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제161편
“열쇠?”
수풀 속, 반쯤 흙에 파묻혀 있는 것은 손바닥보다 작은 열쇠다.
금으로 만들어져 있고 가벼운 데다가 손잡이 부분이 클로버 모양으로 아름답게 세공까지 되어 있어 귀중한 물건처럼 보인다.
반짝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울창한 수풀 속에서 이런 작은 열쇠를 찾아낼 수는 없었을 터.
“망량이는 역시 대단해.”
“엣헴.”
“삐우!”
흑단이가 자기도 칭찬하라는 듯 등에서 삑삑거린다.
“그래, 그래. 아무것도 안 했지만, 우리 흑단이도 대단해~”
“참 나, 저 조그만 것도 용이라고 그러는지 질투가 심하네요.”
누가 누굴 보고 질투가 심하다고 하는 건지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 망량이가 발끈하는 사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조용히 웃음을 삼킨다.
스윽, 슥.
꽤 질은 흙을 닦아내며 열쇠를 관찰하니 미약한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수수께끼가 틀림없겠지.”
“뭔가 찾은 거야?”
열쇠를 들어 보이자 인화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하준이 너는 정말 그런 걸 잘 찾아내는구나. 대단해.”
“망량이 덕분이죠.”
“엣헴. 별것 아녜요. 자연스럽게 알아냈달까. 하하하.”
망량이가 불꽃을 부풀리며 뽐낸다. 인화 선배에겐 무왕무왕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겠지만.
“자, 그럼 이 열쇠는 어디에 쓰는 걸까나.”
“또 뭔가 알아내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좋아.”
망량이가 불꽃을 튀기며 의욕을 뽐냈다.
‘그래도 이렇게 초입에 있는 아이템인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다니. 하기야 망량이는 거의 수수께끼의 흔적 찾기 레이더 같은 게 있는 것 같지만.’
잠깐 멈췄던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재개되고 던전은 그런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놨다는 듯이 몬스터를 선보인다.
파스슷. 파삭.
“우끼끼, 끼끼끼. 우, 우, 우.”
“고스트 몽키다.”
“이미 포위당했어.”
“이런…….”
안경원숭이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훨씬 크고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잽싼 녀석들이다. 마치 유령처럼 기척을 숨길 줄 안다.
게다가 그 커다란 눈의 시선과 제대로 마주치면…….
“다들 브리핑 때 들어 놓고 제대로 안 할 거야? 놈들의 눈을 똑바로 보지 말라고 했잖아!”
인화 선배가 멍하니 서 있던 길드원 하나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그의 정면에 마주하던 커다랗고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어둠 속으로 휙 하고 사라진다.
“허억!”
마치 주술에 걸렸던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던 길드원이 부르르 떨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호, 호랑이가……. 커다란 호랑이가……. 저, 저를 물어서, 허리가……. 으응? 멀쩡하네요?”
고스트 몽키의 대표적인 기술.
환각술이다.
이렇게 초반에는 외부의 자극으로 쉽게 환각이 깨지지만, 중등도 이상의 환각에 빠지면 각성자의 특별한 스킬 없이는 환각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던전은 공략법이 숙지가 된 지금에야 등급이 낮아졌지만, 초기에는 A급 던전으로 불렸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나마 등급이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조심만 하면 환각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는 점 덕분이었다.
“우키이!”
“캬아아아!!”
환각술이 제대로 듣지 않자 고스트 몽키들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육탄전으로 돌입한다.
고스트 몽키 중 일부가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놈들은 아주 능숙하게 나무를 타며 머리 위를 활보한다.
“공격!”
쉬이익, 휘익!
기다란 손톱을 가지고 품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고스트 몽키들은 겁을 상실한 것처럼 대담한 공격을 쏟아낸다.
인간보다 훨씬 긴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우끼긱!”
“아아아!”
김예리의 스킬에 칼날 같은 바람이 뿜어져 나가고 괴물 원숭이들의 머리가 뎅겅 날아간다.
“우키이!!”
그 모습을 본 다른 고스트 몽키들은 더욱 분노에 휩싸인 듯 검었던 눈이 붉은빛을 발한다.
고스트 몽키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인 광폭화.
우우웅. 우우웅.
커다랗고 빨간 눈알들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만 같다. 기이한 움직임을 뒤로하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고스트 몽키를 상대하기 위해 새벽의 검을 뽑아 휘두른다.
휘익. 쉬이익!
스각!!
“삐이이! 뿌우! 뿌!”
등에서는 신난 흑단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츠츠츳. 소울메이트 스킬로 연결된 흑단이와 만티코어의 알 둘 다 전투 중에 컨디션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런 피와 살육을 좋아하는 애들이라니.’
약간 이상한 기분이 되긴 했지만, 전투에 집중한다.
“끼이이!”
커다란 눈을 번득이며 고스트 몽키가 등 뒤를 공격해 온다.
“안 되지.”
고스트 몽키는 쫓아올 수 없는 속력으로 몸을 회전해 재빠르게 공격한다.
쉭, 스각.
고스트 몽키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다.
“부바바!!”
“으이그, 안 돼. 피는 지지해요.”
“삐오오!”
“끼이, 끽!”
흑단이에게 튄 피를 닦아 줄 겨를도 없이 고스트 몽키의 공격이 이어진다. 이놈들이 또 귀찮은 게 뭐냐 하면 이렇게 끝도 없는 물량 공세다.
놈들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데, 이렇게 공격이 시작되면 몇 시간 동안이나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
“우, 우왓!”
어느새 고스트 몽키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김예리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녀는 스킬로 A급에 달할 정도의 공격력을 얻었지만, 육체 자체는 약하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저대로 둔다면 부상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핫!”
단숨에 김예리가 있는 곳으로 점프한다.
“하, 하준 님!”
“가만히 있어요.”
쉬익. 츠차차찻!!
“끼에에엑!”
“께엑!”
“끼이, 께!”
“우, 우, 우!”
김예리를 둘러싼 고스트 몽키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베어낸다.
촤아악!
고스트 몽키들이 후두둑 후두둑 옆으로 쓰러지고 새벽의 검, 검날에 놈들의 피가 찰랑인다.
“고마워요, 하준 님!”
“거리가 좁혀지지 않게 조심해요!”
“정글이 너무 우거지다 보니까…….”
“하긴, 숫자가 너무 많죠.”
방해물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고스트 몽키들에게는 방어물이 아니라 좋은 은폐물. 활용할 지형지물일 터.
‘그러니까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타앗. 휘이익!
높이 점프해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습격 탓에 전열이 흐트러진 길드원들이 힘겹게 고스트 몽키를 각개격파하고 있다.
‘황금 털을 가진 녀석을 찾아야…….’
난장판인 싸움터에서는 특별한 빛을 가진 고스트 몽키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무를 밟고 있으니 그 진동을 듣고 몬스터 몽키들이 나를 발견해 낸다.
“삐이!”
뒤로 다가온 고스트 몽키를 발견하고 흑단이가 소리를 지른다.
“땡큐, 흑단.”
휘릭.
좁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몸을 비틀어 단번에 고스트 몽키의 머리를 베어낸다.
“끼익!”
놈은 짧은 비명을 남기고서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투둑, 투두둑.
“끼이! 끼!”
떨어진 시체 때문에 아래의 고스트 몽키들이 흥분해 내 쪽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에잇, 귀찮은 것들.”
“아아아!”
외침과 함께 나무를 타고 오르던 고스트 몽키들의 몸이 갈가리 찢긴다.
김예리의 음파 공격이다.
“예리 씨!”
“후! 아까 그거 갚았어요!”
찡긋, 윙크를 해 주고는 살짝 뒤로 빠졌다.
“삐우!”
“쉿, 흑단이 이제는 조용히 해야 해.”
나는 흑단이의 엉덩이를 토닥여 준 뒤, 고스트 몽키들이 습격해 오는 방향을 역으로 추적하기 시작한다.
나무를 그대로 밟고 이동했다면 아까처럼 아래의 고스트 몽키들에게 발각당했겠지만, 헤르메스의 신발로 허공을 밟고 있는 상태.
‘나무를 타는 진동이 없으니 나무 타기에 빠삭한 녀석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지.’
그리고 이내 숲의 깊숙한 곳에서 황금색 털을 지닌 놈을 발견한다.
‘저놈이 왕이다.’
똑똑하게도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한참 뒤의 진영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지팡이도 하나 두른 것이 마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고블린 중에 홉 고블린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
게다가 다행히 왕의 주변에 일반 고스트 몽키들의 수가 많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겠어.’
휘리릭!
단번에 왕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키에엑!!”
깜짝 놀란 왕이 펄쩍 튀어 오르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고스트 몽키의 신장보다 훨씬 긴 지팡이의 가장 윗부분에는 놈들의 눈알을 여러 개 모아 놓은 것 같은 동그란 구슬이 다글다글하게 붙어 있다.
“끼이! 끼이! 끽!”
왕의 외침과 함께 지팡이의 구슬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는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환술.
그와 동시에 사방에 숨어 있었던 고스트 몽키가 튀어나오며 내 양팔을 붙잡았다.
‘아차.’
이 녀석들, 내 움직임을 따라오고 있었던 걸까.
왕이 지팡이를 내 코앞으로 바짝 갖다 댄다.
우우웅.
순식간에 시선이 아지랑이처럼 어질어질해지며 아득해진다. 하지만.
띠링. 띠링. 띠링.
[상태 이상: 환각]
[모든 소울계 상태 이상 면역으로 상쇄됩니다.]
[상태 이상: 환각]
[모든 소울계 상태 이상 면역으로 상쇄됩니다.]
[상태 이상: 환각]
[모든 소울계 상태 이상 면역으로 상쇄됩니다.]
요란한 시스템 알람음과 안내 문구.
씨익.
“우끼? 끼이이?!”
빙긋 웃는 나를 보며 왕은 당황한다.
“이것 놔라, 이 녀석들아! 하앗!”
한 번에 힘을 줘, 팔에 들러붙은 고스트 몽키를 떨궈낸다.
퍼억! 퍽!
이 힘에 튕겨 나간 고스트 몽키가 두엇 정신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다.
“키이잇!!”
그래도 남아 있는 녀석들과 왕은 포기하지 않는다.
“캬아악!”
서른 마리가 넘는 고스트 몽키가 한꺼번에 내게 달려든다.
이 자식들, 똥줄이 많이 탔나 본데.
“와아아압!”
한쪽에서 달려든 고스트 몽키를 삼키는 불꽃.
푸른 불꽃이다.
“암냠냠냠!”
망량이가 일부러 짓궂은 소리를 낸다.
“캬아아악!!”
삼켜진 고스트 몽키들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 정도 몬스터들은 저도 상대할 수 있다고요! 엣헤엠.”
그리고 한쪽으론.
차르르륵!
억압의 손길 스킬로 단단히 묶여 버린 녀석들.
놈들은 내게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끼이이!”
이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왕이 주춤거리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으음, 그래. 내 기억에도 네놈이 내세울 만한 건 극도의 환각 스킬뿐이었던 것 같아. 평범한 녀석들보다 훨씬 강해서 어지간한 스킬로도 상태 이상 제거가 안 됐었지.”
“끼우. 끼우이익!”
고스트 몽키 대장이 마치 내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끽끽거린다. 놈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지만, 악당들의 마지막 대사처럼. ‘아니. 이럴 수가! 대체 네놈은 뭐란 말이냐!’ 이런 말을 뱉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