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제152편
아프다.
미친 듯이 아프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나갈 것처럼……. 그냥 아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큰 고통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이게 뭐지? 이래도 되는 건가?
끔찍함을 넘어서는 감각.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는 감각.
‘영혼을 먹는다는 건 이런 건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느껴지는 죄악감에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준!”
“하준아!”
“콜록, 콜록.”
나를 붙잡는 손길에 놀라 화드득 정신을 차리니 조금 전 모습 그대로인 던전의 풍경이 보인다.
놀란 팀원들도 결이도 하케임도 모두 그대로다.
‘순간 그냥 이 공간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어.’
연기를 바로 뱉어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그친 걸까.
‘하지만 내 스킬이잖아……!’
억울한 마음이 울컥 솟아오른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스킬을 사용했을 뿐이다. 영혼석을 섭취하는 대신 영혼을 그대로 섭취하면 소울 포인트를 더 준다기에.
스킬 설명에는 그런 고통이 따라올 거라고는 전혀 쓰여 있지 않았다.
제기랄, 빌어먹을 시스템 같으니라고.
“괜찮아?”
결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거지 같은 스킬 탓이야.”
“스킬?”
“새로운 스킬이 생겼는데, 이걸 제대로 쓸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네.”
결이의 표정이 어둡다.
“왜 스킬이 너한테 해가 되는 거지?”
“등가교환이라든가…… 인과응보라는 건가.”
“뭐?”
“하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랄까, 스킬이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영혼을 먹는다는 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일이야.’라고.
그러나 모순적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영혼석으로 섭취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내가 위대하고 고결하신 시스템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젠장.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 * *
“크윽!”
“컥!”
“콜록콜록!!”
“하준아! 인제 그만해!”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제대로 연기를…… 그러니까 영혼을 섭취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 모습을 지켜본 결이는 이제 나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스킬이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잖아.”
“하지만 이게 훨씬 빠른 방법인걸.”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무리를 해야겠어?”
결이 말도 맞다.
굳이 이 스킬을 쓸 필요는 없다. 영혼석으로 오르는 소울 포인트가 적어지긴 했지만, 아예 오르지 않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너무 아까운 기분이 든다.
이럴 거면 스킬이 생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런 스킬이 생긴 의미가 따로 있나?
‘영혼석은 부스러기 같은 건가. 그러니 섭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 영혼 삼키기 스킬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영혼이라…….’
그렇기에 상응하는 고통이 수반되는 걸까.
‘나 참, 일단 두고 보는 수밖에 없나.’
영혼 삼키기로 소울 포인트를 잔뜩 올리겠다는 희망찬 꿈은 잠시 미뤄 둬야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떻게 얻은 스킬인데 이대로 날려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면 숙련도가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지. 쳇.’
* * *
“그 소문 들었어요?”
“무슨 소문?”
깨끗하고 번듯한 건물의 복도에서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손에 들린 커피가 고소한 향을 풍긴다.
“D급 마나 골렘 던전에서 에테르석 광산이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여성의 말에 다른 여성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그녀는 여기가 복도인 것도 잊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정말요? D급 마나 골렘 던전에서?! 그럴 수가. 대박이다. 정말~!”
“심지어는 얼마 전에 국가 경매에 올라왔던 미공략 던전이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그럼 그런 노다지를 개인 길드가 소유하게 됐다고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술을 떨었다. 손에 들린 커피잔이 달달 떨렸다.
에테르석 광산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니.
“어, 그러고 보니 그거 우리 길드도 참여했던 경매 아니에요?”
상대편 여성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진다.
“맞아요. 우리는 그 경매에서 A급 던전을 낙찰받았잖아요.”
“허어……. 그 던전 뭐였더라. 뭐가 나오는 거였죠? 사실상 부산물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던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D급이라도 에테르석 광산이 나온 던전이 훨씬 나은 것 아녜요?”
“당연하죠.”
여성은 목소리를 낮춘다.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우리 길드가 처음에 그 D급 던전을 낙찰받았었대요. 그런데 마지막에 신선 길드랑 트레이드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누가 갔었는데요?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물론 당시에는 D급 던전에 광산이 있을 거라는 걸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아, 괜히 욕심 부리다가 잃기만 했네요. 그냥 인정했으면 에테르 광산은 우리 길드 거였는데……. 아깝다.”
“그 광산의 값어치를 생각해 봐요.”
“신선 길드라고 했나요? 그 길드는 광산 덕분에 몸집 좀 불리겠어요?”
“요 1년 사이에 그렇게 급성장한 길드가 없는데, 여간내기가 아니에요.”
“대단하다……. 거기 초기 멤버들은 돈도 엄청나게 벌었겠죠?”
“돈뿐이겠어요?”
복도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금성 길드의 행정부 직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복도에 김대승도 있었다.
신선 길드와 던전을 트레이드한.
‘젠장, 분명 그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진급이 확정되기는 했다. 진급도 했다. 하지만 D급 던전에서 광산이 발견된 이후로 그 자리는 가시방석이 되어 버렸다.
다들 김대승을 보는 눈초리가 따가웠다.
바보 같은 사람.
멀리 내다보지 못한 사람.
얄팍한 사람.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
하루아침에 김대승에 관한 평가가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A급 던전을 낙찰받은 후 어깨를 토닥여 주던 부장도 냉랭한 얼굴로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들 김대승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김대승을 불쌍히 여기지는 않았다. 그만큼 에테르석 광산은 어마어마한 자원이었다.
김대승은 자신을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 *
‘스킬은 스킬이고. 이건 이거니까.’
주문해 놓은 물건을 받기 위해 단홍 상사의 앞에 섰다.
늘 그렇듯 안사홍이 밝은 얼굴로 맞아 준다.
“이런 물건이 왜 필요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몬스터 알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인가요?”
내 말에 안사홍은 놀란 얼굴을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이다.
“엄……. 아마도요. 민간요법 같은 건가 보더라고요.”
“몬스터 알을 부화시키는 일에 민간요법이 있다고요?”
“아하하.”
정말 말 그대로 민간요법이다.
결이 안에 들러붙은 금룡이 알려 준 내용이니까.
“바다 유니콘의 발굽, 붉은 슬라임의 점액, 그린 고블린의 손톱…….”
안사홍이 물건을 하나하나 늘어놓는다. 그의 테이블 위로 색색의 아름답고도 소름이 끼치는 몬스터의 부산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맞네요. 좋아요. 다 있어요.”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입니다.”
물건을 챙겨 인벤토리에 집어넣다가 안사홍의 표정을 살핀다.
“여동생분을 찾는 일 말입니다.”
“아아.”
“잘 진행되고 있나요?”
“똑같죠. 뭐.”
그는 애써 밝게 웃어 보이려고 하는 듯했지만, 감출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 나왔다.
그렇지. 가족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가족을 찾고 기다리는 마음이 과연 어떨까.
오히려 가족을 떠나보낸 것보다 더 마음이 썩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뭔가 그 차원으로 다시 연결해 보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데 차도가 별로 없네요.”
솔직히 그때 그 차원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닐까.
그 차원과 다시 이어지려면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느낌조차 막막하다. 확실하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노력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애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작은 단서, 작은 희망이나마 생긴 것이니까요.”
안사홍은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을.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딸랑.
단홍 상사를 벗어나 얼른 차를 탄다. 최신형 SUV 차량은 이번 기회에 마련했다.
솔직히 서울에 살면서 자가용보다는 지하철이 빠르고 익숙해서 크게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심지어 나는 각성자니까) 저번 뉴 인트루더 사건 직전에 겪은 일 때문에 사게 됐다.
‘또 길에서 붙잡혀 사인이랑 셀카를 찍어 주는 일이 발생하면 곤란하니까.’
연예인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여드는 일이 자주 일어날까 싶었지만, 사적인 업무로 밖으로 나갈 때마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
‘매번 길드에서 집, 집에서 길드, 던전, 길드 차량을 이용하거나 해서 잘 몰랐는데 말이지…….’
확실히 몬스터 알을 데리고 다니면서부터 쉽게 눈에 띄나 보다.
또 한 차례 팬(?)들과 마주쳤더니 인터넷에 목격 썰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 거다.
나의 허들이 낮아졌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짜증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아직은 은근히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 준다는 감각.
이 기분에 취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자아, 그럼 가 볼까.”
역시 서울의 교통 체증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차를 한참 몰아서야 신선 길드 건물에 도착했다.
“결아.”
어떻게 알았는지 길드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결이가 마중 나온다.
“훈련하고 있었어?”
“응. 너는 단홍 상사 다녀왔지?”
“응.”
“물건은?”
“역시 안사홍 씨더라고. 필요한 건 전부 준비해 왔어.”
“그럼 오늘 바로 실시해 볼 수 있겠구나.”
“지금 당장?”
“금룡은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
“기대하고 있다고…….”
결이의 표정이 약간 움찔거린다. 분명 금룡이 뭐라고 한 거겠지.
금룡은 자기 속내를 들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금룡 역시 이 알을 무사히 부화시키는 일에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는걸.
“훈련실 하나를 빌리면 되겠지?”
“걱정하지 마. 내가 빌린 훈련실 시간이 아직 좀 남았거든.”
“그나저나 넌 괜찮겠어?”
“뭐가?”
“그래도 그동안 붙어 지낸 금룡이랑 떨어져야 하잖아.”
내 말에 한결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