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13화 (113/250)
  • 제113화

    제113편

    “어…….”

    “어어!”

    촤아아아-!!

    바위가 열리며 많은 물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 우리 밥!”

    “일단 피해!”

    애써 구운 고기가 물살에 떠밀려 내려갔다.

    “아니……. 그래서 정답이 노동요라고?”

    가까스로 물길을 피해낸 후 바위 쪽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바위 아래 흙을 털어내며 콧노래를 불렀을 때 반응했었다.

    ‘흥얼거리기만 해서 움직임이 미미했던 건가. 아니, 그런데 기준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 그냥 김예리의 말에 설득당한 것 아냐?’

    뻔뻔한 바위는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예리 씨. 어때요? 업적이 생겼나요?”

    “어……. 어어, 네! 업적이라니. 처음이에요. 이럴 수가!”

    김예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내 시스템 창이 잠잠한 걸 보니 이 업적은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업적인 듯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좋군요! 어떤 업적인지 말해 줄 수 있나요?”

    “22번 수수께끼를 풀었고……. 바위를 움직이는 목소리라는 업적인데……. 이거 스킬이네요.”

    “스킬?!”

    아이템이 아니라 스킬이 나오다니, 정말 대박이다.

    하기야 나도 ‘황천에서 돌아온’이라는 업적 덕분에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상대방이 금방 설득되는 등의 효과를 보고 있으니까.

    “혹시 스킬을 지금 바로 사용해 볼 수 있겠어요?”

    “써, 써 볼게요!”

    김예리는 바위가 있는 반대편을 향해 크게 심호흡했다.

    “휘!”

    그녀가 작게 휘파람을 불자, 쏴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돌풍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치 그녀의 입김이 만든 돌풍이 칼날인 것처럼 앞에 있던 젖은 나무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우, 우와…….”

    “대단해!”

    “엄청나게 강력해 보이는 공격 스킬이군.”

    하케임과 결이 역시 그녀의 스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요!”

    내가 다가가자 김예리는 눈썹을 팔자로 늘어트리며 우물쭈물했다.

    “제가 이런 좋은 스킬을 얻어도 되는 걸까요?”

    “뭐가 문제예요?”

    “아니……. 여러분이 저를 데리고 이렇게 레벨링도 해 주시고 고생하시는데, 저만 날로 먹는 것 같아서요.”

    “에이, 무슨 소리예요. 게다가 우리는 이미 강한 스킬을 갖고 있다고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 내게는 대단한 공격 스킬이 없긴 하다. 하지만 이번 업적만큼 김예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었다.

    드디어 그녀도 2번째 스킬이 생긴 거다.

    ‘잘됐다…….’

    솔직히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간다. F급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완전히 똑같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회귀 후 새로운 성장을 하면서 정말 기뻤으니까.

    “칫, 주인님에게 스킬이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요.”

    망량이가 중얼거린다.

    “우리 주인님도 멋진 공격 스킬 쓸 수 있는데.”

    짜식이.

    말이라도 고마워서 망량이를 슥슥 쓰다듬어 준다.

    그러다 결이 쪽을 봤더니 눈이 딱 마주친다. 녀석도 망량이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표정이 오묘하다.

    “자, 그럼 수수께끼도 풀었으니 계속 진행해 볼까요?”

    “네! 좋아요!”

    “그래.”

    “일단은 이 바위가 막고 있던 곳 안에는 뭐가 있을지 살펴봅시다.”

    내 말에 하케임이 손을 번쩍 들더니 앞장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깊었다.

    물이 차 있었던 것 때문인지 바닥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다들 조심해서 천천히.”

    “응!”

    “제가 불을 밝힐게요!”

    망량이가 빙그르르 돌더니 몸을 부풀린다. 그랬더니 어두웠던 동굴 내부가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망량이는 정말 최상급 펫인 것 같아요. 못하는 게 없네요!”

    김예리가 요란스럽게 망량이를 칭찬했지만, 망량이는 콧방귀를 뀌더니 아첨은 필요 없다느니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싸가지 없기는. 망량이 녀석 말을 나밖에 이해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여길 봐요! 뭔가 있어요!”

    망량이가 외치자, 곧 하케임이 그리로 훌쩍 뛰어갔다.

    “안 돼! 우리 주인님이 제일 먼저 열어 볼 거야!”

    망량이는 하케임이 더는 손대지 못하도록 그의 손 주변에서 파닥거렸다.

    그 모습을 귀여워하면서 우리도 곧 망량이가 말한 물체 근처로 다가갔다.

    “사당이다.”

    처음 수수께끼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컸다.

    높이는 3m에 넓이는 2m 정도 되는 문이 달린 사당.

    문을 살짝 열어 보자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사당 안에 작은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반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우리 주인님 거예요!”

    망량이가 흥분해서 반지 주위를 마구 맴돌았다.

    김예리나 하케임, 결이 역시 양보하려는 것인지 내 행동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단서를 찾아낸 건 하준이 너니까. 네가 갖도록 해.”

    결국 결이가 한마디 한다.

    “흐음, 일단 주워 보고 어떤 능력이 있는 반지인지 볼 거야. 그리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지.”

    나는 사당 안으로 들어가 반지를 주워 들었다.

    스으읍!

    새로운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효과음이 들리고 아이템 특성을 살펴본다.

    [강력한 펫의 반지]

    펫을 업그레이드 시켜 줍니다.

    주인과의 유대감을 상승시켜 줍니다.

    펫에게 먹이십시오.

    힘+10

    민첩+10

    마력+50

    “어?”

    “왜? 어떤데요? 무슨 능력의 반지인데요?”

    “이거 내가 가져야 할 것 같긴 한데……. 일단은 펫을 강화시키는 아이템이거든요.”

    “그런데?”

    결이가 의아한 내 얼굴을 보고 묻는다.

    “펫에게 먹이라는데?”

    “에에엑?!”

    소리를 지른 건 망량이었다.

    “누가 봐도 먹는 모양은 아니지 않아요?”

    “넌 도깨비불이면서 그런 걸 따지냐?”

    “저도 자아가 있어요, 주인님.”

    어쩐지 ‘둘 다 너무 귀여워…….’라고 말하는 김예리의 중얼거림이 들리지만, 살짝 무시해 준다.

    “그래서, 안 먹을 수는 없잖아?”

    “끄으응……. 그렇지만.”

    망량이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자아가 있는 데다 인지 능력이 강한 펫이기 때문일까?

    ‘그래도 동물형 펫에게 먹이는 건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흠, 펫이 없다면 이 아이템은 아주 고가에 팔 수 있었을 테지.’

    펫 관련 아이템은 희소성이 컸다. 특히나 펫을 강화하는 능력으로 분류되는 건 더욱더 적었다.

    게다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기본 스텟을 10씩 향상시켜 주고 마력이 50이나 차는 건, 레어 아이템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거였다.

    “그래도 주인님을 위해 한번 먹어 보죠.”

    망량이는 아주 큰 결심을 내린 것처럼 후, 후, 하고 숨을 내쉬더니 손바닥 위에 있는 반지를 삼켰다.

    “와압!”

    망량이의 불꽃 입이 오물거리다가 꿀꺽, 큰 소리가 나더니 불꽃 안을 맴돌던 반지가 천천히 사라진다.

    “별로 아무 느낌…….”

    반지를 삼킨 망량이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불꽃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응?”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이전에 망량이가 크게 약해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저렇게 불꽃이 작아졌었는데…….

    “망량아!”

    “우우우…….”

    작아졌던 불꽃이 부르르 떤다. 그리고 이내, 퍼어어엉!! 엄청나게 솟구쳐 오르는 불꽃.

    “헉, 사당에 불이……!”

    망량이의 푸른 불꽃이 폭발하듯 사당을 집어삼킨다. 나는 다급하게 사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 망량…….”

    “물러나. 동굴 안에서의 화재는 위험하다.”

    하케임이 나를 막아섰다.

    “하지만……. 아냐, 잘 봐. 망량이의 불꽃은 연기를 만들지 않아.”

    사당은 어느새 전체가 푸른 불꽃에 삼켜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불과 달리 시커멓고 유독한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망량이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던 와중, 사당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너무 빨라……!”

    “후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약간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 망량이의 목소리가 울린다. 크게 변한 것은 아니어서 망량이의 목소리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도깨비불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답니다.”

    사당 안에서 망량이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갑자기 힘이 너무 많아져서 태울 것이 필요했어요.”

    “그럼 괜찮은 거야?”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로 아팠다고요! 이잉!”

    성숙해진 건 목소리뿐인 듯했다.

    그래도 철렁하고 떨어진 것 같던 심장의 박동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아, 난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뭐예요. 망량이는 괜찮대요?”

    김예리가 물어온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망량이의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암냠냠.”

    마침내 사당이 무너지고 푸른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제 이만큼이나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거야?”

    “네! 하지만 평소에는 이만큼만…….”

    스스스. 망량이가 이전 크기보다 2배 커진 불꽃으로 되돌아왔다.

    “봐요! 제가 커졌어요!”

    “강해 보인다.”

    “아까 보셨죠? 제가 일으킨 불꽃이 건물을 죄다 집어삼킨 거요.”

    “이제 위험한 망량이네.”

    “하하하! 나도 공격할 수 있다! 온몸에서 힘이 넘쳐요!”

    망량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 망량이를 보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망량이가 공격을 할 수 있게 됐다면 내게도 공격 스킬이 생긴 거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축하한다, 은하준.”

    “축하해요!”

    “멋지다. 망량.”

    모두의 축하 속에서 의기양양해진 망량이와 함께 동굴을 빠져나온다.

    “이것 봐요, 주인님!”

    화르륵! 불꽃의 크기를 키운 망량이가 내 손을 집어삼킨다.

    “이래도 전혀 뜨겁지 않죠? 이건 주인님만 그런 거예요. 다른 것들은 태울 수 있는 불이라도 주인님은 타지 않는 거죠. 정말 멋지죠?!”

    “오, 그게 정말이야?”

    “잘 보세요, 후후후.”

    망량이는 앞서가고 있던 김예리의 손 근처로 슬쩍 다가갔다.

    “앗! 뜨거워!”

    “망량아!”

    “우후후.”

    망량이는 휘익 날아올라 내 뒤로 숨는다.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데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저 갑자기 뜨거워져서 놀란 것뿐이에요.”

    “그래도 빨간데요.”

    “저도 각성자인데요, 뭘. 망량이 녀석 조금 커졌다고 장난기가 많아졌네요.”

    김예리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망량이에게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아직 엄청 강한 건 아니라 조그만 불꽃에도 반응할 만한 사람이 저 여자밖에 없어서……. 게다가 다칠 만큼도 아녔는데요!”

    “어허.”

    “……죄송해요.”

    “그건 예리 씨한테 직접 해야지.”

    “네에…….”

    망량이는 불꽃의 크기를 줄이더니 꼬물꼬물 날아가 김예리 앞에 섰다.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김예리는 망량이의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해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 잘못은 고치면 되는 거야.”

    망량이의 까만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러고는 불꽃을 끄덕거렸다.

    휘리릭. 다시 내 어깨로 돌아온 망량이가 작게 속삭인다.

    “어쩐지 저 여자,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걸어, 우리는 드디어 보스 룸 앞에 도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