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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19화 (119/250)
  • 제119화

    제119편

    “하케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손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크윽, 조금만 기다려!”

    끓어오르는 용암의 열기를 이기며 표면까지 다가간다.

    ‘공중 이동기 스킬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크윽, 그런데 너무 뜨거워. 죽겠어!’

    용암의 표면이 얼마나 뜨거운지 피부가 찢겨 나가는 것만 같다. 지직, 지지직…….

    실시간으로 살이 타오르고 있다.

    다시 보니 하케임의 손도 온통 그을려 무르고 터져 있었다.

    “으으윽!!”

    물러서고 싶다는 생각이 수십 번씩 드는 찰나. 타악! 드디어 하케임의 손을 잡았다.

    끔찍한 고통이 날카롭게 손바닥으로부터 타고 올라왔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살가죽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게 양손으로 하케임을 끄집어 올린다.

    “으아아아아!!”

    쑤우우욱! 나보다 덩치가 큰 하케임을 끌어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공중을 내디딘다.

    이대로 하케임을 용암 속에 둔다면 죽을지도 모른다.

    탁, 탁, 타앗!

    단번에 하늘을 걸어 이 뜨거운 열기에서 벗어났다.

    피부는 화끈거리고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다. 윗부분의 공기는 오히려 차갑게 느껴질 정도랄까.

    사실 차갑고 뭐고 피부에 닿는 감각은 죄다 고통스러웠지만.

    “하준…….”

    “하케임! 괜찮아?”

    내려다보이는 하케임은 빈말로라도 괜찮지 않아 보인다.

    류창희가 보인다.

    “치료를.”

    “헉, 어쩌다가…….”

    “용암에 빠졌어요. 한데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에요.”

    “이런…….”

    류창희가 바닥에 눕힌 하케임의 옷을 벗기고는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윽, 크으으윽!!”

    류창희의 힐 스킬은 부상의 정도에 비례한 고통을 동반한다. 지금 하케임은 용암 속에 빠졌을 때만큼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준 님! 하준 님도 많이 다치셨어요!”

    “일단은 하케임이 우선이니까요.”

    “일단 제 하급 마법을 사용해서 조금 가라앉혀 보죠.”

    진보라가 마법 스킬을 외우자 온몸이 지글지글 익던 감각이 따끔거리는 정도로 가라앉는다.

    “다행이에요. 각성자들의 부상을 힐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진보라는 끔찍하게 변해 버린 하케임을 보며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치료받는 하케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더 오래 용암 속에 잠겨 있던 부위들은 말단부가 녹거나 타서 사라져 버렸고 피부가 죄다 흘러내려 뼈가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크으으윽.”

    저적, 즈즈즈즉.

    그러나 다행히 류창희는 S급 힐러.

    반나절 안의 부상은 어떤 것이라도 치료할 수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류창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하케임을 구할 수 없었을 거다. 그가 우리 길드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 이게 다 류환희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환희와 류창희의 사이가 개선되지 않았다면, 회귀 전처럼 류창희는 헌터 일을 거절한 채 존재감이 사라졌을 거다.

    ‘그런데 S급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무리 자유 민주주의라고는 해도 주변에서 엄청난 압박이 들어갔을 텐데. 계속 일반 의사만 할 수 있었다고?’

    S급 힐러는 무척 귀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탐낼 인물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마음 한편이 오싹해진다.

    ‘강해져야 한다. 이 길드의 S급들을 계속해서 지켜내려면.’

    이 무슨 웃기는 소리인가.

    고작 D급 헌터가 S급 헌터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누군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강해져야 한다.

    넥스트 레벨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 곁의 모든 헌터들도 넥스트 레벨로 강화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즈즛, 쩌저저적. 찌이익.

    하케임의 뼈와 살이 무시무시한 형태로 재생되고 있다. 고통에 못 이겨 그의 눈이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지만 초점을 잃은 채다.

    그 하케임조차 이겨내기 힘든 고통이다.

    만약 그가 과거의 기억을 잃지 않고 온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애초에 용암에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하준, 은하준…….”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나를 발견하고는 입술을 달싹인다.

    “정신이 들어? 하케임. 정신 차려!”

    “나 좀…… 꼬집어 봐라……. 살아 있는 게 맞는지.”

    “미쳤나.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군.”

    피식. 하케임이 웃음을 흘린다.

    다행이다. 까불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됐다니.

    얼추 회복된 손이 내 바지를 붙잡는다. 나는 천천히 그 손을 떼어 놓으며 류창희에게 말했다.

    “난 이 주변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걸 도와야겠어요. 하케임을 부탁합니다.”

    “아직 하준 씨는 치료가 안 됐는데요.”

    “난 버틸 만해요.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만 치료하면 되죠.”

    일부러 좀 센 척을 했다. 아직도 피부가 따가워 미쳐 버릴 것 같지만, 검을 들 힘이 남아 있다.

    “주인님, 좀 쉬어 가면서 해요! 하케임의 치료가 끝나면 주인님도 회복해야 한다고요!”

    “대호 형이 이미 많이 지쳤을 거야. 그리고 하늘에는 결이가…….”

    결이는 어떻게 됐을까.

    금룡 그 건방진 자식이 또 제멋대로 결이의 몸을 빼앗았다. 물론 녀석이 결이의 몸을 함부로 쓸 것 같지는 않다.

    녀석은 자신을 기생충이니 뭐니 말했지만, 기생충 역시 숙주가 없으면 곤란한 부류들이 있지.

    금룡이 말하는 것을 듣자면 녀석은 숙주가 꼭 필요한 기생충 종류다. 그러니 결이 몸으로 위험할 수준의 전투까지는 벌이지 않을 거다.

    위기의 상황에서 구해 준다느니 뭐니 종알거렸으니까.

    ‘결이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다.’

    우선은 아래부터 정리해야겠다. 와일드 피그가 정리되면 모두 힘을 합쳐 붉은 용 홍렵을 해치울 수 있다. 나는 곧장 달음박질쳐 와일드 피그를 향해 검은 검을 겨누었다.

    * * *

    “어라, 네놈.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구나.”

    홍렵이 노란 눈을 빛내며 한결을 바라보았다.

    “내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가?”

    한결의 몸에서 살아 있는 번개와 같은 기운이 솟구쳤다.

    파칙, 파지직!!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며 머리가 바짝 서고 약한 탄내가 났다.

    그 엄청난 기운은. 몸은 한결의 것이었지만, 그 몸을 차지하고 있는 건 금룡이어서 가능한 행위였다.

    ‘흐응, 아직 이 몸으로는 완전히 버틸 수 없군.’

    금룡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한결은 훌륭한 그릇이다. 본인을 담는 것 자체를 해내지 못하는 작은 그릇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지만 아직 금룡이 원하는 데까지 무르익지 않았다.

    ‘그래서 이 몸이 도와주는 거지만.’

    금룡은 한결의 두 손에 전격을 휘감았다.

    파직, 파지지직.

    밝은 빛을 내며 튀기는 스파크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건틀릿이나 글러브를 연상시켰다.

    “네놈의 기운……. 사람의 것이 아니다.”

    “드디어 좀 알아보는군. 하여튼 붉은 것들은 지능이 좀 달린다니까.”

    “뭣?”

    홍렵이 발끈하는 순간, 금룡은 홍렵의 미간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갔다.

    홍렵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수한 한결이라면 감히 내지 못할 속도,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금룡은 홍렵의 미간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크아아악!!”

    “멍청한 것들이 몸도 둔하더군.”

    “네노오오옴!!”

    홍렵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한결의 모습을 한 금룡을 삼켜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홍렵보다 금룡이 한 수 빨랐다.

    금룡은 날카로운 이빨을 피한 뒤, 녀석의 이마에 돋아 있는 한 쌍의 뿔을 붙들었다.

    “크으으윽!! 떨어져!”

    “그렇게 말한다고 떨어진다면 그건 바보가 아니겠느냐? 역시 붉은 것들은…….”

    “크아아아!!”

    금룡의 싸가지 없음에 홍렵은 이성의 끈이 뚝 끊기는 것 같았다.

    눈앞이 뱅글뱅글 돌고 귓가에 심장이 올라간 것처럼 피가 들끓었다.

    하준이 생각한 것이나 금룡이 말하는 것처럼 붉은 용족은 항상 인내가 부족하고 성미가 급했다.

    “네놈! 갈기갈기 찢어 주마! 내 불로 태워 저승에도 가지 못하게 영혼을 살라 주마!”

    “응~ 그럼 나는 번갯불로 튀겨 주마!”

    금룡은 뿔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홍렵의 몸통을 내려다보았다. 뱀처럼 길게 늘어진 몸에는 짧은 앞발과 뒷발이 말의 것처럼 붙어 있었다.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푸르고 작은 불꽃이 보인다.

    ‘용케 아직 붙어 있구나. 다행이야.’

    금룡은 힘을 주어 홍렵의 뿔을 비틀었다.

    “크으윽!”

    그 움직임에 맞춰서 홍렵은 머리를 비틀고 몸을 꿀렁였다.

    ‘이렇게 하면 역린이 훨씬 잘 보여 찾기 쉬울 것이다.’

    용이 멈춘 상태에서 몸을 뒤틀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용의 비늘은 아주 고르기 때문에 이렇게 비틀었을 때 그 빈틈을 찾기가 쉬웠다.

    ‘꼬마 도깨비불아, 힘을 내렴.’

    그리고 금룡이 이렇게 용의 뿔을 쥐고 흔드는 동안 홍렵은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감히 저 전기를 뿜어내는 놈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자신을 이렇게 쉽게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이놈은 대체 뭔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네 머리로 생각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거다. 너는 수많은 죽임을 당하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멍청이니까 말이야.”

    “뭐라고?”

    홍렵은 화가 났다.

    시스템은 웬 말이고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웬 말인가. 하지만 홍렵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머리 위에 올라탄 이놈을 죽여버리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었다.

    * * *

    “저 늙은 뱀들이 뭐라고 하면서 싸우든 난 알 바가 아니지만, 이놈의 역린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지를 모르겠네!”

    망량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요동치는 홍렵의 비늘에 찰싹 달라붙었다.

    지금껏 꼬리에서부터 빙빙 돌며 역린을 찾아 헤맸지만, 약간 잘못 자란 비늘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홍렵의 비늘은 아주 매끄럽고 촘촘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신선의 S급 길드원들이 고레벨에 도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주인님이라면 일단 역린을 발견한 다음에 모두 한 번씩 공격하게 하고 그런 뒤에 역린을 공격해서 한 방에 큰 대미지를 주려고 하시겠지.’

    망량은 어쩌면 이번 던전 공략 후에 뭔가 커다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김예리를 육성하느라 은하준의 성장이 침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던전은 강력한 보스 몹이 등장해 주는 바람에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주인님의 넥스트 레벨이 오르면 어떤 성장을 하실까?’

    요즘 망량의 제일 재밌는 상상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온전히 알고 있다면 좋았으련만,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나도 하케임처럼 기억을 조금씩 찾을 수 있는 것 같아.’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 은하준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저번 던전에서 수수께끼를 풀고 발견한 사당에서 성장한 후로 새로운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억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아주 조그만 순간 하나였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 주는 찰나. 그 순간이 떠오른 것이다.

    물론 그 상대의 정확한 인상착의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한국의 오랜 전통복을 입고 있는 손이 희고 고운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나도 성장해서…… 주인님을 제대로 보필할 거야!’

    의욕을 불태우며 요동치는 홍렵의 비늘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망량의 눈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왔다.

    다른 비늘들과 반대로 자라 있어, 혼자만 빛을 다른 곳으로 반짝이는 비늘이었다.

    ‘찾았다!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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