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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4화 (124/250)
  • 제124화

    제124편

    “아이고, 왐마야. 건물이 이래 좋고 크노.”

    신선 길드 사옥에 들어서며 은봉 할머니는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이런 곳은 난생처음이라는 듯, 하얗고 깨끗한 로비를 보며 한참을 두리번거리신다.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마다. 햐……. 우리 가게도 이래 새것 같으면 좋겠네.”

    “여기 1층으로 할머니 가게 옮기실래요? 왠지 길드장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매번 식사 챙기기가 고역이거든요.”

    우리 길드는 아직 길드원이 적다 보니 전용 식당은 없고 각자 해결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매번 점심 걱정을 달고 사는 것과 같았다.

    “아니다, 됐다. 나는 내 가게가 좋다. 그런데 우짜노. 내 이제 각성자가 됐으면 장사는 못 하는 거 아니가?”

    은봉 할머니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으음……. 아마 각성자로서의 업무가 생기긴 하시겠지만, 식당을 그만두고 싶지 않으시면 계속하셔도 좋지 않을까요. 사람을 더 쓰거나……. 다만 각성자 일을 시작하시면 금전적인 부분은 그걸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맞나. 사실 돈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들 내외도 이제 알아서 잘하고……. 그런데 할 줄 아는 일이니까 계속했지. 놀면 뭐 하겠노 하고.”

    “항상 부지런하시니까요. 뭐든 할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선택하실 수 있어요.”

    “…….”

    은봉 할머니는 복잡한 얼굴을 했다.

    30년이나 해 온 장사를 곧장 접자니 아쉬우신 모양이었다.

    “그라믄 내 가게 정리할란다.”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라서 바라보니, 어느새 할머니의 표정이 씩씩하게 변해 있었다.

    “내가 못 배우고 자라서, 할 줄 아는 게 밥하는 거뻬끼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한테 능력이 생긴 거 아이가. 공부하는 거 맹키로 이래이래 내가 훈련을 해 갖고 마. 아니가? 내도 각성자가 뭐 하는지 텔레비전으로 다 봤다 아이가.”

    “할머니…….”

    그 눈빛은 80대 노인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 담긴 생기는 어린아이 같으면서 또 청년처럼 용맹했다.

    “내 30년 단골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아니라도 그 골목에 식당은 많다이가. 내도 이제 새로운 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니 말대로 내 선택이다. 맞제?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기 아니고, 내 선택이다 이 말이다.”

    지금 할머니는 어떤 기분일까?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80여 년을 남을 위해 살아 온 은봉 할머니다. 형제자매들을 위해 일하고 자식들을 위해 일했다.

    공부가 제일 하고 싶었다지만, 가족들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제2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신 거다.

    ‘각성자로 살기 싫다고 하시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솔직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자 하셨을 수도 있었다.

    ‘왠지 찡하다.’

    내 손을 꽉 잡은 할머니의 손이 짠하다.

    “하준이 니가 내 많이 도와줘야 한다. 알겠제?”

    은봉 할머니가 내내 잡고 있던 내 손을 더 꽉 쥔다.

    그 손이 긴장으로 약간 촉촉해져 있다.

    “물론이죠, 할머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할머니 역시 넥스트 레벨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로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

    ‘영혼 분별사.’

    스킬을 외치자 눈앞에 은봉 할머니의 정보가 떠오른다.

    [윤은봉]

    영혼 등급: A

    영혼 상태: 불안정

    싱크로율: 72%

    ‘좋아. 상태가 조금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그건 한결이도 그랬으니 크게 문제가 없다. 게다가 싱크로율은 70%가 넘는다. 곧장 소울메이트를 사용할 수 있겠어.’

    나는 은봉 할머니의 손을 꼭 맞잡고 토닥였다.

    “할머니, 제게 능력치를 버프……. 그러니까 높여 주는 기술이 있어요. 그걸 할머니한테 사용해도 될까요?”

    “좋은 기가? 좋은 기면 써야지.”

    은봉 할머니는 나머지 손의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씩 웃는다.

    “일단 길드장님께 인사드리러 가 볼까요.”

    “아이고, 무서버라.”

    “무서울 게 뭐 있나요. 계약서부터 해서 제가 확실하게 봐 드릴게요.”

    “하준이 니만 믿는다!”

    * * *

    “하준이 너는 내가 항상 믿지.”

    차대호는 눈앞에 있는 은하준과 윤은봉을 보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 외관만 보고 놀란 마음을 내비치는 건 너무 무례한 일일 테니까.

    어떻게 이 작고 귀여운(차대호는 이 점에서 자신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각성자일 수가 있을까.(이 점에서도.)

    이 할머니가 몬스터를 해치울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너무 멋졌다. 차대호는 다시 한 번 시스템의 힘과 각성자들의 힘에 감탄했다.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 내 곁에 있기도 했고.”

    “아, 맞아. 그랬죠. 은봉 할머니, 저희 길드장님도 지금 할머니랑 비슷한 케이스셨어요.”

    은하준은 놀란 차대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옆에 앉은 윤은봉의 손을 꼭 잡고 말이다.

    두 사람은 아주 사이가 좋은 할머니와 손자로 보였다.

    “맞아요. 전 각성 후 폭주까지 해서 하준이랑 다른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아이고야……. 대단하신 길드장님 같은데 그런 일이 있으셨구마이.”

    윤은봉은 꽤 긴장한 얼굴이었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각성한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그……. 네가 자주 가던 식당 주인 할머니신데 갑자기 각성을 하셨다고.”

    “네.”

    은하준의 옆에서 윤은봉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는 길에 은봉 할머니의 스킬이 어떤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적당한 공격 스킬도 있지만, 주된 건 아이템 제작과 강화 스킬이더라고요. 심지어 랭크도 A랭크세요.”

    “엄청난 행운이구나. 할머니에게도, 우리에게도.”

    차대호 입장에서 윤은봉을 길드에 들이는 건 손해가 아니었다. 아이템 제작자와 강화자는 섭외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실력이 그저 그런 사람들조차 대형 길드가 모셔 가려고 줄을 서 있었고 그마저도 데려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득이었다. 그래서 윤은봉을 데려온 하준에게 감사함까지 느꼈다.

    “맞아요. 엄청난 행운이죠.”

    은하준이 소위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차대호는 물론이고 윤은봉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지금, 이 순간, 은하준을 만난 자신이 참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윤은봉 할머니. 저는 하준이가 데려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함께 잘해 봅시다.”

    차대호와 윤은봉이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했다.

    “자, 그럼 계약서를 써 볼까요.”

    * * *

    “내가 똑바로 했는지 모르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계약 기간은 2년. 할머니가 길드에서 해야 할 일은 아이템 제작과 수리, 강화 등 능력 내에서 가능한 업무를 맡길 거고 계약금과 월급, 건당 발생하는 인센티브까지 제가 다 확인했어요.”

    회귀 전에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기에 최선을 다해 할머니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썼다.

    게다가 아무리 할머니에게 유리한 계약서더라도 할머니가 우리 길드에 속해 일하는 것보다 이득이진 않으니까.

    “계약 기간이 2년밖에 안 되면 안 좋은 거 아니가. 아까는 내 떨려 가지고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아이가.”

    “에이, 아니죠. 할머니는 능력이 대단하신 분인데. 2년 뒤에 성장하신 만큼 계약 조건을 더 높이셔야죠. 저희 쪽에서도 그렇게 할 거고요. 각성자는 노력 여하에 따라 같은 기간이라고 할지라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그렇게 계약하시는 게 유리해요. 그리고 저희랑 일하시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시면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길드를 옮기셔도 되고요.”

    물론 우리 길드를 떠난다고 하면 무척 슬프겠지만, 억지로 사람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동안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최대한 잘해 드릴 생각이다.

    “하이고……. 하준아. 진짜 내 니 없었으면 우짤 뻔했노.”

    “저도 너무 믿지 마시고 항상 의심하세요. 그러다가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얼른 도망치셔야 해요?”

    “그럴 일이 있겠나. 내가 사람은 잘 본다. 하준이 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80년이나 살아서 잘 안다.”

    은봉 할머니는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시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할머니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귀 전엔……. 완전히 사기당하셨다고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뒤, 길드 이곳저곳을 안내해 드린다. 할머니의 눈은 길드를 구경하는 내내 반짝반짝 빛났다.

    “어떠세요, 지치진 않으세요?”

    “하준아, 각성자라는 기 억수로 대단타. 내 이래 오래 걸어 댕겼는데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 아이가.”

    “그러세요? 그럼 오늘 바로 훈련도 가능하시겠어요?”

    “훈련?”

    할머니의 눈이 한층 더 초롱초롱해진다.

    “된다! 가게는 상인회에 전화해서 대충 잠가 달라 카믄 된다.”

    “그럼 통화하고 오세요.”

    은봉 할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전화기를 꺼내 곧장 상인회에 전화하여 오늘 장사를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당긴다.

    “자, 가자. 훈련하러!”

    * * *

    나는 은봉 할머니를 데리고 곧장 길드 훈련실로 향했다.

    ‘예리 씨 훈련 이후로 또 한동안 이곳에 들락거리겠군.’

    그리고 훈련실에 들어서자마자 소울메이트를 사용한다.

    “응?”

    “뭔가 느껴지시죠?”

    “그래, 하준이 네가 뭔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게 할머니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자, 훈련을 시작하죠?”

    “좋다! 뭐부터 하면 되노?!”

    나는 훈련실 중앙에 있는 샌드백을 가리켰다. 할머니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하앗! 챠앗!”

    퍼억! 퍽!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가 훈련장을 가르고 각성자용 샌드백이 마구 흔들린다.

    “어떻노!”

    “자세가 무척 좋아요. 역시 A랭크라 그러신지 공격 대미지도 아주 잘 나오네요.”

    내 옆에 망가진 샌드백이 두어 개 쌓여 있다.

    “내 이래 날라댕긴 거는 기억이 까마득하다. 우째 이럴 수가 있노. 기력이 펄펄 넘친다!”

    할머니는 이마에 흐른 구슬땀을 훔치며 소녀같이 활짝 웃었다.

    “앞으로 더 강해지실 거라니까요. 그럼 이제 알려 드린 걸 매일 연습하시면 돼요. 이건 완전 기본이에요. 아시겠죠?”

    “하모. 알겠다. 내 매일매일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준아.”

    “다행이네요.”

    이제 얼추 할머니의 대미지나 신체 능력을 확인했으니 제일 중요한 게 남았다.

    “지금부터는 마력을 쓰셔야 해서 좀 힘드실지도 몰라요.”

    “괜찮다! 내는 준비됐다.”

    “훈련하시는 동안 제가 준비물을 챙겨 왔어요.”

    “오오, 그래. 에테르석 말이제?”

    “네.”

    인벤토리를 연다.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에테르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드디어 이걸 쓸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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