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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36화 (136/250)
  • 제136화

    제136편

    “사실은 전……. 아까 제 여동생에 관해 물으셨죠.”

    안사홍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저는 오랫동안 제 여동생을 찾고 있습니다.”

    “여동생분을요……?”

    “예. 제 여동생은…….”

    그는 마치 쓴 것을 입에 담은 것처럼 힘겹게 말한다.

    “실종…… 아니, 납치당했습니다.”

    “납치요?!”

    너무 의외의 말이라 깜짝 놀라 버리고 말았다.

    “네. 분명 납치입니다. 이미 고등학생이던 그 애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까요. 게다가 납치범 쪽에서 제게 몇 차례 접촉을 해 왔죠.”

    “그런 일이……. 아니, 몇 차례 접촉을 해 왔다면 그쪽에서 뭔가 바라는 게 있었다는 거네요?”

    안사홍은 힘겹게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죠. 그들은 그저 제 여동생의 생존 여부만을 알려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어떤 때는 전화였다가 어떤 때는 편지였다가. 도저히 제가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소식을 전해 옵니다.”

    “……그럴 수가.”

    “그 애가 사라진 지 5년째예요. 저는 반드시……. 제 눈으로 직접 그 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눈앞에 있는 안사홍에게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아니, 정말 미친놈들 아냐?

    아무 용건도 없이 사람을 납치하다니?

    안사홍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회귀 전에는 더욱더 그에 관해 알 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여동생의 납치 사건과 차원 술사를 찾는 것은 무슨 관계인 것일까?

    “여동생분이 다른 차원으로 끌려갔다고 생각하시나요?”

    “……차원 술사들의 능력은 다양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순간 이동 능력을 지닌 사람도 차원 술사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어떤 차원이든 열 수 있지만, 제가 먼저 새로운 차원을 찾을 수는 없어요. 오직 제가 접근하는 차원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추적 기능이 있는 각성자를 찾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들은 바로는 어떤 목표를 설정해서 정확하게 공간을 이어 줄 수 있는 차원을 다루는 각성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애초에 차원 이동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 자체를 찾는 일이 쉬운 게 아니긴 합니다만……. 그 차원 능력자는 영혼과 관련된 차원으로 이어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 아까 그 공간에 들어가는 방법을 몰라요. 그 거래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게 대체 어떤 차원인지도 잘 모르겠다.

    영혼? 그렇다면 내가 본 것들이 기억이 아니라 영혼인가?

    하지만 죽은 사람들의 영혼도 아니었고……. 물론 내 능력들이 영혼과 관련된 이름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 않은가. 안사홍은 내게 차원 술사의 힘이 숨겨져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혼란스럽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뭐, 이제는 내가 과거를 하도 바꿔 놔서 나비효과의 파장이 너무 커졌겠지만 말이다.

    “저 역시 다른 차원 술사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이런 경우 역시 처음 듣습니다. 대부분 각성과 함께 능력을 얻은 뒤 자연스럽게 자신이 차원과 관계된 힘을 다루는 걸 깨달으니까요.”

    “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방금 알게 됐죠.”

    “정말 독특한 케이스입니다.”

    “후우…….”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데도 머릿속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결국 나는 안사홍이 찾고 있던 차원 술사는 아니란 말 아닌가.

    “하지만 그렇기에 하준 님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지만…….”

    안사홍의 표정은 간절해 보인다.

    “뭔가 차도가 있다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로 단홍 상사를 빠져나왔다.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내가 뭔지 모르겠어…….’

    그러다 뒤에서의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하준아!”

    “어, 결아. 여긴 웬일이야?”

    “너 데리러 왔어.”

    “응?”

    “은봉 할머니랑 같이 외식하기로 했거든. 오늘 저녁에.”

    결이의 뒤에서 저 멀리 하케임과 김예리가 보인다.

    “할머니가 센터에서 부팀장이 되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축하 파티야. 오스킬은 멋대로 따라왔어. 할머니랑 다른 길드원들은 가게에 먼저 가 있기로 했어.”

    “그렇구나. 잘됐네.”

    눈을 깜빡거리며 결이와 하케임, 김예리를 본다.

    그래. 내가 뭐면 어떻고 일이 어떻게 흘러가면 어떤가.

    나는 지금 여기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영혼이니 어쩌니, 차원이고 어쩌고. 그런 것은 모두 부가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끝까지 너희들을 지킬 거야.’

    * * *

    “끄으으응…….”

    방에 틀어박혀 정좌 자세로 눈을 감은 지 3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뭐가 됐든 부가적인 일에 지나지 않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자기 검증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해도 다른 차원 같은 곳에 연결되지 않는단 말이야.”

    “그게 쉬운 줄 아세요?”

    망량이가 작게 키득거렸다.

    “그러는 너는 왜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서 난리야.”

    “지금 제가 기억을 잃은 비련의 도깨비불인 걸 비난하시는 건가요?”

    “분명히 거기서 네 목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하지만 전 주인님을 부른 적 없었는데요. 소환 해제됐었잖아요. 흥.”

    파란 불꽃이 새침하게 일렁거린다.

    ‘그럼 내가 들은 망량이 목소리는 대체 뭐란 말이야?’

    분명 망량이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에 목소리를 착각할 수 있을 리가…….

    “으아아! 도저히 모르겠다. 차원이 어쩌고저쩌고. 어떻게 하는 건데~!! 스킬이 있어야 뭘 하든가 할 거 아니야?”

    “포기하면 편해요, 주인님.”

    “너 자꾸 깐족댈래?”

    “흥, 이번에도 소환 해제하시든가요~!”

    “어쩔 수 없었다니까 그러네.”

    이렇게 주인을 이겨 먹으려고 하는 펫이 또 있을까?

    “차라리 말을 못 알아듣던 때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으, 으응?”

    “맞군요!! 역시 제가 귀엽지 않은 거죠!!”

    망량이가 불꽃을 이글거리며 몸통 박치기를 해 댄다.

    “우리 망량이는 귀엽지~!”

    “거짓말~! 우에엥.”

    장난감 슬라임을 만지듯이 쭈물쭈물해 줬더니 망량이의 칭얼거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 상인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응?”

    “주인님은 혼백의 인도자시잖아요.”

    “그 타이틀에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나?”

    “언어에는 힘이 있다고요. 주인님이 제게 망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저는 조금 더 강해졌고 결국 이렇게 커다란 도깨비불이 되었잖아요?”

    “어? 정말? 그런 이야기는 한 적 없었잖아.”

    “으흠흠. 에헴. 그야 쑥스러우니까요. 에헴헴.”

    “……안사홍을 도와주고 싶어.”

    “여동생이 납치됐다면서요.”

    “넥스트 레벨을 더 올리면 뭔가 바뀔지도 몰라.”

    “맞아요! 주인님은 대단하니까요!”

    “그래. 얼른 더 강해지자고!”

    강해지려면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편이 낫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할머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오, 오야. 내 긴장 안 했다. 이미 센터에서 다 했던 기다.”

    “네네. 알겠습니다. 별일 없을 테지만요. 팀원들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돼요.”

    “그래, 그래. 내가 또 해외여행도 다녀온 적이 있다이가. 그때 가이드 선생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 내가 말을 제일 잘 들었다.”

    은봉 할머니는 결심한 듯 내 옆에 꼭 붙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던전의 포털 안으로 들어섰다. 은봉 할머니의 헌터 자격증 취득 후 첫 던전 공략이다.

    ‘내가 있으니 별일 없겠지만.’

    오늘은 결이나 하케임이 없다.

    인화 선배와 함께 새로 들어온 초급 헌터들을 모아 등급이 낮은 던전 공략을 왔기 때문이다.

    “하준이 너랑 작업하는 거 오랜만인 거 같다.”

    “그야 선배가 신입들 교육시키느라 바빠서 그렇죠.”

    “하하하. 워낙에 신입이 많이 들어오잖니?”

    인화 선배는 요즘 길드에 들어온 신입들의 교육을 맡아 하고 있다. 신입 중에는 바로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센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 헌터들의 훈련과 교육을 도맡아 하는 게 인화 선배의 주된 업무였다.

    “선배 덕분에 우리 길드가 초보 헌터 육성에 힘을 많이 쏟는 길드라고 소문이 났잖아요.”

    “사실이긴 하잖아. 다른 길드에서는 대부분 완성된 헌터를 원하니까.”

    “우리 길드가 성장 가능성을 많이 보긴 하죠.”

    약간 떨어진 곳에서 신입 헌터들이 힐끔거리고 있다.

    “저 사람이…….”

    “그래, 그 한결이랑 같이 다닌다는…….”

    “신기하다.”

    “방송에서만 봤는데, 그다지 카리스마가 대단한 줄은 모르겠어.”

    “하지만 항상 팀을 이끄는 포지션이래.”

    “D급인데도 엄청나게 강해.”

    “레벨이 엄청 높다던데?”

    “레벨을 올린다고 해도 D급이 거기서 거기지.”

    “아냐. 저 사람은 정말 강해.”

    숙덕거리는 목소리는 각양각색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그래도 예전엔 결이 때문에 조금 구설수에 오르는 정도였는데 말이다.

    “은하준 님! 정말 존경해요!”

    헌터 중 하나가 불쑥 다가오더니 눈을 빛냈다.

    “전 이번에 들어온 C급 헌터 이재욱입니다. 은하준 님의 소문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고요.”

    “하하, 별로 좋은 소문은 없을 텐데.”

    “무슨 소리세요!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그리고 저처럼 평범한 등급의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특히나 더 인기가 대단하시다고요.”

    이재욱의 빛나는 눈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다.

    그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은하준 님을 볼 수 있을지 몰랐어요. 오늘 임무를 함께 하게 된 것도 정말 영광입니다.”

    “고, 고마워요. 하하하.”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지만, 사실 등급의 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실 기분 나쁜 것도 없다. 그게 맞으니까.

    회귀 전에는 절대로 깰 수 없었던 벽이다.

    “그런데 그 벽을 어떻게 넘어서신 걸까요? 저도 C급에서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요!”

    “저돕니다! 은하준 님! 가르쳐 주세요!”

    몇몇 헌터들이 이재욱 곁으로 따라붙는다.

    “아이고, 우리 하준이가 이래 대단타.”

    “이러다가 내 제자들 다 뺏기겠는데?”

    은봉 할머니와 인화 선배가 손뼉을 쳐 준다.

    “앗, 앗……. 아니. 지금은 일단 던전 공략에 집중하자고요.”

    나는 민망해져서 걸음을 빨리했다.

    이전과 달라진 이 반응들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좀처럼 쉽지 않다.

    “아이고 하준아, 할미 데려가야제!”

    은봉 할머니는 깔깔 웃으며 재빨리 내 곁으로 달려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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