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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10화 (110/250)
  • 제110화

    제110편

    “자, 여길 보면…….”

    “정말이다. 있다!”

    오스킬의 많은 영상 사이에서 금수로 꽃을 놓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찍혀 있었다.

    “아쉬운 건 확인되는 정확한 얼굴이 없다는 거예요.”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아직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야.”

    목격담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복면의 자수조차 훼손되어 제대로 된 모양이 남은 게 없다. 그러니 이렇게 자수 모양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거다.

    “여기에선 꽤 선명하게 잡혔어. 역학 조사를 하면 키나 체형 등을 제법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잘했어요.”

    “크, 큼. 갈 수 있는 곳은 최대한 참여했으니까요.”

    확실히 그녀가 찍은 영상은 엄청나게 많았다.

    사건이 터지는 곳마다 그녀의 카메라가 등장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왜 영상을 찍기만 했죠? 충분히 함께 싸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 어어……. 그건…….”

    오스킬은 당황하더니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별로 강하지 않으니까…….”

    “네?”

    목소리가 콩만 해진 그녀를 보고 환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는 별로 강하지 않아요. 저는…… 등급도 F랭크이고, 할 줄 아는 스킬이라고는 정적을 만드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파티에도 들어갈 수 없고요.”

    그녀가 스킬을 사용한 것이 아닌데도 대기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전…… 은하준 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D급이면 사실 정말 어중간한 랭크잖아요. 물론 저 같은 F랭크보다는 훨씬 훨씬 대단하지만……. 하여튼, S급 헌터랑은 다닐 수 없는 랭크죠. 그런데도 S급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축축하다.

    울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처음 지하철에서 만났을 땐, 은하준 님이 D급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각성하자마자 엄청나게 강하고……. 전 정말 엉망진창이었는데요. 그래서 정말 팬이 됐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준 님이 얼마나 대단한 헌터인지 알려 주고 싶었고요. 그리고 말했다시피 전…… 적막을 만드는 능력밖에 없었고요.”

    아아, 그녀가 지금까지 오래도록 현장에서 우리를 쫓아다녔는데도 전혀 들키지 않았던 이유를 알아냈다.

    음파를 제어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주변을 완전히 음소거시켜, 기척조차 느낄 수 없게 한 거다.

    ‘충분히 강력한 능력인데…….’

    F급은 스킬이 하나에서 두 개밖에 없으니까 확실히 전투에 동원되기 어려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레벨링에 최선을 다하면 꽤 쓸 만한 능력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F급치고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잠시간 나를 따돌릴 정도로 스피드도 괜찮다.

    ‘F급이라니, 측정이 잘못된 거 아냐? 적어도 E급은 될 텐데.’

    오스킬은 언제 각성했던 걸까. 정말로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닐까?

    “혹시 언제 각성해서 랭크 측정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10년 전에요. 다들 저보고 랭크 측정이 잘못됐을 거라고 말하죠. 하지만 아녜요. 그래도 각성자인데 일반인들보다는 강한 게 당연하다고요.”

    속내를 뻔히 들켜 버려 움찔하게 된다.

    “그럼 레벨은요?”

    “……레벨은. 볼품없어요. 처음에는 저도 던전에 가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얻게 되는 건 던전 짐꾼 정도의 일이었죠. 그래서 점점 안 가게 되더라고요.”

    던전에서 경험치를 얻으려면 기여도가 있어야 한다. 시스템이 정산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짐꾼으로만 일해서는 경험치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올랐을 거 아녜요.”

    “……10이에요.”

    F급이라고 치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고 던전 짐꾼 일을 조금 하다가 그만둔 레벨이 맞다.

    10년 동안 레벨 10이라니.

    ‘슬쩍 봐 볼까.’

    그녀를 향해 스킬을 사용한다.

    영혼 분별사.

    [김예리]

    영혼 등급: C

    영혼 상태: 안정

    싱크로율: 97%

    ‘높다!’

    싱크로율이 이렇게 높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녀의 능력은 랭크가 낮더라도 쓸모 있는 능력.

    “예리 씨. 혹시 우리 길드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어요?”

    “네?”

    “예리 씨가 레벨을 올릴 수 있도록 우리 길드에서 지원할게요.”

    오스킬, 그러니까 본명 김예리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다. 옆에 선 환희 역시 뭔 소리냐는 얼굴.

    “지금…… 자, 장난하는 거죠?”

    “제가 예리 씨한테 장난을 왜 해요. 재미도 없는데.”

    “윽. 아니 그렇지만…… 저는 쓸모없는걸요.”

    “아니요. 예리 씨는 쓸모없지 않아요.”

    아무리 F급이라도 인류 종말의 때는 함께 맞이하게 된다.

    그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각성자가 인류 종말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도 이 테러 단체의 단서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됐잖아요. 물론…… 예리 씨는 헌터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으니까 고민은 되겠죠. 하지만 나는 예리 씨의 잠재력을 보는 겁니다.”

    “잠재력…….”

    김예리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자신이 다시 헌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지난 10여 년간 그랬을 것이다.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절대로 F급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하지만 나도 해냈어.’

    그녀의 말대로 S급들 사이에 있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D랭크를 타고났지만, 우연들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강해질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그녀의 손도 잡아 주고 싶었다.

    그녀가 아직 헌터 일에 미련을 가졌다면, 각성자로서 전장을 누비고 싶다면.

    그녀가 지금껏 너튜브를 통해 다른 각성자들의 모습을 조명하던 것은 아직 그녀 안에 열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그란 안경알 너머 김예리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조, 좋아요! 저 할래요! 저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헌터가 되고 싶어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별한 훈련을 할 겁니다.”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환희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슬쩍 내게 눈치를 준다.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F급을 훈련시키다니, 상식 밖의 일이다. F급의 레벨링을 도와주느니 높은 랭크들에게 포션을 사 주는 편이 쓸모 있을 거다.

    환희뿐만 아니라 모두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내게는 넥스트 레벨이 있다.

    그것이 그녀를 얼마나 강하게 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 * *

    [이렇게 빨리 단서를 찾아낼 줄 몰랐습니다.]

    성현준 대위의 침착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뭘요. 다만 영상에 찍힌 것을 찾아냈어도 행동 범위나 패턴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쉽네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위 현장에서 ‘요나’라는 인물과 마주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그들 쪽에서도 당분간 소극적인 활동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추적은 장기적으로 봐야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들에 관한 정보를 모아 주시길 바랍니다.]

    “예.”

    통화는 간단했다. 이제 내가 넘긴 동영상 자료를 괴물 특수부대에서 확인하고 다른 협조 길드에게도 공유할 터였다. 테러 단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답답할 노릇이지만,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똑똑.

    “하준 님! 저 준비 끝났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린다. 오스킬, 김예리다.

    파일을 정리하는 대로 그녀는 짐을 가지고 길드 건물로 들어왔다.

    “짐은 잘 챙겨 왔어요?”

    “물론이죠. 그나저나 저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숙식까지 제공해 주시다니 완전 감동이에요.”

    안경알 너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뭐랄까. 김예리를 보면 쿼카가 떠오른다.

    “감동까지야. 별로 제대로 된 기숙사는 아니라서 미안해요.”

    “아뇨! 아주 훌륭하던데요! 무슨 숙직실이 오피스텔 같던데.”

    확실히 신선길드의 숙직실은 초호화라고 할 수 있는데 류환희 씨께서 돈이 많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기야 던전 연구를 위해서 환희는 길드에 상주하다시피 하니까.

    그런 초호화 숙직실 중 하나를 김예리에게 양보했을 뿐이다.

    “자,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볼까요.”

    “좋아요!”

    김예리는 씩씩하게 주먹을 쥐고 흔들어 보인다.

    * * *

    “흐어아아악!! 못 하겠어요!”

    훈련장 바닥으로 김예리가 나동그라진다.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진짜 안 돼요. 못 하겠어요. 힘을 다 썼다고요. 더 하면 죽어요.”

    “아닐 텐데요.”

    “하준 님이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안경까지 집어 던지고 바닥에서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알 수밖에 없지. 지금 나랑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슬쩍 연결된 흰 선을 가리키자 울상을 짓는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칫…….”

    마치 PT 선생님과 회원 같은 분위기다.

    김예리는 10년간이나 제대로 각성자의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영상을 촬영할 때도 아주 기본적으로만 사용했다고 한다) 기초 체력 훈련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모두 각성자용 훈련 기구들을 통해 단련하는 것이라 훈련장에는 일반인들이 들면 꿈쩍도 안 할 기구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주변으로는 각성자의 힘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강력하게 설계된 벽들이 사방을 막고 있다.

    하늘도 보지 못하고 벌써 4시간째니 답답하기야 하겠지.

    “흣, 차! 흣, 츠아!”

    우는소리를 해도 곧장 일어나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 얼마나 헌터로서 살고 싶었는지 느껴진다.

    띠리링.

    훈련장 바깥에서 호출이 온다.

    “누구……. 아, 결아.”

    “훈련 잘하고 있어?”

    결이가 스포츠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와, 들어와. 너도 바쁘지 않아?”

    “……옆 방에서 훈련하고 있었어.”

    “던전은 다녀온 거야? 잘 다녀왔어?”

    “내 서포터가 없는데 어떻게 잘 다녀왔겠어?”

    “에이~ 잘 다녀왔으면서.”

    김예리에게 찰떡같이 붙어 있은 지 벌써 4주가 되었다.

    낮 동안에는 김예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중간중간 길드원들에게 소울메이트를 사용한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결이와 하케임에게 소울메이트를 사용해 소울 게이지를 올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온종일 소울메이트를 사용하고 있는 거다.

    여하튼, 김예리를 훈련하는 동안은 길드 업무에서 조금 빠지고 있었다.

    “정말이야. 네가 없으니까 전열이 쉽게 무너지고 부상도 잦아. 네가 있고 없고 차이가 난단 말이야.”

    “그거 기분 좋게 들리네.”

    “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데.”

    “자, 예리 씨. 이거 좀 먹고 합시다.”

    “앗! 네에~! 안녕하세요, 한결 님. 헤헤헤. 감사합니다.”

    김예리가 달려와 결이가 가져온 간식 봉지를 풀어 헤친다. 그러는 동안 결이는 어쩐지 계속 뚱한 얼굴이다.

    “와, 이 초코 크림 가득 빵!! 저 이거 진짜 좋아해요!”

    “결이도 초콜릿 좋아해요.”

    “와~! 정말요?! 왠지 에스프레소만 마실 것 같은 이미지인데.”

    “하하하, 초코 스무디만 먹는 거 알면 놀라시겠네.”

    “저 이거 브이로그에 올려도 돼요?”

    “안 됩니다.”

    결이가 딱딱하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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