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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66화 (166/250)
  • 제166화

    제166편

    [경고. 금지된 정보를 언급했습니다. 시곗바늘이 전진합니다.]

    [세계의 끝이 다가옵니다.]

    [세계가 멸망합니다.]

    “젠장.”

    “네?”

    김예리와 안영원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본다.

    하지만 뭐라고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구구구구…….

    드드드.

    천지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심한 시스템은 아무런 말이 없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주인님, 도망쳐야 해요!”

    망량이가 뭔가를 느낀 것인지 겁에 질려 소리친다. 나 역시 본능적으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무너지고 있다.

    “뛰어!”

    우리는 전력으로 질주해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안개는 어느새 깨끗하게 사라진 뒤였고 망량이를 따라가면 되는 일이어서 길드원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의아할 정도로 올 때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길은 짧았다.

    “누나!”

    “하준아……! 이게 대체……?”

    인화 선배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길드원들은 인화 선배와 마찬가지로 큰 지진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네가 그런 거니?”

    인화 선배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내가 수수께끼를 풀러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니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브리핑에서 5층의 지진에 관한 내용은 없었잖아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우리 계속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길드원들이 불안에 떨며 질문을 쏟아낸다. 해답을 찾는 인화 선배의 눈빛에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일단 4층으로 돌아가서 포털을 타야겠어요.”

    “밖으로 나가자고?”

    “삐이?! 부우우우……!!”

    나는 인화 선배가 넘겨주는 흑단이와 만티코어의 알 포대기를 받아 허리에 맸다.

    “일단은요.”

    “정말로?”

    인화 선배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정말로 이게 맞을까?

    지금 당장에는 그 방법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에 휘말릴 때 던전 안에 있는 것보다는 원래 세계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정말로 지금 당장 세상이 멸망한다면, 모든 게 끝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결이의 얼굴이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게 망한다면 누가 그 애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나밖에 없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결이에게로 가야 한다.

    “자! 모두 나가요!”

    세계가 붕괴한다는 말을 뒷받침하듯 던전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에서부터 우레와 같은 쩌렁쩌렁한 굉음이 들린다. 대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그런 소리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

    과과과광!

    구구구구…….

    우리는 다급하게 올라왔던 4층으로 되돌아갔다. 5층 초입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재빠르게 내려간 4층 역시 5층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빛나는 포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주인님, 저기!”

    “그래. 나도 봤어.”

    “삐우욱!”

    우우웅. 다행히 4층을 공략하고 연 포털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 한 사람씩 서둘러서 빠져나가요!”

    “으아앗!”

    “하아앗!!”

    안내에 따라 길드원들이 하나씩 포털을 빠져나간다.

    우르릉, 우르르르……!

    방금까지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몽땅 부서진다. 그리고 마치 입체 영상이나 홀로그램이 망가지는 것처럼 지지직거린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블록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인 것처럼 그 현실감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부숴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잔혹하게 던전은 박살이 나고 있었다.

    ‘맙소사.’

    짧은 탄식과 함께 나 역시 마지막으로 포털을 통과했다.

    파아앗. 츠츳.

    바깥으로 나오자 조금 전까지의 소동이 거짓말인 것처럼 조용했다.

    발밑이 쑥 꺼지던 던전 안과는 달리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땅바닥.

    코끝을 스치는 풀 내음.

    화창한 하늘.

    주위를 둘러싼 침엽수들.

    원래 내가 있던 현실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준 씨…….”

    먼저 나온 길드원들과 원래 이곳을 지키고 있는 괴물 특수부대원들이 내가 나온 포털 방향을 보고 있다.

    콰득, 콰드득!

    기괴한 소리에 돌아보자 포털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포, 포털이 사라진다.”

    “아냐, 뭔가 다르잖아……. 그리고 이건 애초에 크랙이라고. 공략했다고 사라질 리가 없잖아!”

    “하지만…….”

    길드원들과 괴물 특수부대원들 모두 겁에 질린 표정이다.

    공략에 성공해 정상적으로 사라지는 던전 포털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훨씬 폭력적이었다. 흡사 거대한 손이 포털을 짓이기기라도 하는 것 같다.

    “망가지고 있어…….”

    눈앞의 광경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마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말을 잃은 채 포털이 뭉개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콰득, 콰드드득. 우드득.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광폭하게 경련하던 포털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무슨…….”

    “대체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내가 개별 활동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불안한 눈의 김예리와 안영원의 시선 역시 내게로 향했다.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은하준 씨.”

    * * *

    “이런 주제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냉랭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내게 말을 건네고 있는 건 성현준 대위다.

    “그야 성 대위님이 각성자들을 잘 다루시니까 그렇죠.”

    “별로 재밌는 농담은 아니군.”

    스멀스멀…….

    성 대위의 기세가 흘러나온다.

    당장에 숨통이 조이거나 다리가 후들거리지는 않지만, 긴장된 분위기가 나를 짓누른다.

    던전이 파괴된 건으로 심문이 시작된 건데 그나마 다행인 건 김예리와 안영원은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은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나를 따라왔기에 그들이 사라진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합류했을 땐 모두가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것.

    결국 집중 신문을 받게 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래도 이번 사건 때문에 성 대위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괴물 특수부대의 자잘한 모든 일을 성 대위가 맡아서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걸로 보아 부대 내에서 그의 입지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그를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은하준 씨의 행동은 말과는 딴판입니다. 던전을 못 쓰게 만든 게 벌써 이번이 두 번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저도 휩쓸린 피해자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단지 던전에서 나온 수수께끼 업적을 습득했을 뿐이라는 겁니까?”

    “네…….”

    스스스……. 그의 기세가 더욱 짙어진다.

    그래봤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곤란하군.

    ‘여기서 아까 했던 말을 또 한다면 이번에는 우리 세계가 부서지는 것 아니냐고.’

    내가 시스템을 자극한 결과, 던전이 붕괴했다. 거인의 말에 의하면 던전은 한 세계. 다행히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이라 붕괴 대상이 그쪽으로 지정된 모양인데.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나.’

    나 역시도 지금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시스템은 내게 본보기를 보여 준 걸까? 왜 내 세계를 붕괴시키지 않고 던전의 세계를 붕괴시킨 것일까.

    게다가 거인이 언급한 것은 괜찮고 내가 언급한 것은 괜찮지 않다?

    ‘실수? 시스템이라는 놈이……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은 걸까?’

    타악.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성현준 대위가 귀찮은 듯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그리고 그의 기세가 더더욱 강해진다.

    “윽……. 이러셔도 소용없어요. 말씀드린 게 다예요. 그보다 아기들한테 유해할 것 같은데요.”

    “부우우우! 그르르르……!!”

    흑단이가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고 어깨에 있는 망량이 역시 불길을 위협적으로 피워올리고 있다.

    “그러니까 두고 오래도요.”

    “그럴 순 없죠. 제가 얘들 보호자인데……. 윽.”

    강력한 기세가 슬슬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성 대위가 어느 정도로 기세를 펼쳤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처음 당했던 것에 비하면 나도 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발전을 많이 했구나 싶다.

    “콜록, 콜록…….”

    “뇌를 헤집어서 기억을 죄다 훑어볼 수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말입니다.”

    “콜록……. 무서운 말씀을 하시네요. 그런 캐릭터가 아니셨던 것 같은데.”

    “은하준 씨 때문에 제가 얼마나 귀찮은 일들을 떠맡고 있는지…….”

    그는 정말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라고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라니까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그렇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정말로 무진장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은 아니다.

    화가 나지 않았더라도 기세로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당신은 국가의 재산을 망가뜨렸어요.”

    “던전은 재해죠.”

    “컨트롤 가능한 재해죠.”

    “던전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쿨럭. 아! 그만 좀 하세요! 저를 쥐어짜 봤자 나오는 건 없을 겁니다!”

    “그건 쥐어짜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죠.”

    “허?”

    “각성자에 관해 괴물 특수부대는 체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은하준 씨 당신을 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던전 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적 위협을 일으킨 혐의로 말입니다.”

    점점 더 숨이 막혀온다. 기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그래, 너 잘났네요. 아주 강하시네요.

    “제가 푼 수수께끼에 관한 건 다 알려 드렸잖아요!”

    거인과의 대화는 알려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던전을 컨트롤할 방법을 하나 더 얻은 셈이잖아요! 업적을 위한 수수께끼의 해독. 그것이 던전 클리어에 영향을 끼친다!!”

    뻥이지만!

    “…….”

    성 대위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점점 더 몸을 기울여 나를 바라볼 뿐.

    마치 내 얼굴에 작은 글씨로 비밀이 가득 쓰여 있다는 듯이.

    그걸 면면히 파헤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눈을 굴리는 그의 표정이 점점 더 호기심을 띤다.

    ‘있겠냐!’

    무엇보다 내 속을 정리할 시간이나 좀 줬으면 좋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똑똑똑.

    사무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성 대위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대위님. 상부에서 찾으십니다.”

    “…….”

    스스슷.

    순식간에 기세가 수그러들고 성 대위는 심드렁한 얼굴을 한다.

    “처음에 비해 꽤 잘 버티네요.”

    “콜록, 콜록. ……성 대위님, 사람들이 싫어하는 스타일인 거 아시죠?”

    “……종종 그런 말을 듣기는 합니다만. 사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하, 참나.”

    “뭐, 이 정도 했으니까 위에서도 만족하겠죠.”

    성 대위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CCTV를 흘긋 바라본다.

    뭐야. 지금까지 위험한 분위기는 다 쇼였단 건가.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십시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네요.”

    찰칵.

    갑갑한 기운이 남아 있는 목을 만지며 사무실을 나선다.

    괴물 특수부대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올 때쯤 멀리서부터 튀는 인상착의의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늦은 타이밍은 아니었으면 했는데요. 어떤가요.”

    한세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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