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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38화 (138/250)
  • 제138화

    제138편

    분명 후방을 지키고 있어야 할 인화 선배가 왜 선두로 온 걸까?

    의아한 마음에 뚫어지게 바라보는데도 인화 선배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럴 리가 없어.’

    손을 뻗다가 멈칫한다.

    ‘설마…….’

    미믹?

    “다들 멈춰요!”

    촤르르륵!! 곧장 사슬이 솟아올라 내 옆에서 걷던 인화 선배를 옭아맸다.

    “헉! 하준 님?”

    “하준 님 왜 그러세요?!”

    “이, 인화 팀장님!”

    “으응? 나?”

    뒤쪽에서 인화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내가 붙잡은 인화 선배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든다.

    내가 알고 있는 인화 선배의 얼굴과 아주 닮았지만, 미묘하게 부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미믹이다.”

    “네?!”

    “잠깐, 뭐라고요?!”

    팀원들이 당황하는 동안 인화 선배로 둔갑한 미믹이 입을 쩌억 벌린다.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쭈욱 찢어지는 턱.

    “으아아악!”

    “진정해요!”

    술렁거리는 팀원들을 살짝 뒤로 밀며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촤르르륵!! 사슬이 튀어나와 인화 선배의 얼굴을 한 미믹을 붙잡는다.

    “캬아아악!!”

    곧장 암시야를 발동해 어둠에서 벗어났다. 그제야 미믹의 끔찍한 형상이 제대로 보인다.

    인간과 비슷한 높이로 팔다리를 접고 있었지만,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펼친 사지는 인간의 것보다 3배는 길었다. 게다가 팔이 4개, 두 쌍이다.

    전신이 피부를 벗겨낸 것처럼 끔찍하게 생긴 놈인데 이런 놈을 잠시나마 인화 선배로 착각하다니. 선배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복도가 좁고 시야가 어두워 다른 팀원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스릉.

    은봉 할머니 덕분에 강화된 새벽의 검을 꺼냈다.

    ‘이번 습격에서는 내가 처리해야겠다.’

    최대한 서포트만 하고 전투는 신입들의 위주로 굴리려고 했는데 어둠 속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당장은 나뿐이다.

    “키아아악!!”

    뚜둑, 뚝!

    미믹이 사슬을 끊어낸다. 그리고 곧장 기다란 팔다리를 휘둘러 정신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흐아악!”

    혼자 떨어지게 된 민승호가 겁에 질려 결국 바닥에 주저앉는다. 하지만 괜찮다. 어그로는 확실히 내가 끌고 있으니까.

    스슷.

    미믹을 향해 새벽의 검을 휘두른다. 감히 미믹이 예상하지도 못할 빠른 움직임이다.

    미믹 역시 어둠 속에서 인간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완벽한 암시야를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겐 암시야가 있으니 미믹보다 내 시야가 더 밝을 터다.

    “주위를 잘 살펴요! 동료의 얼굴을 한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그런!”

    “으아아, 너무 끔찍해!”

    “너! 너 진영이 맞아?!”

    “맞아, 이 바보야!”

    아직 팀원들이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스각! 서걱!

    새벽의 검은 계속해서 미믹을 베어내고 있다.

    “케이이에에엑!!”

    기동성이 별로 좋지 못한 미믹은 제대로 도망쳐 보지도 못한 채 쓰러졌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미믹은 그 자체로는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니까. 방심하지만 않으면 돼요.”

    “맙소사. 너무 끔찍해요. 팀장님으로 변장하다니. 미믹이 인간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고레벨 미믹은 드래곤도 흉내낸다고 하더라.”

    “으아아.”

    “자자, 일단 다들 진정하고 앞으로 가야죠. 미믹이 나왔으니 슬슬 첫 번째 스테이지가 끝나가고 있을 겁니다.”

    “네!”

    “하준 님만 믿고 갑니다.”

    인화 선배도 앞으로 와서 내 어깨를 토닥인다.

    “아주 잘해 줬어. 두 번째 스테이지 클리어까진 좀 부탁하자.”

    “네, 누나.”

    * * *

    화르륵!

    성 내부의 등불에 모두 불이 피어올랐다.

    “드디어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네요.”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이제는 하준 님께만 너무 의지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죄송했습니다.”

    이재욱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는다.

    “뭘요. 이러려고 같이 온 건데요. 한데 생각보다 어두운 곳에서의 대비가 떨어지기는 한 것 같아요. 다들 브리핑으로 던전 상태를 알고도 별다른 준비 없이 왔다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부끄럽네요.”

    “다음 던전부터는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 등을 꼼꼼하게 챙기는 게 좋아요.”

    “네!”

    “알겠어요, 하준 님!”

    “자, 그럼 이번 던전은 아이템이 잘 나오기로 유명하니까 다들 파밍 좀 해 봅시다.”

    “좋아요!”

    밝아진 성 내부를 팀원들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인화 선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역시 은하준~! 넌 원래부터도 이렇게 사람들 가르치는 걸 잘했지.”

    “에이, 뭘요. 방금은 선…… 누나가 했던 말 그대로 반복했을 뿐인데요.”

    “그래도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넌 항상 그랬다? 사람들을 잘 챙기고 잘 이끌고. 어쩌면 내가 길드에서 이런 일을 맡아 하는 건 너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예?”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다.

    인화 선배야 모르지만, 그런 것들 모두 선배에게 배운 것이니까.

    그런데 이번의 인화 선배는 내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 말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하하, 그랬나요.”

    “넌 정말 누구에게든 모범이 돼. 하준아.”

    “또 비행기 띄워 주신다.”

    “참 나, 누가 비행기를 띄워 준다는 거야. 난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걸?”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머, 얘 봐라?”

    “주인님.”

    인화 선배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망량이가 슬쩍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응?”

    “수수께끼를 찾은 것 같아요.”

    “수수께끼라고?”

    던전에서 수수께끼를 찾은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수수께끼라고?”

    옆에 있던 인화 선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망량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망량이가 포르르 성의 방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방으로 향했다.

    “언제 여기까지 수색한 거야?”

    “전 수수께끼의 마나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엣헴.”

    “하긴 맞아. 잊고 있을 뻔했네.”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던 거대한 방에 비해 망량이가 찾아낸 방은 조그마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침실 같달까?

    하지만 어린아이의 것이라고는 해도 온갖 고급 천과 금실로 수놓아진 커튼에 아름다운 무늬로 짜인 태피스트리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석도, 침대도 장난감들도 던전의 상태와 비교하면 굉장히 고급진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여기요.”

    망량이가 가리킨 곳은 침대 옆이었다. 침대 기둥 옆에 굵은 실뭉치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있었다.

    사실 흔히 생각하는 손잡이와는 모양이 조금 다르고 고급스러운 동아줄이 천장에 설치된 형태랄까.

    그냥 대충 훑어봤다면 여러 개 달린 장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수께끼일지도.’

    간만에 아주 횡재했다.

    “잡아당기면 돼?”

    “아마도요.”

    망량이가 불꽃을 이글거리며 끄덕거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구그그그그…….

    손잡이를 당기자 벽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뭔가요?!”

    “하준 님?! 팀장님?!”

    건넌방에서 팀원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이리로 와 봐요. 수수께끼가 있어요.”

    “수수께끼요?!”

    “그거 업적이나 아이템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게 이런 던전에도 있다고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서 남아 있었던 수수께끼인가 봐요.”

    내 말에 이재욱이 성큼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수께끼들은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들게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수수께끼들을 찾아내는 것도 엄청나게 운이 좋거나 실력이 뛰어나야 하죠. 하준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야.”

    “그리고 이렇게 함께 수수께끼를 공유하다니…….”

    이재욱이 감동을 한 듯 눈을 반짝였다.

    “아, 물론 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도 기여도에 따라 업적이나 보상을 받는 사람이 정해지는 건 알고 계시죠? 가끔 수수께끼에 참여한 인원 모두에게 아이템과 경험치가 분배되기도 하는데 그건 흔치 않은 경우고요.”

    “아……. 그런 겁니까?! 수수께끼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하긴 아직도 수수께끼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니까.

    우리나라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빨리 던전 수수께끼에 관해 알아낸 경우이기도 하다.

    드드드……. 그그그…….

    팀원들이 거의 다 작은 방으로 모일 때쯤, 한쪽 벽에 거대하게 걸려 있던 태피스트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또 다른 통로가 등장했다.

    “우와…….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요?”

    “그러게. 하준아, 너만 믿는다.”

    인화 선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선배는 하도 많이 봤으니까……. 이미 익숙하시네.’

    스스럼없이 통로를 향해 척척 걸어가는 선배와 달리 신입 팀원들은 주위를 기민하게 살피며 마치 미어캣들처럼 선배의 뒤를 따랐다.

    나는 뒤를 살피며 혹 기습은 없는지 확인했다.

    “우와아…….”

    “이, 이게 다 뭐야.”

    팀원들이 감탄하는 소리에 앞쪽을 보니, 이 복도의 끝에 있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공간이었다.

    “이건 방 수준이 아니잖아.”

    동굴이라고 말해야 할까, 연회장이라고 말해야 할까.

    두 쪽 다 맞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동굴 안에 연회장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랄까. 공간은 종유석과 거친 벽으로 되어 있었고 중앙에 판판한 형태로 바닥이 다듬어져 있었다.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벽 쪽으로는 거대한 석상이 빙 둘러 있고 석상 뒤로는 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건 모두 수정인가요?”

    민승호의 말대로 거대한 석상들은 죄다 수정으로 만들어져 반짝거렸고 연회장처럼 보이는 바닥에도 수정으로 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던전 내부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구구구구.

    팀원들이 대부분 연회장처럼 만들어진 중앙에 서자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이내 진동이 멈췄다.

    “봐요!”

    진동 후 중앙 바닥과 한쪽 벽에 변화가 생겼다.

    “이게 뭘까요?”

    바닥에서 솟아오른 아홉 개의 발판.

    둥그런 발판은 하나당 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벽에 떠오른 아홉 개의 판.

    “이제 수수께끼가 준비된 것 같네요.”

    “마치 빙고 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

    “정말이네요.”

    인화 선배의 말을 듣고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보였으나 발판과 벽에 달린 판에는 어떠한 그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더 발동시키는 게 있지 않을까요.”

    “다들 찾아봅시다!”

    팀원들이 하나둘씩 짝을 지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두 판 외에는 딱히 다른 것이 없었다.

    “여기에 올라가 보면?”

    누군가 훌쩍 발판 위에 올라갔지만, 판은 반응이 없었다.

    “조심해!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떡할 거야!”

    “아무 일도 없으니까 괜찮잖아!”

    슬슬 팀원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을 때, 나는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손잡이의 끝에 달린 철제 장식을 떠올렸다.

    ‘맞아, 분명 거기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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