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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67화 (167/250)
  • 제167화

    제167편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남자가 나를 보고 있다.

    한세희.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그의 화려한 외모는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한세희 길드장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군이 하준 씨를 너무 괴롭히는 건 아닌가 걱정되어서요.”

    그럼 성 대위가 상부에 불려 갔다는 게 한세희가 의도한 일이라는 건가?

    “뭐 그래 봤자 제대로 된 체계도 잡히지 않은 집단이지만 말이에요.”

    그가 피식 웃는다. 가까워진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이질적이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던전이 붕괴했다고요.”

    곧장 군에 끌려온 참이었는데 한세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거참, 소식 한번 빠르구나.

    “역시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수장다우시네요. 아주 빠르세요.”

    “특히나 은하준 씨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네?”

    콕콕.

    한세희가 장갑을 낀 손으로 삿대질하는 것은 내 품에 안겨 있는 만티코어의 알이다.

    “아아, 알은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행이네요. 그 말을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랍니다.”

    온도가 잘 느껴지지 않는 그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살짝 비친다.

    생각보다 알의 안위가 많이 걱정되었었나 보다.

    하기야 한세희가 만티코어의 알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 양심에 찔리는군. 뭔가 얼른 성과를 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는 얽히면 문제가 많은 곳이니까요.”

    그는 어쩐지 냉랭한 표정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괴물 특수부대를 싫어하시나 봐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나 싶지만 말이다.

    한세희는 내 뒤쪽, 부대 시설의 입구를 흘긋 봤다가 이내 돌아섰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길드로 돌아가죠.”

    “아, 감사합니다.”

    차에 타고 보니 한세희와 이렇게 단둘이 있어 본 적은 처음이구나 싶다. 전에는 장우택과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있었지.

    오늘은 더는 사고가 터지길 바라지 않으니 조용히 드라이브가 끝나기를 빌었다. 그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운전사가 운전하는 한세희의 차는 조용히 길드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편하군.’

    장우택의 차를 탔을 때는 그가 하도 나불거렸기 때문에 불편할 시간도 없이 정신이 없었는데, 한세희의 차는 무척이나 조용해서 오히려 그게 불편할 정도다.

    전기차인가. 차도 엄청 조용하네.

    심지어 한세희는 라디오조차 켜 놓지 않고 정적 속에서 앉아 있다.

    “흠흠. 굳이 만티코어의 알을 고르신 이유가 있으신 건가요?”

    “……아.”

    내 질문에 한세희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저 구할 수 있었던 알 중에 가장 나은 상태의 것을 고른 겁니다.”

    “아……. 그렇군요. 무사히 알이 부화한다면 역시 길드장님의 펫이 되려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워낙에 저랑 맞는 펫이 잘 없더군요.”

    하긴. 한세희가 지금까지 펫을 가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다.

    그 정도라면 원한다면 화룽에서 펫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심지어 장우택뿐만 아니라 그의 누나와도 친분이 있으니 구하려고 했다면 못 구할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하긴 인위적으로 들이려면 펫과의 상성도 중요하죠.”

    “맞아요.”

    그의 얼굴이 왠지 쓸쓸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

    어쩐지 공허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내 의아함을 읽은 것인지 그가 이어 말한다.

    “사실 전 펫이 있었습니다.”

    “네?”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죠. 아주 초반의 일입니다.”

    “아……. 그랬군요.”

    하지만 지금은 없다.

    그렇다는 건…….

    “전투 중에 펫을 잃었습니다. 그 뒤로는 펫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다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펫을 잃는다라.

    펫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걱정할 부분이겠지. 나 역시 전투 중에 망량이를 잃었을까 봐 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스킬로 소환하는 펫이라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경우에는 펫을 재소환할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과연 그 기분은 어떨까.

    스킬은 여전히 시스템에 의해 남아 있는데 더는 펫이 소환되지 않는다.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펫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할 수 없는 거다. 펫이나 인간 동료나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 전장이지만.

    한세희가 지금까지 새로운 펫을 들이지 않은 것은 그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일까.

    차 안에는 정적이 맴돈다.

    “이번에 다시 펫을 들이기로 생각하신 까닭은…….”

    “뭐, 별건 없어요. 은하준 씨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기에 관심이 간 것도 있고. 무엇보다 펫을 다루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전력을 얻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죠. 게다가 만티코어라면 탈것으로 응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요.”

    “하긴, 높은 기동력을 가질 수 있겠죠.”

    특히나 던전 안에서는 자동차와 같은 현대의 것들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걸어서 며칠 내에 공략이 가능한 작은 던전도 있지만, 정말 큰 던전은 아무리 헌터의 신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너무 넓어 공략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이제 내가 책임지고 있는 헌터들도 꽤 많죠. 은하준 씨가 제대로 해낸다면 길드의 힘을 키울 좋은 기회입니다.”

    “그렇게만 일이 잘 풀린다면 좋겠는데요.”

    “나는 은하준 씨를 믿습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도착했습니다.”

    한세희의 차가 언제 멈춘 것인지도 모르게 서 있었다.

    신선 길드 앞이다.

    한세희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다. 게다가 그가 원하지 않는 진실된 답 쪽은 더더욱.

    “뭐,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오늘은 고마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수고 많아요. 다음에는 성과를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요.”

    달칵. 차에서 내리자 한세희와 그의 차가 부드럽고 빠르게 신선 길드 앞을 떠나간다.

    “거참…….”

    “은하준 님!!”

    뒤에서 울려 퍼지는 쩌렁쩌렁한 소리는 김예리와 안영원의 것이었다.

    “아, 두 사람. 괜찮아요?”

    “저희야 괜찮죠. 하준 님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뭐……. 괜찮습니다.”

    “그대로 끌려가셔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군에서 고문이라도 한 건 아니죠?”

    안영원은 마치 오래도록 주인을 만나지 못했던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내 요모조모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문이라니.

    괴물 특수부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지. 성 대위가 기세를 쏟아 낸 걸 생각하면 확실히 고문당한 게 맞기도 하지.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다친 데는 없으시죠? 안 그래도 막 던전에서 나와서 힘드실 분한테 갑자기 체포 조사라니…….”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뭐, 그럴 만한 일이기도 했고…….”

    “그래도요!”

    김예리와 안영원의 눈이 그렁그렁하다. 뭐야, 둘이 죽이 너무 잘 맞잖아. 남매라도 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표정이 닮아 있다.

    “그나저나 두 사람은 괜찮은 건가요. 추가적인 조사는 더 없었고?”

    “네……. 저희는 뭐. 별것 없었어요.”

    두 사람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리고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우리는 함께 수수께끼를 풀었고 내가 거인과 대화했다는 것을 아니까.

    두 사람은 그 일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휴우. 그나저나 던전이 그렇게 박살 나는 건 처음 봤어요.”

    안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정말 놀랐어요. 푸는 것만으로도 던전을 박살 내 버릴 위험한 수수께끼가 있다니. 혹시 얻으신 업적이 던전을 파괴하는 자 뭐 이런 건가요?”

    “아쉽게도 그건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이번 업적은 보상을 얻지도 못했다. 몰수당했지. 무슨 업적과 아이템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말인데요. 그 던전에서 하셨던 말씀 있잖아요. 그 거인과 나누셨다는 이야기…….”

    “앗. 그건…….”

    나는 철렁하는 마음에 다급하게 그의 말을 가로챈다. 지금 안영원이 하려는 이야기는 시스템이 경계하는 비밀에 관한 이야기일 거다.

    하지만 지금 그걸 이야기하면 이번에는 우리 세상이 박살 나 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안영원 씨? 지금 눈앞에 뭔 경고판 같은 거 뜨지 않았나요?

    비밀에 접근하면 세상을 부숴 버리겠다든지?

    “일단 그때 들었던 이야기에 관해서는 당분간 언급하지 말아 줄 수 있나요?”

    “아? 네? 아아. 이런……. 그때 일이 트라우마가 되셨나 보네요.”

    안영원은 더욱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되었다.

    으응? 그건 아니지만…….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은가?

    “뭐…….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알겠어요. 확실히 그럴 만한 일이긴 했어요. 게다가 곧장 괴물 특수부대에 끌려가서 그런 일을 당하셨으니…….”

    안영원은 그 작은 머릿속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확실한 건 그가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고문은 없었다니까요.”

    “알겠습니다.”

    * * *

    안영원은 던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어둑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정말 대단했지. 그렇게 싸우는 헌터는 처음 봤어.’

    헌터 경험이 적은 안영원에게는 은하준이 싸우는 방식은 정말 독특했다.

    게다가 그는 D급이지 않은가.

    ‘내 롤 모델.’

    신선 길드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던전에서의 기억이 안영원에게는 더욱 소중했다.

    ‘사실 던전이 무너지기 전 큰 소리가 날 때, 딱 그 전에 하셨던 말씀을 못 들었어.’

    그의 고질적인 이명 증상이 하필이면 그때 도졌던 거다.

    ‘거인이랑 무슨 대화를 나누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는지 정말 궁금하단 말이야…….’

    하지만 은하준과 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니, 기회는 왔지만 은하준은 당장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은하준 님도 평범한…… 물론 각성자긴 하지만, 뭐랄까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엄청나게 멋지고 대단한 사람인 것만 같았는데……. 인간적이랄까.’

    그렇기에 안영원 자신도 은하준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더 노력하면, 힘을 내면 D급이었던 은하준이 그렇게 강하게 된 것처럼 자신도 변화할 수 있으리라.

    그와 더 친해져서 그럴 수 있었던 비법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병원에 있는 어머니도 소중한 동생 영지도 훨씬 잘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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