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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14화 (114/250)
  • 제114화

    제114편

    “입구가 여기가 맞아요?”

    김예리가 불안한 얼굴로 묻는다.

    “짐꾼이라도 던전에 꽤 드나들었던 거 아녜요?”

    “그렇긴 하지만……. 이 던전에 들어왔던 건 아니니까요.”

    “참 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보스 룸 입구는 커다란 호수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사리를 닮은 풀의 새싹을 인원에 맞춰 꺾었다.

    “자, 이 밑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다들 이거 하나씩 씹어요. 삼키지는 말고.”

    “이걸 껌처럼 씹으라고요?”

    “내가 방금 말했잖아요.”

    김예리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레 풀을 입 안에 넣는다.

    “이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약초라고. 특정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죠.”

    “헉, 목 아래에 이상한 게 생겼다.”

    가장 먼저 풀을 씹기 시작한 하케임의 목에는 이미 물고기의 아가미를 닮은 형태로 피부가 변이되어 있었다.

    “그걸로 마시는 물을 다시 내뱉을 수 있고, 이미 폐도 모습이 변화되었을 거야. 물고기처럼 부레도 생겼고.”

    “으아아! 내가 생선이 되다니!”

    김예리는 울상이 되어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으음, 어쩐지 바깥에서 숨 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결이는 목이 답답한지 헛기침을 했다.

    “자, 이제 물에 들어갈 시간이야.”

    “진짜로 이대로 그냥 들어간다고요?”

    “그럼 또 뭘 준비할까요? 물갈퀴?”

    “그게 아니라…….”

    “음, 다들 준비 운동이라도 하면 더 좋고요.”

    열심히 관절을 풀어 준 다음.

    타앗!

    단숨에 점프해 물속으로 뛰어든다.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자 맑은 호수 아래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의 돌과 수초, 어찌나 맑은지 깊은 아래의 모습이 죄다 보인다.

    “우와! 정말 숨을 쉴 수 있다! 은하준!”

    하케임은 신이 나서 외치더니, 곧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본다.

    “이렇게 정확하게 음성이 전달될 수 있다니?”

    확실히 신비한 감각이다.

    우리가 호수에 들어오기 직전 씹었던 풀의 이름은 물고기풀. 이것을 씹고 있으면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을 마시는 순간부터 몸의 기관들이 변화한다.

    폐의 기능뿐만 아니라 귀와 성대의 구조도 바뀌게 되는데 덕분에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거다.

    “난 물이 싫어요. 내 불은 물에 닿는다고 해도 꺼지지 않지만 말예요.”

    망량이가 수영하는 내 어깨를 꼭 붙들며 작게 투덜거린다.

    “자, 모두 날 따라와. 내가 길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단숨에 호수 밑바닥을 향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어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김예리뿐만 아니라 결이와 하케임까지 놀라 탄성을 내뱉었다.

    “마치 궁궐 같다.”

    반짝이는 물풀과 바위 자갈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눈에 보인다.

    예술가의 작품이나 독특한 취향의 건축가가 쌓아 올린 탑처럼 보인다.

    “자, 이제 곧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다들 긴장하시고.”

    쉬이이이익.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조물 주위의 물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

    “아니야, 잘 봐.”

    마치 동양의 용처럼 기다란 꼬리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앞부분은 인간, 게다가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인어?!”

    “비슷한 거예요.”

    물의 정령.

    운디네.

    그게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키득, 키득.”

    운디네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빠르게 우리 쪽으로 헤엄쳐 오더니 입을 모아 후욱 하고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조심!”

    순식간에 소용돌이가 생기면서 수영을 하던 우리의 대열을 흐트러뜨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예리는 소용돌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빨려들어 가더니 빙글빙글 돌고 있다.

    “억압의 손길!”

    쉬리리릭.

    바닥에서부터 투명한 사슬이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재빠른 운디네는 사슬을 피해 요리조리 움직여 빠져나갔다.

    ‘하지만 내가 사슬을 이용한 건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운디네가 사슬을 피해 움직일 궤도를 예상하다가 곧장 그리로 가서 먼저 기다린다.

    “……!!”

    뒤늦게 나를 발견한 운디네가 깜짝 놀라지만 이미 늦었다.

    “캬아아악!!”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운디네는 곧장 날카로운 손톱을 만들어내며 공격을 시도한다. 하지만 내가 더 빠를 것이다.

    스각!

    운디네를 한 번 베어낸다.

    “키야아아악!!”

    공격에 정확하게 당한 운디네가 뒤로 물러나며 등의 가시를 쫙 펼친다.

    그래, 내 공격 한 번으로 컷 될 리가 없지.

    나는 재빠르게 운디네와 거리를 벌렸다.

    첫 공격은 성공시켰지만, 사나워진 상태의 운디네를 정면으로 맞서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

    ‘아무리 민첩함을 올렸어도 물속이라 지상에 있는 것보다 훨씬 움직이기 힘들지.’

    물의 밀도로 생긴 저항 때문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물이라면 각성자에게 움직임의 제약을 줄 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운디네 근처의 물은 그 속성이 강화되면서 각성자가 아니면 금방 목숨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인 밀도를 가진 물이 된다.

    해저 깊숙한 곳의 압력과 비슷하달까.

    깊은 바닷속의 물은 쇠도 찌그러트릴 수 있으니 말이다.

    촤르르륵!!

    억압의 손길을 사용해 내게 다가오려는 운디네의 움직임을 막아선다.

    운디네가 사슬을 요리조리 피하며 내게 집중하고 있을 때.

    쉬이익!

    물속인데도 물결을 갈라 버릴 정도로 강력한 한 타가 운디네에게 쇄도한다.

    결이의 검이다.

    “끼이이! 케에에엑!!”

    운디네가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도망친다.

    “예리 씨가 아직 한 대도 못 쳤으니까 조심해!”

    “일부러 약하게 한 거야.”

    “나는 끼어들 틈도 없군.”

    하케임이 투덜거린다.

    “이렇게 낮은 등급의 던전에 와서 뭘 바라는 거야. 예리 씨!”

    “으아아, 으아아. 토할 것 같아요.”

    조금 전까지도 소용돌이 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던 김예리를 하케임이 검을 휘둘러 소용돌이를 없앤 후 재빠르게 구조해 냈다.

    “예리 씨가 막타를 쳐야 해요.”

    “으아아, 알겠습니다……!”

    마침 멀어졌던 운디네가 씩씩거리며 주변을 멀리 빙 둘러 돌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 상반신이 가지고 있던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뼈와 가죽만 남은 섬뜩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운디네의 체력이 거의 다 닳았다는 뜻이다.

    대신에 3배쯤 더 사나워졌을 테지만.

    “후!”

    김예리가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한다. 그러자 물보라가 확 일어 운디네를 향해 쏘아진다.

    “……!”

    깜짝 놀란 운디네가 빠른 속도로 물보라를 피해낸다.

    “윽!”

    “이제 운디네는 한 방만 맞으면 되니까, 침착하게 스킬을 사용해 봐요. 그리고 녀석이 있는 곳을 향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갈지 예측해서 공격해 보는 겁니다.”

    “알겠어요!”

    내 예상대로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운디네는 가까이 오지 않고 멀리서 빙빙 돌며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예측 샷, 예측 샷……!”

    김예리는 두 번 더 스킬을 사용했지만, 공격은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공격을 운디네가 피하는 동안 그녀는 운디네의 다음 움직임을 읽어냈다.

    “후!!”

    쉬이이익!!

    칼날을 만들어내던 날카로운 바람이 강력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운디네에게 정확히 꽂힌다.

    추와아아아악!!

    “케에에엑!”

    김예리의 공격에 당한 운디네는 단말마를 남기고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해냈다!”

    “잘했어요!”

    “우우. 저는 다 차려 놓은 밥상에서 입만 벌리고 있었는걸요.”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김예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츠으으…….

    운디네가 사라진 곳 위로 탈출 포털이 생겨났다.

    “자, 그럼 나갑시다!”

    쉬우욱.

    탓, 타닷.

    운디네 공략에 그리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닌데 아주 오랜만에 땅을 딛는 듯한 기분이다.

    “그나저나 레벨이 많이 올랐을 텐데요.”

    “던전 하나 공략했을 뿐인데, 게다가 보스 하나 잡았을 뿐인데 레벨이 엄청나게 올라갔어요. 정말요! 138이에요.”

    “오, 정말 많이 올랐네요. 이제 F급이나 E급 던전을 도는 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신선의 길드원이니 우리와 계속 던전 공략에 나서게 되겠지만 말이에요. 우리 길드는 길드 활동에 지장만 없으면 개인적으로 임무를 맡아서 하는 일도 허용하고 있으니까 참고하고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잘했어요. 우리가 레벨을 빨리 올리려고 일부러 등급이 높은 던전에 데려왔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거죠.”

    김예리가 민망한지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이미 길드 훈련실에서 함께 훈련할 때, 김예리의 전투 피지컬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이 끝난 상태다.

    그녀는 이미 실전 전투에 투입되기 충분했고 이제는 레벨링을 통해 체력과 스피드도 확실하게 얻었다.

    무엇보다 공격 스킬.

    방금 운디네를 상대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건 된다!

    ‘강력한 공격 스킬이야. 물론 F급이니까 성장시키는 데 분명 한계가 있을 거다. 하지만…….’

    내게는 넥스트 레벨이 있다.

    아직 이 능력이 1분기 마지막 퀘스트의 최소 참가 자격이라는 것밖에 모르지만, 분명 그것만 있는 게 아닐 거다.

    ‘혹시 이 넥스트 레벨이라는 게……. 뭔가 지금의 랭크와 레벨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렇다면 모든 건 완전히 뒤바뀔 거야.’

    아직은 내 공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때요. 많이 지쳤어요?”

    “아……. 아뇨! 생각보다 괜찮아요.”

    “그래요? 흐음, 좋아요. 그럼 다음 던전으로 가 보죠.”

    “네?”

    “뭐가요?”

    김예리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바, 방금 던전 공략이 끝났잖아요.”

    “그렇죠. 그게 왜요?”

    “아, 아니……. 지금 바로 다시 던전 공략하러 간다고요?!”

    “네, 예리 씨가 피곤하지 않다고 했잖아요.”

    “예? 그건 예의상…….”

    “에이, 예의상 그런 게 어딨습니까. 레벨이 130이나 올랐으면 없던 기운도 펄펄 넘칠 거 같은데.”

    “아니……. 그게…….”

    “다들 체력 괜찮지?”

    “우리야 뭐…….”

    결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럴수록 김예리의 안색은 더욱 하얗게 질려 간다.

    “내가 특훈이라고 했잖아요.”

    “이, 이이……. 이 악마!”

    결국 그녀는 소리를 빽 하고 질러 버렸다.

    * * *

    “하아, 하악……. 더는 못 해요. 더 하면 죽어요.”

    김예리가 바닥으로 털퍽 쓰러진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그만하려고 했어요.”

    “이……. 악마…….”

    그녀는 은하준을 노려보며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악마라니, 너무하잖아요. 다 예리 씨를 위한 건데.”

    “으으윽…….”

    솔직히 할 말은 없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 속에 피어오르는 분노는 명확한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극한 훈련을 할 줄은 몰랐다고……. 물론, 물론 정말로 오로지 나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해 주고 있는 거지만 그래도……. 저, 정도가 있어야……!’

    김예리는 울고 싶어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때 시스템 창이 띠링, 하고 경쾌한 알림을 띄운다.

    ‘레벨 업인가?’

    하지만 시스템이 띄워 준 메시지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 버리고 말았다.

    [업적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비정상적인 레벨 업 집착증] [등급: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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