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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34화 (134/250)
  • 제134화

    제134편

    “아, 그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그 학생이요?”

    “그래. 내랑 단짝이다, 단짝.”

    “좋죠. 우리 길드는 항상 새로운 헌터에게 열려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길드 소속 각성자가 30명을 넘어섰다.

    “그 아가 윽수로 잘생겼데이. 아마 우리 길드에서 제일 잘생겼을 끼라.”

    “뭐예요, 할머니. 센터 나가시더니 그쪽 편이 되어 버린 거예요?”

    “으하하하. 편은 무슨!”

    은봉 할머니는 깔깔 웃음을 터트리신다. 센터에 가시더니 웃음이 더 많아지신 것 같아 기쁘다.

    사실 은봉 할머니는 공격 특화가 아니라 굳이 헌터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공격 스킬이 있으니 써 보겠다며 헌터 자격증 과정에 도전하신 거다.

    ‘최고령이라 적응하기 힘드실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할머니는 웃느라 달아오른 얼굴로 힘차게 외쳤다.

    “편 가르기 그런 거 안 한데이. 그냥 내는 열심히 자격증을 딸라고 노력만 하는 거지. 내가 만들고 강화한 무기가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봐야 할 것 아니가? 맞제?”

    “물론이죠.”

    “그리고 마, 내 언제나 첫 번째는 하준이 니 편이다. 알제?”

    “그것도 물론이에요.”

    “으이구, 예쁜 것.”

    * * *

    ‘진짜로 한세희잖아.’

    군의 지원을 받기 위해, 높으신 분들 앞에서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광 길드의 길드장. 한세희도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원리로 던전 몬스터에게 물리적인 공격이 가능하게 된 겁니다. 이해하시겠죠?”

    “흐으음.”

    환희의 설명에 모두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마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예상한다.

    한세희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만, 미묘한 표정이다.

    “기술 전반적인 관리와 통제는 신선 길드에서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군에서는 연구비와 노동력을 지원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군도 우리 군이지만, 서광에서는 보안에 신경을 써 주고. 이 귀한 기술을 다른 나라들이 훔치는 건 볼 순 없으니. 애초에 이런 어마어마한 연구비 지원을 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이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브리핑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기술과 지원에 관한 심사라기보다는 이미 진행되는 사안에 관한 회의 같았다.

    하기야 놓칠 수 없는 엄청난 기술이니까.

    “정말 대단하군요. 신선 길드는.”

    브리핑 룸 밖으로 나온 내게 말을 건 건 한세희였다.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니 좋네요. 앞으로는 자주 보겠고.”

    “자주요? 길드장님이 워낙 바쁘셔서…….”

    “이런 중요한 일에 당연히 제가 신경을 써야죠. 서광의 인재들만 붙여 줄 테니 보안과 관련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이쪽이 보안 담당이 될 하진욱 헌터.”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한세희의 뒤에서 커다란 키의 남자가 등장한다.

    저 키라면 한세희에게 가려질 것도 아닌데, 내가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다니.

    “안녕하십니까. 서광 소속 A급 헌터 하진욱입니다.”

    “앞으로 신선 길드 보안 책임자로 모든 보안 업무를 맡을 예정이니 무슨 일이 발생하거나 요구 사항이 있을 땐 이 친구에게 전달하면 될 거예요. 나를 호출하고 싶을 때도 이 친구를 통하면 되겠지만…….”

    한세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진욱이다.

    ‘말이 적은 친구인가.’

    한세희가 손을 내민다.

    “직접 연락해도 좋아요.”

    “네?”

    “휴대폰. 내 연락처 줄게요.”

    “아…….”

    “앞으로는 급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넵.”

    폰을 넘겨주자 번호를 찍고는 통화까지 연결한다.

    “됐다. 개인 번호니까 남들한테 공유하면 안 됩니다. 알겠죠?”

    “아, 옙.”

    어쩐지 한세희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어, 하준 오빠.”

    뒤늦게 나온 환희가 다가오자 한세희는 손을 쓱 내밀었다.

    “류환희 씨. 대단한 업적을 이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는 깍듯하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

    ‘받아 갈 거면 환희 번호를 받아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환희가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한세희를 상대하는 건 조금 불편하지만, 연구를 진행시키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그렇게까지 부딪힐 일도 없을 거고.

    * * *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단홍 상사의 앞.

    “오늘 혼자서 임무를 하셔야 한다니. 조금 떨려요.”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일렁이는 파란 불꽃을 향해 말하자 새카만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하지만……. 전 아직 너무 약해요.”

    “강해지고 싶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주인님을 지키려면 더 강해지는 편이 좋겠죠?”

    “기특하네.”

    끼익.

    망량이를 쓰다듬어 주며 문을 열자, 곧바로 안사홍의 모습이 보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다. 그는 평소보다 아주 단정한 옷을 입고 지난번과 비슷하지만, 훨씬 큰 캐리어를 옆에 두고 서 있었다.

    내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이야기 드렸다시피 오늘은 혼자서도 충분할 정도로 얌전한 손님이십니다.”

    “손님들에 관해서는 호기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죠?”

    “네. 그러는 편이 훨씬 안전하니까요. 거래 중에는 말씀을 하지 마시고요.”

    안사홍은 다시 내게 유의 사항을 읊어 주고는 먼저 익히 들어가는 그 문 앞에 섰다.

    “이번 손님은 아주 예의가 바르고 조용하신 분이지만, 워낙 독특한 분이라……. 우리 같은 각성자에게 호기심이 아주 많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아예 기척을 느끼지 못하도록 조심하는 편이 좋겠지요.”

    “그래서 저만 부른 겁니까?”

    “하하. 눈치가 빠르시네요.”

    끼리릭. 그는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렸고 이내 어둡고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여긴 올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니까. 뭐랄까……. 정말 머나먼 차원 바깥으로 튕겨 나온 기분이랄까.’

    사실 그런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곳 내부에 들어오면 어쩐지 쓸쓸하고 슬픈 기분이 몰려왔다. 뭔가 그리운 것과 아주 멀리 떨어진 기분.

    츠츠츳.

    우리가 준비를 끝내고 자리를 잡자, 곧 거래자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 아름드리나무보다 훨씬 큰 사람의 형상. 하지만 그 전체는 그림자처럼 흐려 얼굴이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안사홍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거래자 측 방향에서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후후훗.”

    “하하하.”

    작은 소리였지만, 마치 여러 명이 있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별로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 웃음의 어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웃고 있을 뿐인데 끼쳐 오는 원인 모를 불안함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눈앞에 있는 형체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어떤 불길함이 원인인 건 아닐까.

    ‘인영은 단 하나밖에 없는데.’

    저번처럼 여러 명의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소리가 나서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렴풋한 그림자 거인의 머리 부분이 순식간에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인간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대체…….’

    흠칫 놀라자, 거인의 머리 중 하나가 내 쪽으로 고정된다.

    시선을 느끼자마자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빨리 눈치를 채다니. 오싹한 기분과 함께 소름이 쭉 끼친다. 인간도 몬스터도 아니라면, 대체 눈앞에 있는 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오호라.”

    “거래에 집중하시죠.”

    안사홍이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재빨리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두어 개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거래보다 재밌는 것을 데려왔구나.”

    그리고 소리가 겹치는 웃음들.

    불길하기 그지없지만, 그 속에서 적대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리가요.”

    안사홍은 마치 그에게 현혹된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니야. 영혼을 다루는 힘이 느껴진다.”

    “정말입니까?”

    안사홍은 다급하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내부에서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약속을 지킬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뭔가 말을 해 보라는 듯이 쳐다보면 말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 그게.”

    스스슷.

    순간 거인의 기운이 뻗쳐 오면서 눈앞이 새카매졌다.

    * * *

    눈앞에 보이는 건 어둠, 어쩌면 이건 어둠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까 뭐냐면, 나는 지금 내가 죽었나? 싶다.

    온몸에 감각이 없다. 어둠에 녹아 버린 것처럼.

    그런데 또 불안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안락하다.

    원래 이 자리가, 이 형태가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낯선 기운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고 그 뒤로 이런 상태다.

    내가 기절을 한 것인지 죽은 것인지, 죽었다면 사후 세계라는 건 이런 모습인 걸까?

    스읏.

    사후 세계를 떠올리자 아래에서 보랏빛이 점점이 밝아 왔다.

    ‘꽃이네.’

    보랏빛 꽃.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디에서 봤더라…….

    그 순간 하늘도 밝아졌다. 우주 밖으로 튕겨 나온 것처럼,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은 밤하늘이다.

    ‘다행히 죽진 않은 것 같은데. 아닌가. 하지만 죽었다면 이렇게 생생한 느낌은…….’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내 본능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새 사지의 감각이 돌아왔다.

    저벅, 저벅…….

    천천히 꽃밭을 걷기 시작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일도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도깨비불 같은 것이 꽃밭의 위에 점점이 떠 있다.

    망량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도깨비불을 살핀다. 하지만 망량이와 같은 푸른 불꽃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희끗희끗한 회색이다.

    “어라?”

    도깨비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망량이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불꽃 안에는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 하지만 뭐랄까. 사람이 갇혀 있다기보다는 기억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것 같달까.

    “이건 안사홍이잖아.”

    그 불꽃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다. 안사홍을 똑 닮은, 그리고 조금 앳되어 보이는 여성이 함께다.

    아니, 어쩌면 이 불꽃의 주인공은 안사홍이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뭐라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화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이게 대체 뭐지?”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불꽃이 수십, 수백 개가 보랏빛 꽃밭 위에 둥둥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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