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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09화 (109/250)
  • 제109화

    제109편

    우와.

    하마터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할 뻔했다.

    어두운 방 안은 내부로 들어서자 마치 우주 한복판에 떨어진 것처럼 사방이 반짝거렸다.

    ‘이건 대체 무슨 공간이지.’

    이미 짐작하기는 했지만, 안사홍의 능력은 뭔가 차원을 다룬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부류인 것 같았다.

    어쩐지 못 구하는 아이템이 없다고 했다. 이런 대단한 스킬이라니. 역시 안사홍과 인연을 만들어 놓길 잘했다.

    그의 능력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거래로 인한 계약이지만,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케임의 원래 세계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돌려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희망이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걷던 안사홍이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뻗자 눈앞에 잔상이 일렁인다.

    즈즈즈.

    그리고 형상이 나타난다. 커다랗지만,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다. 그러나 시커먼 그림자처럼 보일 뿐. 얼굴이나 자세한 모습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반갑습니다.”

    [반갑군.]

    대답하는 상대의 목소리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잘못 맞춰진 주파수의 라디오 같기도 하고 해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음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건은?]

    “당연히 준비해 왔습니다.”

    [좋아, 당신을 믿고 있으니까 말이야. 품질에 관해서는 더 묻지 않아도 좋겠지.]

    “그래도 한 번 확인해 보심이 어떤지요.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처리하기 쉽습니다.”

    [흐음. 그래,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군. 물건을 보여 주게.]

    안사홍은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에게 한 걸음 떨어지기를 지시했다. 그러고는 가죽 캐리어를 앞에다 놓고 자물쇠를 열었다.

    달칵, 달칵. 끼리리릭.

    처음 보는 모양과 방식의 자물쇠였다.

    덜커덩.

    캐리어가 열렸지만, 아쉽게도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거리였다.

    “어떠신가요.”

    즈즈즈즈…….

    형체가 팔을 뻗어 캐리어 안을 확인한다. 그 모습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옆을 돌아보니 하케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전에도 안사홍에게 적대감을 드러냈었는데, 괜히 데려온 걸까? 조금 전만 해도 비밀 임무네 뭐네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방심하고 있었다.

    턱. 하케임의 손목을 잡아챘다.

    “…….”

    하케임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약간 안도하는 표정이 된다.

    ‘미안.’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말한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나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었던 건가. 나름대로 나를 배려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케임치고는 대단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안해지네. 오늘 임무가 끝나면 맛있는 거라도 먹여야겠다.’

    힐금. 다시 형체와 안사홍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형체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기에 눈을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도.

    […….]

    “……무슨 문제라도?”

    [아니. 아무것도. 물건을 확인했으니 이제 대가를 주지.]

    딱. 안사홍이 손가락을 튕기자 텅 빈 공간에 사각형의 구멍이 생겼다. 그 공간 안에서는 미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형체가 손을 내밀어 구멍에 갖다 댄다.

    차르르륵.

    무엇인가 구멍 속으로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값은 치렀네.]

    “잘 받았습니다.”

    [그럼, 이만.]

    즈즈즈.

    형상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이내 사라진다.

    안사홍은 캐리어를 정리하더니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끝난 거예요?”

    문을 넘어서자마자 묻는 내게 안사홍은 빙그레 웃어 보인다.

    “여러분 덕분에 거래가 잘 끝났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든다. 정말로 서 있기만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니요. 충분했습니다.”

    안사홍은 하케임을 보더니 비웃음인지 모를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이지 강력한 살기더군요, 당신.”

    “……불만이야?”

    하케임이 날카롭게 반응한다. 마치 지금까지 참고 있던 걸 폭발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공간에는 차갑고 날 선 기운이 가득해진다.

    “무슨 소릴. 덕분에 손님이 아무런 말도 못 하더군요. 앞으로도 그런 살기를 마음껏 내비쳐 주면 좋겠네요.”

    “응? 도, 도움이 된 건가요? 그게?”

    하케임을 말리려다가 어리둥절해져 묻는다. 정말로? 이게 오히려 먹힌다고?

    물론 앞으로 계속 계약 건을 수행하려면 그편이 좋긴 하다.

    “어쭙잖은 살기라면 먹히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쪽 헌터님께선 그것들을 향해 잘도 그런 날것의 살기를 내뿜더군요. 그 정도 기개라면 그들이 놀랄 만도 하죠.”

    “음……. 자세히 여쭤 봐도 될까요?”

    “아니요. 안 됩니다.”

    안사홍은 단칼에 내 부탁을 거절하고는 씩 웃어 보인다.

    “그저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만 알고 계세요. 여러분을 위한 일이니까요. 게다가 저번에 작성했던 계약서에 대처에 관한 것 외에는 질문하지 않는다, 라는 조항이 있었죠?”

    “위약금이라도 물어야 하나요?”

    “위약금까지 받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제대로 해 줄 수가 없군요.”

    그는 미소를 유지하며 강하고 천천히 두 손을 비볐다. 뽀드득하고 그의 가죽 장갑에서 소리가 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면장갑이 아니라 가죽 장갑이다.

    “오늘 임무는 이것으로 종료입니다.”

    “하……하하, 뭔가 허탈한 것도 같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다음에는 꽤 거친 손님을 뵈어야 할지도 모른답니다.”

    “그런가요?”

    어떤 편이 더 좋을까. 당연히 오늘같이 날로 먹는 게 최고긴 한데.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겠어요?”

    안사홍은 언제 꺼내 준비를 했는지 모르게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단홍 상사 내부에도 어느새 차 향기가 가득 찼다.

    “아니요. 그만 돌아가 볼게요. 피곤해 보이셔서요.”

    사실은 옆에서 부르르 떨며 참고 있는 하케임 때문이지만. 게다가 피곤해 보인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었다.

    안사홍은 그 잠깐 사이에 무척 수척해 보였다. 아니, 갑자기 나이를 먹은 것 같달까.

    “좋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보수는 계좌로 넣어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안사홍은 물건을 챙기며 안쪽 방으로 훌쩍 들어가 버린다.

    단홍 상사에 들러 그가 끝까지 배웅해 주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원을 다루는 큰 힘을 썼기 때문일까? 그런데 회귀 전에는 비밀에 싸인 상인이었던 그가 왜 이번에는 우리에게 이리도 쉽게 자기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걸까?

    하지만 이걸 물어도 안사홍은 대답하지 않겠지.

    ‘……정말 기묘한 하루다.’

    * * *

    “벌써 그 많은 영상을 다 체크했다고?”

    오스킬에게 연락이 온 건 그녀를 만난 지 딱 일주일이 되었을 때였다. 사실 연락이 아니라 다짜고짜 길드 건물로 찾아온 거였다.

    “와, 이 사람이 오스킬이구나. 신기하네.”

    “구독자 엄청 많은 너튜버잖아요?”

    진보라와 염태규가 신기해하며 오스킬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스킬은 쩔쩔매면서도 빠르게 건물 내부를 탐색하는 눈치다.

    “또 뭐, 여기까지 온 이유가 우리 길드 내부의 정보를 빼돌린다든가 그런 거 때문인 건 아니겠죠?”

    “아,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제가 워낙에 하준 님이랑 신선길드 팬이다 보니까…….”

    오스킬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기야 허락 없이 자극적으로 영상을 올리긴 했어도 우리에 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영상이 대부분이긴 했다.

    “그런데 올 거면 미리 이야기 좀 하고 오지. 왜 이렇게 갑자기 왔어요. 내가 없었으면 어떡하려고.”

    “아, 아……. 이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 가지고.”

    “그래요? 식사는 했어요? 뭐라도 먹을래요?”

    “……! 아뇨, 뭐, 됐어요! 괜찮아요!”

    꼬르르륵!

    순간 한결이가 스킬을 쓴 줄 알았다.

    “아……. 그게, 이건……. 배, 배가 아파서……. 하하하하.”

    오스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영상을 다 확인했다고 한 것을 증명하듯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눈 밑은 시커멓게 다크서클이 생겨선 퀭했고, 오동통하던 볼도 홀쭉해져 있었다. 두꺼운 뿔테안경도 자꾸만 흘러내렸다.

    분명 식사를 거르고 밤을 새워 가며 영상을 돌려 본 게 분명했다.

    “아니, 나도 방금 밖에 나가서 뭣 좀 먹으려고 했거든요. 저기 대기실에 좀 앉아서 기다려요. 영상 보여 줄 게 있다면서요. 준비하고요. 사람을 보내 놓을 테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앗, 네, 넵.”

    오스킬을 대기실에 넣어 두고 환희에게 톡을 넣었다. 그리고 길드 건물 바로 앞에 있는 죽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어떻게 굶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적당히 죽을 사 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소고기나 전복이 들어간 게 좋으려나. 환희는 매운 낙지 죽으로 사 주고…….”

    죽을 사서 대기실로 돌아가니 환희와 오스킬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오빠 왔어?! 이 언니 대박이야!”

    “응?”

    언니? 역시 환희의 친화력은 S급이다.

    그 잠깐 사이에 저렇게 친근해지다니.

    “뭐가 그렇게 대박인데.”

    죽을 내려놓는 동안 오스킬의 눈이 죽 가방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지.

    “이렇게 많은 영상을 빨리 확인했던 건 프로그램을 써서 테러범들의 문양을 추적했기 때문이야. 알고리즘을 이용한 거지. 일반인들이 이런 방법을 쓰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렇구나. 몇 주는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냥 영상을 맨눈으로 훑으면 몇 주는커녕 몇 달이 걸릴걸. 언니가 찍은 영상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그걸 다 저장해 두다니. 언니도 좀 변태야.”

    “앗, 아앗……! 벼, 변태라니 그런…….”

    “언니, 칭찬이야~! 나 이 언니 마음에 드는데? 말이 좀 통하더라고. 게다가 이 언니가 오빠의 엄청난 ㅍ…….”

    “그, 그만해! 그만, 그만!”

    오스킬이 환희의 입을 틀어막는다.

    정말로 친근해졌네.

    “일단 죽 먼저 먹고 들을게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대체 끼니를 얼마나 거른 겁니까?”

    “아……. 그게, 오늘은 아무것도 못 먹어서…….”

    음? 오늘은? 그럼 다른 날은 다 챙겨 먹었다는 건가?

    생각해 보면 환희가 칭찬할 만한 프로그램을 돌려서 단서를 찾았다면 직접 밥을 굶어 가며 일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한데 지금 시각은 오후 1시다.

    “다른 날은 잘 챙겨 먹었고요?”

    “네, 당연하죠. 밥 못 먹으면 죽어요, 저.”

    그렇다는 건…….

    아침을 거르고 점심이 조금 늦어진 걸로 이 꼴이 되었다는 건가? 사실은 굳이 죽을 사 올 필요조차 없었던 거다.

    ‘진짜 독특한 사람이네…….’

    잠깐 멍해진 내 손에서 오스킬이 죽 포장을 넘겨받더니 노련한 손길로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와아~! 맛있겠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먹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나 보다. 덕분에 그녀의 동글동글함이 유지되는 걸까.

    소고기죽의 포장을 벗기며 활짝 웃는 얼굴에 벌써 빛이 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먹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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