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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9화 (129/250)
  • 제129화

    제129편

    “쿨럭.”

    한결의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나를 불러내지, 그래?]

    달콤한 금룡의 말이 한결의 귓가를 울렸다.

    “아직……이다.”

    한결은 피가 흐르는 입가를 닦아냈다.

    “크르륵…….”

    해괴한 머리통을 가진 괴물이 아직 생생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제 몇 방 더 맞으면 진짜 위험하겠는데.’

    [그러면 나를 불러내라. 나는 네 연약한 몸뚱어리라도 싸울 때 상관없으니까.]

    ‘몸을 내어줄 생각이 없으니까 침이나 닦으래도.’

    [고집이 세구나.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되질 않는다.]

    그래도 단념했는지 한결을 귀찮게 굴던 금룡의 목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허억, 헉.”

    흐려진 시야를 바로잡으려고 한결은 애썼다.

    한결 스스로 해낼 수 없다는 금룡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저 위에 떠 있는 하준에게도.

    금룡 없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젠장,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잖아.’

    어지간한 상대였다면 쉽게 해냈을 거다. 오늘 공략하기로 예정되었던 던전 정도면 무리 없이 활약할 수 있었다. 하준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의기양양할 수 있었을 거다.

    ‘너무 강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벽에 대고 검을 휘두르는 꼴이었다.

    어떤 공격에도 녀석은 큰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하준이 파악한 녀석의 약점을 노려 봤지만, 공격이 전혀 닿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놈은 빠르고 강했다. 공격을 피해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놈을 공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격을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매번 놈의 팔에 공격이 가로막힐 때마다 한결은 절망을 경험했다.

    이전 한강 근처에서 오거를 상대했을 때도 그 당시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물속 깊이 헤엄치던 어룡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근처에는 이용할 만한 몬스터조차 없었다.

    ‘하준이는 해냈는데, 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팀원들이 맞지 않게 대신 맞는 것뿐이었다.

    분했지만, 겨우 관심을 끄는 정도. 정말로 그것밖에는 없었다.

    “크르르……. 크르르르…….”

    한차례 한결의 공격이 쏟아졌다. 하지만 계란에 맞은 바위처럼 괴물은 고개를 푸르르 털어내더니 한결이와 똑바로 마주한다.

    괴물 너머에는 한결과 비슷한 수준으로 피떡이 된 하케임이 있다. 그의 창끝이 흔들리고 있다.

    ‘저 녀석은 초반에 너무 방심하는 게 문제야.’

    하케임은 한결보다 훨씬 강하지만, 본인의 잃어버린 힘에 관해 자주 잊어버리고는 너무 과감한 공격을 했다.

    그래서 언제나 너무 이르게 큰 대미지를 받아 전투 후반부에는 항상 부상 상태가 이어졌다.

    특히 오늘처럼 류창희가 없는 날은 더욱 곤란해졌다.

    새로운 B급 힐러는 깎여 나가는 모두의 체력을 혼자 부담할 수 없었다.

    특히 심각하게 다친 시민들이 너무 많았다.

    목숨을 잃지 않도록 힐을 계속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각성자들에게 해 줄 힐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실상 팀원들에게는 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준이가 아직 한 대도 맞지 않았다는 거라고 한결은 생각했다.

    ‘하준이는 절대로 맞으면 안 돼. 버티지 못할 거야.’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주위에 가득한 시체.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하준이라고 생각하면 발끝부터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하준은 한결을 대신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일어났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서.

    그 사실이 한결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놈이 조금 차분한 덕에 피해가 생각보다 적다고 해야 하나.’

    한결은 참담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다른 몬스터들처럼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공격을 퍼붓는다면 더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으리라. 한데 이놈은 뭔가 좀 달랐다.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달까. 너무나 노련하다고 해야 할까.

    놈에게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의지도 느껴지지 않고 지금 한결과 팀원들을 상대할 때도 서두르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가 진행되면 될수록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다. 묘하게 차분한 모습이 기괴해 소름이 끼쳤다.

    “크르르르…….”

    녀석의 얼굴이 펄럭거리며 천천히 한결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까지 쉴 새 없이 한결이 공격을 쏟아부었으니, 이제 놈의 차례다.

    ‘공격이 들어온다.’

    괴물이 천천히 몸을 꺾어 굵은 꼬리로 바닥을 내려친다. 명백한 분노의 표현.

    놈은 자신을 귀찮게 한 한결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쉬릭!

    녀석이 한결 쪽으로 높이 도약하려는 순간.

    삐잉, 삐잉, 삐잉!

    자동차의 보안음이 맹렬하게 울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한 곳이 아니었다. 점점 더 많은 보안음이 사방에서 울려 댔다.

    삐잉, 삐잉, 삐잉!

    ‘하준이다.’

    한결은 자동차 사이를 누비는 하준의 모습을 발견했다.

    “키에에에엑! 케레레레렉!!”

    사방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려오자 괴물은 당황해서 굳어 버렸다. 어느 방향으로 먼저 공격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서 좌우로 마구 고개를 돌렸다.

    놈의 얼굴이 돌풍 속의 깃발들처럼 마구 펄럭거린다.

    그리고 자동차 사이를 뛰던 하준이 괴물에게로 뛰어든다.

    ‘안 돼!’

    너무 무모했다.

    지금 하준의 신체 능력으로는 한 대만 맞아도 두 동강이 나 버릴 것이다.

    하준의 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퍼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얼굴에서 피가 솟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공격이 먹혀들었어!’

    한결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한 번도 건드리지 못했던 괴물의 약점을 정확하게 가격하는 하준의 모습을.

    “흡!”

    하준은 두 검 중 하나를 재빠르게 던져 새로운 차를 향해 날렸다. 경보음을 한 번 더 내려는 속셈이었다. 그걸로 다시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리려고 한 것이었다.

    퍼억! 챙그랑!

    유리창이 깨졌지만, 경보음이 울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준은 곧장 놈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드득, 그드드그극.”

    채 괴물의 사거리에서 벗어나기 전에 그 우악스럽고 끔찍한 검은 팔이 하준을 붙잡았다.

    “커억!”

    사로잡힌 하준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격통에 발버둥을 쳤다.

    “쯔어어어억.”

    괴물의 머리통이 활짝 열리면서 구멍 안에 가득한 이빨이 달그락거렸다.

    녀석은 하준을 들어 올려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했다. 놈이 그런 행위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한결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준아!!”

    한결은 전속력을 다해 괴물에게 다가가 하준을 그러쥔 팔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이번에도 닿지 않았다.

    퍼어억!!

    갑자기 늘어난 나머지 팔이 한결을 저 멀리 튕겨 나가게 했다.

    “크으윽!!”

    한결이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놈이 하준을 삼키기 전에 거기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닿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을까?

    피잉.

    한결은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적. 쩌저적…….

    괴물의 팔이 얼어붙었다.

    “케레렉?”

    하준을 쥔 괴물의 팔 밑에 있는 건 온통 새하얀 남자였다.

    * * *

    하여튼 일이 꼬이려면 이렇게 꼬이는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이를 지켜내려면 이번에 내가 어그로를 끄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죽어 버리면 회귀고 마지막 퀘스트고 넥스트 레벨이고 어떻게 될지, 그냥 말아먹는 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괴물의 거대한 아가리에 들어가면서도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극명한 힘의 차이에 이미 반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한강에서의 전투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그래, 그때는 어떻게든 해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쩌저저적.

    온몸을 휘감는 한기에 눈을 돌리니 괴물의 팔이 새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보이는 새하얀 남자.

    ‘한세희!’

    드디어 도착했구나! 그래, 그러고 보니 대호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지!

    쩌저적.

    순식간에 맺히는 서리가 거의 손목에까지 닿았을 때, 괴물은 나를 놓쳤다.

    그와 동시에 한세희가 검을 뽑아내 괴물의 팔을 내려친다.

    쉬익! 카아아앙!!

    쩌저적!

    놈의 팔에 금이 간다. 하지만 완전히 부러지지는 않았다.

    무표정하던 한세희의 표정에 약간의 놀람이 비친다. 그리고 그는 곧장 나를 둘러업고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무모했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순식간에 괴물에게서 멀어진 한세희는 건물 옥상에 나를 내려놓았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자 주변으로 몰려든 다른 각성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면서도 무모한 공격을 시도하다니. 그건 멍청한 짓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조금 실망했네요.”

    휘익.

    한세희는 곧장 다시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밑으로 뛰어내렸다.

    “참 나, 왜 저가 실망하고 난리예요?!”

    망량이가 어깨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아하하하! 나와라, 괴물 녀석아!”

    “누나, 녀석은 도망치지도 않았어.”

    해령의 손예원과 펌블의 김재민이 보인다.

    “어머, 끔찍하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맞고?”

    “얘 좀 봐, 누가 사이코패스인 줄 알아.”

    순식간에 괴물과 거리를 좁히던 손예원이 팔을 휘두르자 녀석의 주위로 물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던 도로 한복판에 물길이 생겨난 거다.

    “익사도 이겨낼 수 있으려나.”

    콰아아아.

    물길이 순식간에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물기둥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대로 괴물을 삼켜 버렸다.

    “아이참, 누나도. 이러면 내가 할 게 아무것도…….”

    “음?”

    촤아아악!!

    괴물의 기다란 팔이 물길을 헤집으며 단번에 스킬을 흐트러트렸다. 물기둥은 휘청이더니 이내 곧 힘을 잃고 바닥으로 쏟아져 흘렀다.

    “말도 안 돼! 내 스킬을……. 이렇게나 손쉽게?!”

    손예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흐응, 누나. 어제 잠을 못 잔 거 아녜요?”

    김재민이 웃음을 참으면서 손을 뻗자 허공으로 커다란 주사위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사람보다 훨씬 큰 뿅망치가 들려 있다.

    “자아, 크리티컬! 가 보자고!”

    휘익, 타르르륵.

    공중에서 주사위가 굴러가고 이내 티잉! 소리를 내며 숫자가 떠오른다.

    “오, 육면체 두 개에 6, 6! 크리티컬~!”

    김재민이 들고 있던 커다란 망치에 반짝거리는 빛이 어린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불길이 서린다.

    “화염 대미지 추가! 받아라!”

    휘우웅! 거대한 뿅망치가 괴물을 내리친다.

    콰아아앙!!

    얼마나 강력한 공격인지 주변 도로가 모두 파괴되고 차들은 찌부러져 버렸다. 게다가 건물까지 흔들릴 정도다.

    “하하하! ……하?”

    하지만 망치가 들린 뒤, 김재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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