어요.”
하진욱을 향해 말하자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어제 괴단체의 일원 중 하나가 내게 접촉을 해 왔어. 그리고 그 괴단체가 아직 건실하다는 걸 알려 줬지.”
“그럼 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환희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또 저번처럼 그렇게 자살을 해 버린 거야?”
“그래.”
“정말 질이 나쁜 놈들이잖아?”
환희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화염을 특별히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모든 걸 녹여 버리다니.”
“우선은 이것부터 조사해 줘.”
“응?”
귀걸이를 내밀자 환희가 자세히 들여다본다.
“나를 습격했던 괴한이 지니고 있던 물건 중 하나야. 다른 것은 모두 그 희한한 불길에 다 녹아 사라져 버렸지만, 이것 하나만은 챙겼지.”
“대단해! 잘했어.”
“여기에 뭔가 단서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흐응…….”
환희는 내 손바닥 위에 있던 귀걸이를 스테인리스 쟁반에 받아 갔다.
“잠시 기다려 봐.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츠츠츳.
환희가 스킬을 사용한다.
물체의 분석을 위해 환희와 귀걸이 주변으로 에너지체의 잔상이 마구 일렁인다.
“마나를 주입해 볼까.”
환희가 춤을 추듯 매끄럽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푸른빛이 귀걸이를 감싼다. 그리고 이내.
스스슷.
귀걸이의 꽃잎 위로 작은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호오.”
환희가 이를 유심히 살펴본다.
“흥. 꽤 자의식이 가득한 사람이었나 본데.”
“왜? 뭐라고 쓰여 있어?”
“신금천화의 요한, 김태성…… 나이부터 생일까지 다 나와 있는걸?”
“신금천화?”
“그게 아마 괴단체의 이름이지 않을까 싶은데.”
“내 생각에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새로운 금빛, 하늘의 꽃.
금색 수로 놓인 꽃을 문양으로 하고 꽃 모양인 금 귀걸이까지.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다.
“드디어 놈들의 이름을 알게 됐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금천화가 뭔가 뜻하는 건 확실해.”
환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발견이야.”
“그래, 일단 자폭으로 완전히 증발해 버린 녀석의 신원을 알 수도 있었고.”
“자, 그럼 본명과 생년월일이 있으니까 소재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고.”
환희가 슬며시 웃는다.
그랬지. 환희는 계정 아이디만으로도 오스킬의 본체 김예리를 찾아낸 전적이 있는 아이였다.
“이번 건 시간이 별로 안 걸리겠어.”
“그래?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쉿, 알면 다친다.”
“얼씨구.”
환희가 상체를 숙이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몇 번 두들기더니 곧 몸을 일으킨다.
“찾았다.”
“아니, 벌써?”
“이번에는 정보가 많았으니까. 후후후…….”
소악마처럼 웃는 환희를 보고 있던 하진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 * *
“여기란 말이지.”
나와 결이는 환희가 알려 준 대로 김태성의 흔적을 찾아 오래된 빌라 앞에 도착했다.
혼자 가도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결이는 기어코 따라오겠다고 했다. 하케임까지 따라나서려는 바람에 말리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신금천화가 정말로 나를 타깃으로 삼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 확실히 혼자 다녔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는 했다.
결이와 함께라면 든든하지.
“그럼 들어가 볼까.”
빌라 건물로 들어서서 계단을 내려간다.
목적지엔 인터폰이 고장 나 있다.
똑똑똑.
두들기는 소리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사람이 없는 걸까.”
“일부러 저녁 시간대를 노려서 온 건데. 흐음, 어쩐다.”
“무슨 일이세요?”
잠깐 서성이고 있는 찰나에 계단 위에서 중년의 여성이 묻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김태성 씨를 찾아서 왔는데요.”
“……!”
여성은 놀란 얼굴로 계단을 후다닥 내려온다.
“우리 태성이 지금 어딨어요?”
“네?”
“우리 태성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경찰 선생님들이세요? 아, 아니면 우리 태성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그게.”
당황하는 결이를 살짝 뒤로 보내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태성이 초등학교 친군데요. 태성이가 동창회에 안 나오길래 수소문해서 왔어요.”
“아…….”
여성의 얼굴에서 충격이 약간 옅어진다. 거기다 일종의 안도감이 서린다.
“놀랐죠? 미안해요. 태성이 친구들이라고? 일단 안으로 좀 들어올래요?”
여성은 우리 얼굴을 훑어보고는 현관문을 열어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 작은 현관과 아주 작고 습한 내부가 우리를 맞이했다.
“집이 집 같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일단 들어와서 앉아요. 차라도 대접해야지. 우리 태성이 찾아온 친구들인데.”
여성은 분주하게 좁은 내부를 왔다 갔다 하며 좌식 상을 내오고 식기들을 달그락거렸다.
결이와 함께 시선을 주고받은 뒤 좌식 상 앞에 앉아 기다리자 곧 여성이 각기 다른 모양의 잔 두 개에 따뜻한 녹차를 타 왔다.
“우리 태성이 초등학교 친구들이라고…….”
“네, 맞아요. 태성이가 어머님하고도 연락이 안 되는 모양이죠?”
“……그래. 나랑 연락이 안 된 지는 육 개월이 넘었어.”
“육 개월이요?”
김태성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육 개월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그 무슨……. 이상한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교회요?”
“일반 교회가 아닌 것 같았어. 맞아. 그 뉴스에서 나오던 테러 단체처럼, 사이비? 그런 것 같았어. 나에게 비밀로 하고 얼마나 오래 그 교회에 나갔는지…….”
“오래 다닌 것 같았나요?”
“적어도 몇 개월은 되지 않았을까? 내가 거길 나가지 말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연락이 끊어진 거거든. 아니야. 몇 년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제 어미랑 연락을 완전히 끊어 버릴 정도면 그 정도는 다녔겠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가족을 저버릴 수가 있느냔 말이야. 어흐흑.”
여성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얼마나 착한 애였는데, 얼마나 심성이 바르고……. 그런 애가 어딜 가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눈앞에서 울고 있는 여성을 보니 마음이 쥐어짜이듯 아팠다. 김태성은 이미…….
“우리 친구들은 태성이랑 언제부터 연락이 끊어진 거야?”
“아, 저희는, 저희는 좀 더 오래됐어요. 한 3년 정도…….”
“그래? 하아, 그렇구나……. 친구들이라면 더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아줌마는……. 그렇구나, 친구들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구나……. 하아. 어디 몸만이라도 성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 태성이…….”
“…….”
“우리 친구들은 친구니까 알지? 우리 태성이가 얼마나 착한지. 너무 착해서 친구들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고……. 저보다 덩치가 작은 애들 지켜주느라 얻어터지고 올 때도 있었고. 그런 애인데 어쩌다가 그런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혹시 태성이가 빠졌다는 그 종교에 관해서 뭔가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어느덧 축축해진 여성의 눈이 나와 한결이를 번갈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