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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68화 (168/250)
  • 제168화

    제168편

    “오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안영원이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두운 골목 끝에서 여동생 영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영원을 닮아 얼굴이 아주 작고 눈은 커다란 것이 어린 몰티즈 같은 인상의 소녀였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안영지는 제 오빠와 마찬가지로 본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기껏해야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것 같달까.

    안영원과 안영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자 자연스럽게 앳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피어났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늦었는데 돌아다니고!”

    “나 참, 이렇게 예쁜 동생이 마중을 나와줘도 난리야!”

    “얼씨구.”

    두 사람은 마주치자마자 투닥거렸다.

    “오늘 신선 길드가 들어갔던 던전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그것 때문에 걱정되어서 온 거지. 휴대폰도 꺼져 있고.”

    어쩐지 자신을 부르는 영지의 표정이 엄청나게 밝아 보였었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안영원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아, 던전에 들어가느라 꺼 놨는데 켜는 걸 깜빡했어. 오늘 진짜 엄청난 일이 있었거든.”

    “던전이 터졌으니 엄청난 일이기는 엄청난 일이지. 동생이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휴대폰을 지금까지 꺼 두고 말이야?! 응?!”

    안영지가 제 오빠를 쥐어박을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것 외에도 더 있어!”

    “뭐?”

    “던전 내부에 수수께끼라는 게 있는 거 알지?”

    “아니? 모르는데?”

    “아니, 그걸 모른다고?! 이 오빠가 또 설명해 줘야 알겠냐?!”

    안영원은 거의 펄쩍 뛰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안영원이 지겹다는 듯 안영지가 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아유, 됐어. 그래 뭐. 던전에 있는 대단한 어쩌구겠지. 그게 왜.”

    “참 나! 그렇게 대충 흘려버릴 만한 일이 아니라고. 던전 내부에 숨겨진 수수께끼라는 게 있고 그걸 풀면 업적을 얻을 수 있다고. 그리고 업적을 얻으면 수월하게 강해질 수 있고.”

    강해진다는 대목에서 안영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

    “그래서는! 이 오빠가 오늘 그 수수께끼를 하나 풀었다 아니냐.”

    “허, 그래? 그래서 한층 더 강해진 거야?”

    “음……. 강해졌다고 볼 수 있지.”

    “강해지면 강해진 거지,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니. 그런 애매한 대답은 대체 뭐야?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냐? 내가 헌터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이야.”

    안영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심문하듯이 안영원을 몰아붙인다.

    안영원은 시선을 굴리며 슬쩍 안영지 곁에서 떨어졌다.

    “정말이야. 그러니까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점이 정말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어떻게 얼마나 강해졌냐고. 설명해 보시지. 헌.터.님.”

    안영지가 가던 길을 딱 멈추고 팔짱을 낀 채 의심스러운 눈으로 안영원을 본다. 어둑한 골목에 가로등 불까지도 안영원을 재촉하는 것처럼 깜빡거렸다.

    “수수께끼는 풀었는데 업적은 얻지 못했어.”

    “으응? 뭐야 그게!”

    안영지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안영원은 속이 따끔했다.

    “그게…….”

    “수수께끼를 풀면 업적을 얻을 수 있다며? 그런데 왜 얻질 못했다는 거야?”

    “으음, 원래 수수께끼와 업적에는 종류가 있댔어. 같이 수수께끼를 풀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업적이 있는 반면 기여도에 따라서 최상위 한 명에게만 업적을 주는 수수께끼도 있거든.”

    “호오……. 그런데 오빠 정말 많이 알고 있네?”

    여동생의 반응에 안영원의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암, 신선 길드에 들어간 뒤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사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던전의 수수께끼와 업적에 관한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안영원이 수수께끼와 관련해 이런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전부 김예리 덕분이었다.

    오늘 던전에서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은 그리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서로 알아차렸다.

    두 사람 모두 은하준을 ‘덕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덕후끼리는 작은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법. 천천히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김예리는 자신보다 후발주자 덕후인 안영원에게 은하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넥스트 레벨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으니 김예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은하준과 함께 얻게 된 업적의 이야기나 은하준이 풀어 왔던 수수께끼들, 그리고 소울메이트 스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여 안영원의 덕심이 더욱더 깊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긴 오빠가 정말 열심히 하기는 했지. 그 신선 길드에 들어가려고 말이야. ‘그 은하준’을 만나니 뭐니. 이번에도 함께 미션을 수행하러 간다고 좋아서 호들갑을 떨었었잖아.”

    “흠흠, 호들갑까지는 아니고. 그런데 은하준 씨 있잖아?!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고 인성도 좋고. 거기다가 인간적인 면까지 있다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오빠의 은하준 님은 다섯 살 때 나뭇잎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셨겠죠.”

    “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흥, 매번 은하준, 은하준. 노래를 불러대니까 그렇지. 이제 지겹다고.”

    안영지가 두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혀를 메롱해 보인다.

    “지겹다니. 넌 참……! 그 사람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희망적인 케이스인지 알아?”

    “알지. 그 사람이 D급에서 엄청나게 강해졌다며. 그래서 오빠처럼 급수가 낮은 헌터도 등급의 벽을 깰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람이고.”

    입술을 삐죽대며 말하던 안영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걱정이 어린 표정이다.

    “하지만 그거 알아?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 때문에 보통의 수많은 사람이 인생을 망친다는 거? 오빠는 그냥 좀 만족하며 살 줄도 알아야 해. 그러니까 난 오빠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기왕에 꿈을 가지려면 크게 가지면 좋다잖아.”

    “오빠가 또 좌절할까 봐 그러지.”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안영지의 눈을 보며 안영원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순간 헷갈렸다.

    안영지가 걱정하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일 때문일 거다.

    어머니가 쓰러졌던 날.

    그날로부터 한동안 안영원은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던 가난과 세상의 풍파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난한 자들에게 더욱 무자비한 운명의 바람이 어머니를 쓰러트렸을 때, 이제 막 성인이 되었던 안영원은 처음으로 어머니 없이 그 바람을 마주하게 됐다.

    안영원은 자신 앞에 놓인 잔인한 미래에 크게 좌절했다.

    이제야 자신이 겨우 손을 보탤 수 있게 됐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세 식구 모두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어머니의 병명은 두 남매를 더욱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포털증후군.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건 퍼스트 오픈이 있은 이후로 생겨난 새로운 병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쓰러져 거의 식물인간 상태로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이유. 그건 미약하나마 던전의 포털이 뿜어내는 마나와 같은 기운이 몸 안에 흘러서였다.

    그것 말고는 증상에 관해 밝혀진 게 없었다.

    비싼 생명 유지 장치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는 것 외에는.

    그러니까 어머니가 쓰러진 직후. 안영원이 좌절감에 매일 목놓아 울기만 하던 날의 일주일째에 그가 각성한 건 어쩌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 오빠만 믿어.”

    “난 늘 오빠를 믿지. 오빠는……. 그래 오빠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엄마를, 나를. 이렇게나 지켜주고 있잖아. 그러니까 더는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거고.”

    안영원도 동생 안영지의 마음을 잘 알았다.

    오빠가 걱정되는 진심 어린 마음.

    “그래. 그러니까 이 오빠만 믿고…….”

    우웅.

    츠츠츳.

    안영원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의심했다.

    골목의 끝이 자줏빛으로 슬쩍 빛나더니 던전의 포털이 생성되고 있었다.

    “영지야, 내 뒤로.”

    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잠깐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이 포털이 인트루더를 뱉어내는 놈이라라면?

    그나마 약한 녀석들이면 다른 헌터들이 모여들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S급들이 와도 겨우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가 잦았다.

    꿀꺽.

    안영원은 침을 삼켰다.

    그러는 사이에 포털은 금방이라도 몬스터를 뱉어낼 것처럼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안영원의 예상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처럼 포털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즈즈즛.

    “그어어어…….”

    “헉, 오빠!”

    “칫.”

    포털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동생을 도망치게 했어야 했나. 아니면 동생과 함께 도망갔어야 했나.

    안영원은 찰나에 수많은 후회를 했다.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하지만 확실히 안영원이 피할 수 없을 만큼 포털이 빨리 생성된 게 맞았다.

    덜덜덜.

    안영원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C급 서포터 혼자서 상대해낼 수 있을까? 지금 바로 뒤에는 일반인인 여동생이 있다.

    툭.

    투욱.

    몬스터가 포털을 통과해 땅을 딛고 선다. 상반신은 인간처럼 생겼고 하반신은 말이나 소와 비슷하다. 비록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지긴 했으나 말이다.

    ‘도대체 무슨 몬스터인지 모르겠어.’

    안영원이 모든 몬스터의 모습이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눈앞의 몬스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녀석 같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몬스터이려나?’

    하지만 그 경우라면 더욱 위험했다.

    최근에 정보를 알 수 없는 신규 몬스터가 나오는 족족 서울이 파괴됐다.

    S급들이나 상위 길드와 길드장들이 잔뜩 모여 토벌에 나서서 겨우 막아낼 정도였다.

    “영지야, 오빠가 시간을 벌 테니까. 지금이라도 어서 도망을…….”

    “오빠…….”

    안영원의 뒤에 선 안영지의 다리는 안영원보다 더욱 떨리고 있었다.

    “나 못 달리겠어. 다리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해. 너무…… 너무 무서워서……. 미안해.”

    영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하지만 안영원은 그런 여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포털에서 나온 몬스터의 위압감.

    각성자인 안영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다리를 떨리게 만드는 그 강력한 위압감 앞에서 일반인인 영지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르릉. 푸르릉.”

    켄타로우스처럼 생긴 몬스터가 안영원과 안영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칫.”

    더 거리를 좁히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안영원이 몸을 날려 몬스터에게 달려갔다.

    “하아앗!”

    그리고 스킬을 발동했다.

    츠츠츳!

    순식간에 만들어진 에너지체의 칼날 세 개가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퍼버벅!

    분명한 타격음이 들린다. 하지만 몬스터는 마치 먼지에 부딪힌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다. 쿠웅. 그리고 한 발을 더 내디뎌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창을 안영원에게 휘둘렀다.

    “큭!”

    “오빠!”

    분명 안영원은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왜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뻣뻣하게 굳어 버린 다리를 원망스럽게 내려보던 찰나.

    쿠과촤아앙!!

    엄청난 파열음이 들린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기릭, 기리릭…….

    안영원의 눈앞에 반투명한 사슬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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