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제103편
“안녕하세요! 신선 길드원분들이시죠? 저는 그냥 박 비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렇게 저희 생체칩 반대 집회 진행 위원회 요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연한 갈색 머리에 순하게 생긴 남자는 마치 엉덩이에 꼬리가 달린 것처럼 우리를 반긴다.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 불러 주셔서요.”
웃으며 대답하는 대호 형에게 박 비서는 지도를 건넨다.
“오늘 현장 사전 답사에서는 특히 집중해서 경비를 서 주셔야 할 곳 위주로 체크해 주시면 되고요. 극비니까 당연히 외부로 유출되면 곤란합니다!”
사실 미리 준비시키려고 상세한 협박 편지를 보낸 건 맞지만, 우리가 직접 경호를 맡게 될지는 몰랐다. 어쨌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기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긴 한데.
“아유, 정말 다들 듬직하시네요. 위원장님이 어느 길드에 경호를 맡길지 고민하시는데 제가 신선 길드를 특히 추천했답니다. 저는 국내에서 신선 길드처럼 멋진 길드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당일 현장에서는 여러분이 스킬을 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겠지만~! 어쨌든 여러분이 경비를 맡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멋질 테니까요.”
원래 성격이 저런가? 극도의 외향인 인간인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렇게 살갑게 굴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제가 너튜브 오스킬 채널을 구독자 25명일 때부터 봤거든요?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재밌었던 게 바로 은하준 님이랑 한결 님의 첫 등장이었단 말이죠? 그 왜, 지하철 선로 위에서~!”
아.
그런 거였군.
기억난다. 그날 나랑 한결이랑 티브이에까지 나왔었지.
그 영상 올린 사람한테 내려 달라고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 뒤로 은하준 님이랑 한결 님 팬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오스킬 채널 구독자분들이면 아마 다들 같을 겁니다. 두 분 영상만 올라오면 뷰 수가……. 어휴, 말도 마세요.”
“네? 저희 영상이 더 있나요?”
처음 지하철 전투 영상은 뉴스에까지 나왔으니 그렇다 쳐도 영상이 더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애초에 너튜브를 잘 안 보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들은 대부분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네! 최근에 보노쇼핑몰 근처에서 급성 포털이 열렸었잖아요? 그 영상도 엊그제인가 올라왔는데요? 진짜 시민들 대피시키는 모습에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너무 대단하시던데.”
박 비서는 아주 갸륵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 맞아. 요번에 새로 길드 들어오신 분! 하태림 님이셨나. 오늘은 안 오셨네요? 그분은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어요. 혼혈이라는 말이 많던데 정말인가요? 너무 잘생기셔서.”
“난리가 났다고요? 전혀 몰랐는데요.”
“세상에! 어떻게 모를 수가! 아, 하긴 하태림 님 영상 공개된 지가 일주일밖에 안 되어서…….”
“일주일?”
황당하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오스킬이라고?
휴대폰으로 너튜브에 오스킬을 검색한다.
‘구독자가 100만이 넘잖아?’
게다가 박 비서의 말대로 나와 한결이가 나온 영상의 조회 수가 다른 영상의 조회 수보다 높았다. 심지어 처음 지하철 영상은 뷰 수만 해도 500만 회를 넘어서고 있었다.
‘집회 일만 끝나면 찾아내서 따끔하게 혼내 줘야겠네. 남의 영상을 허락도 안 받고.’
내 분위기를 감지한 박 비서가 눈치를 슬슬 본다.
박 비서 덕분에 정보를 얻게 됐으니 그에게 눈치 줄 생각은 없어서 빙긋 웃어 보였더니 표정이 한층 풀어진다. 단순한 사람이군.
‘가만, 쇼핑센터에서의 영상이라고? 어디서 얼마나 찍은 거지? 혹시 그 복면을 쓴 괴한들이 찍히지는 않았을까?’
재빨리 영상을 확인해 보지만,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없다. 하지만 괴물 특수부대가 도착해 사건을 정리하는 것과 나와 하케임이 성 대위와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찍혀 있다.
너튜버들은 영상을 올릴 때 편집을 해서 올리니까, 혹시 편집한 부분에 괴한들에 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스킬이라는 놈, 꼭 만나 봐야겠군.’
그렇게 새로운 정보를 얻은 뒤, 사전 답사는 무사히 끝나고 집회 날짜는 빠르게 다가와 당일.
“사인 좀 해 주세요~!”
박 비서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달려와 있었다.
“사인……. 없는데.”
저번 답사에 오지 않았던 하케임이 오늘 박 비서의 먹잇감이다.
“셀카도……!”
찰칵. 찰칵.
도대체 셀카를 몇 번 찍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박 비서님 여기 계속 계셔도 되는 겁니까?”
“아……. 아아, 사실은 안 된답니다. 이런. 행사 시작할 시간 됐네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뒤풀이 가자고요!”
박 비서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자, 그럼 모두 자기 위치로 가자고.”
“은하준! 파이팅이다!”
대호 형과 하케임이 각자 한 팀이 된 보라와 태규를 데리고 먼저 이동한다.
나와 결이는 이번 작전에서 한 팀으로 집회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빌딩을 순찰하게 됐다.
“요즘 좀 괜찮냐?”
한집에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웃기지만, 요즘 결이는 따로 훈련하는 시간이 많았다.
“응, 너는?”
“나야 뭐 항상 그렇듯이 굉장하지.”
결이가 픽 웃는다.
“요즘 피곤해 보이는 것 같은데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냐? 그 금룡인가 뭐시긴가 하는 녀석이 시키는 훈련이라고 했지?”
“응. 지금 네 금룡인가 뭐시긴가라는 발언에 굉장히 화를 내고 있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넌 충분히 잘 해내고 있으니까.”
솔직히 회귀 전의 결이와 비교하면 지금의 결이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체감상 3배 정도로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금룡인지 뭔지의 훈련도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
“고맙지만, 난 더 강해져야 해.”
“강해지면 좋지. 하지만 너무 성급한 마음으로 무리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안 다치고 오래오래 사는 게 중요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야.”
“……너 뭔가 아저씨 같아.”
“……새겨들어라.”
결아, 앞자리가 3만 되어 봐라. 하루하루 낡아 가는 육신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우린 각성자라 그래 봤자 일반인에 비해서는 거뜬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노화라는 건…….
“와아아아!!”
건물 아래에서 집회가 시작된 모양이다.
함성과 노랫소리가 들린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런 평화적인 시위를 테러하다니. 어떤 놈들이 그런 고약한 짓을 하는 건지 이번에는 놈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내려다보니 도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보인다.
정말 많은 수다. 게다가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실 회귀 전에는 길드에서 오래전 예정되어 있던 임무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었다.
임무가 끝난 뒤 뉴스로 사건을 접했을 뿐이었는데도 굉장히 참담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테러라니. 테러리스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집회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모이고 있다.
치이익.
[여기는 울프. 여기는 울프. 현재 이상 무. 의심 정황 미발견. 각 팀 상황 보고 바람. 오버.]
[여기는 버블. 이상 무. 오버.]
삐빅.
[여기는 썬더. 이상 무. 오버.]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장소를 지키는데 아무런 낌새가 없다.
‘아직 시간이 남긴 했는데. 거동 수상자도 보이지 않는다니. 조금 의아한걸.’
분명 자리를 잡기 위해 확인된 위치로 미리 접근하리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다 되어 에스퍼 시야를 발동해도 우리가 있는 층을 통과하는 사람이 없다.
이 건물은 우리가 대기 중인 층수에 내려야만 옥상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미리 각성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 두었다.
그러니까 이 층에 접근하는 각성자가 있다면 그건 테러범인 거다.
때마침 적막을 깨고 다른 팀의 무전이 들려왔다.
치이익.
[여기는 울프. 거동 수상자 발견. 체포하겠다. 오버.]
* * *
“보라 양, 저쪽이야.”
“네! 길드장님!”
“쉿.”
차대호는 계단으로 살금살금 올라오는 두 인영의 기척을 감지하며 무전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준이가 미리 일러 준 시간에서 좀 늦었군. 오차 범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두근두근.
몬스터를 잡을 때보다 심장이 더 뛰는 것 같았다.
하기야 몬스터와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 아닌가.
그들과는 외모부터 언어, 기운, 세계. 모든 것이 다 달랐다. 그러니 정말로 ‘사냥’에 가까운 작업이었고 각성자들이 ‘헌터’로 불리는 것도 모두 그런 까닭으로 정착된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차대호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차대호와 같은 팀으로 나온 진보라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가벼운 싸움이나 분쟁 정도가 아니다.
사람을 대량 학살하려는 무시무시한 테러 행위.
‘후우. 너무 긴장돼.’
진보라는 침을 꼴깍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이 정확한 테러 위치에서 공격을 시작하기 전까지 대기하라는 작전 사항 때문이었다.
이자들은 각성자로 폭탄이나 총기를 이용한 테러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 바로 직전이나 저지르는 순간 체포하지 않으면 증거가 없었다.
‘살짝 빠져서 지나가도록 해.’
차대호의 눈짓에 진보라가 조금 더 과감하게 몸을 뒤로 움직인다.
덜컥!
그 순간 뭔지 모를 것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는 것을 차대호가 순발력을 발휘해 그녀를 잡아챘다.
떨어져 있던 건 쓰레기 나부랭이다.
‘누가 비상계단에 쓰레기를!!’
진보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두 사람은 숨을 죽였다.
“응?”
“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냐?”
“……너 여기가 서울 한복판 빌딩 안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건 그렇지만.”
“여긴 어디든 사람이 많다고.”
테러범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보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테러범이라고?
지금 저 광장에 모여 평화적인 집회를 하고 있을 뿐인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 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얼른 끝내자고. 대표님을 위해.”
대표님?
진보라와 차대호가 동시에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대표님이 무척이나 기뻐하실 거야.”
“모든 일은 그분의 기쁨을 위해서지.”
“그렇다면 우리도 등급이 올라갈지 몰라.”
“당연하지. 지금 간부들도 원래는 전부 F급이었다고 하잖아.”
“에이, 전부? 김베드로 님은 아닐걸? 타고나기를 대단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아……. 김베드로 님은 별개지.”
“하여튼 오늘 일에 집중하자고.”
테러가 성공하면 기뻐하실 대표님. 그리고 등급이 올라간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상한 말. 거기다가 김베드로라는 이름까지.
진보라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