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제171편
“손예원 길드장님.”
“단짝 친구를 어디 두고 혼자야? 이러다간 외로워서 죽어 버리는 거 아냐?”
짓궂은 미소가 가득한 예쁜 얼굴이 내 아래위를 훑는다.
“보아하니 홑몸도 아닌데. 좀 조심해야 하는 것 아냐?”
“최대한 조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던전 현상 앞에서 조심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항상 문제를 몰고 다닌단 말이야~?”
빈정거림에 표정을 찡그리자 그녀는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다.
“음? 한세희가 여기 있었네?”
그녀는 잠깐 시선을 돌려 전투 중인 한세희를 본다.
“흐음, 엉덩이가 무거운 남자인데. 꼴을 보아하니 꽤 오래 전투를 한 모양인걸?”
쉬이이익. 콰아앙!!
괴물이 던져 오는 건물의 파편들을 한세희가 주먹으로 격파해내고 있다.
주위에 몰려든 헌터들이 하나둘씩 전투에 합류하고 랭크가 낮은 헌터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단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집중해 주시죠?”
“암암, 우리 짝꿍 씨가 그렇게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누구야. 언제나 든든한 해령 길드의 손예원 아니야?”
언제 내게 든든했다고 저러는지.
“내 새 무기 보여 줄까.”
손예원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인벤토리를 조작한다. 해령 길드에서 얼마 전 S급 던전을 공략했다더니, 거기서 좋은 아이템을 얻었나 보다. 뭘까. 긴박한 와중에도 약간 두근두근했다.
츠츠츳.
푸른 에너지체가 소환되면서 모습을 만드는 건 언월도(偃月刀)의 형상.
그 끝이 살짝 구부러진 반달 모양의 날을 가졌고 손잡이까지의 길이는 2M 정도 되는 칼이 손예원의 손에 감긴다.
그녀가 방긋 웃자, 진하게 발린 핑크색 입술이 언월도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해룡의 언월도. S급 무기지. A급 펫 하나를 얻는 것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물론 내가 운이 좋았지만.”
다분히 한세희를 겨냥한 말이다.
펫을 가지기 위해 내게 의뢰한 한세희 때문에 꽤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손예원 씨는 펫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어머, 그건 아니야. 짝꿍 씨.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지. 어때. 내게도 키울 만한 펫을 안겨 줄 생각이 있어?”
손예원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내려 눈을 빛냈다. 역시 그녀씩이나 되는 헌터에게도 펫을 하나 얻는 건 참 귀한 일인가 보다.
“그건 손예원 씨가 하는 거에 따라 달라지죠.”
“어머. 여전히 맹랑하네?”
“맹랑은요.”
“하긴 자기는 그런 점이 매력적이지. 아주 신 레몬 사탕 같은 느낌이랄까.”
“전투에 집중해 달라니까요.”
다른 헌터들은 피 터져라 싸우고 있는 와중에 손예원이 깔깔 웃는다.
하여튼 괴팍한 여자라니까.
“알겠어, 알겠어. 뭐 어차피 잡을 수 있을 텐데 엄살은.”
“사람들이 다치니까 그렇죠.”
“응응, 알겠어. 하앗!”
손예원이 언월도를 크게 휘두르자 칼날 주변으로 물기가 어린다. 그리고 곧 파도와 같은 물보라가 펼쳐졌다.
콰아아아!!
괴물을 향해 쏟아지는 물대포 공격.
그그그그……! 괴물의 몸이 허우적대며 넘어진다.
“……흠?”
손예원의 공격을 본 한세희가 이쪽을 흘긋 보더니 손을 뻗어 냉기를 뿜어낸다.
쩌적. 쩌저적…….
순식간에 손예원의 물대포가 얼어붙으면서 괴물의 몸까지 함께 얼어 버린다.
“짜증 나게 합이 좋다니까?”
손예원이 예쁜 입술을 짓씹으며 한세희를 향해 인상을 찡그린다. 확실히 두 사람의 연계 공격이 훌륭해서 아름다울 정도다.
하나, 괴물은 완전히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꽝꽝 얼어붙은 신체 말단이 투둑, 툭, 투두둑 잘게 움직이며 다시 뛰쳐나올 궁리를 하고 있다.
“총공격!”
치잉! 피잉! 쿠과앙! 콰가가가가!!
헌터들의 공격이 괴물에게로 쏟아진다. 빛과 연기의 향연이다.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일제히 터져 나가는 공격들.
주변에 피해가 없도록 최대한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고 있지만, 공격의 파장으로 인해 주변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그어어어!!”
그러나 그런 헌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괴물 녀석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쳇.”
손예원이 괴물 쪽으로 근접하며 일반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새로운 무기라면서 굉장히 잘 다루네.”
“재수 없긴 해도 강하긴 강하네요.”
망량이가 어깨 위에서 불꽃을 이글거린다.
“그래, 맞는 말이야.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여자지.”
“제 생각에는 손예원은 주인님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뭐라고?”
“그렇잖아요. 아니었으면 벌써 손봐 줬을 성격인데.”
“하기야. 게다가 손예원 역시 펫을 욕심내고 있더라고.”
“흐음, 문제네요.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실 셈이에요, 주인님?”
“글쎄다. 아직 뚜렷한 방안이 없긴 한데. 아쉽더라도 화룽과 손잡고 연계해서 더욱 강한 펫을 만들어내는 쪽이 가장 최선이긴 할 테지.”
츠츠츳.
소울메이트와 연결된 감각이 오싹하게 전신을 감싼다.
돌아보니 거대한 빙산이 여기저기 솟아 있다.
“한세희가 저렇게 스킬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딱 저 괴물 놈들이 등장했을 때, 그리고 S급 보스가 나타났을 때다.
“어쩐지 고전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저번보다.”
“그런가?”
“자세히 봐 봐요.”
전투가 매번 같을 수는 없다. 이런저런 많은 변수가 발생하니까. 몬스터 타입이나 헌터들의 상성 같은 경우도 큰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몬스터의 체력 같은 부분은 정확히 수치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망량이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전력에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는 S급 헌터만 해도 지금 두 명 빠져 있으니까.”
결이가 없기 때문일까?
넥스트 레벨로 진입하고 나서 ‘저 괴물’들과의 싸움에서 선전하던 결이를 봤기 때문에, 더욱 그런 기대가 생긴다.
콰앙! 퍼버엉!
쏟아지는 폭음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본다.
츠츠츳.
에스퍼 시야.
흐리지만 전투 현장과 가까운 곳에 갇힌 사람이 보인다.
“일단 나도 집중.”
두 뺨을 찰싹 친 후에 곧장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이 있는 건물 자체는 무사한 편이었지만 맞은편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입구가 완전히 막혀 버린 상태. 그래서 안쪽 사람이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갇힌 모양이었다.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사슬과 손을 이용해서 돌무더기들을 파헤친다.
“핫! 하앗!”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은 금방 만들어졌다.
에스퍼 시야를 이용하니, 안에 갇힌 사람이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 어정쩡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아래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옥상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들려오는 폭음에 놀라 주저앉은 것 같았다.
재빠르게 움직여 계단을 올라간다.
‘다행히 이 건물은 비교적 신식인가 보군.’
금이 가긴 했지만,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에스퍼 시야를 통해 사람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헉!”
웅크려 있던 사람은 나를 보자 깜짝 놀라 파드득 몸을 일으켰다.
“허, 헌터…….”
“맞아요. 구하러 왔어요.”
“야옹, 야옹!”
여성의 품 안에 고양이 이동장이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대피하느라 도망이 늦어 건물 안에 고립된 모양.
“자, 어서 갑시다.”
“아, 으, 은하준 헌터님이시죠?”
내가 내미는 손을 잡으며 여성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줄곧 내가 멘 포대기의 만티코어 알을 보고 있다.
“흑단이라고 했던가요?”
“흑단이 이름도 아세요?”
“물론이죠. 얼마나 유명한데요.”
“유명해요?”
“오스킬 브이로그 보거든요.”
“아…….”
김예리. 길드의 중요 사안은 새어 나가지 않게 한다고 하더니 흑단이 이야기를 실컷 한 모양이지?
뭐, 흑단이 이름이 비밀은 아니니까.
그래도 오스킬 브이로그가 어떤지 나도 확인을 하기는 해야겠다.
“일단 피하죠.”
“네.”
포대기를 두 개나 메고는 여성과 고양이 이동장까지 들려니 뭔가 자세가 어정쩡했지만, 각성자의 힘이 있으니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브이로그가 인기가 많나요?”
“완전요. 신규 영상이 뜨면 일주일 안에 100만 뷰는 거뜬히 나오는걸요.”
“그래요?”
100만 뷰라니. 그 동영상 플랫폼을 자주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0만 뷰면 엄청난 것 아닌가? 하기야 이전 오스킬 영상도 몇십만 뷰는 늘 거뜬히 나왔던 것 같다.
그래도 브이로그면 그저 일상을 공유하는 것뿐인데도 100만 뷰가 나온다는 건가?
100만이 넘는 사람들도 참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 흑단이 이름을 아는 것도 100만 명이 넘는단 말인가. 그거 정말 이상한 기분이네.’
그렇게 치면 벌써 내 소식이 외국에도 퍼져 나갔을 것 같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곧 외국 길드에서도 펫에 관한 문의를 해 오지 않을까.
기대되면서도 참으로 문제군.
타앗.
여성을 안고 건물 복도 창문이 열린 틈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저쪽에서는 아직도 한창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있으니까 좀 더 멀리 데려다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해요.”
여성의 몸은 미세하게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래, 각성자인 나도 무서운 상황인데 일반인들에게는 얼마나 두려울까.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도 브이로그 자주 볼게요. 좋아요도 누르고요.”
안전한 장소에 여성을 내려주자,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연신 고마움을 표현한다.
“뭘요.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사실 저랑 상관없는 김예…… 아니, 오스킬 씨 방송이지만. 감사합니다.”
이걸 계속 많이 봐 달라고 하는 게 맞나?
그래도 지인의 방송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기야 하겠지?
“그럼 이참에 하준 님도 채널을 하나 개설하지 그러세요.”
“예?”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하하, 좋아하긴요.”
“제가 알기론 하준 님 팬클럽도 있고 흑단이에 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팬클럽.
그거 안영원이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길드원들끼리 만들었다더니 길드원들만 있는 게 아니었나?
이렇게 갑자기 마주친 사람이 이 정도 이야기할 만큼이면 생각보다 큰 거 아냐?
“뭐, 아무래도 공인은 아니시니까 그래야 할 책임은 없으시지만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됐다.
브이로그라……. 사실 내 일상을 공유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우리 귀여운 흑단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마음이 조금 동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귀여운 흑단이의 모습을 나만 보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니까.
확실히 그건 맞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