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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20화 (120/250)
  • 제120화

    제120편

    “꾸에에엑!”

    “끼에에엑!!”

    새카만 검이 그리는 궤도를 따라 와일드 피그의 선혈이 낭자한다.

    “하준아!”

    “형, 괜찮아요?”

    “괜찮지!”

    대호 형은 씩 웃어 보이지만, 확실히 지쳐 있다.

    그런 대호 형의 주위로는 와일드 피그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다. 아무리 S급이라도 이 많은 와일드 피그를 상대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약간 떨어진 뒤로는 인화 선배와 태규, 김예리가 합동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저쪽도 분발하고 있네요.”

    “응. 그래서 뒤가 든든하다고.”

    형이 이번엔 엄지손가락까지 들어 올리며 여유를 보인다.

    “저 위는 어떠냐.”

    “결이 혼자서 상대하고 있어요.”

    물론 결이의 몸을 뺏은 금룡이 싸우는 거지만.

    “결이 녀석도 참 대단하다니까. 나도 좀 더 일찍 각성했다면 좋았을걸.”

    “형도 솔직히 다른 S급들 초반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걸요.”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긴 한데.”

    으르르릉.

    대호 형의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한층 깊어진다.

    어느새 주위로 와일드 피그가 왕창 몰려와 있다.

    “이놈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원래 무리를 이뤄 행동하거든요.”

    “후우. 가자.”

    “넵.”

    쉬이익!

    재빠르게 검을 놀린다. 와일드 피그의 두꺼운 가죽을 베어내려면 여러 번 같은 곳을 공략해야 했다.

    새벽의 검이 물결처럼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게 마치 검은 계곡의 물 같고, 와일드 피그의 가죽은 바위 같다. 부딪혀 맴돌고 꺾여 더 강한 물길을 만들어 낸다.

    “크와아앙!!”

    대호 형은 높이 뛰어올라 와일드 피그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문다.

    “끼에에에엑!! 꾸워어어억!!”

    형이 억센 턱으로 목을 놓아주지 않자, 와일드 피그가 비명을 질러댄다. 그러고는 형을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 역시 소용이 없다.

    목은 어떤 생명에게도 다 약점이지만, 와일드 피크의 두꺼운 가죽은 목 아래라고 해도 전혀 연하지 않아서 단박에 베어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호 형의 송곳니는 내 새벽의 검보다 훨씬 강력하다.

    푸화악!!

    결국 피가 사방으로 튀고 와일드 피그가 비틀거린다.

    형은 끝까지 놈을 놓아주지 않는다.

    쿵!!

    결국에는 완전히 쓰러질 때까지.

    “형, 진짜 대단하네요!”

    “퉤! 뭐, 이 정도야.”

    형은 다시 튀어 올라 이번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와일드 피그의 약한 곳만 골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관절 마디마디, 겨드랑이, 목.

    아무리 두꺼운 와일드 피그의 가죽이라도 형의 발톱 앞에서는 속수무책.

    확실히 수는 많지만, 와일드 피그들은 형에게 상대가 안 되었다.

    “하아앗!!”

    뒤쪽의 기합 소리에 슬쩍 보니, 태규의 불 주먹이 와일드 피그들을 열심히 가격하고 있다.

    태규는 능력 특성상 뜨거움에 이미 적응한 와일드 피그들을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도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었다.

    ‘대견한걸.’

    김예리도 인화 선배와 태규를 보조해서 전력을 다해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게 보였다.

    김예리의 신체 능력이 다른 팀원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인화 선배의 보호막이 잘 커버를 해 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 팀원들이 벌써 이렇게 대단하다니.

    A급 던전에서 뒤지지 않고 싸울 수 있다니.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레벨링을 계속하고……. 넥스트 레벨에 도달하고……. 그렇다면 정말로 인류 멸망은…….’

    쉬이익.

    터억.

    “오래 기다렸다. 은하준.”

    “하케임!”

    어느새 말끔한 모습의 하케임이 내 앞에 섰다. 다행히 잃었던 부분들이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

    “새로 태어난 것 같다.”

    하케임은 특유의 맑은 미소를 지었다. 항상 하케임은 딴에 농담을 할 때 저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오늘은 그 미소가 참 반갑게 느껴졌다.

    “이놈들을 쓸어버리지.”

    휘이익.

    그의 거대한 창검이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이윽고 튀어 오른 하케임에게 휘둘러진다.

    콰과가가가가!!

    검기의 돌풍이 일어 한 번에 와일드 피그 다섯 마리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케에엑!!”

    그 모습을 본 와일드 피그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하케임이 아니었다.

    매서운 검기가 일대를 휩쓴다.

    “주인님!”

    피의 돌풍 속에서 푸른 불꽃이 뿅 하고 솟아올랐다.

    “드디어 찾았어요. 역린이요!”

    “수고했어, 망량아! 그래서 어디에 있지?”

    “제 불꽃을 조금 남겨 놓았어요. 놈이 모습을 드러내면 위치가 보일 거예요!”

    “넌 천재야!”

    그럼 이제 구름 밑으로 홍렵을 유인하는 것이 남았다.

    “자, 홍렵이 모습을 드러내면 모두 홍렵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요! 대미지가 문제가 아니라 기여도를 높이려는 거니까!”

    “알겠어, 하준아!”

    “네!”

    A급 던전의 보스인 만큼 홍렵은 우리에게 엄청난 경험치를 줄 것이다.

    문제는 저 위에서 홍렵을 상대하고 있는 게 결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아!!”

    금룡이 결이의 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비밀이다. 이건 한결이의 엄청난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르르릉.

    검은 구름 위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칫. 협조하지 않겠다는 건가.”

    다시 에스퍼 시야를 발동해 구름을 살핀다. 이번에는 홍렵을 찾기가 조금 힘들다. 녀석이 꽤 높이 올라갔기 때문일까.

    “음?”

    그런데 놈이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그보다 이상한 건 놈이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용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머리를 뒤흔들면서 나는 건 조금…….

    “불렀느냐!!”

    푸화악! 검은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건 홍렵과 그의 머리 위에 타고 있는 결이, 아니 금룡이었다.

    “크아악! 떨어져, 이 자식!”

    “할 수 있으면 떨어트려 보거라!”

    “지금 쟤네 뭐 하는 거야?”

    홍렵은 금룡을 떨쳐내기 위해서 온몸을 꼬았다가 빠르게 날았다가 거의 공중에서 곡예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홍렵 입장에서는 열 받게도 금룡은 그 움직임을 예상하는 듯이 빠르고 단단하게 움직이면서 그 뿔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홍렵이 뿔을 향해 발길질하면 살짝 갈기에 매달리거나 다른 뿔로 이동해 공격을 피해냈다. 결국 홍렵의 공격은 스스로를 향하게 됐다.

    “크아악! 이 송사리 같은 게!”

    “내 진짜 모습을 보면 네놈은 아무 말도 못 할 것이다. 이 몸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협적인 풍채를 가졌는지 알면 놀라서 오줌을 지리고 말겠지. 하하하.”

    지금 이 모습을 보니 금룡이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감히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홍렵을 이런 식으로 가지고 놀다니.

    ‘게다가 한결이의 몸으로는 제힘을 완전히 끌어낼 수 없을 텐데 저 정도라니. 확실히 대단해. 본래의 모습으로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금룡과 엎치락뒤치락하는 홍렵의 허리 부근에 푸른 반점이 보인다. 놈의 붉은 비늘에 대비되어서 더욱 확실하게 보이는 망량이가 남긴 표식이었다.

    “자, 모두 저 파란 반점을 향해서 공격해요!”

    “옛썰!”

    “넷!!”

    휘이익, 쉬익! 휘웅!

    각자의 스킬이 용에게 닿기 위해 쏘아져 나간다.

    “좀 더 낮게 날아 봐!”

    금룡을 향해 외치자 녀석은 여유가 넘치는지 귀에 손을 갖다 대고는 더 크게 말하라며 안 들리는 척 능청을 떤다.

    “좀 더 낮게 날라고!”

    “흐응??”

    “좀 더 낮게 날아 주세요! 부탁합니다!!”

    그제야 금룡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홍렵의 뿔을 잡아 밀었다. 그러자 홍렵의 머리가 자연스레 아래를 향하게 됐고 영문도 모르고, 금룡을 떼어내지도 못하는 홍렵은 그저 발버둥을 치며 고도를 낮췄다.

    쉬이익!

    퍼억! 퍽!

    드디어 스킬들이 홍렵의 몸체에 맞기 시작했다.

    “멈추지 마요! 계속!”

    와일드 피그들은 하케임이 본격적으로 상대한 덕분에 남은 녀석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쳐 버렸다.

    일대가 정리되었으니 나도 하늘 위로 올라가 금룡을 도와 홍렵을 칠 생각이다.

    아무래도 홍렵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에 아래에서 역린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자, 나를 던져라. 하케임!!”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미 하케임이 대호 형의 발뒤꿈치를 양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무슨…….”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말이 있지. 공중 이동기 스킬이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간다!! 지금이다, 하케임!”

    홍렵이 대호 형의 머리 위를 지나는 순간, 하케임이 대호 형을 집어 던졌다. 대호 형은 마치 서브를 넣은 배구공처럼 튀어 올라 그대로 홍렵의 꼬리에 올라탔다.

    “맙소사.”

    대호 형의 집념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저런 식으로 본인의 부족한 점을 메꾸다니. 나도 질 수 없지.

    하케임과 눈빛을 교환한 뒤 공중 이동기를 사용해 홍렵을 바짝 따라잡는다.

    “이, 이이……!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쉬익, 크학!”

    하케임이 홍렵의 앞발 쪽에 붙어 압박해 오자 홍렵이 고함쳤다. 그러는 바람에 입가에 물고 있던 침 거품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은 이미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끝났군.”

    안 그래도 용족은 이성이라는 게 콩알만큼 있는데 그걸 모두 잃었다? 그건 사형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강하다. 쉽게는 쓰러지지 않을 터.

    놈이 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공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쉬익! 퍼엉! 화르륵!!

    아래에서는 잇따라 팀원들의 공격이 쏟아진다.

    “자, 이제 슬슬 마무리해 볼까.”

    눈앞에 있는 푸른 반점 중앙에 거꾸로 자란 비늘이 있다. 때문에 벌어진 틈. 그곳에 용의 속살이 보인다.

    “하앗!”

    그곳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박아 넣는다.

    푸욱!

    “케에에엑!!”

    용이 울부짖는다.

    하늘이 쪼개질 것처럼 울리고 땅은 부서질 것처럼 흔들린다.

    그리고 그 큰 용이,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용이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한다.

    “핫!”

    한발 먼저 물러나 용의 추락을 본다.

    붉고 윤기가 흐르던 비늘이 빛을 잃고 생명력을 뿜어내던 커다랗고 긴 몸뚱어리가 힘을 잃고 늘어진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천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고는 이내.

    쿵!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대하고 붉은 용이 쓰러졌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경험치와 함께 시스템이 요란스럽게 축하의 메시지를 날린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넥스트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넥스트 레벨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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