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제132편
환희는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총을 집어 들었다.
“이건 k2 소총. 어떻게 구했는지는 궁금해도 물어보지 마. 다쳐.”
“일단 너한테 불법을 저지르는 게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지 잘 알겠다.”
“이걸로 먼저 시범을 보여 주겠어.”
슥.
환희가 총을 집어 들고 연구실 한쪽 벽면에 있는 세 그루의 나무 중 하나를 겨냥한다.
나무는 평범해 보인다. 그저 커다란 화분에 심긴 2m가 조금 안 되는 나무다. 하지만 나는 그게 보통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력이 느껴진다.
이건 몬스터다.
“우디야.”
“이건 또 어떻게 구한 건데. 심지어 연구실에 들여놓기 딱 좋은 크기의 어린 녀석들로.”
우디라는 몬스터는 특별했다.
이 녀석을 잡으면 아무런 보상이 없다. 아주 약간의 경험치를 주기는 하지만, 우디를 잡을 바에는 차라리 던전 밖에서 토끼를 잡는 게 나을 정도로 형편없는 경험치를 준다.
또 선제공격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공격해도 반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나를 어느 정도 지닌 던전 안의 일반적인 나무와는 구별되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식물 형태의 몬스터. 그야말로 이상하고 특별한 몬스터인 거다.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넌 왜 맨날 알면 안 되는 일만 저지르냐?”
가만히 보면 안사홍보다 류환희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아닌가. 둘 다 문제인 건가. 흐음.
“그것보다, 너 어쩐지 자세가 좋다?”
아니, 나는 총을 다뤄 본 적이 없으니까 진짜로 자세가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군인들이랑 같이 작전을 수행한 적이 많으니까 눈대중으로 딱 봐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안정적이랄까? 뭔가 알고 쏘는 듯한 자세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테지만…….
“쉿. 알면 다쳐.”
탕, 탕, 탕, 탕탕!
환희가 그럴듯한 자세로 사격을 시작하고 큰 소리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시선은 곧장 우디를 향한다.
“오……. 대단한데.”
우디 주변 바닥에는 찌그러진 탄환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우디 자체에는 아무런 생채기가 없다. 일반적인 나무라면 총알 자국이 남아야 정상일 거다.
환희가 우디를 빗맞힌 것이 아니다.
탄환은 정확하게 우디를 향해 발사됐지만, 던전의 몬스터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기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류는 각성자가 없이는 던전을 감당해내지 못했던 거다.
“자, 이번에는 내가 개발한 무기.”
환희가 재빨리 소총을 내려놓고 개발한 무기를 들어 올린다.
조금 전 들었던 소총과 비교하면 솔직히 장난감 같다고 해야 하나. 총의 형태로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언뜻 보면 물총 같다고 해야 할까.
아주 엉성해 보인다.
환희는 이번에도 신중하게 사격 자세를 취했다.
“빵야.”
피융, 피잉!
생각보다 작은 소음과 함께 총에서 빛이 쏟아져 나간다.
분홍색으로 빛나는 에너지 탄이 단숨에 우디를 맞힌다.
파삭! 와지직!
우지끈. 몇 발 빗나가기는 했지만, 정확히 맞은 에너지 탄환은 우디를 박살 냈다.
가운데가 완벽히 파괴된 우디가 벌목장의 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진다.
“대단한데. 이걸 일반인도 쓸 수 있다고? 정말로?”
“후후.”
환희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자 환희의 연구실 밖에서 누군가 들어왔다.
“내 조수. 그리고 마나라고는 조금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이야. 현석이. 그렇지?”
“네! 저는 한 번도 각성한 적 없고, 포털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일반인입니다.”
현석이라는 조수는 아주 대단한 소개를 하는 것처럼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포털을 연구하는 조수인데 포털 근처에는 가 본 적도 없다고?”
내 말에 현석은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아아, 사실 전 계산식 오류 검사만 하거든요. 환희 선생님께서 계산식은 꼭 사람 눈으로도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 그렇긴 하지만 우디 근처에는 가 봤습니다. 제가 물을 주거든요. 이 녀석들 물을 아주 좋아해요. 햇볕도…….”
“아하. 그렇군.”
어쩐지 영 시원찮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체구도 왜소하고 과연 총을 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다.
“됐고. 현석아, 이거 시범 좀 보여 봐.”
“넷!”
현석은 재빨리 환희에게 무기를 넘겨받더니 크게 휘청인다. 그러고는 땀을 뻘뻘 흘리더니 겨우겨우 자세를 취했다.
꿀꺽. 어쩐지 내가 긴장해서 침을 삼키게 된다.
절대 저 조수 녀석이 불안해서가 아니라…….
“그간 정이 들었는데…….”
현석이 총구를 슬쩍 내려놓으며 울상을 짓는다.
녀석이 불안한 게 아니라는 마음을 정정해야겠다.
환희는 그런 모습을 아주 질리도록 봤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딱딱 튕기곤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아! 쏴!”
“흑!”
그제야 현석은 눈을 질끈 감으며 우디를 향해 환희의 총을 발사한다.
‘총 쏠 때 눈을 감으면 어쩌자는 거야!’
피융! 피융, 피융!!
따다닥!
영 정확도가 낮아 주변 벽을 박살 내 버렸지만, 조수는 어떻게 우디를 맞추는 데에 성공했다.
“뭐, 사실 오빠가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긴 했지만, 지금 공격력이 아주 약해. 좀 더 가공해서 공격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방법이 필요하지. 게다가 일반인이 들기엔 좀 크고 무거운 경향이 있고. 하지만 이걸 연구해서 응용하면 어지간한 몬스터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환희야, 정말 대단해!”
“응?”
“넌 정말 천재야!!”
솔직히 감동적이었다.
정말로 일반인이 사용해 몬스터 공격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니 개발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졌을까 걱정하던 마음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환희가 너무나 대견해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걸 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얼마나 노력했을까.
“어, 으응……. 천재가 맞긴 하지.”
환희는 약간 당황해하는 것 같더니 얼굴을 붉혔다. 쑥스러워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환희치고는 낯선 모습이었다.
하기야 늘 연구, 연구 하면서 실질적으로 성과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환희도 몹시 들뜨고 기쁠 게 분명했다.
“정말 대단해. 멋져. 그래, 그리고 난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해낼 줄 알았어.”
알 수밖에. 나는 10여 년이나 뒤의 미래에서 환희의 성공을 보고 온 사람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 그러니까……. 아직 실전에서 사용한 것도 아니고 위력도 아직은 우디를 해치울 정도밖에 안 되니까 나한테 대단하다고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긴 한데, 아니, 음. 내가 대단하긴 해. 그렇긴 한데.”
“뭐가 그렇긴 한데야! 넌 정말 대단해! 누가 뭐래도 네가 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야. 게다가 겨우 우디 정도라니, 이 세상에서 누구도 일반 무기로 몬스터를 공격해 성공한 사례가 없잖아. 네가 처음이라고!”
세계 최초! 이 타이틀이 얼마나 대단한가.
“환희, 너는 엄청난 업적의 발명을 해낸 거란 말이야! 애가 평소에는 엄청나게 자신만만하더니, 꼭 필요할 때는 겸손해지네?! 좀 더 뻐겨도 좋아, 그럴 가치가 있어!”
내가 오두방정을 떨자 환희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문제?”
밝던 환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진다.
“연구비가 모자라. 내가 우리 집 등골 다 부러뜨렸거든.”
“네가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정말 너희 집 등골이 굵고 강하다는 건 잘 알았지만. 결국 그렇게 됐냐?”
“사실은 이제 부모님이 지원 금액을 상향해 주지 않는 게 문제야. 그 이상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굵고 강해서 진짜로 부러지진 않았구나. 다행이네.”
“아무래도 그렇지. 부자들이 독하잖아. 우리 집안까지 걱정하진 않아도 돼.”
환희네 집안이 대단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새삼스럽게 환희가 다르게 보인다. 연구에 들어가는 기기와 장비 금액이 정말로 엄청나게 비싸던데.
“어쨌든 이 무기를 크고 강력하게 개량하는 데에는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할 거야.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기도 해야 하고.”
“네 말은 다른 곳의 연구비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지?”
“바로 그거야.”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아는 곳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껏 모은 내 재산을 투자하는 정도? 하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을 거다. 환희네 집안의 등골은 고사하고 등뼈 중 디귿도 되지 못할 거다.
누구와 어떻게 거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겐 그럴 능력도 없고. 앞으로 환희에게 필요한 건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일 테니까.
떠오르는 건 딱 두 사람인데.
환희의 얼굴을 쓱 본다.
“……?”
그래, 일단 시도라도 해 보자.
* * *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 보인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은. 최근 압구정에서 한 번 뵈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대위님이 알은척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셔서요.”
“흐음. 그랬습니까?”
성 대위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릴게요.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환희의 연구 때문입니다.”
“제가 그 연구를 반대한다는 건 기억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미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과가 있는데도 여전히 반대하실 건가요.”
내 말에 성 대위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성과를 냈다고요?”
“네. 아직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니, 시작 단계도 아니죠. 일반인이 몬스터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시작품까지 만들어냈으니까요. 다 됐다고 볼 수 있죠. 안 그런가요?”
“……그게 정말입니까?”
“애초에 왜 성 대위님께서 환희의 연구를 막으셨는지는 압니다. 아니, 연구를 막았다기보다는 환희를 지키고 싶으셨던 거죠. 환희는 너무 어리고 잃어선 안 될 귀중한 인재니까요. 그리고 약하다고 생각하고요.”
“나는 그 애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아니에요. 약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그러니 믿질 못하셨던 것 아닙니까.”
“나는 당신이 그 애를 지키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군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연구를 하라 허락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 ‘얼마든지’가 환희에게는 충분하지 않았고요. 게다가 대위님은 지금 하시는 말과는 다르게 항상 환희를 애라고 부르시죠.”
“그건…….”
성 대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곱씹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어찌 됐든, 은하준 씨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이런 행동을 할 만큼의 성과가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화제를 돌리는군.
그쪽보다 차라리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확실히 밀어붙여 주지.
“네. 맞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