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48화 (148/250)
  • 제148화

    제148편

    김대승은 오늘 하루 정말 운이 나빴다.

    아침에 일어나서 칫솔을 꺼내자마자 화장실 바닥에 떨어트렸고, 아침 식사를 할 때도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 댔다.

    자동차 열쇠를 놔두고 온 바람에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잡아타야 했고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출근길에 짜증이 치솟았다.

    결국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급한 마음에 사무실까지 달려가다가 다리를 접질렸다. 그리고 지금 던전 경매 결과도 예상했던 바와 달랐다.

    ‘A급을 노리고 있었는데…….’

    단 200원 차이로 신선 길드에게 A급 던전을 뺏긴 상황이었다. 다른 A급은 순위에도 들지 못할 만큼 예상 가격을 빗나갔지만, 어쨌든 눈앞에 2순위가 된 A급 던전이 아까워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D급 던전이라……. 하아, 심지어 마나 골렘 던전? 마나 골렘은 잡기는 번거로운데 부산물은 많이 떨어트리지 않아서 별로 좋은 몬스터는 아닌데. 물론 내가 현장에 나갈 건 아니지만…….’

    분명 상사인 심 부장이 한마디 꼭 할 것 같았다.

    김 대리는 D급이라느니, 운수가 나쁘면 계산을 잘해야 하지 않겠냐느니.

    물론 김대승은 할 말이 없었다. 심 부장은 낙찰에 갔다 하면 원하는 던전을 착착 따 오는 사람이었으니까.

    솔직히 계산력이 문제가 아니라 거의 운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실적을 착착 내 오는 사람이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침도 적게 먹었는데 입맛이 영 돌지 않는다.

    점심을 거를까 싶다가도 이런 사소한 불행에 점심까지 거른다면 험난할 오후를 어떻게 버틸까 싶었다. 그래서 행복해질 점심 메뉴를 심각하게 고르고 있던 차였다.

    “저, 안녕하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김대승에게 말을 건 것은 신선 길드의 은하준이었다.

    그의 얼굴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품 안에 있는 포대기를 보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은하준이로구나.’

    사실 김대승도 이전까지는 은하준에 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중국의 거대 길드 화룽에서 몬스터 알을 선물한 탓에 뉴스와 기사에 한바탕 이름이 오르고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만큼 화룽에게 몬스터를 선물받는다는 일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에 띄는 포대기에 알을 매달고 다니는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늘 한 번씩 더 잡았다.

    어쨌든 김대승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부러운 감정이 솟아났다.

    화룽에게서 받은 몬스터 알도 부러웠고 오늘 자신이 받고 싶었던 A급 던전의 낙찰을 받은 것도 부러웠다.

    그래, 1순위가 신선 길드였지.

    혹시 자신을 붙잡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싶었다.

    그런 무례한 짓을 누가 저지르겠냐만 김대승은 오늘의 계속된 불행 속에서 약간의 피해 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 것이다.

    “혹시 던전을 트레이드하실 생각이 없으신가 해서요.”

    “네?”

    김대승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왜 A급 던전을 낙찰받아 놓고 그걸 다른 사람과 바꾸자고 하는 것일까? 심지어 김대승이 쥐고 있는 표는 A급의 다른 던전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D급 던전.

    심지어는 마나 골렘이 나오는 시시한 던전이었다.

    ‘바보 아냐?!’

    하마터면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한창 긴장하고 있는데 은하준은 약간 민망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아, 그게……. 사실 저희 신선 길드가 아직 규모가 작은 길드거든요. A급 던전을 낙찰받아서 진행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요. 솔직히 오늘 A급 던전에 낙찰이 될지도 몰랐어요. D급을 노리고 왔거든요.”

    “아아……. 그러세요?”

    그렇구나.

    김대승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신선 길드는 아직 너무나 작은 길드다. 솔직히 말하면 1년도 되지 않은 신생 길드 정도는 김대승이 이름을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 신선 길드는 상당히 독특한 곳이었지.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규모적으로 아직 금성 길드처럼 큰 곳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민간 던전 대응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이 있으면 뭐 하나. 아직 A급 던전 하나 관리할 힘이 안 되는데. 안타깝구나.’

    하지만 김대승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저희야 상관없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김대승은 트레이드하자고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겉으로는 은하준을 걱정하는 척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네, 금성 길드에서 트레이드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안 그래도 서로 원하는 던전의 2순위니까 넘겨주기도 편하고요.”

    “그렇죠. 하하. 이것참, 이렇게 괜찮은 A급 던전을 넘겨받으려고 하니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아…….”

    “아, 아니 물론. 처지에 맞는 던전을 골라 열심히 활동하시는 게 맞긴 하죠. 하하하.”

    “그럼…….”

    “네네. 트레이드합시다. 나중에 가서 두말하기 없기입니다?”

    김대승은 아침에 겪은 모든 사소한 불운이 사실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 * *

    “자, 그럼 모든 일이 잘 해결이 됐고~!”

    개운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대호 형은 아직도 뭔가 께름칙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기야 A급 던전을 놓치고 이렇게 후련해하는 모습이라니. 이상하긴 하다.

    ‘얼른 던전 내부에 있는 광산을 알려 주고 싶군.’

    낙찰받은 던전을 배정받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린다.

    “잘될 거예요, 형.”

    “으응. 그렇지. 생각해 보면 우리 길드는 지금 민간 대응 무기 개발 때문이라도 너무 큰 던전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어.”

    “그렇다니까요?”

    “그래. 그럼 넌 길드로 바로 갈 거냐?”

    “아, 저는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요.”

    “그럼 나중에 보자.”

    대호 형이 먼저 자리를 떠난 후 나는 혼자서 거리를 걸었다.

    몬스터 알 부화를 위해 단홍 상사에 들를 생각이었다.

    ‘금룡 녀석이 구해 달라고 한 아이템 몇 개는 미리 주문해서 부탁해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도중,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와, 은하준이야!”

    “저거 봐. 저게 그 중국에서 온 알이지?”

    “대박이다. 은하준 실물이 훨씬 귀엽게 생겼어.”

    “야, 은하준이 저 정도면 한결은 어떻겠냐? 미쳤어. 완전 연예인 해도 되겠다.”

    “에헤이, 그건 좀…….”

    “뭐가 그건 좀이야?”

    웅성웅성.

    연예인도 아닌데 내 뒤를 잇는 여러 무리가 생겼다. 게다가 그들이 쑥덕대는 소리도 너무 잘 들려서 얼굴이 빨개질 것 같다.

    “저 알에는 대체 어떤 몬스터가 있는 걸까?”

    “알이 깨어나면 은하준은 펫이 두 마리가 되는 거야? 대박이다. 멋지잖아!”

    “펫을 두 마리 이상 키우는 각성자는 거의 없지 않아?”

    그러고 보니 펫을 두 마리 이상 부리는 각성자에 관한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미국 쪽이었던가? 펫을 두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다루는 각성자였지. 몬스터 술사였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세 마리 몬스터는 각각 다른 개체의 몬스터였지만, 모두 야수형이었기에 그 각성자의 별명은 케로베로스의 주인이었다.

    회귀 전에는 뭐,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저기, 죄송한데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네?”

    나를 따라오던 한 무리가 갑자기 불러 세운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서 굳어 버렸다.

    “사, 사인이요?”

    “네! 은하준 헌터 아니세요? 요즘 활약하는 모습 잘 보고 있어요. 저 6월 테러 때부터 쭉 팬이었거든요.”

    “네? 아…….”

    “아, 그때 저도 시위 현장에 있었어요. 제 동생이 각성자라…….”

    그가 내미는 수첩과 펜을 받아 들자, 주위에서 종이와 수첩이 밀려든다.

    한두 그룹이 그런 행동을 하고 내가 받아 주자, 조금 거리를 두고 있던 다른 그룹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서 지키세요!”

    “아, 왜 미는 거야~?”

    “무슨 구경났어요?”

    “뭐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또 다른 행인들까지. 점점 내 주변이 혼잡해지고 있다.

    “아, 여러분 저 잠시만요! 서로 밀지 마시고! 사, 사인해 드릴 테니까…….”

    이 상황에서 계속 사인을 해도 되는 건지 불안해진다.

    지금까지는 마음껏 거리를 활보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긴 해도 그저 지나치며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사인이라니.

    머리가 뱅뱅 돈다.

    끼익.

    그때 갑자기 도로변에 검은색 세단이 멈춰 섰다.

    사실 차가 멈춰 선지도 몰랐는데 빵빵! 울리는 경적에 놀라 돌아보니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이 있다.

    원래라면 정말 반갑지 않은 얼굴이어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엄청나게 반가운 얼굴이 되어 버렸다.

    “내 차 안 탈래요?”

    선글라스를 벗은 장우택이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 * *

    대충 사인과 인사를 정리하고 도망치듯 올라탄 장우택의 차 안은 고요하고 편안했다.

    차에는 관심이 없어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승차감이 좋다는 건 알겠다.

    전기 차인가?

    “후우,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기를 선물하고도 내가 고맙다는 말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장우택이 내 품에 안겨 있는 포대기 속 알을 흘긋 보며 말한다.

    “그럴 리가요. 기분 탓이겠죠.”

    “그런가?”

    “후우, 어떻게 마침 거길 지나치……. 설마 스토킹 같은 거 하는 건 아니죠?”

    “세상에.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여기 근처 호텔에서 묵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야, 은하준 님을 열렬히 사모하고 있으니 머리 끝자락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본 거고.”

    “얼씨구.”

    “얼씨구?”

    “아닙니다. 흠흠.”

    그래도 화룽의 대단한 각성자인데 얼씨구까지는 너무 심했나 싶어 헛기침을 한다.

    “은하준 님 대단한 스타가 되셨네요.”

    “이게 다 장우택 씨 때문 아닙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몬스터 아빠라는 별명이 붙어서인 것 같으니까. 이걸로 여론이 나를 더욱 친근하게 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진보라가 그렇게 이야기했었지. 바깥에 나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저 때문입니까? 이미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장우택은 일부러 더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는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 홍콩 한가운데인 것 같기도 하고.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네.

    새삼 깜짝 놀랐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그의 얼굴을 더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앗, 이사님.”

    즈즛……. 츠츠츳.

    기사의 부름에 앞쪽 창문을 보자, 공중에서 던전 포털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