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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107화 (107/250)
  • 제107화

    제107편

    “이렇게 된 거 이 몸을 차지해 버리고 이루지 못한 본인의 꿈을 실현해 볼까.”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놀라기는.”

    금룡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결이라면 절대로 저렇게 경박하게 웃지 않지.

    “결이는 언제 돌아오죠?”

    “왜? 벌써 친구가 그립나?”

    금룡이 내게 가까이 바짝 붙는다.

    “벌써 다섯 시간째라고요.”

    “그만큼 자기 그릇을 넘어서는 힘을 사용한 탓이지. 사실 나는 말렸느니라.”

    “그랬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렇게 내력이 상하면 치명적이니까. 회복되더라도 이전의 상태와 같아질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 결이는 괜찮은 겁니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래, 무슨 무협 소설에서 비슷한 말을 읽은 것 같다.

    이런 경우에 무슨…… 힘을 담는 단전이라는 게 망가져서…… 주화입마? 뭐 그런 거라든가?

    “흠. 비교적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기는 한데…….”

    “그게 뭐죠?! 내가 도울 수 있나요?”

    “그대는 금강석이니 도울 수 있지. 어떻게 하는 거냐 하면…….”

    금룡은 아주 비밀스러운 사실을 말하듯 귓가에 속삭였다.

    “그대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귓가에 애벌레가 기어가는 듯 간지러움이 올라올 것 같다.

    “본…… 윽!!”

    “?!”

    다짜고짜 금룡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결아!!”

    무심코 결이의 이름을 외쳐 버렸다. 그러자 금룡이 벌떡 다시 일어섰다. 그러고는 내 양팔을 움켜쥐고 여기저기를 살핀다.

    “하준아, 괜찮아?!”

    “어…….”

    이제 금룡이 아니라 한결이다. 한마디만 들어도 결이가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괜찮지. 너야말로 괜찮아? 완전히 지친 상태라고 들었어.”

    “그 자식 말 믿지 마.”

    “으응?”

    “물론……. 힘을 너무 쏟은 바람에 몸에 무리가 온 건 맞아. 그래서 통제권이 넘어간 것도 맞고.”

    “그럼 다 맞는 거 아냐?”

    “하지만 뭐 돌아올 수 없다느니 그런 건 믿지 마. 이 자식이 괜히 널 불안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니까. 절대로 몸을 뺏기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 말이 날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왠지 복선같이 들리잖아.

    마치 마지막 전투 전에 ‘돌아와서 꼭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 이런 느낌의 말이라고 지금.

    하지만 순진한 결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날 불안하게 해서 뭘 어쩌려고…….”

    사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날 불안하게 해서 금룡이 얻는 게 뭐란 말인가.

    붙어 있는 것도 결이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도 결이인데 말이다. 물론 엄청 불안해지기는 했지. 의도라면 성공적이기는 한데.

    “원래 그 녀석 수법이야. 사람을 쥐고 흔들려는 수작이지.”

    “뭐어?”

    “하여간에……. 착한 놈이 아니니까. 그 녀석 말을 너무 신뢰하지 마.”

    결이는 거의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나쁜 녀석 같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금강석이라니 뭐니 그런 말은 기분 좋았단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몸은 괜찮아진 거야? 그래서 돌아온 거지?”

    “어, 으응.”

    “어째 대답이 시원찮다?”

    “아냐. 이제 스스로 회복할 수 있어.”

    “금룡 녀석이 까부는 게 그렇게 걱정된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과하게 힘을 쓰지 마. 물론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금룡이 뭐라고 하든 그냥 내가 보기에도 넌 너무 무리했어. 그러다가 어떻게 잘못될지 모른단 말이야.”

    인류 멸망도 인류 멸망이지만, 결이가 죽거나 다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누군가는 소인배라고 욕할지언정 난 네가 행복했으면 해서 이 짓거리를 하는 거니까.

    “……알겠어.”

    “혼난 강아지처럼 아주 풀이 축 죽었군, 한결.”

    어느새 나타난 하케임이 결이의 어깨를 퍼억! 하고 소리 나게 쳤다. 그러고는 베개를 털 듯 팡팡 두어 번 더 친다.

    “기운 내라. 하하하!”

    “윽! 그만해!”

    “하케임. 결이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 내상을 입었단 말이야.”

    “내상? 뭐야, 나도 오늘 전투로 다쳤다! 나도 걱정해 줘!”

    “뭐?”

    하케임이 손등을 쑥 내민다.

    “아무것도 없는데?”

    “있다.”

    “…….”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건지. 가방 안에서 간이 구급 약통을 꺼낸다. 마침 작은 밴드가 있다.

    “자.”

    아무런 상처가 없는 손등에 붙여 주니 하케임의 눈이 번쩍 뜨인다.

    “이게 뭐지?”

    “상처 감염되지 말고 잘 아물라고 붙이는 거야. 위생 밴드.”

    “……엄청나군! 고맙다, 은하준!”

    “…….”

    “결이 너도 필요하냐? 내장에 붙이게?”

    “붙이겠냐.”

    결이가 코웃음을 친다.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생체칩 반대 시위 위원회에 긴급히 호출받았던 대호 형이 나타났다.

    “다른 길드원들은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어. 너희들 몸은 괜찮냐.”

    “네, 괜찮아요. 이쪽 회의도 끝났고요.”

    “그래, 나중에 회의에 관해서 보고해 주고. 일단 너희들도 얼른 집에 가서 쉬어라.”

    “알겠어요, 형. 시위 위원회에서는 뭐래요?”

    대호 형은 눈썹을 쓱 들어 올린다.

    “앞으로 계속해서 경호를 맡기고 싶다던데.”

    “잘됐네요. 한 번 괴단체의 표적이 된 만큼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그런데, 아무래도 던전을 도는 것보다는 수입이 적어질 텐데 괜찮겠어? 모두와 상의해 볼 생각이야.”

    “아아, 그렇군요. 일단 저희는 괜찮아요.”

    내 말에 결이나 하케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고맙다. 나도 기왕이면 좋은 일 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거든.”

    “좋죠.”

    다만 박 비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높은 텐션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할까? 그렇다면 조금 피곤하긴 하다.

    “잘 들어가라.”

    “네, 형도요.”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 TV를 틀자마자 화면 가득히 결이의 모습이 잡힌다.

    [신선 길드의 S급 각성자 한결 헌터가 거대한 번개 장막을 만들어내 시민들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정말 아찔했죠. 한결 님이 아니었다면 전 아마 여기서 인터뷰도 못 했을걸요.]

    [한결 각성자와 콤비로 활동하는 은하준 헌터도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데 열심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가장 빠른 대응을 한 신선 길드와 괴물 특수부대 덕분에 사망자는 없으며…….]

    [이 정도로 큰 테러 상황에서 사망자가 없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귀감이 되고 더 나아가 한국의 각성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위 때문에 원래부터 카메라와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현장이 자세하게도 찍혔다.

    이렇게 화면을 통해서 보니, 직접 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특히 결이가 거대한 번개 장막을 만들어 무너지는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참 멍하니 TV를 보다 보니 각성 직후 지하철에서 놀과 전투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무슨 너튜브에 영상이 올라갔었다고……. 분명…… 오스킬, 오스킬이라고 했었지? 그때도 그 이름이었어.’

    결이와 신선 길드의 영상을 팔아먹고 있는 그놈!

    당장 오스킬의 너튜브 계정을 찾아 들어간다. 공지된 오스킬의 메일 주소를 복사하고 대화를 좀 나누자고 메일을 보낸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났을까.

    “뭐야, 이 새끼. 다 지우고 튀었어?”

    오스킬의 채널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 *

    “참 나, 이 정도는 쉽게 찾아낼 수 있지.”

    “환희야, 너밖에 없다.”

    “우후훗. 나만 믿으라고, 하준아.”

    “이게.”

    환희는 키보드를 신명 나게 두들기고 있다.

    “인간이란, 무의식중에 개인 정보를 마구 흘리는 법. 메일 주소나 아이디, 닉네임 같은 걸 매번 다르게 설정하지도 않아. 검색만 몇 번 돌리면 이 사람이 인터넷에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다 알 수 있다고?”

    “그렇게 들으니까 무섭네.”

    “당연히 무섭지. 그러니까 오빠들도 조심해. 예전에 인터넷상에서 뭔가 부끄러운 짓을 했다거나 하면 얼른 지우라고. 지워도 찾아내는 법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번에 방송 타서 더 유명해졌잖아?”

    “인터넷 자체를 잘 안 해서…….”

    “정말 시대에 뒤처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환희가 어깨를 들썩여 보이며 빙글거린다.

    “찾았다.”

    “벌써?”

    “이메일 주소랑 같은 아이디로 예전에 중고 거래를 한 적이 있네. 주소는 지웠지만, 제목에 지역이 대충 나오고. 거래 상대가 전화번호를 남겼으니까. 혹시 이 사람한테서 알아낼 수 있을지도. 하지만 나한테는 비장의 아이피 추적 기술이 있지. 핫핫핫.”

    “너 진짜 무섭구나.”

    이런 식으로 추적당할 수 있다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세상은 무섭구나.

    “이건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응……. 별로 어디 가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환희가 몇 번 더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주소랑 휴대폰 번호 톡으로 보내 놨어. 알아서 쓰도록 해. 나쁜 데 사용하지 말고.”

    “…….”

    여기서 제일 나쁜 건 너 같다만……. 고생해서 찾아줬는데 잔소리를 할 수는 없지. 흠흠.

    휴대폰을 확인하니 정말로 주소와 번호가 있다.

    오스킬, 기다려라. 내가 간다.

    * * *

    그래서 도착하긴 했는데, 갑자기 벨을 누르기도 뭐하다.

    녀석이 잘못한 게 맞지만,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온 건 과했나 싶다.

    물론 전화를 먼저 하면 계정을 정리하고 튀어 버린 것처럼 차단이나 먹일 것 같아서 먼저 찾아온 거긴 한데 말이다.

    아니지. 동의도 받지 않고 남의 정보를 팔아먹은 그쪽이 잘못한 거지!

    “흐음, 일단 동태를 살펴볼까.”

    다행히 한 층에 세대수가 많은 통로식 아파트다.

    대충 다른 호수 방문자인 척하면서 은근슬쩍 기다려 볼 셈이다.

    ‘뭔가 스토커가 된 기분인데.’

    괜히 시간이 붕 뜨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따라온 결이와 하케임이랑 같이 기다릴 걸 싶다가도 두 사람은 너무 눈에 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붙잡혔는가.

    사인해 달라느니 사진을 찍자느니.

    고개를 털어 버리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이 층에 멈춰 선다.

    띵.

    내린 사람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아주 수수한 여성이었다.

    굵은 뿔테안경을 쓴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뚝 멈춰 선다.

    “응?”

    “어?”

    뭐지?

    “어어…….”

    그러더니 갑자기 뒤를 돈다.

    이 반응은…… 역시 그런 거겠지?

    “저기요.”

    “…….”

    복도를 되돌아가는 여성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기요? 잠시만요.”

    “…….”

    후다다닥. 그녀는 팔까지 휘저으며 빠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움직여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각성자의 속도는 따라올 수 없지.

    나는 그녀에게 바짝 붙어 팔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휘익! 그녀가 복도 난간으로 뛰어내렸다.

    여기는 9층인데!

    “어? ……어?!”

    휘이익!!

    탁. 그녀는 안정적인 자세로 바닥에 착지했다.

    “각성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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