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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3화 (123/250)
  • 제123화

    제123편

    “하준 님?”

    “아, 아닙니다. 앉죠.”

    자리를 찾아 앉으면서 속으로는 쾌재가 터진다.

    “뭐 드실라고예?”

    윤은봉이 씩씩한 걸음으로 다가오자 미소는 더욱 짙어진다. 그래, 뉴스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정겨운 뽀글뽀글한 펌에 푸근한 인상, 동글동글한 풍채.

    “저는 참치김치찌개요.”

    “아, 아……. 저는, 저도 같은 걸로…….”

    주문을 마치고 윤은봉이 돌아가자 김예리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준 님, 뭐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 뭐. 매일이 기분 좋죠.”

    “네? 그럴 수가…….”

    “응? 예리 씨는 안 그래요?”

    “기분이…… 매일 좋을 수가 있나?”

    “아니 뭐, 하루 종일 기분 좋을 순 없어도 대체로 그렇지 않아요? 그냥 뭐…….”

    “전 다운되어 있는 게 디폴트라서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음식이 서빙됐다.

    “우와, 진짜 빨리 나오네요.”

    “내가 여기서 장사한 지 30년 됐심더.”

    “대단하세요!”

    김예리가 환호하는 사이에 나는 묵묵히 참치김치찌개를 먹었다.

    찌개 안에 참치가 아주 인심 그득하게 들어 있다.

    역시 김치찌개는 참치김치찌개지.

    그날은 그렇게 식사만 하고 나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두 달 동안.

    나는 참치김치찌개만 시켰다.

    김예리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나는 매일매일 새벽 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석 달째 접어드는 그날에도.

    골목을 돌자, 기사식당이 보였다.

    오늘은 윤은봉 할머니가 밖에 나와 가게 앞 도로를 비질하고 계셨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자마자 귓가에 거친 엔진음이 들렸다.

    “트럭…….”

    저 멀리 큰 도로에서 들어오는 1톤 트럭이 과속인 채로 돌진하고 있었다.

    “할머니!”

    “아, 하준 학…….”

    부르르릉!

    쉬리리릭!!

    도로에 은봉 할머니가 나와 있는 걸 보지 못한 게 틀림없는 트럭을 향해 억압의 손길을 사용했다.

    키리리리릭.

    허공에 뜬 바퀴가 날카로운 회전음을 낸다.

    “에, 에구머니.”

    털썩.

    트럭에 치이지는 않았지만, 놀란 은봉 할머니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아이고.”

    은봉 할머니는 발목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할머니, 병원 가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고마워서 우짜노. 하준 학생아…….”

    “저한테 기대세요. 읏차.”

    “아이고, 고마워라. 아이고…….”

    그 후 할머니를 돕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 *

    그렇게 된 일이다.

    “하준이 아니었으면 할매는 장사도 몬 하고 우쨌겠노…….”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그런데 하준이 아가 웃기는 기 맨날 참치김치찌개만 묵는 기라. 내가 처음에는 웃기 가지고.”

    은봉 할머니가 깔깔 웃으며 무릎을 친다.

    ‘솔직히 아이템 강화 스킬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어쩐지 내게도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분이지 않았을까. 이런 분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을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은봉 할머니의 따뜻함 덕분 아니었을까.

    ‘게다가 할머니가 당하는 일을 생각하면…….’

    은봉 할머니를 특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는 각성 후 금성 길드와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각성자에 관해 잘 모르는 할머니를 불공정한 계약서로 계약해 혹사시키고 소송까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전국에 크게 대두되고, 어떻게 금성처럼 큰 길드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냐.

    아무리 랭크가 높은 각성자라도 법을 모르면 당하는구나.

    각성자들에게 계약 교육을 센터에서부터 시켜야 한다 등 각종 여론이 쏟아졌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나조차 할머니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

    ‘환희를 통해서라면 훨씬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아직 각성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낸 후에 그 사람이 각성하면 너무 이상하니까.’

    환희는 눈치가 빠르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걸 계속 물어볼 수도 있었다.

    “이제 상인회에서 도와주러 올 테니께 다 묵었으면 어여 가그라.”

    “아녜요. 상인회분들 오실 때까지 강정 먹으면서 할머니 귀찮게 할 건데요.”

    “아이고, 웃기다. 하준이 니는 와 이래 웃기노.”

    별로 재밌는 말도 아닌데 할머니는 깔깔 웃으면서 강정과 식혜를 더 내놓으신다.

    말은 안 하시지만, 미국에 있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그립고 외로우신 거다.

    “하준이 니 덕분에 손자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서 할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제.”

    “여기 둘 더 생겼으니까 세 배로 고마우시겠네요.”

    “친구들 놀랜다! 이래 못생긴 할매를 할매로 두라 해서!”

    은봉 할머니가 또 한바탕 깔깔 웃는다.

    “할머니……. 안 못생겼는데요.”

    오도독. 강정을 깨물어 먹던 결이가 툭 말했다.

    은봉 할머니는 동그래진 눈으로 결이를 바라보다가 “이래 이쁜 손주들이 다 있네.” 하시면서 식혜를 더 따라 주신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기만 하던 결이는 이제 익숙해진 모습이다. 오히려 즐거운 것 같았다.

    결이도 나도 할머니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난생처음이니까 너무 좋은 거다.

    “할매가 말년에 복 받았다.”

    “벌써 무슨 말년이에요.”

    “이렇게 쪼그라들었으면 말년이지!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산다꼬.”

    “오래 사실 거예요.”

    “니가 우째 아노. 말이라도 고맙데이.”

    “정말이라니까요? 100살까지 안 놔드릴 거예요.”

    은봉 할머니는 또 웃음이 터지셨다.

    사실 농담이 아닌데. 할머니 각성하시면 진짜 안 놔드릴 거예요. 그리고 고생 안 하시게 신선 길드에서 금성보다 빨리 스카우트해 갈게요.

    100살까지 안 놔드리면 이것도 불공정 계약인가?

    “징그러버라, 징그러버라. 100살까지 우예 사노. 힘들어 죽겠는데. 고마 살아야지.”

    “그런 말씀 하지 마시래두요.”

    “어머, 은봉 할머님~! 저희 왔어요. 이 청년들은 누구? 아, 하준 청년 친구들인가 보네?”

    “안녕하세요.”

    하케임이 밝은 목소리로 꾸벅 인사한다.

    “아유~ 잘생겼네. 어쩜 젊은 학생들 덕분에 시장 거리가 살아난다. 정말!”

    상인회 아주머니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할머니의 주방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진짜로 가 보그래이.”

    “예. 할머니 내일 또 뵈어요.”

    드르륵.

    문을 열고 길에 나서니 처음 도착할 때와 달리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을 따듯하게 비춘다.

    “뭐야, 정말 오늘 일손이 모자라서 우릴 데려온 것뿐이야?”

    “사실 결이 너만 데려오려고 했지. 하케임은……. 아직 다 모르니까. 그런데 하케임이 따라온대잖아.”

    미닫이 사이로 상인회 아주머니들에게 하케임이 아직 잡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결이에게 속삭였다.

    “난 오늘이 각성하시는 날인 줄 알았어. 혹시나 폭주 때문에 우릴 부른 건가 했지.”

    “으음. 아무리 내가 회귀자라도 남의 각성일까지 정확하게 기억 못 해.”

    “회귀자들은 그거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랬으면 그냥 매주 복권 당첨됐겠지.”

    결이가 피식 웃는다.

    “대단하네. 석 달이나 여기 출석 체크를 한 거야? 정성이다.”

    “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래, 맞아. 넌 항상 그랬어.”

    “뭐야.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대견한 눈빛을 하는 결이 태도에 왠지 민망해져서 어깨를 툭 친다.

    “어? 아이고! 은봉 할머님?!”

    안쪽에서 일어난 소란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상인회 아주머니들이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다.

    “할머니!”

    헐레벌떡 달려가 자세히 살펴보니, 은봉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눈동자 색이 던전 포털의 것과 같은 색으로 일렁인다.

    ‘설마 오늘 각성한다고?’

    나는 기억력은 별로 좋지 않아도 운 하나만큼은 더럽게 좋은가 보다. 이렇게 현장에 바로 있을 수 있다니. 그만큼 각성 후 폭주나 다른 길드에서 작업하는 걸 방지할 수 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아이고, 마. 어지럽고 체한 거 맨키로 속이 이상하다, 야.”

    할머니는 가슴을 꾹 쥐고는 바닥으로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내 눈에서부터 흘러나온 포털의 빛이 할머니를 감쌌다.

    “어, 어어……!”

    “어머머!”

    아주머니들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고, 나 역시 잠깐 할머니를 풀어 두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끙끙 앓던 은봉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이, 이기 다 머꼬?”

    “할머니. 지금 할머니는 각성자가 되신 거예요.”

    “머라꼬?! 각성자라꼬?! 그런 거는 젊은이들이나 되는 기 아니가?!”

    할머니는 거의 펄쩍 뛰다시피 하며 놀랐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더 놀랐다.

    “모, 몸이 한 개도 안 아프네?”

    “그래요? 다행이네요.”

    각성 효과로 할머니의 부상이 치료된 것이다.

    “부상 치료뿐만이 아니에요. 할머니, 몸이 가볍지 않으세요?”

    “옴마야. 맞다. 하준이 니 말대로 몸이 억수로 가볍다. 이게 무신 일이고.”

    “각성자가 됐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향상된 거예요. 레벨을 올릴수록 더 강해지실 거고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나.”

    할머니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다행히 각성 후 폭주도 없는 것 같네요.”

    “마 폭주고 뭐고…….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할매가 각성자가 돼서 머를 하겠노. 아이고 마, 마……. 이제 내도 괴물들을 막 잡으러 댕기야 되나?”

    “일단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정하시는 게 우선이에요.”

    나는 할머니를 의자에 앉히고는 물을 떠 왔다.

    “한 잔 드세요.”

    “아이고 고맙다, 하준아. 니 아니었으면 내가……. 하이고…….”

    “세상에, 은봉 할머님이 각성자가 되시다니…….”

    상인회 아주머니들은 선뜻 은봉 할머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옆에서 서성거리면서 놀라워했다.

    사실 각성은 그 어떤 기준도 없이 발생하는 일이라 노인 각성자의 수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고령화된 한국에서는 노인 각성자들의 수가 많고 활약도 컸지만, 각성자들의 이미지를 좋게 하겠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젊은 각성자들만 부각해 미디어에 노출됐다.

    “그래도 은봉 할머니 곁에 이렇게 각성자에 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래, 하준 청년이 각성자에다 길드에서 큰일을 하고 있다지?”

    “큰일까지는 아니고요. 하하.”

    “그럼 우리 은봉 할머니를 하준 청년이 맡아서 좀 케어해 주면 되겠다. 그렇지?”

    “우리 상인회에서 은봉 할머니 걱정을 많이 해요.”

    은봉 할머니가 별다른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자 상인회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박함마저 서려 있었다.

    “저야 어렵지 않죠.”

    “아이고…….”

    “할머니는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또 이렇게 하준이 니한테 폐를 끼친다.”

    “아니에요. 폐라뇨. 할머니가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데…….”

    은봉 할머니의 눈이 고마움으로 촉촉해진다.

    “니가 내 손주보담도 아들보담도 낫다. 하준아, 니가 내 진짜 손주다.”

    할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으시며 등을 토닥여 주셨다.

    스스슥.

    어느새 하케임이 다가와 부둥켜안은 나와 은봉 할머니를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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