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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37화 (137/250)
  • 제137화

    제137편

    “하준이 니는 칭찬 들을 일이 억수로 많을 낀데 아직까지 부끄럽나.”

    은봉 할머니가 걸음을 맞추며 묻는다. 방글방글 웃으시는 게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재밌으신가 보다.

    “내가 칭찬했을 때는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야 할머니가 해 주시는 칭찬은 좋으니까요.”

    “그라믄 쟈들이 하는 칭찬은 싫나?”

    “싫은 건 아니고…….”

    “아이고, 우리 하준이 귀엽네~ 아직 애기네, 애기.”

    “아이, 할머니……!”

    “그래도 익숙해지그라. 예쁨받는 거에 익숙해지그라. 알긋제.”

    어쩐지 은봉 할머니의 눈빛이 촉촉하다.

    그런가. 그래, 수십 년을 무시당하며 산 게 그리 쉽게 변할 리 없다. 물론 내가 회귀했다는 건 모르셔도 은봉 할머니는 그걸 눈치채신 거겠지.

    “할머니 덕에 익숙해지고 있는걸요.”

    “그라믄 됐다. 그라믄 됐어. 아이고, 이쁜 우리 하준이.”

    “엣헴.”

    일부러 고개를 숙여 할머니 앞에 댔더니 은봉 할머니가 작은 손으로 쓰다듬어 주신다.

    어째 할머니 앞에만 서면 어리광쟁이가 되는 것 같달까.

    그러다 회귀 전 내 나이를 생각해 보고는 얼른 바로 서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일반적인 숲길처럼 보이던 지형을 벗어나자 눈앞에는 거대한 성이 나타났다.

    “드디어 나왔군. 여러분 브리핑에서 말한 것처럼 이곳은 미믹이 등장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물에 다가가거나 만지는 것을 주의해 주세요.”

    “네!”

    “미믹은 보물 상자로 변신해 있는 게 대부분 아닙니까?”

    헌터 하나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묻는다. 브리핑에서 듣기로 센터 졸업 후 곧장 우리 길드에 가입한 B급 헌터다.

    “센터에서는 그렇게 배웠겠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미믹의 모습들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전의 미믹은 좀 다릅니다. 좀 더 고단수죠. 보물 상자처럼 사람을 쉽게 현혹하는 물건뿐 아니라 옷장이나 액자처럼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로 변신해 있기도 해요.”

    “호오오.”

    B급 헌터와 다른 헌터들 모두 두려움이 섞인 감탄을 쏟아냈다.

    “방심하고 서 있다가는 미믹에게 삼켜질 겁니다. 그러니 저 성안으로 들어간 뒤부터는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미믹은 뭐로든 변신할 수 있어요.”

    “역시 실전만큼 정확한 건 없군요.”

    “당연하죠. 그러니 우리가 여러분들을 실전에서 훈련시키는 겁니다.”

    헌터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그그그그.

    우리가 성문 앞에 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린다.

    성의 앞마당에는 경비병인 스켈레톤들이 즐비하다.

    살아 움직이는 해골 병사, 스켈레톤.

    그들의 눈에는 푸른 안광이 안구를 대신하고 있었다.

    ‘무장이 생각보다 두텁네.’

    대체로 스켈레톤들은 해골 몸에 투구와 검, 방패 정도가 대부분인 것에 비해 이곳의 스켈레톤들은 꽤 기사다운 방어구를 갖추고 있었다.

    베일 살과 피가 없는데도 경량부터 중량까지의 갑옷을 챙겨 입은 모습을 모니 기분이 미묘하다.

    “몬스터다!”

    “쉿. 아직 놈들이 눈치를 못 챘어요. 기습 공격으로 갑시다.”

    “다들 대형을 갖춰요!”

    스슥, 스스슥.

    팀원들의 몸을 낮추게 하고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그리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헌터들을 앞쪽으로 배치한다.

    앞마당을 지키고 있는 스켈레톤 병사들의 수는 서른 정도. 하지만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수를 고려해서 안정성을 도모한다.

    “제가 디버프 걸면 곧장 공격을 시작하죠.”

    곧바로 불안한 예감을 사용한다.

    “쿠어어!”

    “갸아-!”

    스킬 사용으로 스켈레톤 병사들이 우리를 눈치채자마자 사용하는 건 억압의 손길.

    촤르륵!

    수십 개의 사슬이 스켈레톤의 팔다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속박한다.

    ‘이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어차피 난이도 C급의 던전이다.

    * * *

    이재욱은 은하준의 움직임을 눈으로 열심히 좇았다.

    ‘우리가 공격하기 쉽게 몬스터의 어그로까지 신경 쓰고 있잖아.’

    D급 서포터가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움직임이 정말 D급이라고는 볼 수 없어. B급 이상의 움직임이야. 레벨도 아직 100이 안 됐다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희망이 샘솟았다.

    ‘소문으로 듣자 하니 F급인 헌터를 단번에 레벨 300까지 키웠다고 하던데. 거의 짐꾼 노릇이나 하는 F급을 전투가 가능한 인력으로 키웠다는 것 자체가 내게도 희망이 있다.’

    사실은 그의 주변에 S급이 모여드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이재욱은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포터의 본분을 잊는 것도 아니다.’

    팀원의 버프, 몬스터의 디버프가 유지되는 속도도 합이 맞아 최대의 효과가 나고 있었다.

    ‘은하준 곁에 있으면 나도 S급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A급까지는 성장할 수 있겠지.’

    콰과가가가가!

    챙, 챙강! 채앵!

    스켈레톤들의 무기와 헌터들의 스킬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이재욱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심장 뛰는 소리처럼 들렸다.

    앞에서 윤은봉의 공격 스킬이 쏟아졌다.

    거대한 도끼의 잔상이 스켈레톤 무리를 쓸어버린다.

    퍼어어억!

    와르르!

    ‘물론 각성자가 되면 신체 나이 같은 건 거의 상관없어진다고 들었어. 하지만…… 저렇게 대단하다니. 할 수 있다. 나도!’

    애매한 랭크라는 꼬리표를 떼어 버릴 수 있다. 이재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고오오!”

    “갸아아악!”

    휘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공중에서 등장하는 비행체.

    “가고일이다!”

    “다들 방어해!”

    “공중 방어!”

    “세이프티 플레이스!”

    녹색의 돔이 쭉 펼쳐지며 공중에 보호막이 생겨난다. 서인화의 보호막 스킬.

    콰앙! 쾅!!

    가고일들이 보호막을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돔에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원거리 스킬 준비!”

    서인화의 외침에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변형한다.

    “나머지는 스켈레톤을 막아!”

    “억압의 손길!”

    차르르륵, 사슬이 스켈레톤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은하준이 하늘을 향해 스킬을 하나 더 사용한다.

    “불안한 예감!”

    “가오오오!”

    “갸오!”

    가고일들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한눈에 보이고 아래에서 팀원들이 공격을 개시한다.

    “빙창쇄도(氷槍殺到)!”

    “가라앉아라, 침묵!”

    “하아앗!!”

    퍼억, 스각!

    얼음의 창, 그림자처럼 어두운 검은 연기와 불의 검 등 스킬과 공격들이 가고일을 향해 쏟아진다.

    ‘오늘 처음 합을 맞춰 본 것인데도 다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이건 인화 팀장의 능력이겠지.’

    이재욱이 서인화를 관찰한다. 은하준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엄청나게 뛰어난 헌터였다.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작은 동작도 어수룩한 녀석들과는 디테일이 달랐다.

    ‘저 정도 실력이면 사실 우리를 훈련시킬 위치에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S급들과 함께 작업에 참여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겠지.’

    적절한 때에 지시를 내리고 적절하게 세력을 분배한다. 하여 마치 적의 공격까지 마치 다 짜인 시나리오처럼 보이게 한다.

    ‘저런 실력자가 신입들을 데리고 이렇게 정성을 들여 실전 훈련을 시켜 주다니. 정말 배울 점이 많다.’

    신선 길드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재욱이 감동하는 사이에 성의 앞마당은 벌써 정리가 끝나 있었다.

    * * *

    은봉 할머니가 땀을 닦으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후우. 아이고, 벌써 힘들다. 각성한 후로 이래 지친 적이 없었는데.”

    “마력을 너무 급하게 소진해서 그래요. 앞으로는 조금씩 아껴 쓰도록 하세요. 스킬만 사용할 게 아니라 일반 공격도 섞어서 사용하는 거죠. 할머니 일반 공격도 강력하시잖아요.”

    “그래. 맨날 돌 다듬고 뚝딱거리던 이 손아구 힘이 어디 가겠나. 센터에서 실습할 때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준이 니 앞이라 더 그런갑다. 잘하고 싶어서.”

    “늘 잘하고 계세요. 그리고 실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무리하지 않는 거고요.”

    은봉 할머니는 나를 보며 푸히히 웃음을 터트리신다.

    “그래, 그래. 니 말이 다 맞다. 하준아. 우리 대장 말을 잘 들어야지.”

    “아이참, 제가 대장이 아니라니까요.”

    내가 인화 선배를 보며 멋쩍게 웃자, 선배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 오늘은 제가 대장이거든요? 그러니까 좀 더 집중해 주세요. 하준이를 사랑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요!”

    “아이고, 맞다. 맞다. 내 정신 좀 보그래이. 우리 인화 대장님! 용서해 주세요. 할미가 오락가락해서 그래요.”

    “이 중에 제일 정정하신데 무슨 소리세요.”

    “하하하, 맞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팀원들도 말을 보태며 웃음을 터트린다. 분위기가 좋다.

    “자, 이제 성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본격적인 스테이지는 바로 이 성안이다.

    그그그그.

    거대한 정문이 열리고 드디어 성의 실내가 보인다.

    타닥, 타닥…….

    내부는 어둡고 횃불로 밝혀져 있었다.

    “그래도 불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누군가의 안도하는 목소리와 함께 후우우욱. 구구구구구. 콰앙. 자동으로 성문이 닫히더니 바람에 횃불이 꺼진다.

    “으악!”

    “어두워!”

    “잠시만요!”

    “제, 제가 스킬을 사용할게요!”

    안경을 쓴 남성 헌터가 앞으로 나서자, 후욱 하고 빛이 밝아 온다.

    딱 방풍 랜턴이 밝히는 정도의 빛이 팀원들의 앞을 밝혔다.

    “승호 씨, 더 밝게는 안 되나요? 이래서는 미믹이 접근하는지 아닌지 볼 수도 없을 것 같네요.”

    이재욱이 민승호를 향해 조용하게 타박한다.

    “다들 집중해요. 당황하지 말고요. 브리핑 내용을 잊지 말아요. 이곳에는 총 6개의 스테이지가 있고,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성안의 모든 불을 밝힐 수 있어요.”

    인화 선배의 말에 안도하는 팀원들의 소리가 작게 복도를 울렸다.

    “그러니까 두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까지만 집중력을 잃지 말고 마나에 집중해요. 분명 단순해 보이는 물건이나 조형에서 의미심장한 마법이 느껴진다면 그건 미믹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민승호가 가장 앞에서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은봉 할머니,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인화 선배는 후방을 맡아 가장 뒤에서 걸었다.

    터벅, 터벅.

    한동안 아무것도 없는 복도가 계속되고 팀원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고 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죠? 복도가 왜 이렇게 길어요?”

    D급 헌터 박정택이 불안에 떠는 목소리로 내게 속닥인다.

    “원래 이 던전 내부에는 마법이 걸려 있기에 훨씬 더 길게 느껴지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일렬로 걷고 있어서 이 좁은 통로에서 중앙 쪽이 공격당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게다가 인화 선배의 세이프티 플레이스라면 몇 번의 공격도 쉽게 막아 줄 거다.

    “응?”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불빛이 적어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렵지만, 분명 인화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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