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제101편
“다들 대피하세요!”
나와 하케임은 거의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실시간으로 포털이 생성되고 있었다.
‘하여튼 급성 포털이 문제라니까.’
간만에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평범한 일상이 날아가 버리고 있는 거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급성 포털이 생긴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등급의 포털이 아니라면 하케임과 나 둘만으로 막아 낼 수 있을 거다.’
일단 포털이 완전히 활성화되기 전까지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우선이다.
“헌터님! 도와주세요!”
유아차를 밀던 여성이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유아차의 바퀴가 보도블록의 벌어진 틈에 끼어 옴짝달싹을 못 하고 있었다.
파팟.
눈 깜빡할 사이에 이동해 가뿐하게 유아차를 들어 올린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정말 감사합니다!”
“위험하니 얼른 자리를 피하세요. 일단 이곳은 저희가 막을 테니까요.”
유아차와 여성이 광장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뒤 주위를 둘러본다. 대부분의 사람이 재빠르게 광장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휘이익!
헤르메스 세트를 이용해 광장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좋아. 대부분 대피했고, 건물 안에 사람들이 좀 있네.”
팟, 파바밧!
그대로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그리고 미처 실내에서 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둘러업는다.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지금 당장 피하셔야 해서요.”
타다다닷.
곧장 대피하기 좋은 곳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시 광장으로 향한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이미 포털의 빛이 게이트를 만들 만큼 커다랗게 퍼져 있었다.
즈즈즈즈…….
포털이 열려 있다.
주우욱, 주욱.
포털의 판판한 면에서부터 몬스터가 줄줄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미 광장을 가득 채운 몬스터는 트롤이었다.
2m는 되는 덩치에 푸른빛의 피부. 멧돼지 같은 커다란 엄니를 가진 인간형 종족이다.
녀석들은 고블린보다 훨씬 긴 팔다리에 더욱 강인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다. 고블린과 오크의 중간 모습이랄까.
특히 트롤은 지능이 꽤 높은 녀석들이어서 전투에 유념해야 한다.
“크르르……. 퓨르르르…….”
놈들은 재빠르게 대형을 잡아 주위를 탐색하고 있었다.
“선수를 뺏겼네.”
“무슨 소리. 이 몸이 단번에 쓸어 주겠다.”
“일단 이 몸의 버프부터 받으시고.”
소울메이트를 사용하자마자 하케임이 앞으로 튀어 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 그의 거대한 창검을 소환해 낸다.
쉬이이익!
뻐어어어억!!
엄청난 굉음을 내며 창검이 공기를 가르고 트롤들을 가격한다.
“응?”
한바탕 날아가야 할 트롤들이 멀쩡하다.
“뭔가 있다.”
하케임이 훌쩍 뒤로 물러난다.
“보호막 같은 게 있다.”
“네 평타가 먹히지 않는 걸 보면 굉장히 강력한 실드라는 건데.”
주위를 둘러보지만, 실드의 근원이 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키엑, 키르르르!!”
그사이 우리의 위치를 눈치챈 트롤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스윽.
거대한 장창을 가진 트롤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이런, 은하준 피해라.”
쉬이이이익!!
트롤의 강화된 신체가 전력으로 던지는 장창이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한참 느리구만. 그래서 뭘 맞히겠단 거야.”
재미로 민첩에 소울 포인트를 몰빵한 게 아니라고.
장창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것처럼 여유롭게 읽힌다.
휘익!
높이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어떤 놈이 쓰는 거지.”
분명 방벽 스킬을 쓰는 놈은 티가 날 터였다. 하지만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방법이 하나 더 있지.
“n번째 눈, 에스퍼 시야.”
에스퍼 시야를 이용하면 당장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대상은 티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엥? 정말 없다고?”
“일단 공격 재개.”
하케임이 다시 앞으로 나선다.
“이번에는 스킬을 사용해 보지.”
휘익. 쿠르르르.
거대한 창검 주위로 푸른 빛이 서린다.
콰과과광!!
휘두르는 것만으로 주변의 조형물들이 설탕 과자처럼 부서진다.
“어라라?”
이번에도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트롤들을 건드리지조차 못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장창을 던지던 트롤의 공격력을 대충 계산해 보았을 때 이놈들은 아주 고랭크의 몬스터가 아니다.
한데 이 정도로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이상했다.
심지어 하케임의 공격 아닌가.
S랭크 던전의 와이번조차 몇 번의 공격으로 녹아 버리게 만드는 강력한 각성자다.
“뭔가 있어.”
하지만 보이지 않고 찾을 수 없다.
“생각보다 길어지겠는데.”
미리 사람들을 대피시킨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쐐애애액!!
트롤들이 원거리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녀석들이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놈들 자체가 아주 강한 랭크는 아닌 것 같은데.’
공격을 위해 저 멀리 떨어져 있던 하케임이 훌쩍 다가온다.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데, 어떡하지.”
“흐음. 분명 방어막을 치고 있는 놈이 따로 있을 거야. 좀 더 놈들을 헤집어 보자. 공격이 아니라면 파고들 수 있을지도 몰라.”
“좋아.”
이번에는 과감하게 안을 파고들어 근접전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높여 놓은 민첩 스텟으로 충분히 놈들의 단단한 진영을 무너뜨릴 수 있을 터.
휙, 쉬이이익!!
트롤들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너무 쉽다고.’
피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새벽의 검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받아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분명 방어막이 쳐져 있을 거리까지 단숨에 들어왔다.
‘통과가 된다.’
다행히 아예 적 자체를 밀어내는 방어막이 아니었다.
방어막 안으로 들어와 검을 이용한 근접전으로 공격을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트롤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이 녀석들, 방어막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트롤들이 방어막 밖을 벗어난다.
“하케임!”
내 부름에 하케임이 처음 시도했던 검기를 트롤 방향으로 날렸다.
쉬이이익! 퍼어어억!
이번에는 방어막에 걸리지 않고 그대로 트롤에게 공격이 가 닿았다.
콰앙! 캉!!
검이 부딪치고 드디어 트롤과 제대로 붙어 보게 됐다. 당장 맞붙은 트롤은 특별한 지점을 찾아낼 수 없다.
회귀 전에도 숱하게 겪었던 트롤이다.
생김새, 기운, 힘, 전술. 모두 이미 내게 익숙하다. 하지만 트롤이 이런 마법 방어막 기술을 사용한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츠츠츳.
트롤과의 근접전을 벌이는 중에 급하게 뒤편으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마법!’
무엇인가가 몸을 그러쥐는 느낌. 하지만 형제는 없다. 속박 마법이 분명했다.
“케에엑!”
쉬익!
트롤의 검이 내 머리 위로 내려쳐진다.
하지만, 촤르르르륵!! 반투명한 사슬이 주변 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내 몸을 감싸 쥐어 완전히 방어한다.
카아앙!!
트롤의 검이 닿지만 내 억압의 손길을 끊어 내지는 못한다.
츠르륵. 사슬을 해제함과 동시에 새벽의 검이 트롤이 당황하며 비워 낸 틈을 파고들어 결국 놈의 목을 베어 낸다.
촤아악!
트롤의 뜨거운 피가 광장 바닥으로 흩뿌려진다.
‘이게 뭐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트롤들이 스스로 나갈 수 없는 방어막을 쳤다? 그러다가 상황이 나빠지자 방어막을 거두는 건 너무나 기묘한 행위.
‘이건 뭔가…… 포털에서 나오는 트롤들을 보호하기 위함인가?’
그렇다는 건 트롤을 조종하는 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방금과 같은 속박 마법.
눈앞에 있던 트롤이 쓰던 것도 아니고 주변에 마법사 트롤도 없다.
‘n번째 눈, 에스퍼 시야.’
이번에는 트롤 무리가 가득한 방향이 아니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트롤 무리를 전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방향.
“……!!”
사람이 있다.
광장 옆 쇼핑센터의 내부에 작은 인영이 보인다. 게다가 그는 분명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각성자.
‘인간이 몬스터를 위해서 스킬을 사용했다고?’
그렇게 짜 맞춰지면서도 도저히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체 왜?
“하케임. 이곳을 맡아 줘.”
“응.”
“경계의 안개 숲.”
스킬을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희뿌연 안개가 솟구친다.
스으으으…….
피어오르는 안개에 트롤들이 당황한다.
아마 쇼핑센터의 각성자도 시야가 차단당해 당황하고 있을 터.
그 허를 노릴 셈이다.
타다닷!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낸다.
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탓, 타다닷! 에스퍼 시야를 이용해 확인했던 놈의 위치에 거의 다다른 순간.
쉬이익!
무엇인가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내게 날아든다.
“핫!”
달리는 가속도가 있었기에 억지로 몸을 틀며 공격을 피해 냈다.
퍼억!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버린다.
“크윽.”
우당탕!! 거하게 한 바퀴 뒹굴어 버린다.
‘아아, 그놈만 생각하고 달려들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방심했다.’
쉬이익!!
다시 날아드는 예기. 한 번은 방심했지만, 두 번은 없지. 몸을 비틀어 튕겨 일어나면서 예기를 피해 준다.
그리고 곧장 예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억압의 손길을 시전한다.
차르르륵!!
투명한 사슬이 맹렬하게 날아가 예기의 근원지를 잡아낸다.
“크으윽!”
뭔가 앳된 목소리.
게다가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복면을 쓰고 있다.
“너, 뭐야…….”
“그러는 너야말로 뭐냐!”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은 생각보다 당돌하게 내 말을 맞받아쳤다.
“너. 여기서 트롤들을 도운 것 맞지?”
“그렇다면 어쩔 테냐.”
“뭐라고?”
이 어린 각성자가 순순히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털어놓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바보 같은 놈. 너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이 세계의 이치를 이해할 리가 있나.”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려는데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눈앞이 까맣게 변한다.
* * *
“하준, 은하준!”
“……으, 으으.”
“괜찮은 거냐?!”
“하케임……. 이게 어떻게 된…….”
“광장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다른 길드에서 지원이 왔다. 돌발 포털은 공략 중에 있고. 나는 네가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 의식을 잃은 후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주인님! 놈들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제게도 마법을 거는 바람에 따라가지 못했어요.”
“괜찮아, 망량아. 괜히 혼자 따라가려고 했다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으니까.”
“뭐에 당한 거냐?”
“뭐에…… 그러니까 나를 공격한 건 사람이었어.”
하케임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몬스터라면 너를 이렇게 두고 가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지.”
“마치 몬스터의 편인 듯한 말을 했어.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도 그랬고. 하지만 인간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도록 하자. 기절 외에도 다른 곳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하케임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다.