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제154편
‘뭔가 잘못됐다.’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에 내가 딴생각을 해서일까? 아니면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까?
강렬한 감정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실패할 거야.’
아직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금룡이 눈을 번쩍 뜬다.
“큭.”
“뭔가 잘못된 거야. 그렇지?!”
“으윽. 영혼이…….”
분명 칼이 금룡의 영을 뽑아낸다고 했었다. 하지만 검은 그저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을 뿐. 그 어떤 다른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결과 내가 생각보다 더 강력하게 유착되어 있다……!”
“그럼 어떡해?!”
“크으으……!!”
금룡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시도하지 못할 거다. 방법이 없어.”
“그런……!”
“게다가 이렇게 비틀려 버린다면…….”
금룡의 표정이 어둡다.
“우리 둘의 영 모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어.”
둘의 영 모두 손상을 입는다니. 결이가 다친다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뭘 더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때,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영혼 삼키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새로운 스킬.
영혼 삼키기를 쓰면 상대의 영혼이 기화하며 끌려 나온다. 결이와 금룡의 영이 엉겨 붙은 게 문제라면, 혹 이 스킬을 가지고 둘의 영을 떼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하지 않은 가설이긴 하지만…….’
지금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괜한 시도로 결이의 영혼에까지 타격이 갈지도 몰랐다. 가만, 영혼 삼키기 스킬이 인간에게도 통하는 걸까?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스킬 설명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잘못해서 결이까지 삼켜 버린다면…….
‘하지만 금룡의 영을 끄집어낼 도구인 칼이 있는 상태니까, 금룡의 혼이 유도될 거다.’
망설임 속에서 번득인 것은 본능과 직감이었다.
금룡과 결이, 그리고 알 모두를 지키려면 지금 생각나는 것을 행동해야 한다.
‘제발……!’
스스슷.
후으읍.
숨을 들이마시자 금룡의 코와 입에서 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은하준……!”
금룡의 힘겨운 외침과 함께 그의 표정이 바뀐다.
“크윽.”
결이다. 결이의 얼굴로 결이가 비친다. 먼저 빠져나온 건 역시 예상대로 금룡의 영혼.
이제 어떡하지?
알.
알에 금룡의 영혼을…… 하지만 어떻게?
원래라면 단검을 통해 넘어가야 했다.
스으으읍.
금룡의 혼을 빨아들이는 순간. 끔찍한 격통이 시작된다.
사지가 메말라 비틀리는 기분.
끝없는 암흑 속에 내던져지는 기분.
내 정신과 혼과 몸이 분리되는 기분.
그 기분 속에서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알을 살려야 해. 금룡을…….’
일은 재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이 통증을 이겨내고 내가 완전히 금룡을 삼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금룡을 삼켜 소화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금룡 녀석이 소울 포인트로 환산되는 건, 그런 건 원하지 않았다.
* * *
‘여기가 어디지?’
언뜻 정신이 들고 보니 은봉 할머니의 개인실이 아니다. 고통과 소란이 사라져 정적이 흐르고 있다.
짹짹짹…….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적당히 작은 공간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는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불상 같은 것이 있다. 다만 모양은 내가 익히 아는 그것이 아니다. 뭔가 기이한 동물 여럿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상이 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그런 기분이 든다. 지구의 것과 아주 비슷하지만 다른. 향초와 등, 내가 모르는 언어로 쓰인 경전.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산속 암자다.
‘내가 왜 이곳에…….’
밖으로 나가자 숲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는 그 냄새를 정겨워하고, 그러다가 곳간 같은 곳을 발견한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다.
‘안 돼. 그건 건들지 마라.’
금룡의 목소리다.
“금룡?!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나와.’
“뭐?”
‘나를 그만 엿봐라.’
“나는…….”
‘네가 할 일을 해! 칼을 알에 박아라!’
금룡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칼이라니, 내게 그런 것은 없다.
그리고 왜 내 안에서 금룡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은하준!’
허억!
숨이 들이켜지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격통이 사지를 뻣뻣하게 만든다.
“크윽! 으아악!”
‘은하준! 칼을!’
“그런 게 어딨냐고! 여긴……!”
그 순간,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던 내 손에 작은 단검이 쥐어져 있다.
“헉, 허억.”
‘내리꽂아. 시간이 없다. 어서!’
“허으악!!”
눈물이 줄줄 흘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너무나 어지럽고 소란스럽다.
마치 금룡의 목소리가 천 개로 겹쳐 들리는 것만 같다.
“그만……. 그, 그만!”
그 와중에 이 고통을 끝내려면 어쩐지 곳간을 열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생각은 엄청나게 달콤해서 어느새 내 발이 곳간을 향해 걷고 있다.
낯설었던 풍경이 무자비하게 일그러진다.
피 냄새.
왜지?
코를 찌르는 피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질척이는 감각. 어느새 발목까지 차오른 피가…….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은하준! 정신 차려라! 그게 아니야!’
내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일까?
아니라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두려운 것일까.
내가 모르는 일이라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슬픈 것일까?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하준! 은하준! 네가 보는 것은 네 것이 아니다!’
“으윽, 크으흑! 조, 조용히……!”
금룡의 목소리가 너무나 거슬려서 참을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기억해 내. 은하준. 네가 하려던 게 뭐였지?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고 수많은 벌레가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알을 떠올린다.
‘은하준!!’
퍼어억!
정신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검을 내리꽂았다. 어디로 내리꽂은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온몸의 감각이 흐리고 무디고 예민하다.
엉망진창인 감각.
그리고 긴 숨이 내뱉어진다.
후우우우…….
내뱉어지는 숨과 함께 끝없는 고통이 쓸려 나간다.
몸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코와 입을 통해.
그리고 트럭에 치이는 것처럼 몸이 튕겨 나가는 것을 느낀다.
* * *
“헉, 허억.”
분명히 있는 힘껏 바닥을 굴렀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거나. 하지만 내 몸은 똑바른 자세였다.
물론 주저앉은 상태로 냄비 안의 알에 검을 박아 넣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 뭐야. 쿨럭.”
땀과 눈물, 콧물과 침이 온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알을 마주하자 순식간에 안도하게 된다.
“콜록, 콜록……. 윽……. 박살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네.”
단검은 금룡에게 박아 넣었을 때처럼 뭔가 이질적일 정도로 안정감 있게 알에 박혀 있었다.
알의 껍데기에는 미세한 금이나 흠집조차 없었다.
조금 전 난리를 친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다행이다.
“죽을 것 같아…….”
“죽으면 안 되지.”
“아아, 한결아……. 무사했구나.”
내 뒤로 핼쑥한 얼굴의 한결이가 가슴을 매만지며 서 있다. 그러다가 내 어깨를 부둥켜 잡았다.
따뜻한 손이 어깨에 닿자 돋았던 소름이 가라앉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름이 돋았었구나.
마음이 천천히 따뜻해진다.
“괜찮아?”
“괜찮은 것 같은데……. 너야말로 괜찮은 거야? 얼굴이…….”
그래, 지금 내 얼굴이 말이 아닐 거다.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스킬 같으니라고. 그래도 지금까지 중에 가장 길게 연기를 빨아들였던 것 같은데.
“금룡은?”
“몰라, 이제 내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무리 불러 봐도 반응이 없어.”
“제대로 된 건가…….”
스윽. 알에 박혀 있는 칼에서 손을 뗀다.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게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어서 말이야. 갑자기 뽑았다가 알이 부서지면 어떡해? 그리고…….”
나는 순간 화들짝 놀라 소울 포인트를 확인했다.
“휴우……. 늘어나지 않았네.”
늘어난 게 문제가 아니다.
가지고 있던 소울 포인트가 모두 사라졌다.
소울 포인트: 0
이 수치를 보는 건 오랜만인데.
“뭐가?”
“응? 아, 아냐.”
소울 포인트가 늘어났다면 내가 금룡을 완전히 흡수해 버린 것일 터. 하지만 수치가 그대로인 것을 보니 다행히도 금룡이 흡수당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소울 포인트가 사라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뭔가 도움이 되었다면 알을 향해 금룡의 영이 잘 주입되어야 했는데.
결이와 나는 심각한 얼굴로 알을 내려다보았다.
칼이 박힌 채로 알은 냄비 속 약탕에 둥둥 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온몸에도 약탕의 물이 튀어 젖어 있다. 아마 칼을 꽂아 넣을 때 젖은 모양이다.
하지만 냄새나 축축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금룡아?”
알을 향해 불러 본다.
미동조차 없다.
“주, 죽은 건 아니겠지.”
“흠. 그럴지도.”
결이 녀석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말했다.
이 자식, 아무리 그래도 거의 일 년을 한 몸처럼 지낸 녀석이 잘못됐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래서인가?
이럴 때가 아니다. 스킬을 사용해 보자.
츠츠츳.
[흑룡의 알]
영혼 등급: A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89%
정보가 뜬다.
살아 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알이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영혼 등급이 A로 올라갔다.
‘이건 분명 금룡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소리가 아닐까? 물론 영혼 상태는 아직 불안정이기는 하지만……!’
꿈틀.
“응? 방금 뭔가 움직이지 않았냐?”
“그래? 글쎄.”
“어어…….”
꿈틀, 빙글.
냄비 안에 있는 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시, 살아 있었어!”
“성공이다!”
꿈틀, 꿈틀.
빠자작.
“태, 태어난다?!”
빠직, 빠지직.
검이 박혀 있던 곳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약탕에서 알을 건져 올렸다.
툭.
단검이 알에서 빠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헉.”
단검이 빠진 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몇 개의 알껍데기 조각.
그 사이로 파충류의 눈이 보인다.
“끼륙.”
“아!”
“삐육.”
붉은빛의 눈이 깜빡거린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부화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삐익, 삑. 키르륵…….”
빠작, 빠자작.
알 안에 든 파충류가 서서히 껍데기를 깨기 시작했다. 작지만 분명한 발톱이 있는 앞다리, 오동통하긴 하지만 힘껏 박차고 뛸 수 있는 뒷다리. 동그란 배 안으로 돌돌 말려 있던 짧고 통통한 악어를 닮은 꼬리.
그리고 거의 2등신에 가까워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커다랗고 귀여운 머리가 등장한다.
“끼르르륵!!”
방금 태어난 아기 용이 내 품 안에서 기지개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