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112화 (112/250)
  • 제112화

    제112편

    ‘좋아, 올 게 왔구나.’

    사실 이 던전에서 수수께끼가 나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100%까지는 아니고 긴가민가하기는 했지만, ‘역시나’였던 거다!

    ‘이걸로 괜찮은 아이템이나 업적이 얻어지면 좋겠는데.’

    망량이를 따라 물소리가 들리는 데로 갔다. 신기하게도 소리가 들려 가늠한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걸어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는 절벽 아래에 붙어 약간 튀어나와 있는 커다란 바위와 그 사이에서 졸졸 새는 작은 물줄기가 보였다.

    “수수께끼라고…….”

    “분명 수수께끼의 기운이에요! 이 바위 안에 있어요.”

    망량이가 작은 불꽃을 이글거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바위틈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어깨 위로 돌아와 헉헉거렸다.

    “이 정도로는 지치지 않으면서.”

    “주인님이랑 있다 보니 버릇이 들었네요. 크흠.”

    망량이가 꼬물거리자 김예리가 눈을 반짝거린다.

    “망량이는 울음소리가 참 독특해요. 도깨비불이라면서 맨날 뭉뭉거리고 정말 귀여워~! 강아지 같아요. 하준 님은 그런 망량이 말을 꼭 알아듣는 것 같고.”

    그러면서 망량이를 콕콕 찌른다. 하지만 나처럼 만져지지는 않는다.

    “주인님! 저 여자가 절 만지려고 해요!”

    “흠, 설명 안 했던가요? 전 망량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데요.”

    “뭐어어?! 정말요?! 저한텐 그런 말 안 하셨는데……. 그래서 망량이도 하준 님도 엄청 귀엽다고 생각했다고요?!”

    “아……. 그런.”

    “그럼, 그럼 망량이가 저한테 뭐라고 하는지도 다 아시겠네요?”

    “주인님!! 저 여자가 자꾸 절 찔러요!”

    망량이는 나처럼 다른 사람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칭얼거린다.

    “뭐라고 하나요? 저에 대한 소감은?!”

    “에잇! 에잇! 저리 가요!”

    심지어 김예리의 말은 듣고 있지도 않다.

    망량이는 의외로 인간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주인이라 예외인 모양인지 자꾸 치대기는 하지만 말이다.

    힘없는 푸른 불꽃이 김예리의 손을 밀쳐 댔지만, 김예리는 망량이가 자신과 노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슬쩍 망량이를 반대쪽 어깨로 옮겨 놓는다.

    “지금은 그것보다 이 수수께끼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칫. 망량이가 하준 님보다 저를 더 따르게 될까 봐 그런 거죠?”

    김예리는 가끔 정말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이게 다 환희한테 배운 것 같기도 하고……. 둘 사이를 조금 떨어트려 놓아야 할 것 같다.

    “자아, 거대한 바위라.”

    “아무래도 이 바위를 치우는 게 우선이겠지. 다들 물러나.”

    결이가 검을 뽑는다.

    츠르르릉.

    번개의 검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우리는 물러섰다.

    “내 뒤에 서라.”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해 하케임이 나와 김예리 앞을 척하니 가로막는다. 워낙에 덩치가 크다 보니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 방패가 된다.

    츠츳.

    콰아아앙!!

    결이가 검을 휘두르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인다.

    “뭐야?”

    하지만 바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공격이 전혀 먹히질 않아.”

    “더 강한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하케임이 앞으로 나섰다.

    “안 돼. 뭔가 결계 같은 게 쳐져 있다니까.”

    “해 보기 전에는 모르지.”

    “그건 너나…….”

    결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케임은 거대한 창검을 소환해 냈다.

    쿠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돌풍이 휘몰아쳤다.

    “큭!”

    빠르게 우리 앞으로 온 결이가 하케임이 일으킨 돌풍을 베어낸다. 검기가 바람을 가르고 나와 김예리가 다치지 않도록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저 바보 자식.”

    쿠와아아…….

    바람이 잦아들고 앞을 확인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게 안 먹힌다고?”

    “뭔가 결계 같은 게 쳐져 있다고 했잖아.”

    결이가 투덜거리자 하케임이 얼떨떨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강한데…….”

    확실히 하케임의 공격으로 깨지지 않는 결계가 이런 하위 등급 던전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여기 수수께끼가 한참이나 늦게 발견됐던 거군.’

    수수께끼를 알아보는 사람도 적을 뿐 아니라 발견했다 치더라도 바로 클리어하지 못하면, 후에 자신이 클리어하기 위해 숨기는 자들도 있을 테고 말이다.

    “일단 단서를 찾아야 해.”

    “그래, 시작은 항상 그런 거였는데.”

    결이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다들 바위 근처나 이 근처 숲을 관찰하라고.”

    “넵!”

    “알겠어.”

    “알았다.”

    모두 흩어져 주위를 탐색하는 동안 나는 바위로 다가가 새벽의 검을 꺼냈다.

    이번에는 바위가 아닌 바위 아래의 흙을 공략하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거대한 바위가 막고 있더라도 아래의 흙을 파내면 기울어져 굴러가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이긴 했다.

    쉬이익, 퍼억! 퍼억!

    “허억, 허억.”

    놀랍게도 꽤 깊이 파냈지만, 바위는 기우뚱하지도 않았다.

    ‘그래, 솔직히 이런 방법……. 회귀 전에도 누구나 다 시도했을 방법이지.’

    스스로 민망해진다.

    ‘그래도 단서가 전혀 없는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구덩이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흐으음……. 음?”

    바위 아래에 뭔가 있는 것 같아 흙을 털어내 본다. 아주 자그마하게 한자가 음각으로 쓰여 있었다.

    “이걸 왜 이제야 발견했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걸 찾은 건 거의 운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렇게나 작게 새겨져 있다니. 노래 성(聲). 그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노래 성’ 자라니. 무슨 의미인 거지? 노래를…… 부르라는 건가?”

    슬쩍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뭐야, 수수께끼를 푸는 걸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군. 은하준.”

    하케임은 또 어떻게 들었는지 저 멀리에서 쩌렁쩌렁 외쳤다.

    약간 민망해졌지만,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드득.

    거짓말처럼 바위가 살짝 흔들린다. 하지만 이내 곧 잠잠해졌다.

    ‘원하는 노래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거 난이도가 완전 헬이잖아. 바위가 원하는 특정 노래를 찾아내라는 거야? 바위의 다른 쪽은 단서가 없나?’

    휘익. 뛰어올라 바위의 맨 윗부분에 도달했다.

    “오.”

    이번에는 뿌리 근(根).

    그렇다면 뿌리 노래라는 뜻이 된다.

    “뿌리 노래가 대체 뭔데?”

    아는 노래라면 길거리에 흘러나오는 가요나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것밖에 없었다.

    “노래의 뿌리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노래의 뿌리……. 음계 같은 거? 도레미파솔라시도?”

    “흐으음……. 바위가 반응이 없네요.”

    망량이 역시 골몰하며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제가 알고 있는 노래가 하나 있긴 한데.”

    “노래? 네가?”

    “저도 노래는 부를 줄 알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기억이 온전하지 않잖아. 그래서 물어본 거라고.”

    “흠흠, 뭐어……. 하케임이랑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의 파편이랄까. 오히려 주인님이 물어보셨던 건 생각할수록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뿌예지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있는 것들은 선명하단 말이에요!”

    “어쨌든, 그럼 불러 봐.”

    다른 묘안이 떠오를 때까지 뭐든 부를 수 있는 거라면 죄다 불러 볼 생각이었다.

    “가사는 없어요.”

    “그래.”

    망량이가 불꽃을 이글거리며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좋은데?’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그리고 다음에 든 생각은 뭔가 익숙하다는 거였다.

    ‘내가 이 노래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던가?’

    안도감이 들고 정겨운 노랫소리다.

    어쩐지 아주 커다란 꽃밭이 떠오르는…….

    그때 망량이의 노래가 끝났다.

    “흠흠, 이쯤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망한 것 같죠?”

    “그래, 그런 것 같네. 흐음. 그런데 그 노래는 어디서 배운 거야?”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미안하다.”

    망량이는 불꽃을 삐죽거리며 무안한 듯 주위를 뱅그르르 돌았다.

    “그래도 노래가 참 좋았어.”

    “정말요?”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왜 여기서 노래나 부르고 있는 거냐!”

    하케임이 들이닥쳤다. 하여튼 귀가 너무 좋아서 문제다.

    “하케임, 너도 노래 하나 불러 봐라.”

    “노래?”

    “이 바위에 ‘뿌리 근’ 자와 ‘노래 성’ 자가 쓰여 있어. 아무래도 노래와 관련된 것이 힌트인 것 같은데.”

    “아하! 그렇군. 하지만 나는 아는 노래가 없다.”

    “응? 하나도? 전혀?”

    “으으음……. 그렇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노래를 몰라도 듣기는 했을 텐데.”

    “내가 살던 곳이 음악 듣기 어려운 곳이었을 수도 있지.”

    “흐음……. 그렇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지친 얼굴의 김예리가 다가왔다.

    “이 근처를 죄다 뒤졌는데도 아무런 단서가 없어요.”

    “수색은 이걸로 끝인가.”

    멀리서 결이도 이쪽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어쩌지. 방법이 없나. 일단…… 밥이라도 먹을까?”

    “밥이요? 지금요?”

    김예리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녀의 위장은 솔직했다. 꼬르륵! 커다란 소리가 바위 아래에서 위까지 들렸다.

    “음, 사실 배가 고플 때가 됐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 *

    “소풍 온 것 같네요.”

    “소풍보다는 캠핑에 가깝지.”

    지글지글, 바위 앞에 피워 올린 모닥불 위에 꼬챙이에 꽂힌 커다란 고기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다.

    “하준 님이 몬스터 요리에 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고요.”

    “하지만 아까 만난 녀석들을 먹을 수 있을 줄 몰랐는걸요.”

    “딱 안심 부위만 먹을 수 있어요. 다른 곳은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딱히 엄청 대단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던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익혀지는 기술.

    겉에 익은 몬스터 고기를 먼저 살살 잘라 접시에 올려 결이에게 건넸다.

    “그러고 보니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연구하면 좋긴 하겠다.”

    “지금도 맛있어.”

    결이는 단번에 고기를 입안에 밀어 넣고 우물거렸다.

    꼬르륵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결이 녀석도 마침 허기가 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아까 찾아낸 단서가 뭐라고요?”

    김예리가 고기 접시를 받아 가며 묻는다.

    “노래의 뿌리. 뿌리의 노래? 하여튼 그 두 한자어가 쓰여 있었는데, 도대체 의미를 알기는 어렵더라고요. 저랑 망량이가 노래 비슷한 걸 불러 봤지만, 전혀 반응도 없고. 사실 맨 처음 흥얼거릴 땐 뭔가 바위가 흔들거리는 것도 같았는데.”

    “흐음……. 노래의 뿌리라면 역시 노동 아닐까요?”

    “응? 노동?”

    “아, 왜. 그냥 앉아서 노래가 생기지는 않잖아요? 처음에는 노동요로 시작해서 발전하는 음악이 많다고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제 친구가 음악 전공이라…….”

    “음악 전공이라고요??”

    김예리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고기~를 써얼자, 고기 써는 일도 일~ 고기를 써얼자~! 많이 썰어서 대장님께 먹이자~.”

    “그거 지금 막 지어낸 노래예요?”

    “아이참, 노래는 이렇게 생겨나는 거라니까요?”

    그 순간 김예리의 말을 마치 바위가 들은 듯이 드드드드…… 무겁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물이 쏟아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