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제147편
[영혼 삼키기]
대상의 영혼을 직접 삼킨다.
소울석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울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와, 스킬 이름 한번 살벌하네.
하긴 지금까지도 영혼석이라는 걸 맛있게 섭취하고 있었으니 딱히 살벌할 것까지는 없나? 어쨌든 회귀 전에 가지고 있던 스킬이 아니다 보니 생경하고 조심스럽다.
‘영혼석을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울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니.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스킬이잖아.’
안 그래도 영혼석을 먹으면서 소울 포인트 모으는 게 더뎌지고 있었다.
‘한번 써 볼까.’
쓰러진 나가의 시체에 다가가 스킬을 발동시킨다.
[대상에게 영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상에게 영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상에게 영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라라. 이미 죽은 상대에게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상대에게 바로 쓰는 스킬인데, 힘이 넘치는 쌩쌩한 상대에게 쓰기는 어렵겠고……. 힘을 뺀 뒤에 사용하는 식이려나.’
마치 몬스터공을 사용할 때처럼 말이다.
‘오늘은 몬스터들을 다 쓸어버렸으니 다음 기회에 사용해야겠군.’
주위를 둘러본다.
부서진 잔해와 박살 난 도로, 대피하는 사람들과 검은 연기가 가득하다.
* * *
“은하준 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우리 화룽에서도 은하준 님이 보여 주시는 성의 표시에 감동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장우택이 웃는 낯으로 마치 나를 안아 주기라도 할 것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다가온다.
“장우택 씨가 여긴 웬일입니까?”
“웬일은요. 친구를 만나러 왔지요. 아이고 요놈, 요놈. 잘 크고 있나 몰라.”
장우택은 퍼스널 스페이스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투로 다가와 포대기에 싸여 내게 안겨 있는 알을 톡 건드린다.
몸을 쓱 빼니 장우택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제 제 알이니까요. 조심해 주세요.”
“아하하! 그렇죠. 맞죠.”
그는 한바탕 웃어넘기더니 턱을 매만지며 만족스러워한다.
“좋은 부모가 되겠습니다. 은하준 님~!”
“뭐, 그렇죠.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일입니까?”
“별일이 있어야만 옵니까? 따지자면 제가 이 알의 아빠고 하준 님은 엄마니까 자식이 잘 크고 있나 궁금해서…….”
“…….”
대체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얼굴을 하자 장우택이 민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린다.
“은하준 님은 제게만 너무 차가우신 것 아닙니까?”
“장우택 씨에게만요? 그럴 리가요.”
“한세희 길드장과는 친해 보이던데.”
“뭐라고요?”
화들짝 놀라자 장우택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웃음기가 가득한 표정이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십니까?”
“한세희 길드장과 친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라서요?”
“하지만 한세희 길드장은 늘 은하준 씨 이야기만 하던걸요.”
“네?”
정말 의외의 말을 들어 버려서 머릿속이 멍해진다.
한세희가 내 이야기를……? 그것도 장우택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제 이야기를 한다고요?”
“네, 그렇게 대단한 헌터라면서. 잠재력이 어쩌고저쩌고. 그러니까 제가 소개해 달라고 그렇게 매달린 것 아닙니까. 하하하.”
“농담이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세희가 나에 대해서 좋게 말할 이유가 없다. 나쁘게 말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흐음.”
장우택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장우택 씨. 아무 이유도 없이 이곳에 놀러 오신 게 맞네요.”
“그렇죠.”
“여긴 놀이터나 카페가 아니라서요. 이유 없이 들락거리지는 말아 주시죠. 엄연한 사업장이거든요. 업무 방해입니다.”
“아아, 쌀쌀맞으셔라. 다음번에는 선물을 준비해서 와야겠네요. 그렇지 않으며 이렇게 차가우시니.”
“바쁘다, 바빠. 바쁜 현대 사회 아니겠습니까. 장우택 씨도 어서 업무 보러 가세요.”
“어어어, 밀지 마세요. 그러지 않아도 얼굴만 보고 갈 참이었습니다.”
“흥.”
그렇게 장우택이 쫓겨났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결아, 왜 갑자기 또 네가 삽질을 하는 거냐.”
결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장우택이 사라진 길드 로비 현관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렇잖아. 남의 길드에 저렇게 스스럼없이 침입할 수 있다는 건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어?”
“그건…….”
“그건 내가 신경 써야 할 문제 같구나.”
“대호 형.”
결이와 내 뒤에서 나타난 건 대호 형이었다.
“길드장으로서 얕보였기 때문이겠지?”
대호 형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탄다.
“다들 진정해요. 침입이니 뭐니, 일단은 장우택도 방문객 신분으로 온 거고, 거슬린다면 이제 들여보내지 않으면 될 일이에요.”
“과연 그 남자가 출입을 통제당한다고 오지 않겠어?”
“에이, 그래도 그 정도 사회성은 있겠지.”
“난 아니라고 봐.”
결이는 장우택을 무슨 몬스터 1 정도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귀찮게 굴기는 했지만, 그래도 법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장우택이 와서 알을 잘 부화시키는 방법을 공유해 줄지도 모른다.
또 화룽은 중국 최고로 손꼽히는 길드.
우리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없지. 너무 화룽이 우리를 쥐락펴락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여간에 길드의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것은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는 바야.”
대호 형은 양팔로 팔짱을 끼며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던전을 대상으로 한 국가 경매가 있어. 세 군데야. A급인 다른 두 곳은 경쟁이 너무 치열할 것 같고. 우리가 노리는 곳은 그나마 D급 마나 골렘 던전인데 예측으로는 3층까지 있고. 우리는 뭐든 하나라도 더 배정받으면 좋은 입장이니까.”
국가 경매란 국가에서 관리하기 힘든 여분의, 또는 새로운 던전의 권한을 길드에게 넘기는 것. 배당받은 던전 부산물로 사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마나 골렘이 등장하는 던전은 공략에는 까다롭고 부산물은 별로 없어 인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별로인가?”
“좋은 생각이에요.”
마나 골렘 던전.
그 이름을 듣자마자 생각났다.
이쯤에 발견되는 마나 골렘 던전은 3층에 에테르석을 채굴할 수 있는 광산이 존재하는 곳이다.
“어떻게든 우리 길드가 배정받으면 좋겠는데요.”
“그래? 마나 골렘 던전은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은 던전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형 말대로 우리는 지금 발로 뛰어서 뭐라도 실적을 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D급 마나 골렘 던전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뛰어도 괜찮을 등급이고요.”
“항상 너만 너무 부려먹는 것 같아서 문제지.”
“아녜요. 인화 선배가 가르치고 있는 초급팀도 있고요.”
특히 우리 길드에는 은봉 할머니가 있으니 에테르석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던전을 갖게 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거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에테르석의 가치를 아무도 몰랐어야 했지. 그래도 아직 공략이 끝난 던전이 아니라 광산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잘됐어.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경매가 끝나야 할 텐데.’
회귀 전에는 이 던전의 권리를 금성 길드가 가져갔던 걸로 알고 있다. 심지어 금성 길드는 이 던전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해 한창 방치하고 있다가 몇 년 만에야 광산을 발견해낸다.
‘그럴 거면 우리가 지금 당장 먹어서 활용해 주는 게 좋지.’
* * *
경매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경매 담당 인원이 모여 금액을 적어 제출하고 가장 높은 가격을 쓴 길드에게 낙찰이 되는 방식이다.
‘일일이 모여서 해야 한다는 게 엄청나게 구시대적인 방법이지만 말이야.’
아직 각성자와 관련해서는 따로 행정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직접 모이는 일이 많았다.
“결과가 나왔네요.”
“어라, D급 마나 골렘 던전이 2순위……. 대신 A급 던전 하나가 1순위네요.”
“그러게. A급은 조금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래도 A급이니까 이대로 진행하는 게 좋겠지?”
아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A급의 곤충류 던전이 더 가치가 높게 느껴지지만, D급 던전 안에 있을 광산을 생각하면 전혀 아니다.
“저 A급 던전은 저희 길드가 맡기에는 조금 버거운 것 같아요.”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A급 던전인데 포기하기는 좀 그렇잖아. 무리를 해서라도 가지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제 생각에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꼴인 것 같아요. 이 정도 A급 던전에서 물량을 수급하려면 우리 S급 인원들이 너무 많이 참여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네 말은 지금 A급에서 버겁게 물건을 공수하는 것보다는 물량 공세를 할 수 있는 던전이 우리 길드의 급에 맞는다는 거지?”
“그렇죠. 너무 버거운 던전에 무리하게 도전하다가 뻑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흐으음. 항상 네가 해 오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긴 하지만……. 그래, 몸을 사릴 때도 있어야겠지?”
대호 형은 약간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니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셋 다 아직 검증되지 않고 미공략 상태인 던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A급이라고 하더라도 상위권 A급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우리 길드는 적은 인원인 A급 이상의 헌터가 전부 몰려가야 한다.
지금까지도 거의 그렇게 활동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제 길드의 힘을 키울 차례기 때문에 밑에서 받쳐 주는 헌터들이 사용할 던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D급 던전이 숨기고 있는 광산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까!
저 속이 빈 A급 던전보다 훨씬 가치 있는 D급 던전을 알아볼 수 있는 거다.
가만 보자, D급 던전의 1순위는…… 길드 금성이군.
슬쩍 금성 담당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금성 담당자는 D급 던전을 낙찰받아서인지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저희는 A급-1 던전을 낙찰받은 신선 길드인데요.”
“그런데요?”
“혹시 던전을 트레이드하실 생각이 있나 싶어서요.”
“예?”
금성의 담당자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완전 바보 아냐? 라는 생각이 얼굴 위로 스치듯이 지나간다.
‘바보 아니거든. 물론 바보 같겠지만.’
나는 최대한 어수룩하게 웃어 보였다.
“아아, 그게……. 사실 저희 신선 길드가 아직 규모가 작은 길드거든요. A급 던전을 낙찰받아서 진행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요. 솔직히 오늘 A급 던전에 낙찰이 될지도 몰랐어요. D급을 노리고 왔거든요.”
“아아……. 그러세요?”
금성 담당자의 얼굴에 밝은 빛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