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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59화 (159/250)
  • 제159화

    제159편

    [흑단이 아빠]

    “이건 대체…….”

    부우우우, 부우우우.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이거 안 받기도 뭐하고.

    “여보세요?”

    [은하준 님~]

    장우택의 목소리다. 사실 예상하기는 했다만.

    “무슨 일이시죠?”

    [저 말고도 알을 선물한 사람이 있다면서요?]

    “생각보다 화룽에 소식이 늦게 들어갔네요.”

    [예상은 했었는데, 불륜남께서 생각보다 빠르시더라고요.]

    “불륜남이요?”

    [저랑 하준 님이 흑단이 아빠 엄마인데 누군가 끼어들었으니까 그쪽이 불륜남 아니겠어요?]

    “이거 한세희 길드장님이 들어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죠!]

    “녹음 중입니다.”

    [힉?]

    장우택은 놀라는 척하더니 이내 키득거린다.

    “번호를 알려 준 기억은 없는데요. 내 휴대폰을 함부로 만진 건가요?”

    [부부 사이에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부부 사이라도 프라이버시는 지켜 줘야죠. 그보다, 부부가 아니잖아요. 정말!”

    전화 너머로 푸흐흐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 남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내가 몬스터 알을 넥스트 레벨로 진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야 웃을 만큼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물론 나도 그게 확실히 될는지는 모르겠고. 아직 흑단이조차 넥스트 레벨이 된 게 아니니까.’

    몬스터 알을 넥스트 레벨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걸 밝히게 되면 자연히 각성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밝히게 되는 셈이다.

    이게 알려진다면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겠지.

    여러 각성자가 넥스트 레벨이 되기 위해 나를 찾아올 거다. 그중에는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도 있을 거고.

    마치 무기를 선점한 뒤, 그에 상응하는 개발을 더는 하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넥스트 레벨을 소수만 누리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 전에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한 거다.

    ‘넥스트 레벨이 되어도 될 사람들을 잘 골라야 할 텐데.’

    아직 길드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

    한세희 길드장은 어떤가. 이쪽은 비즈니스로만 묶여 있어서 모르는 것투성이.

    하지만 1분기 마지막 퀘스트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장우택은?

    그는 외국인인 데다가 성격도 제멋대로. 하지만 시스템의 퀘스트 앞에 국가를 나누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

    그의 누나 장 리는 어떤가? 그녀는 지난번 만남에서 한세희를 죽이려고 했었지.

    ‘그래도 화룽에 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10년이 넘는 시간이 내게 있으니까. 심사숙고해야지.’

    전 세계의 각성자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일단 넥스트 레벨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의 퀘스트와 인류 종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

    이미 미래가 틀어질 대로 틀어졌기에 종말에 관해 말하는 게 나을까 싶다가도, 그렇게 해서 일어날 나비효과를 더는 내가 통제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도 든다.

    ‘조금 더, 더 강해진 뒤에.’

    애초에 내가 회귀한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러니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겠다.

    [어쨌거나 먼저 대시한 건 저인데 말이에요. 너무 한세희 길드장에게 마음을 주진 마세요.]

    “마음을 주고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장우택 씨한테도 마음 같은 건 준 적 없고요.”

    [아아, 그건 안 다행인데요? 그러면 제가 너무 슬프죠.]

    “장우택 씨가 슬퍼하셔도 크게 상관없고요.”

    [차가워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질 않는다.

    “사실은 정말로 제가 브리더로 각성하는 것일까 걱정되어서 체크하는 것뿐이잖아요?”

    [……눈치도 빠르셔라. 하여간 못 당하겠다니까요.]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화룽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거다. 출처를 잘 모르는 애물단지 몬스터 알을 손도 못 쓸 줄 알고 선물해 놓았더니 뜬금없이 부화시키질 않나.

    거기다가 정식 브리더가 될지도 모른다며 몬스터 알이 더 맡겨진 상태이질 않나.

    ‘날 죽이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

    한세희를 죽이려고 했던 장 리를 떠올리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갑자기 오싹해진다.

    앞으로 좀 더 조심히 다녀야겠어. 결이랑도 찰싹 붙어 다니고.

    한세희가 붙여 준다던 경호도…….

    그나마 내 버프 스킬 때문에 장우택이 흥미로워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구만.

    “어쨌든 별 진전은 없으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 만에 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요. 그렇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그저 하준 님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잊었습니까? 나는 하준 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아아. 그러시구나.

    그 마음이 오래도록 유지되면 좋을 텐데 말이다.

    [하여튼 나쁜 일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몸조심하시고요.]

    그의 인사에서 어쩐지 뼈가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뚜욱.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만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뭐 해?”

    부스스한 머리로 잠옷을 입은 채 결이가 거실로 나온다. 금룡의 힘줄 아이템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않아도 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금룡이 사라져서 아이템의 능력이 저하됐을까?

    회귀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 아니 애초에 회귀 전에는 금룡의 힘줄에 진짜로 금룡의 의식이 담겨 있지 않았으니까 상관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냥 뉴스 보고 있었어.”

    “누구랑 통화하는 것 같던데.”

    “아아, 장우택이…….”

    “장우택?”

    결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몬스터 알 때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

    “신경 쓰이게 하는군.”

    “신경 써야 할 거야. 여기저기 이목이 쏠릴 테니까.”

    “……그래. 맞아.”

    심각해진 얼굴을 보니 가서 미간을 쭉 펴 주고 싶어진다.

    그런 방법이라면 하나 알고 있는 게 있지.

    “맛있는 것 좀 먹을까?”

    “응?”

    “왠지 우리 같이 식사하는 게 오랜만인 것 같아서.”

    “아, 하긴…….”

    좋은 집을 사고도 집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해 먹은 적이 없다. 일단 인화 선배가 계속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줘서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훈련이며, 던전 공략이며 어긋나는 바람에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한 지가 오래되었던 것이다.

    “밥?”

    우리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하케임이 방에서 나온다.

    “자, 다들 기다리라고. 내가 특별히 은하준 정식을 먹게 해 주지.”

    “우와! 은하준 정식? 대단할 것 같은데?”

    하케임이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아냐. 오늘은 내가 할게.”

    “응?”

    결이가 일어나던 나를 소파에 그대로 앉힌다.

    “포대기까지 두르고 식사를 차리라니, 너무 부려 먹는 것 같잖아.”

    “으음. 그렇게 말하니까 부려 먹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오늘은 한결 정식이다.”

    “오오~! 나는 은하준 정식이든 한결 정식이든 뭐든 좋다!”

    “하케임 너는 보조를 하도록 해.”

    “앗……! 좋아! 그럼 다음번에는 하케임 정식을 대접하지.”

    “하케임 너 요리를 할 줄 알아?”

    “당연하지. 내 나이가 몇인데 혼자 밥도 못 차려 먹는 줄 알았어?”

    “그, 그건 아니지만…….”

    “일단 하준이 너는 앉아서 뉴스나 마저 봐.”

    결이가 앞치마를 찾아 목에 걸더니 식칼을 꺼낸다.

    벽조목 손잡이가 아닌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나도 앞치마…….”

    “보조니까 대충 해.”

    “히잉.”

    “히잉이 뭐야, 어른스럽게 대답해야지.”

    “힝입니다.”

    결이와 하케임이 투닥대며 요리를 시작한다.

    “형아들이 맛있는 거 해 주면 좋겠다, 그렇지?”

    “쁘아우! 빠! 바바바!”

    흑단이 역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고는 코를 킁킁대며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부엌은 금방 뚝딱거리고 왠지 행복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든다.

    “잠들었네.”

    “아침에 깨자마자 낮잠이라니, 은하준도 참.”

    “깨우지 말까?”

    “으음…….”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어느새 집안이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차 있다.

    “깼다!”

    “하준아, 많이 피곤하면 들어가서 좀 더 자. 오늘은 따로 스케줄도 없는데. 넌 항상 스킬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피곤할 거 아니야.”

    결이가 국자를 든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앞치마에 국자라니. 뭔가 생경한 모습이다.

    “으응, 아니야. 흑단이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잠깐 졸았어.”

    옆구리에서 마찬가지로 잠든 흑단이를 쓰다듬자, 작은 등이 굽으며 팔다리를 쭈욱 펴더니 기지개를 켠다.

    역시 우리 흑단이 너무너무 귀여워.

    “뭐야, 뭘 가득 했네?”

    일어나 식탁을 보는데 깔린 접시가 한가득이다.

    “우와……. 뭐야? 한결이 너 언제 이렇게 요리 실력이 늘었냐?”

    “늘었겠냐? 사실 반찬 대부분은 인화 누나가 가져다준 거야.”

    그럴 줄 알았다. 아침부터 잡채랑 불고기를 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이 계란말이는 직접 한 거 아냐?”

    “맞아.”

    “계란말이도 할 줄 알아? 거기다가 이 참치김치찌개. 이것도 네가 한 것 같은데?”

    “물론이지.”

    결이의 얼굴에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이건 내가 구웠다.”

    하케임이 가리키는 걸 봤더니 스햄이다. 네모난 깡통에 든 짭짤한 스햄.

    “오, 완전 적절하게 잘 구웠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굽기로 구웠네.”

    살짝 얇게 썰어서 끝이 바삭할 정도로 태울랑 말랑.

    “후후후. 대단하지?”

    “그래, 하케임. 대단하네.”

    아무래도 태울 뻔한 걸 겨우 살린 것 같지만 말이다.

    “계란말이에 스햄이라니. 얘들아, 가슴이 웅장해진다.”

    “자, 식기 전에 얼른 먹자.”

    “잘 먹겠습니다~!”

    “음!”

    입 안의 짭짤한 스햄 맛을 느끼며 식탁을 둘러본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역시 누군가 차려 주는 밥상은 더 맛있는 것 같다.

    “엇. 안 돼! 흑단이는 아직 아기니까 스햄은 안 돼. 대신 계란말이 먹자~!”

    “그르릉. 삐우웅! 우웅!”

    “저도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망량이가 어깨에서 흔들거린다.

    “아예 못 먹는 건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보니까 겔시퍼인가? 그 녀석은 달걀 껍데기를 먹던데.”

    “걔는 악마잖아요. 전 도깨비불이라고요. 게다가 전 기본적으로 주인님께 얻는 마나로 유지되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죠.”

    사실 초반에 망량이에게 음식을 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망량이는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냥 이 따뜻한 기분을 함께 즐기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요. 모두 행복해 보여요. 가족 같달까.”

    “무슨 소리야. 그런 건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다고. 우리 모두 가족이니까 말이야.”

    “……아이참.”

    망량이를 쓰다듬어 주자 불꽃이 부드럽게 일렁거린다.

    “삐우우! 삐!”

    흑단이가 나를 따라 망량이를 쓰다듬는 체하고 그 모습을 본 우리 셋은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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