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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5화 (125/250)
  • 제125화

    제125편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이것뿐이라고 했죠?”

    “그래, 맞다. 시시하니 이 스킬이 뭐가 좋다는 긴지 모르겠구만.”

    “아이템 제작 스킬이 원래 그래요. 지금은 시시해 보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대단해지는데요.”

    내 말에 은봉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공간이 넓으니까 충분히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스으으으…….

    내 인벤토리에서 나오는 에테르석이 훈련실 구석에서부터 쌓이고 있다.

    “하준이 니는 참 똑똑하다. 어째 이래 준비성이 좋노.”

    “에이 참, 뭘요. 그냥 사냥하다 나온 걸 모아 뒀을 뿐인데요.”

    물론 안사홍을 통해 있는 대로 전부 사 달라고 했지만.

    “자, 할머니. 스킬 한번 써 보세요.”

    “좋다. 잘 보고 있그래이.”

    은봉 할머니가 에테르석 하나를 쥐고 허공에 손을 뻗자 작은 칼이 두둥실 생겨났다.

    “아이고, 놀래라. 진짜로 마술 같네. 하준이 니 옆에 떠다니는 그 불꽃도 진짜 마술 같았는데.”

    은봉 할머니는 자기 스킬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칼을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에테르석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이 스킬이라는 기 내 머릿속에다가 알려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는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감자 깎듯이 마 이래 깎아 뿌는 게 다다.”

    카득카득, 슥슥슥.

    주먹보다 살짝 큰 에테르석이 조금씩 깎여 나간다.

    30초 정도가 걸렸을까.

    “에구머니나!”

    집중하고 있던 은봉 할머니가 놀라 펄쩍 뛰었다.

    “할머니 왜요?!”

    “아, 아이고 놀래라. 내 아직 이 시스템인가 뭔가가 익숙하지를 않아 가지고. 무슨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랬다. 시상에나. 보자……. 뭐라고 떴는데. 하급 에테르석으로 가공에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뜨네.”

    “와, 대단해요. 할머니!”

    “잉? 이게 대단한 기가?”

    에테르석을 그냥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원석을 가공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손을 대, 하급, 중급, 상급으로 가공을 해야 비로소 장비 아이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특화 아이템을 만들 뿐 아니라, 강화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기술이 있는 각성자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거를 천 개를 하라 카네.”

    “에테르석은 제가 또 가져오면 돼요. 할 수 있으시겠어요?”

    “물론이제. 내가 처음에 요리 배울 때 양파하고 마늘만 천 개씩 다듬었다. 천 개가 아니고 만 개라도 할 수 있다 안 카나. 그런데 이 넓은 데를 내 혼자 써도 되나? 내 때문에 다른 사람들 못 쓰는 거 아니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에 이런 훈련실이 3개는 되니까요.”

    “그라믄 다행이다. 이제 하준이 니 할 일 하고 있그레이. 나는 스킬 단련이나 해야겠다.”

    나는 할머니 앞에 포션을 두어 개 내려놓았다.

    “갑자기 마력을 많이 쓰시면 어지러우실 수도 있어요. 마력 소모되는 거 체크하면서 하셔야 해요?”

    “살살 해라는 거제? 알겠다, 알겠어.”

    할머니는 내게 손을 흔들더니 곧장 다시 에테르석을 다듬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사각, 사각, 사각…….

    띠링.

    [하급 에테르석 가공에 성공했습니다.]

    “하이고, 이제 한 500개 깎았나. 슬슬 속도가 빨라지는구마잉?”

    윤은봉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에테르석과 칼을 내려놓았다. 스킬로 인해 만들어졌던 칼은 스르륵 소리를 내며 금방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게 마나가 바닥난다는 뜻이구먼.’

    흐른 땀 때문에, 입은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윤은봉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잉?”

    훈련실 구석 소파에 은하준이 몸을 구긴 채 누워서 졸고 있었다.

    “할 일 하러 가라 캤드만, 여서 뭐 하고 있노.”

    깨울까 하고 잠깐 일어났다가 은하준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내한테 스킬을 쓰고 있다고 그랬제.’

    게다가 은하준은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의 식당 일을 돕지 않았는가. 졸릴 만도 했다.

    “참 착하데이.”

    “무앙?”

    하준이 늘 데리고 다니는 파란 불꽃이 스멀스멀 은봉 곁으로 날아왔다.

    “아이고, 이쁜 것아. 그래, 니가 하준이를 맨날 챙기는 것이냐?”

    “무앙! 망! 무아앙~!”

    불꽃은 마치 은봉의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래, 그래. 하준이도 착하고 니도 착하고. 원래 착한 것들끼리 친구한다.”

    은봉은 불꽃을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살살 움직였다. 물론 하준 외에는 망량을 만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늉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무아앙. 무앙, 무앙.”

    “그래. 친구도 친구지만, 가족이제. 가족은 언제 어디서든지 서로 돕고 사랑해 주는 기라. 알긋나.”

    “뭉!”

    불꽃이 파랗고 까만 눈동자로 은봉을 올려다보았다.

    은봉 곁에도 이렇게 꼭 붙어 있던 친구가 있었다.

    은봉이 어린 나이에 공장을 다니며 힘들어서 울 때도, 주정뱅이 남편이 집을 다 뒤엎어 도망쳐 나왔을 때도, 아들을 낳아도 찾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서러워 울 때도. 직접 만든 미역국을 가지고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파랗게 일렁이는 망량이의 불꽃 사이로 친구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청화야……. 니 거기서는 내 안 보고 싶나.”

    파란 저고리가 제일 잘 어울리던 백옥같이 흰 피부를 가진, 책을 좋아하던 부잣집 딸내미가 떠올랐다. 몸이 약해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세상을 뜬 불쌍한 여자애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은봉을 남겨 두고 저들끼리만 미국으로 홀랑 가 버린 아들을 욕해 주었을 텐데. 그러면 은봉은 자식들 발목 잡을 생각 없다고 두둔할 거고. 그럼 또 청화는 어려울 때 뼈를 깎아 가며 도와준 것이 누구인데 덕을 모르고! 라며 화를 내 주었을 텐데.

    은봉은 작고 푸른 불꽃을 보면서 스스로 온갖 청승을 다 떤다고 생각하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친구는 소중한 기라. 특히 가족 같은 친구는……. 곁에 있을 때 잘해 줘야 하는 기라.”

    “무아앙…….”

    “어째 이래 똑똑하노. 말도 잘 알아듣고.”

    망량이가 은봉의 뜻을 모두 헤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봉은 망량이를 대견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하준이 잠들어 있는 맞은편 캐비닛에 담요가 있었다.

    “아이고, 밤낮없이 훈련하는 학생들이 많은갑다.”

    은봉은 담요를 가져와 하준에게 살짝 덮어 주었다.

    ‘내 말년에 억수로 심심할 뻔했는데, 하준이 니 덕분에 한 개도 안 외롭다 아이가. 니랑 니 친구들이랑, 길드장님이랑, 다 늙은 노인네를 이렇게 챙겨 주고.’

    잠들어 있는 하준의 말끔한 얼굴이 더없이 예뻐 보였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만난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데도 니가 가깝게 느껴진다. 그만큼 니가 내한테 잘하는 거겠제.’

    은봉은 하준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

    “하준이 니는 이렇게 얼라면서. 한 번도 할매한테 뭐를 해 달라 한 적이 없데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할매요 이것 좀 해 주이소, 어매요 한 번만 도와주이소.’ 이라는데 니는 오히려 할매를 도와주기만 했데이. 니 내가 그거를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르제.”

    이 어린 남자애의 얼굴을 보면서 오랜 친구였던 청화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며, 하고 싶은 걸 하라며 응원하던 청화와 하준은 이상하리만치 똑 닮았다.

    그럴 수는 없겠으나 청화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이렇게 곱고 예쁜 아이였겠지. 은봉은 하준의 동그란 이마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아야. 걱정하지 마라. 할매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줄 수 있다. 청화야. 니한테 못 갚은 은혜, 이 얼라한테 조금이나마 갚아도 되겠나.”

    청화는 은봉에게 늘 말했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았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어려운 것을 돕고 사랑을 나누면 가족이라고.

    그러니 너와 나도 가족이라고.

    그리고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자신은 늘 친구를 돕고 싶다고.

    “이 얼라를 니로 생각하고 잘해 주면……. 머지않아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때. 나도 니를 생각하면서 이래 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겠나.”

    은봉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

    “으음…….”

    깜빡 잠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덕분에 아주 숙면을 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많이 자 버린 것 같지만.

    “훌쩍……. 훌쩍…….”

    “뭐야, 망량이 너. 왜 울고 있어?”

    “그런 게 있어요.”

    “뭐야?”

    “그런 게 있다고요. 정말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누가? 은봉 할머니가 해 주셨어?”

    그러고 보니 훈련장에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내가 몇 시간이나 잔 거야?”

    시간을 확인하니 4시간이 지나 있다.

    “미쳤군. 이렇게나 많이 잤다고?”

    “훌쩍……. 훌쩍…….”

    대체 은봉 할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망량이는 계속 훌쩍거리기만 한다.

    “건물 안에서 길을 잃으신 건 아니겠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달칵하고 문이 열린다.

    “하, 할머니! 어디 다녀오셨어요?”

    “하이고, 아야. 내가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 갖고 옷이 땀으로 다 젖어뿟다. 그래서 갈아입을 옷 좀 챙기고 또 샤워도 좀 하고 왔데이.”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뽀글뽀글한 파마머리가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고 있다.

    “원래 사우나에 가서 1시간 지져야 하는데, 훈련해야 하니깐은 그럴 시간도 아깝고.”

    “깜빡 잠들어서 그런데, 숙련도는 많이 오르셨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훈련을 하신 지 5시간 정도 되었다.

    ‘한 절반 정도 하셨을라나.’

    이제 막 각성했으니 분명 힘을 다루는 것만 해도 힘이 들 터. 중간에 쉬어 주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절반이나 했다면 아주 대단한 성과일 것이다.

    숙련도와 작업도를 얼마나 올려야 중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음, 많이는 못 올렸고.”

    할머니가 뽀송한 수건으로 촉촉한 머리의 물기를 탁탁 털어내며 에테르석이 잔뜩 쌓인 곳으로 걸어갔다.

    “일단 준 건 다 했는데.”

    “네?”

    “준 거 다 했다고.”

    “그럼 천 개가 이미 넘었는데요?”

    “그렇지. 천 개는 넘었지. 그러고 보니 이제 하급이 아니고 중급도 만들 수 있게 됐다.”

    “뭐라고요?”

    입이 떡 벌어진다.

    은봉 할머니,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뭘 하신 거예요?

    “아, 아니……. 할머니 마력은 괜찮으세요?”

    “마력이 와?”

    “분명 마력이 바닥나서 힘드셨을 텐데?”

    “하모. 그래, 쉬어 주면서 했지. 와? 니 와 자꾸 이래 묻는데? 뭐 잘못됐나?”

    이게 대체…….

    “훌쩍……. 사실은 제가…….”

    “응?”

    망량이가 훌쩍거리며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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