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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63화 (163/250)
  • 제163화

    제163편

    빠아악!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의 머리가 뒤로 넘어간다.

    공중을 딛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강력한 발차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넓은 강가에 있는 나무에 억압의 손길 사슬을 연결. 양쪽 나무와 연결된 사슬을 두 손으로 잡고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뒤로 힘껏 후진했다가 전력을 다해 튕겨 나갔다.

    “그어어어.”

    첨벙.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이 뒤로 넘어가 물속에 빠지는 것만으로 태풍 속의 파도처럼 큰 물보라가 일어났다.

    “다들 잘 잡아!”

    “으윽!”

    차르르륵. 차르르륵!!

    뒤집히려는 배를 지키기 위해 내 사슬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넘실거리는 포인트를 맞춰서 이쪽 배와 저쪽 배를 끌어당겼다.

    “우와악!”

    “빠지기 싫어~!”

    “토할 것 같아요.”

    길드원들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직 자이언트 크로커다일과의 전투가 끝난 게 아니다.

    “다들 정신 차리고 공격해!”

    인화 선배의 말을 듣고 몇몇 헌터가 배 위에서 자세를 잡는다. 그래 봤자 이동기가 없어서 쓸 수 있는 건 장거리 스킬뿐.

    쉬이익!

    퍼엉! 퍼엉! 길드원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자이언트 크로커다일 녀석들도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불안한 예감!”

    이때다 싶어 디버프를 걸어준다.

    “우우웅!”

    쿠웅! 쿠우웅!

    집중력과 신체 능력 디버프를 받은 자이언트 크로커다일 놈들이 방향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로 부딪히며 부상을 입는 놈들까지 등장했다.

    “그우우우!”

    “구어엉!”

    쿠웅! 철썩! 첨벙!

    거기다가 사슬을 그물처럼 엮어 놈들이 더는 배에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슬슬 헤르메스의 신발 효력이 떨어지겠군.”

    30분 제한이 있기에 곧장 배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이제 한동안은 자이언트 크로커다일 녀석들이 쫓아오지 못할 터.

    “다, 다행이다.”

    내가 배로 돌아오자마자 안영원이 촉촉한 눈으로 외쳤다.

    “정말 멋져요!”

    “뭘 이런 정도 가지고.”

    “전 물이라면 꼼짝을 못 하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이번 던전 공략에 지원했네요?”

    김예리가 안영원에게 그렇게 묻자 그는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임무를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요.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거든요. 좀 편찮으셔서. 하하.”

    “아아…….”

    아무래도 안영원이 그 집 가장인 듯했다. 그나마 안영원이 C급 헌터라도 되니 다행이다. 열심히만 움직인다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병원비를 충당할 수는 있을 거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두려운 것을 이겨내려고 하는 점이요.”

    “……우읏.”

    안영원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앳된 얼굴에 물기가 서리는 게 마음이 짠하다.

    “이번 던전 공략에서 아이템 많이 얻어 가죠.”

    파이팅하자는 의미에서 주먹을 내밀어 보이자 안영원이 주먹을 마주쳐 온다.

    * * *

    “여기서 내리는 거 같군요.”

    “다들 내려요!”

    준비된 듯한 선착장.

    길드원들이 모두 내리고 또 한 번 달라진 풍경을 본다.

    드넓은 초원.

    들판을 가득 메운 풀들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너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지평선 저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저건 진짜 태양일까.’

    아무래도 던전 안이니 지구의 태양과는 다른 종류거나 아니면 아예 환상일지도 몰랐다.

    “오늘은 슬슬 야영해야겠어요.”

    “그래도 하루 만에 2층 중반까지 왔네요.”

    “다 팀장님과 하준 님 덕분이에요.”

    “정말요. 강 위에서 침착하게 전투해 주신 덕분이에요.”

    “모두 무사히 이곳까지 오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아하하.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야영 준비는 금방 끝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가 넘어갔다.

    타닥, 타닥.

    던전 내부에서 피운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던전 안인데도 별이 저렇게나 많아요.”

    “그러게요.”

    김예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은 듯 중얼거렸다.

    준비해 온 음식으로 식사한 뒤 휴식 시간을 가진다.

    나는 세 번째 순서로 불침번을 서기 위해 자다가 중간에 깨어났다. 벌레가 우는 소리와 풀이 흔들리는 소리.

    너무나 지구 같은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광경들이다.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갈 수 있겠구나.”

    “주인님, 주인님!”

    망량이가 작은 불꽃을 일렁거린다.

    “저길 봐요!”

    수풀 너머로 작은 불빛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뭘까?”

    “마력이 느껴져요.”

    “마력이라면…….”

    “네, 맞아요. 수수께끼가 저기 있어요.”

    “흠.”

    불침번을 서는 중이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불빛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무슨…….”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야영지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사삭, 사사삭.

    풀을 헤집고 오는 인기척.

    주문처럼 외우는 소리.

    아주 작은 소리들이 합쳐져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빛은 점점 다가오며 밝아졌다.

    그리고 이내.

    “찾았다!”

    “요정?”

    눈앞에 나타난 것은 사람보다 훨씬 작았지만,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모습만 얼추 열댓 명쯤 될까.

    내가 아는 몬스터 중에 노움이라는 것과 가장 비슷한 것 같은데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몬스터인가?

    다가오던 작은 불빛은 무릎 정도까지 오는 작은 사람이 들고 있는 등불 같은 것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말이 통한다?”

    나는 깜짝 놀라는 것과 동시에 진심으로 반가웠다.

    대화가 통하는 던전 내부의 존재라니.

    게다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것처럼 내게 알아서 찾아와 줬다. 지금까지 발 벗고 찾아 나선 보답이라도 받은 듯 기뻤다.

    “이봐, 방금 한국말을 한 거 맞지? 나랑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찾았다. 열쇠 지닌 자.”

    “가져! 가져!”

    툭.

    흙바닥으로 떨어진 건 열쇠였다.

    “어라.”

    “가져, 가져.”

    “잠깐 이야기 좀 해.”

    “……?”

    작은 인간들은 열쇠를 줍지 않는 나를 이상하다는 얼굴로 올려다본다.

    “이야기? 왜?”

    “좋아. 대화가 통하는군!”

    “이 녀석. 이상한 녀석이다.”

    “이상하다.”

    “열쇠만 주면 되는데.”

    작은 인간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런거렸다.

    “잠깐이면 돼. 너희가 알고 있는 던전과 포털,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줘.”

    술렁이던 목소리가 딱 멎는다. 그리고 어쩐지 분위기가 서늘해진 것 같다. 밤바람 탓일까?

    “너, 뭘 알아.”

    작은 인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는 건 별로 없어. 어……. 그러니까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세계에 시스템이 관여하고 있다는 거. 그래서 던전과 포털이 있다는 것…….”

    내게 무엇인가를 물은 것치고 작은 인간들은 내 대답을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시스템의 명령을 듣는다. 그것이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

    “뭐?”

    “우리는 시스템이 시키는 일만 한다.”

    “우리는 시스템이 허락한 일만 한다.”

    “허락되지 않은 일. 안 한다.”

    “너, 허락되지 않은 일. 하지 마.”

    “허락된 일을 해라.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

    “너는 봉인을 풀어.”

    “봉인 풀어! 풀어!”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작은 사람들이 수풀 사이로 흩어져 버린다.

    “자, 잠깐만!”

    “우응……. 뭐야? 뭐가 나왔어?!”

    내 외침에 인화 선배가 화드득 놀라 깨어났다.

    선배를 돌아보고 다시 수풀 쪽을 보았을 때는 빛도 작은 사람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뭐야…….”

    “응?”

    “아, 아녜요. 누나. 다시 주무세요. 죄송해요.”

    인화 선배가 의아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건…….”

    “네. 아까 1층에서부터 찾았던 열쇠 같아요. 색깔만 다르고 모양과 크기가 똑같거든요.”

    “이걸 갑자기 어떻게 얻었어?”

    “작은 요정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주고 갔어요.”

    “호오……. 신기하네. 1층에서부터 열쇠를 가져와야 발동되는 이벤트인가?”

    인화 선배의 말대로 생각하는 게 제일 맞는 짐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제길, 던전의 존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쉽게 놓쳐 버리다니.’

    이미 이벤트가 발동되었으니 그 녀석들이 다시 나올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공략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지만 이것 역시 아까 놈들의 반응을 봐서는 현명한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시스템이 시키는 일을 한다고.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건 대체 무슨 말일까.

    “일단은 열쇠를 챙겨요, 주인님.”

    망량이가 열쇠에 달라붙어 꼬물거렸다.

    “그래…….”

    뭔가 석연찮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작은 사람들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내게는 세 번째 열쇠가 손에 들어왔다.

    * * *

    “조심해!”

    콰드드드득!

    땅이 울퉁불퉁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레드 센티피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5m가 넘는 거대한 지네의 형상. 붉은 등딱지와 주황색 수십 개의 다리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움직인다.

    주변은 거대한 바위 동굴.

    레드 센티피드의 굴이다. 4층 던전의 보스를 찾기 위해 놈들의 본거지를 친 것이다.

    “몸통 조이기 온다!”

    “그보다 해독을……!”

    “맡겨만 주세요!”

    길드원들의 다급한 움직임을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나서서 튀어 오른다.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서 허공을 딛고 새벽의 검을 빼 든다.

    “삐이이! 삐로오오!”

    등에 매달린 흑단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바아! 바!”

    “흑단아,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너무 들뜨지 마라. 그러다가 다칠라!”

    잔소리를 하며 센티피드의 단단한 등껍질에 검을 내지르지만.

    티잉, 티이잉!

    검날이 튕겨 나온다.

    ‘4층쯤 되니까 혼자는 슬슬 벅찬데.’

    쉬쉬쉬쉿!!

    김예리의 칼날 외침이 센티피드의 연한 부분을 노리고 들어가지만, 살짝 비켜 나간다.

    “예리 씨! 이쪽으로!”

    센티피드의 등에 들러붙은 내가 녀석의 뒤에서 다리를 잡아당기며 몸을 들췄다.

    “좋아요! 아아아!”

    쉬이이익!!

    퍼어억! 이번에는 칼날 음성의 몇몇 개가 센티피드의 연한 배 중앙에 제대로 들어맞는다.

    퍼걱!

    거대하고 기다란 센티피드의 몸이 두 동강이 나면서 진액을 뿜어내며 한 마리가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앞으로 셋!”

    “하준 님, 버프 걸어 드릴게요!”

    안영원의 외침과 함께 나는 물론이고 흑단이와 만티코어의 알에까지 버프가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좋아.”

    조금 더 안쪽 깊숙이 들어가 볼 생각이다.

    “하앗!!”

    새벽의 검을 회전시키며 센티피드 놈의 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강력한 턱관절 바로 아래. 연한 살결이 있는 틈을 노린다.

    푸우욱!!

    콰드득, 콰득!

    제대로 들어간 칼날을 비틀어 녀석의 머리를 뜯어 놓는다.

    ‘내가 버프를 받는 느낌은 또 새롭구나. 강해진다!’

    이런 상황이 되니 장우택이 그렇게 눈을 빛내던 게 이해가 된다. 분명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데 그 한계를 단숨에 두 배쯤 향상할 수 있다니.

    ‘나 같아도 내가 탐나겠네.’

    뭔가 부끄러운 생각이긴 하지만 내 스킬이 엄청나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넥스트 레벨이 되는 것까지 생각하면…….

    “잠깐! 하준! 조심해!”

    콰드득!

    인화 선배의 외침을 인지하는 순간 등과 허리에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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