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제145편
“역시 너, 방법을 아는 거야. 그렇지?!”
“무, 무슨 방법을 안다는 거야……!”
초조한 표정을 보니 내가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망량아!”
“네, 주인님!”
“네가 아는 모든 정보를 총동원해 봐. 혼이나 백이 망가진 자가 살아갈 방법이 있나? 한쪽이 부족해도 제대로 태어나거나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건지?”
“사실…… 제가 알기로는 그런 방법은 없어요. 중간에 혼이 망가져 백만 남은 존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거든요. 이지 없이 몸만 살아 있는 것 말이에요. 반대의 경우는 사실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건데…….”
망량이는 금룡을 힐금 보았다.
“대부분 백이 없으면 혼, 그러니까 영은 묶여 있기가 힘들어요. 육체와 더 친한 것이 백이니까요. 대부분의 영은 날아가 버리죠.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혼비백산!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 그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혼백은 땅으로…….”
“잠깐, 잠깐.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잖아. 그러니까 금룡처럼 영만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뭔가에 묶여 있어야 한다?”
“그렇죠. 금룡이 아이템에 묶여 있다가 결이 님에게 들러붙은 것처럼 말이에요.”
“흐음…….”
그렇다. 복잡하지만 영혼과 혼백의 원리가 대강 그런 거라고 치면……. 사실 알의 영은 이미 떠난 상태.
금룡의 말대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혼백 때문에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라는 거다.
‘그러니까 영이랑 백이랑 같이 있어야 한다. 반쪽짜리다. 이 말이잖아.’
그렇다면 알을 부화시킬 한 가지 방법이 있지 않은가.
“금룡의 영을 이 알에 묶으면 될 일 아냐?”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런 단순하고 바보 같은 녀석아.”
금룡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 녀석, 이미 내가 이런 결론에 도달할 거라는 걸 알고 처음부터 그렇게 반감을 가졌던 건가?
“애초에 그런 방법도 말이 안 되는 거지만……. 이 몸이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녀석에게 들어가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적어도 검증된 녀석의 몸에 들러붙어 있는 게 낫지.”
“무슨 소리야. 이 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네게도 좋은 것 아냐?”
“흥!”
“잘 생각해 봐. 어차피 넌 결이의 몸을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지 못해.”
금룡은 어쩐지 뜨끔한 얼굴로 천장을 노려보았다.
“나는 딱히……. 그저 내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녀석을 시험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것치고는 결이 몸을 굉장히 탐냈던 것 같은데. 지금 그 상황이 답답한 것 아니야? 네 몸을 갖고 싶은 것 아니냔 말이야.”
내 말에 금룡은 눈을 가늘게 뜬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유추하기 어려운 일도 아닌데, 아주 비밀스러운 사실을 들켰다는 듯이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그야 아까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까 속이 답답했던 것뿐이지. 게다가 이 녀석도 이 몸에게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느니라. 그냥 봐줄 만하다는 것뿐이다.”
“그렇지, 그렇지. 금룡 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데 네게 딱 어울리는 몸이 있겠어?”
“지금 비꼬는 것이냐?”
금룡은 금방 날을 세웠지만, 나는 녀석을 다독였다.
“아니, 비꼬는 게 아니야.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전에 네가 싸우는 모습을 나도 잘 봤잖아. 결이처럼 강력한 몸을 갖고도 뭔가 아쉬워 보였달까.”
내가 편을 들어주자 금룡의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생각보다 녀석을 설득하기가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장인은 장비를 따지지 않는 법이라고들 하지.”
“그래. 그러니 내가 한결 이놈처럼 멍청한 녀석도 잘 이끌어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은가.”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야. 한결이는 정말로 많이 강해졌거든.”
금룡의 말이 옳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금룡은 퍽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확실히 한결이가 회귀 전에 비해서 무진장 강해졌지. 거기엔 내 몫도 있지만, 금룡의 몫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특히나 검술 같은 부분은 회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마치 예술 같아졌으니까.
“그런 네게 알맞은 진짜 몸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야. 네게 몸이 생긴다면 결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테고! 우린 네 도움이 늘 필요하니까!”
“흠흠.”
“게다가 아직 이 알 속에 있는 용의 몸은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너와 합쳐지면 엄청나게 강한 용으로 부화하는 것 아니야?”
“너는 혼과 백이 합쳐지는 일이 쉬운 일인 줄 아느냐?”
“나야 아는 게 많이 없으니까 당연히 모르지. 그러는 금룡, 너는 아는 게 많아서 그 방법 역시 잘 아는 것 아냐?”
“……없다니까 그러네.”
금룡은 약간 곤란한 얼굴이 된다. 그러더니 이내 안색을 싹 바꾸고는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자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역시 뭔가를 알고 있다. 이 녀석.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는 방법을 사용하는 건 당장에 무리가 있다. 이 알 녀석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이지.”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이 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든다면 확실히 방법이 있다는 말이지?!”
“흐으으음…….”
“아까도 말했지만, 예전부터 생각했었어. 금룡 네게 새로운 신체가 있다면 우리 전력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야. 육체가 없는 지금도 이렇게나 큰 도움이 되고 있잖아? 이번 일은 너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니야?”
“흐으으으음……. 흠흠, 큼큼. 그럴지도.”
없는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다. 금룡의 기분이 좋아진 게 틀림없다.
“방법을 알면서 왜 그렇게나 거부감을 보였던 거야?”
“그야……. 나조차도 100%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말이야.”
생각보다 겁쟁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혹시나 지금 알과 함께 부화해 새 신체를 손에 넣겠다는 마음이 변할까 봐 말이다.
지금은 금룡이 내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내 영과 저 알의 혼이 합쳐진다면 과연 내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물론 나는 대단하신 금룡이니 분명 내 영이 훨씬 많이 남아 있겠지만……. 뭐, 그렇지만…….”
실망한 표정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금룡은 다시 알을 힐끔거린다.
“그래도 네 스킬을 이용해서 알이 금방 죽지는 않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어, 그래?”
“그래. 꽤 쓸모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 ……너는 생각보다 쓸모가 참 많단 말이야.”
“칭찬하는 거지?”
“흠흠. 내가 언제 네게 칭찬을 하지 않은 적이 있더냐? 애초부터 나는 너를 탐내고 있었거늘.”
“징그럽긴.”
“하!”
금룡이 괘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소울메이트를 이용해서 알을 보호하고 있다 보면 정말로 알을 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금룡, 너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거지?”
“흠흠. 뭐어. 그것보다도 네놈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 말이지.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내가 너희를 도와주는 것뿐이니까…….”
금룡은 애써 눈을 돌리며 입술을 삐죽거린다.
귀까지 새빨갛게 변할 만큼 흥분한 걸 보니 확실히 새 몸을 가지게 되는 걸 기대하는 눈치다.
“어쨌든 주인님이 이 알의 인큐베이터가 된 거네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책임이 훨씬 막중해진 것 같네.”
알을 내려다본다.
그래, 기왕에 내 손에 들어온 녀석이니까. 네가 제대로 태어날 수 있게 한번 노력해 볼게.
나는 영을 붙들어 두는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알이 죽지 않도록 24시간 함께 다니는 법은 알고 있지.
“…….”
“……?”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슬슬 들어가고 싶은데.”
“예전엔 마음대로 들쑥날쑥하더니, 이제 못 하나 봐?”
“……크흐음, 한결이 이 자식이……!”
금룡이 뭐라고 하려는데 일순간 눈빛이 바뀐다.
결이로 돌아온 거다.
“헤헤.”
“대단한데 한결!”
결이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인다. 계속 성장하고 있구나.
* * *
“길드 화룽이 은하준에게 선물한 몬스터 알은 과연 무엇의 알일까?”
“은하준 몬스터 아빠 되다.”
“은하준에게 몬스터 부화 스킬이 있는 걸까?”
“과연 알은 언제 깨어날까?”
“화룽의 장우택은 왜 은하준에게 몬스터의 알을 선물했나.”
“해외 길드와의 거래를 통한 신선 길드의 전망.”
진보라가 휴게실에서 휴대폰을 보며 내게 열심히 기사 제목들을 읽어 주고 있다.
“이렇게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그렇게나 많이 난단 말이야?”
“그렇게 애지중지 포대기에 싸고 다니니까 기사가 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솔직히 너무 튀어요.”
진보라가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포대기 안의 알을 내려다보았다. 알에게 24시간 소울메이트를 해 주기 위해서 이게 필요했다. 이렇게 하면 언제 어디든 알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아빠로 불리다니…….”
“그런 건 크게 상관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쏠린 것 같더라고요.”
진보라의 말에 인화 선배도 거든다.
“맞아, 댓글 같은 거 보니까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 너랑 화룽이랑 어떤 관계인지부터 앞으로 그 알이 태어나고 나면 우리나라 각성자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같은 거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을지 댓글을 보지 않아도 얼추 예상이 간다.
이대로 알이 잘 태어나서 우리나라 각성자들이 펫을 구하는 데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들.
“화룽 덕분에…… 원치 않았지만, 스타가 됐네요.”
“그나저나 던전 공략에 알을 데리고 가도 되겠어요? 그러다가 알이 깨지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그런 점을 다 고려하고 있지. 이 포대기는 보통 포대기가 아니란 말씀.”
내 말에 한쪽 소파에 앉아 계시던 은봉 할머니가 어깨를 으쓱하신다.
“이건 은봉 할머니 특제 포대기. 방어 기능이 +70이나 되는 무시무시한 아이템이라고.”
“이 포대기에 그런 어마어마한 특성이 붙어 있다고요?”
진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뿐이야? 화염 내성, 냉기 내성, 독 내성, 마법 내성까지 들어갈 수 있는 내성은 다 들어갔다고.”
“할미가 그렇게 만드느라 삭신이 아주 쑤신다 아이가.”
은봉 할머니가 허리를 퉁퉁 튕겨 보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