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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2화 (122/250)
  • 제122화

    제122편

    새벽 골목에 가득한 서늘한 공기.

    창백한 빛의 하늘은 이제 막 떠오를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시린 기운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었다.

    코너를 돌아 다음 골목에 들어서자 시끌시끌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은하준. 뭐 그렇게 맛있는 걸 먹여 주려고? 이 꼭두새벽에…….”

    하케임은 뒤에서 쫄랑쫄랑 쫓아오며 하품을 쩍쩍 해 댔다.

    “넌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아침잠이 많아진다?”

    “지구에 적응하고 있는 거다. 한결도 지금 눈이 완전 감기기 직전이다.”

    능청스럽게 받아치고는 괜히 결이에게 치대기 시작하지만, 결이는 하케임의 치댐을 피해내고 내 옆에 딱 붙어 선다.

    주위로는 작은 가게들과 포장마차들이 벌써부터 불을 켜고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익숙하지, 뭐.”

    한결이가 하케임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맞다.

    이 지역은 택시 회사에, 터미널에, 용역 사무소까지 밀집된 곳으로 24시간 기사식당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각성 전에는 결이도 나도 이곳 용역 사무소를 많이 거쳐 갔었다.

    값싸고 양 많은 기사식당은 벌이가 괜찮은 날이나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이 사 주실 때나 올 수 있었다.

    ‘그래, 맨날 삼각김밥이나 라면 먹고도 쑥쑥 커 줘서 다행이다. 결아. 그래……. 너라도 커야지.’

    익숙한 거리를 보니 꼭두새벽인데도 배가 꼬르륵 울리는 것 같다.

    “얼마나 맛집이길래. 기대되니까 배고프다.”

    하케임은 결이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이번에는 내 쪽으로 붙는다.

    “여기가 그 유명한 부산 할머니 기사식당이지.”

    “오오!”

    “부산 할머니? 여기 우리가 와 봤던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자 따뜻한 김이 뿌옇게 어린 사이로 안쪽의 손님들이 보였다.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이소!”

    “와, 맛있는 냄새.”

    정겨운 부산 사투리에 하케임과 결이의 시선이 곧장 메뉴판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특별할 것 없이 백반집에서 늘 볼 수 있는 평범한 메뉴들이 쓰여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하지만 우리는 저 메뉴랑 상관이 없다. 아니, 상관이 있기는 한데 테이블 위에서 만날 일은 없다. 나는 곧장 몸을 틀었다.

    “할머님!”

    “어! 하준이 왔네!”

    주방에서 키가 작고 동글동글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하이고야, 안 와도 된다니까는.”

    “아니에요. 도와 드려야죠.”

    주인 할머니와 나의 대화에 결이와 하케임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아이, 이 친구들이가? 오늘 도와준다던 니 친구들이? 아이고야, 둘 다 키도 크고 잘생깄네. 그런데 일은 잘 할랑가 모르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일 진짜 잘하는 친구들이니까요.”

    “하준이 니가 그라모 맞는 말이겠제.”

    함박웃음을 지은 건 할머니와 나뿐이다.

    * * *

    “빨리빨리 서빙해라!”

    “아이고, 덩치가 크단해 가지고 저거 다 때리뿌사라.”

    “니! 니! 아이고, 손아~! 그카면 안 되제!”

    “니 지금 손님이랑 싸우는 기가?”

    부산 할머니 기사식당은 무척이나 바빴다.

    그냥 바쁘다는 말로는 끝날 일이 아닐 정도로 무척 바빴다.

    결이와 하케임은 몇 시간 내내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고 불 앞에서 요리하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 손님들에게 서빙했다.

    괄괄하면서도 스스럼없는 아저씨들의 말 상대까지 해 줘 가며.

    식당이 한가해진 것은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고생들 했다. 할매가 뭐 줄 거는 없고…….”

    할머니가 흰 봉투를 내민다.

    “아이참, 할머니. 이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나는 선뜻 손을 내미는 하케임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 봉투를 할머니의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래도 이래 마, 맨날 도와줘서 우짜노. 젊은이들 금같이 귀한 시간을 노인네한테 다 쓰고.”

    “아유.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잖아요.”

    “맨날? 매일 왔다는 거야?”

    결이가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정말로? 언제부터? 그럴 리가? 라는 표정이다.

    “친구들, 몰랐나. 하준 학생이 이래 내를 도와준 지도 벌써 한 달째다.”

    결이와 하케임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번진다. 특히 결이는 놀란 나머지 입까지 벌어졌다.

    “한 달이라고요?”

    “그래. 할매가 조심 안 하고 넘어지뿌갖고 이래 다리를 마 다치뿌리갖고. 장사도 못 할 뻔하고 그랬는데 이 착한 하준이가 할매 도와준다고 이래 장사를 도왔다 아이가.”

    이내 할머니가 절뚝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아이, 할머니. 제가 할게요.”

    “그래, 느그 묵을 낀데 느그가 알아서 끄내묵그라.”

    “할머니, 이거 식혜 맞죠? 이거랑 뭐 먹어요? 강정?”

    “그래, 맞다. 묵고 싶은 거 다 끄내묵그라.”

    나는 능숙하게 할머니의 주방에서 식혜를 꺼낸다.

    “일단 저희 아침을 못 먹었으니까, 식혜 한잔하고 밥 좀 먹을게요.”

    “그래, 그래. 알아서 하그라. 할매는 안 묵어도 된다. 식혜 느그끼리 마시그라. 할머니가 살을 빼야 한다. 안 그라면 당뇨가…….”

    할머니의 한담과 함께 직접 담그신 수제 식혜가 꼴꼴꼴 잔 세 개에 따라진다.

    결이는 내게 시선을 맞추며 마치 추궁이라도 하는 눈빛이다. 한편 하케임은 별생각 없이 따라 준 식혜를 단숨에 들이켠다.

    “캬~! 맛있다!”

    “입에 좀 맞나. 할매가 직접 만들어서 파는 것보다 더 시원할 끼라.”

    맛나게 먹는 하케임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진다. 그리고 시선은 결이에게 가 닿는다. 얼른 마셔 보고 소감 좀 말해 보라는 눈치시다.

    결이가 마지못해 식혜를 들이켜곤 눈이 동그래진다.

    “이렇게 맛있는 식혜는 처음이야.”

    결이의 감탄에 할머니 얼굴이 밝아진다.

    “다들 아침으로 뭐 먹을래.”

    “나는 순두부찌개에 오징어볶음!”

    하케임이 손을 번쩍 든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뚝딱뚝딱 요리를 시작했다.

    타악.

    맛있는 한 상이 순식간에 차려진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결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추궁했다.

    “아아, 그게. 오늘은 이 근처에서 행사가 있어서 아침부터 붐빌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너네도 부른 거야.”

    “아니, 그거 말고.”

    “응?”

    “새벽마다 여길 와서 도운 이유가 뭐야?”

    결이 입에서 나머지 말이 나오려다가 만다. 아마 ‘진짜 할머니’도 아니잖아, 라던가. ‘가족도 아니잖아.’라는 말이었을 거다.

    “원래 김예리 씨랑 같이 빡쎄게 훈련하는 동안 여기 종종 오긴 했었거든. 그래서 할머니랑 얼굴이 좀 익었지. 그런데 한 달 전쯤 근처에 산책을 나왔다가 할머니가 다치시는 걸 봤어.”

    “여기까지 산책을 나왔다고?”

    결이의 얼굴에서는 아직 의심이 걷히지 않았다.

    이곳은 우리 길드에서도 집에서도 꽤 먼 위치니까. 그리고 결이가 의심하는 것처럼 내가 이곳에 와서 할머니를 돕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하케임은 대화에 큰 관심이 없는 듯 열심히 식사에 집중하며 맛있다를 연발하고 있다.

    “곧 각성하실 거야.”

    나는 입 모양으로만 결이에게 말했다.

    결이는 놀란 얼굴로 멍해졌지만, 내가 숟가락을 건네자 얌전히 받아 든다.

    “입에 맞나. 음식이. 할머니가 30년 전부터 여기 가게를 얻어가 장사를 했다이가. 처음에는 아들 내외가 즈그 아 좀 봐 달라 해서 올라왔는데 그넘아들 사정이 별로 안 좋아서. 그래서 일을 시작했는 기라.”

    할머니가 옆으로 오시더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용돈벌이 해서 내 밥값이나 하자 하고 서빙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이 가게를 인수하고.”

    “대단하시네요.”

    결이의 시선이 할머니와 나를 오간다.

    “지금은 아들 내외 전부 미국에 가서 살고 있다 안 카나. 내는 이제 일을 안 해도 되는데, 일을 안 하면 또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 집구석에만 못 앉아 있는다. 느그도 잘 들어라. 노인이 되어도 그냥 누워만 있으면 더 빨리 늙는 기라.”

    “그래도 다치신 거 빨리 나으려면 좀 쉬셔야 하는데.”

    “아이고, 하준아. 말도 마라. 내가 가게 안 열면 우리 기사님들이 어디서 밥을 묵겠노.”

    “아이참, 여기 온통 다 기사식당인데.”

    “그래도 여기 맨날 오는 아자씨들은 여기만 온다. 그러니까 내가 쉬지를 못하지.”

    “하하하. 알겠어요. 못 말린다니까요.”

    “그래도 하준이 니가 도와줘서 안 쉬고 장사를 잘하고 있다이가. 우째 이런 복덩이가 굴러 왔노.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곱고. 우리 손녀딸이 곧 한국에 놀러 올 거거든. 그라면 내가 한번 소개를 시키주야겠다.”

    할머니가 껄껄 웃음을 터트리신다.

    “그래도 느그 많이 안 힘들제? 느그 다 각성자인가 뭔가 그 초능력자라고 들었구만. 하준이가 그래 말하대. 보통 사람이랑 뭐가 다르다 카던데. 아이고, 할머니도 그 초능력인가 뭔가 있으면은 무릎도 안 아프고 참말로 좋을 낀데.”

    “좀 주물러 드릴까요?”

    “아이고야, 마 됐다. 하준이 니 밥이나 묵그라.”

    할머니는 거절하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아 넋두리를 펼치신다.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선한 기운을 느끼셨다는 둥, 다쳤을 때 이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나타난 나를 보고는 역시 자신이 사람을 잘 봤다고 깨달으셨다는 둥.

    그리고 다시 미국 손자네 이야기까지.

    소담한 수다를 끝없이 이어 가셨다.

    나는 벌써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매번 반복하시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내 메뉴는 참치김치찌개다.

    달큼하면서도 시큼한 김치찌개의 맛이 입안에 퍼진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사실 이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 * *

    3개월 전.

    “아니, 그런데 이렇게 아침부터 훈련 가는 건 좋은데 사실 전 아침에 밥이 잘 안 넘어가거든요.”

    김예리가 조심스럽게 투덜거린다.

    “한국인은 밥심이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게다가 든든하게 안 먹으면 오늘 정말 힘들걸요.”

    “으아아……. 너무해.”

    “결이랑 하케임도 이제 못 도와준다고요.”

    “확실히 그러니까 훨씬 힘들긴 하더라고요.”

    “나로는 부족하다 이 말인가?”

    “아, 아뇨! 하준 님으로 충분하죠!!”

    “기여도를 높이려는 거니까 파이팅하죠.”

    김예리를 어르고 달래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기사식당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윤은봉 씨. 어디에 있나요.’

    내가 찾으려는 사람은 강화 스킬을 가진 각성자.

    각성 랭크도 A급인 데다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아니 어쩌면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각성자.

    아직 각성하기 전일지도 모르는 각성자.

    바로 윤은봉 씨다.

    아쉽게도 그녀의 각성 전 정보로는 이름난 기사식당을 운영했다는 것밖에 없다.

    “어서 오이소!”

    그래, 그리고 그녀가 부산 출신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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