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28화 (128/250)
  • 제128화

    제128편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앙상하지만 커다란 두 다리다. 또 그 옆으로 늘어진 길쭉한 팔.

    온통 새카만 거인의 몸통.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몬스터다.

    ‘이게 대체…….’

    그리고 내 몸을 사로잡는 이 불길한 기시감은 뭘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몬스터인데, 왜 나는 이놈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놈은 우리 차 바로 앞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아직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봐도 방금 포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다.

    그 모습만 보고 있자면 보스급.

    ‘하지만 보스급이 나올 때까지 아무런 대응이 없었을 리 없다.’

    주변에서는 빵빵거리는 경적과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차량을 운전하던 기사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진술과 주변의 모습을 보면 정말로 이 녀석이 지금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을 대피시켜.”

    취이익. 차량의 문이 열리고 팀원들이 튀어 나가자, 차가 완전히 변신을 시작한다. 어지간한 충격에 버틸 수 있도록 장갑 모드가 되는 것이다.

    “으아악! 도와줘요!”

    “살려 주세요!”

    “차에 아직 우리 애들이!”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외침 사이로 놈의 형체가 이제야 완전히 보인다. 차량 안에서는 놈의 모습을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놈이다.

    오싹.

    놈의 얼굴을 보자 소름이 쭉 끼친다.

    “저런 놈은 처음이다.”

    하케임마저도 중얼거렸다.

    몸체에 비해 커다란 머리는 마치 덜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생겼다. 그냥 비유가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여러 겹으로 휘감겨 있는 모양새에 눈코입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귀도 없다. 소리를 듣지 못해서 사람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더는 놈을 관찰할 시간이 없었다.

    언제 놈이 움직일지 모른다.

    “다들 빠르게 대피시켜!”

    이미 주위는 버려진 차들로 인해 도로가 막힌 상황.

    조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리, 우리 애 좀 먼저!”

    “걱정하지 마세요. 이쪽으로…….”

    팀원들은 길드에서 교육받은 대로 빠르게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것이 처음이 아니다.

    회귀 전의 경력까지 합치면 10년이 넘게 몬스터를 상대해 왔다. 하지만 이 낯선 느낌은…….

    ‘아니, 난 이 느낌을…… 겪어 본 적이 있어.’

    마지막 전투 퀘스트 때.

    나를 죽인 놈과 같은 느낌이다.

    기릭, 기리릭. 꾸르르륵.

    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삐우우우, 푸쉬이이이.

    놈의 등에 난 기다란 증기관 같은 것에서 김이 뿜어져 나온다.

    차르륵. 차르륵.

    그리고 놈의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겹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차륵, 차르륵.

    모든 껍질이 벌어지고 드디어 놈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니, 거기에는 얼굴 대신 커다란 구멍이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빙 둘린 징그러운 입.

    “키에에에엑!”

    놈이 외치자 꽃잎처럼 펼쳐진 겉껍질들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그리고 놈이 움직인다.

    “다, 다들 피해!”

    휘이이익! 쿠아아앙!!

    놈이 긴 팔을 사방으로 휘젓는다. 그 바람에 근처에 버려진 차량이 부서지고 튕겨 나온다.

    “흐악!”

    “으아악, 살려 줘!”

    미처 대피하지 못한 두 남자가 비명을 지르자, 괴물은 그 방향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이제 들린다!’

    녀석의 감각 기관이 완전히 똑바로 작용하고 있다는 거다.

    놈의 기다란 팔이 순식간에 남자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억압의 손길!”

    차르르르륵!!

    성인 남성의 허벅지보다 굵은 반투명 사슬이 놈의 팔을 붙잡는다.

    “큭!”

    하지만 놈의 힘은 장난이 아니다.

    내 사슬을 무시하고 그대로 뻗어 나갔다. 사슬이 하나, 둘, 셋, 넷…….

    끝도 없이 뻗쳐 나가 결국…….

    퍼억!

    도로 위로 피가 쏟아진다.

    “헉, 허억……. 이럴. 이럴 수가.”

    “꺄아아아악!!”

    “다들! 조용히 해요! 놈은 소리를 추적……!”

    크게 외치지만, 비명에 묻힐 뿐이다. 그리고 놈의 머리가 소리를 따라 기민하게 움직인다.

    “하앗!”

    콰자자자자작!!

    선명한 번개가 일직선으로 날아와 놈의 머리에 꽂힌다. 퍼엉!

    폭발음이 일지만, 검은 연기 사이로 놈은 머리를 디밀고 주위를 살핀다. 번개가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찾는 눈치다.

    그 앞에 결이가 서 있다.

    ‘녀석은 눈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 같군. 소리로 모든 걸 감지하고 있어. 저 펄럭이는 껍질들이 소리를 모아 주는 것 같고.’

    쉬이이익!! 퍼어어억!!

    이번에는 놈의 뒤에서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불어왔다. 하케임의 검기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두 사람이 비명을 듣고 복귀한 거였다.

    “이 녀석 약점은 눈이 안 보인다는 거야. 하지만 청각이 아주 뛰어나니까 조심해! 그걸로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내 말을 들은 하케임과 결이가 한발 물러난다. 소리를 들어 움직임을 캐치한다면 가까이 있는 것보다 먼 곳에서 공격하는 것이 유리할 터.

    ‘하지만 놈을 제대로 상대해 봐야 그게 먹히는지 알 수 있겠지.’

    꿀꺽.

    긴장한 탓에 온몸의 신경이 무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런 놈에게 나는 한 번 당한 적이 있으니까. 그때보다 얼마나 강할지, 얼마나 약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쉬이이익!

    투콰아아앙!!

    괴물 놈의 팔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쭈욱 뻗어 결이가 있는 곳 근처를 강타한다.

    우수수……. 건물이 박살 나 흙먼지가 인다.

    ‘정확도가 장난 아니야. 게다가 저렇게 먼 거리에서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생각한 것보다 녀석의 능력이 대단하다.

    “흡!”

    어느새 접근한 하케임이 거대한 창검을 놈의 머리통에 쑤셔 박으려고 하는 찰나.

    쉬이익! 콰악!!

    놈의 나머지 팔이 뒤로 꺾이면서 늘어나 하케임의 복부를 가격한다. 빨랐다. 너무 빨랐다.

    “커억!”

    단 한 방에 하케임이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각혈했다면 내상이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다. 만약 하케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저 공격에 당했다면? 아마 내상이고 나발이고 배를 관통당했을 거다.

    “하케임!”

    뒤로 넘어가는 하케임에게 외치는 순간, 놈의 머리가 나를 향한다.

    “헉.”

    쉬이익!

    그 팔이 내게 뻗쳐 오는 순간, 콰과광!!

    번개가 내려친다.

    번개와 함께 내리꽂힌 놈의 팔.

    후둑, 후두둑……. 부스스스.

    하지만 놈은 곧장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느려진 움직임이지만 아직 쌩쌩하다.

    번뜩 정신이 든다.

    츠츠츳!

    ‘불안한 예감!’

    디버프 스킬을 다가오는 놈의 팔에다 대고 사용했다.

    보랏빛 얇은 침 같은 것이 녀석에게 날아가 박힌다.

    ‘이걸로 놈의 집중력과 신체 능력 하락.’

    쉬이익. 내게로 곧장 전진하는 팔을 피해내기 충분하다.

    ‘이 녀석 빠르지만, 디버프를 먹이고 나니까 나보다 느리다.’

    심지어 은봉 할머니의 강화로 새벽의 검이 강화된 상태기 때문에 이전보다 민첩이 훨씬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헤르메스의 신발.’

    강화된 아이템은 새벽의 검 말고도 하나 더 있다.

    키잉.

    뒤꿈치 쪽에서 형광빛의 날개 이미지가 작게 떠오르고 곧장 하늘을 밟아 공중으로 떠오른다.

    놈의 팔은 목표인 나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전투에서 말로 지시할 수 없을 것 같아.’

    츠츠츳.

    소울메이트를 네 사람에게 연결한다.

    인화 선배와 김예리는 아직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중이고 하케임은 크게 다쳤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하케임은 일어났다.

    츠르륵. 츠르르륵.

    괴물의 머리가 주위를 살핀다.

    마치 어느 것을 먼저 부술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이의 번개를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다. 쓰러지기는커녕 간지럽다는 듯이 굴고 있어. 하케임보다 빠르고, 하케임을 한 방에 쓰러트릴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힘으로는 결이가 이겨낼 수 없다는 거야. 이 녀석은 이미 A급은 넘어섰어.’

    S급 몬스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서해에 등장했던 S급 던전이 떠올랐다. 그나마 사람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던전이었는데도 얼마나 많은 각성자가 희생되었는가.

    ‘지금 당장 서울의 모든 길드가 모여야 해. 하지만…….’

    순간 오늘 대호 형이 길드장 모임에 불려갔다는 게 생각났다.

    ‘전화를 받을까.’

    한창 회의 중일 시간이다.

    “시간을 끌어 줘!”

    결이를 향해 외치자 괴물 역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곧장 몰아치는 결이의 공격에 신경을 빼앗긴다.

    나는 재빨리 더 높은 상공으로 이동하며 휴대폰으로 대호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어 번 가더니 형이 바로 전화를 받는다.

    “형!”

    [어, 하준아. 무슨 일 있어?]

    “지금 서울 시내에 S급 몬스터가 출현했어요.”

    [뭐라고?! 그럴 수가……. 큰일이구나.]

    “당장 서울의 길드원 모두가 모여야 해요. 여긴 압구정이에요.”

    [그래, 마침 여기 회의 중이어서 대형 길드 길드장들이 모두 모여 있어. 조금만 기다려라.]

    “최대한 빨리 와 주세요!”

    통화가 끊어지고 아래로 결이와 괴물이 전투를 벌이는 게 보인다.

    ‘다행이다. 결이가 조금 더 빨라.’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공격에 당할 것같이 아슬아슬하다.

    ‘빨리 와 주세요, 형……!’

    * * *

    삑.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차대호는 회의장 문을 열었다.

    “지금 압구정에 S급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어서 모두 모여야 합니다.”

    차대호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곳에는 금성과 서광, 펌블 등 5대 길드 외에도 그간 생긴 작은 길드의 길드장이 모두 모여 있었다.

    “회의 중에 휴대폰을 받은 것도 모자라서 뭐라고요?”

    금성 길드의 길드장 이진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친구의 연락이어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앞으로 회의 때는 휴대전화를 걷든가 해야겠군요.”

    이진욱은 차대호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정신 이상자의 헛소리로 치부하는 듯 차갑고 귀찮은 듯한 어조였다.

    하지만 차대호는 그의 그런 반응에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길드장 모임에 도착한 이후로 그는 계속 그런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명백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음?”

    정적을 깬 이는 펌블의 김재민이었다.

    그는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더니 비스듬히 앉아 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길드장님들, 차 길드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거짓말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는 어느새 회의장 앞을 비추고 있는 빔 프로젝터에 자신의 폰을 연결하더니 별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을 재생했다.

    거기에는 대피하는 시민들,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는 시체들이 모자이크도 없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각성자와 괴물.

    하나는 이곳에 모인 길드장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S급 헌터 한결.

    그가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길드장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