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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53화 (153/250)
  • 제153화

    제153편

    “별로.”

    그러고는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바뀐다.

    “정말?”

    “그래. 어차피 내게 들러붙어서 내 몸이나 탐내는 놈이었으니까. 난 얼른 떼어내고 싶어.”

    저렇게 말하면 분명 금룡이 또 뭐라고 할 텐데.

    내 예상이 맞았는지 결이의 표정이 잠깐 움찔거린다.

    “그래도 좋은 스승님이었잖아.”

    “‘좋은’은 빼자.”

    “그, 그런가.”

    “아쉬운 것 없어. 그렇다고 금룡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긴 하다.”

    우리가 하려는 방법은 반쪽뿐인 흑룡의 알과 금룡의 영혼을 합치려는 것.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다. 금룡은 아마도 불가능할 거라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기대하고 있단 말이지, 금룡 녀석.’

    내 표정을 살피던 결이가 조용히 읊조린다.

    “이제는 나 혼자서 온전히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딱히 혼자서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은데.

    결이는 은근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쓴단 말이야.

    ‘하긴 지금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지만, 금룡이 멋대로 몸을 빼앗았을 때는 위기감이 들 만도 했지.’

    갑자기 우리 결이가 되게 대견하고 그렇다.

    짜식…….

    “자, 그럼 냄비가 필요한데.”

    “냄비!”

    냄비를 들고 나타난 건 하케임이다.

    “어? 어떻게 알고 냄비를 찾아왔어?”

    “은하준과 한결에 관한 건 내가 다 알지. 우린 가족이잖아! 하하하.”

    되게 뜬금없지만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이긴 하다. 가족.

    “은봉 할머니에게 빌려왔다.”

    하케임이 건네는 냄비는 거의 솥의 형태였다.

    “딱 이런 게 필요하긴 했어.”

    “그런데 이걸 하려면 훈련실보다는 부엌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

    “으응, 그렇긴 한데.”

    “아, 그럼 차라리 은봉 할머니 개인실을 빌리는 편이 낫지!”

    하케임이 손뼉을 짝, 하고 친다. 은봉 할머니의 개인실은 훈련을 할 수 있게끔 모든 물건이 각성자용인 데다가 요리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한쪽에 부엌도 마련되어 있다.

    거의 할머니의 세컨드 하우스 느낌이랄까.

    “오오, 하케임 똑똑한데~!”

    “할머니 제작 작업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건 괜찮아. 할머니께선 오늘 상인회 분들을 만나러 외출하신다고 했으니까.”

    하케임이 이번에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린다.

    “그래, 그래. 너희들 할 것 하다가, 배고프면 이거 꺼내 먹고. 이것도 꺼내 먹고.”

    은봉 할머니 개인실을 사용하기 위해 갔더니, 마침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시던 참이었다.

    할머니는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이것저것을 꺼내 보여 주시면서 출출할 때 먹으라며 설명을 해 주신다.

    아니, 양문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있네. 이거 정말로 할머니의 세컨드 하우스가 됐구나 싶다. 하긴 방도 따로 두 개나 딸려 있으니까.

    “김치냉장고에 과일 있으니까 이거 꺼내 먹어도 되고. 알겠나?”

    할머니는 개인실을 나서기 전에 신신당부를 하신다. 우리가 공간을 어지르는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우리 먹을 것만 챙기고 계신다.

    “알겠습니다, 할머니. 오늘 재밌게 놀고 오세요. 외출하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죠?”

    “그래, 야야. 헌터 자격증 얻고 나서는 던전 공략할 때만 밖에 나갔다 아이가. 오늘은 아지매들이랑 시장에서 칼국수 먹을 기다.”

    “하케임이 경호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결이의 말에 은봉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음, 나는 좋다!”

    “물론 같이 다니는 것은 좋지만은……. 오늘은 아지매들끼리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하케임은 활짝 웃으며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은봉 할머니가 손을 저으며 말리시곤 재빨리 밖으로 나가셨다.

    사라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결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 보니 은봉 할머니가 하케임 너보다 연하신 거 아니냐?”

    “그렇지.”

    “그런데 왜 할머니라고 부르는 거야?”

    “너희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니까 그런 거다.”

    “뭐야, 그런 거야?”

    “그래!”

    하케임은 약간 머뭇거리더니 입을 연다.

    “게다가 저번에 윤은봉이라고 불렀다가 머리를 한 대 맞았다.”

    “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은봉 할머니에게 당당하게 윤은봉! 하고 외치는 하케임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왜 그런 짓을 했어.”

    “당연하지 않아? 한결 말대로 은봉은 나보다 연하인데……. 물론 외관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나는…… 초월……. 그래. 나는 이전 세계에서 초월자로 불렸단 말이다! 그래서 늙지 않은 것뿐인데!”

    “뭔가 새로운 기억이 떠올라서 좋긴 한데. 크크큭……. 너무 웃긴 거 아니야?”

    “뭐가 웃기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

    하케임은 큼큼거리며 약간 얼굴을 붉힌다.

    “자아, 이제 그만하고 알에게 약욕을 시켜 보자고.”

    결이가 팔을 걷고 냄비에 물을 받기 시작한다.

    곧 물이 끓고 나는 안사홍에게서 받아 온 몬스터 부산물을 넣었다.

    “윽.”

    “냄새가 고약하다.”

    결이와 하케임이 코를 쥔다.

    “확실히 고약한 냄새가 나네.”

    뭐랄까. 진한 한약재의 향이기도 하면서 소똥 냄새 같기도 하달까. 그러면서도 뭔가 진하게 달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오묘한 냄새였다.

    이제 한참을 우려내는 일이 남았다.

    “으음, 나는 볼일이 생각나서 이만 가 보도록 하겠다.”

    하케임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 때문에 도망가는 것 아냐?”

    “아, 아니야. 그런 것 아니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째 의심스럽다. 하지만 딱히 하케임이 이곳에 있지 않아도 상관없기에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훈련 열심히 해.”

    “으응, 두 사람도 알 부화시키기 힘내라!”

    하케임이 사라지고도 1시간이나 더 진득하게 국물을 우려내 주었다.

    금룡이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면서 엄청나게 참견을 해 댔기에 다른 것은 하지 못하고 오로지 냄비에 집중해야 했다.

    “자, 이제 알을 담그면 돼.”

    “금룡이구나.”

    이젠 결이의 얼굴로 낯선 표정을 짓고 있는 금룡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앞으로의 방법 때문에 결이가 금룡에게 몸을 내어준 모양이었다.

    “흥.”

    “너도 기대되지?”

    “기대는 무슨. 분명 실패할걸.”

    “툴툴대긴.”

    나는 알을 끓는 냄비 속에 넣으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보글보글보글.

    알이 빙글빙글 돈다.

    [흑룡의 알]

    영혼 등급: C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87%

    ‘등급이 C까지 올라갔다.’

    알을 슬쩍 쳐다보던 금룡이 넌지시 묻는다.

    “알 상태가 많이 호전됐지?”

    “응.”

    “그래. 너라면 깨달을 줄 알았다. 아마 녀석은 이 이상으로 호전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오늘 결단을 내는 것이 좋겠지.”

    사실 이건 스킬 덕분에 알 수 있었던 거지만. 금룡은 어쩐지 대견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알을 살릴 수 있을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냐. 네가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 줘야 가능한 거지.”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느니라.”

    금룡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금룡이 내게 알려 준 방법이라고 해 봐야 이 약탕에 알을 집어넣는 것뿐.

    “한결과는 그간 이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왔다.”

    내 불안한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금룡이 말을 덧붙여 온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라.”

    “내 생각엔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금룡 너인 것 같은데…….”

    “으흠흠. 무슨 소리! 나는 걱정 따위 하지 않아. 실패할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거, 자각은 하고 있는 거야?”

    “하아…….”

    금룡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더니 다시 은봉 할머니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흑룡의 알 따위에 이렇게 정성을 쏟다니.”

    그리고 어쩐지 자조 섞인 웃음을 띠며 얼굴을 매만진다.

    “잘 들어 둬라, 은하준. 이건 죽어 가는 용의 알을 살리는 마지막 비기다.”

    “…….”

    금룡 녀석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분위기를 잔뜩 잡자, 이제야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된다.

    “만 년 전……. 아니. 너희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겠지. 바로 여기, 지구 말이다.”

    금룡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끓는 냄비를 가지고 와 방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본래 내가 있던 차원에서도 전설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란 말이다. 그걸 내가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금룡의 차원에서도 전설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라.

    갑자기 지금 행하려는 일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영혼을 옮겨 재조립하는 일이라니. 그런 걸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단 한결의 몸에서 내 영을 뽑아낸다. 그걸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어. 무조건 안착시켜야 해.”

    “무슨 수로 영을 뽑아내는데?”

    “이걸 쓴다.”

    금룡은 작은 칼을 하나 꺼냈다.

    “안사홍을 통해 구한 아이템이다. 물론 거기에 내가 몇 가지 아이템을 더 조합했지. 당연히 방법이 아주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금룡이 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작은 칼은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단검처럼 보였다. 손잡이에 낡은 헝겊이 매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단순한 모양새였다.

    ‘저걸 만드느라 요즘 바빴던 걸까.’

    안 그래도 결이가 따로 훈련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편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금룡과 함께 저런 아이템을 만들고 있었다니. 대단하잖아?

    아무리 금룡 덕분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이걸로 나를 찔러라.”

    “뭐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널 찌르면 결이도 함께 다치잖아!”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게만 통하는 아이템으로 만들어 놨으니까.”

    “믿을 수 있는 거야?”

    “흥, 내가 한결의 몸을 상하게 하겠느냐!”

    “……어.”

    “…….”

    금룡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어쩐지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어쨌든 한결이 상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이미 이 검은 나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 놓았으니까. 나만이 만들 수 있고 내게만 반응하는 물건이다. 이걸 위해 모든 기력을 쏟아 넣었다. 그러니 두 번은 없어.”

    “일회용이란 말이야?”

    “그래.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만 년 동안은 다시는 만들 수 없다.”

    “인간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니까.”

    아닌 척했지만, 금룡 녀석은 이 일에 사활을 건 셈이다.

    그만큼이나 몸이 갖고 싶었던 걸까.

    어떻게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기회는 단 한 번뿐. 이 검으로 나를 찔러 내 영을 뽑아낸 다음에 알에 박아 넣거라. 그러면 내 영이 알에게 넘어갈 거다. 네가 할 일은 그것뿐이야. 나머지는 다 내가 하겠다.”

    “그것뿐이라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해도 괜찮은 거야?”

    “그래. 너라면 할 수 있다.”

    금룡의 눈빛은 어쩐지 간절해 보이고, 어쩐지 진실해 보였다.

    “날 뭘 믿고…….”

    “난 널 믿느니라. 은하준.”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난, 몰라. 하여튼 최선을 다할게. 시키는 대로.”

    “한결보다는 훨씬 고분고분한 점도 마음에 들고.”

    “확 취소해 버릴까 보다.”

    “흠.”

    금룡은 다시 자세를 잡더니 가슴팍을 내밀었다.

    “자, 여기다. 여기를 찔러라. 단숨에 찔러야 한다. 내가 신호를 줄 때.”

    “응.”

    후우우…….

    금룡이 눈을 감자 그의 주위로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결이가 능력을 쓸 때와는 조금 다른 빛이었다.

    무엇인가 부드럽고 따뜻한 빛.

    금룡만이 가진 기운인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금룡이 앉은 곳과 알이 담긴 냄비가 있는 바닥에 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츠츠츳.

    묘한 기운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만 년 만의 의식이라……. 전설……. 가만, 금룡이 있던 차원? 그렇다는 건 이 녀석도 시스템에 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녀석 내가 안간힘을 쓸 때 왜 조용히 있었지?

    일부러 모른 척했던 건가? 왜?

    “금룡…….”

    “자, 지금이다!”

    “헉.”

    술렁이는 마음과는 반대로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푸욱.

    칼이 금룡의 가슴을 깊이 찌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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